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28화 (28/353)

EP.28 도마뱀 소굴 (5)

기믹(Gimmick).

속임수나 트릭으로 알려진 뜻이지만, 던전을 공략하거나 보스를 사냥할 때는 일종의 패턴 혹은 장치를 의미하는 말.

단순히 구도를 잡고 공격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특정 조건을 만족했을 때 공략이 완성되는 것.

그리즐리 드레이크는 기믹 보스였다.

압도적인 내구력 수치로 물리 공격을 모두 방어하고, 던전 자체의 버프 효과로 마력이 담긴 공격 또한 모조리 무시한다.

그러니까 괴수 본연의 힘이 이 정도로 강한 게 아니다.

그는 던전의 구조적인 힘을 추가로 받아, 일반적인 A급 괴수를 넘어선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기믹 보스를 뚫으려면 패턴을 파악하거나 공략 방법을 알아야 한다.

만약 이 녀석이 원작에 나왔던 괴수라면.

난 그 파훼법을 꿰뚫고 있었을 것이다.

던전 보스의 패턴 정도는 거의 외우고 있던 게 나니까.

하지만 아카데미 지하 던전은 주연들의 성장을 위해…

초입부만 등장하고 나오지 않았던 던전이다.

보스에 대한 공략법은커녕, 중간부에 진입하는 방법도 겨우 알아냈었다.

그런데 던전 보스.

그것도 기믹 보스인 그리즐리 드레이크를 상대할 방법.

이를 알아낼 수 있을까…?

이미 내 머릿속은 백지가 된 지 오래였다.

-그르르으…!!

공격을 한 차례 무효화한 그리즐리 드레이크가 몸을 일으켰다.

이후 무슨 행동을 할지는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마치 죽음의 선고와도 같은 움직임.

너무도 쉽게 예측되는 미래에.

파티원들의 얼굴이 모두 절망으로 물들었다.

실패.

그 두 글자가 내 가슴에 대못처럼 박혔다.

이 세계에 떨어지고 난 후.

계획한 대로 일이 잘 풀리고, 생각하지 못한 행운들이 찾아오면서… 나는 어딘지 모르게 들떠 있었던 모양이다.

이 세계에 대해 나보다 잘 아는 이는 없다고 생각했고, 주연들과 함께 더 효과적으로 사건들을 풀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위기는 절대 없을 것이다.

그 오만에 가득 찬 확신은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나도 모르게 자리했다.

그리고 그 끝에 서 있던 건.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후회였다.

모두를 위험에 빠뜨렸다.

그 아픈 현실이 자꾸 마음 한구석을 찔렀다.

-그르르! 그르르으…!!

“흐읍…!!”

하지만 그대로 멈춰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내가 오판했다면, 다시 옳은 길을 찾아야 한다.

내가 망가뜨렸다면, 새롭게 그를 바로잡아야 한다.

더 이상 소설이나 게임과 같은 세상이 아니다.

현실이다.

나의 오만으로 이들을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무너지려는 마음을 붙잡고, 다시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몸 깊숙한 곳에 남아있는 모든 힘을 쥐어짜, 그리즐리 드레이크에게 달려들었다.

[단단해지기]는 더 쓸 수 없다.

1시간의 쿨타임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진 내구와 근력을 총동원해 덤비는 수밖에.

결과가 예측되는 행동이지만.

난 해야만 했다.

“끄, 아아악-!!”

“재현아-!! 안 돼…!!”

김채은의 절망적인 목소리와 함께.

어깨 쪽 살갗이 완전히 뜯겨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정면에서 그리즐리 드레이크를 들이받은 탓에, 놈의 날카로운 이빨이 내 몸을 파고든 것이다.

이제 검을 쓰는 건 무리다.

왼쪽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무감각.

이에 더는 양손으로 검을 들 수 없다.

한쪽 손으로도 검을 쓸 수는 있지만, 균형이 무너지면 더욱 위험해지는 건 오히려 나였다.

“도재현! 이런 씨발-!!”

박진우가 분노에 차 달려드는 게 보였다.

그동안 싸우면서 정이 많이 들었나.

내가 당한 게 그렇게도 분한 모양이다.

“빨리, 빨리 마법을…!!”

“…….”

그뿐만 아니라, 김채은도, 강주연과 문가은도.

의미가 없는 걸 알면서도 다시 그리즐리 드레이크를 향해 각자의 공격을 조준했다.

‘나라는 양반. 갈 때도 예술로 가는구만….’

과다 출혈과 통증으로 몽롱해지는 기분 속에서도 괜히 웃음이 났다.

왼쪽 어깨를 물어뜯은 그리즐리 드레이크가 다시 입을 벌렸다.

이번엔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놈의 아가리.

이대로 피하지 않는다면.

놈의 이빨이 내 머리를 물어뜯겠지.

그 모습이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때.

번뜩이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이빨?’

콰아앙-!!

그리즐리 드레이크의 아가리가 던전 구석을 박살 냈다.

순간적으로 [날렵한 몸놀림]의 보조를 받아.

내 얼굴에 오는 공격을 피해낸 것이다.

덕분에 놈의 발톱으로 몸이 더 짓이겨지긴 했어도…

어쨌든 목숨은 구했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방금 떠오른 생각이었다.

이빨.

내 어깨를 물어뜯은 놈의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나도 그를 강화할 수 있는 룬이 있었다.

‘견고한 이빨.’

[견고한 이빨]은 단순히 짐승처럼 상대를 물어뜯기만 하는 룬이 아니다.

이빨로 상대를 물었을 때.

상대의 내구력을 깎아낼 수 있는 특수효과.

보유한 이의 내구는 보조하고, 상대의 내구는 파괴하는 룬.

나는 그걸 깨닫자마자 곧바로 소리쳤다.

“박진우! 내가 이 새끼 이빨로 물면, 문 곳에 공격해!”

“뭐? 그게 무슨 개소리…”

“설명할 시간 없어! 문가은, 너도!”

“으, 응!”

어차피 던전의 버프를 받은 기믹 보스이기에…

마법사들의 공격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법을 담은 공격은 모조리 무효화하듯 사라져 버리니까.

유효타를 주는 건 오로지 박진우와 나, 그리고 문가은뿐.

나는 재빨리 이빨에 힘을 준 채 놈의 어깻죽지를 물었다.

내 [견고한 이빨]은 현재 3레벨.

지금 레벨로는 총 20의 내구력을 깎을 수 있다.

그리즐리 드레이크의 내구 수치가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20 정도라면 충분히 유효한 수치였다.

“뒤져어…!!”

내가 이빨로 물어뜯은 어깻죽지.

그곳에 박진우의 검과 문가은의 사격이 정확하게 날아들었다.

-그르르으아…!!!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한 그리즐리 드레이크가 난동을 부렸다.

하지만 생각했던 만큼의 큰 효과는 없었다.

아까와 비교했을 때.

꽤 타격을 입히긴 했지만, 공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녀석은 짜증이 난 듯 몸을 비틀며 나와 박진우를 몰아쳤다.

또 한번의 격통이 온몸에 밀려온다.

“끄악…!!”

“흡!! 이 새끼 속력도 뒤지게 빠르네, 진짜.”

그리즐리 드레이크는 시즐링 샐러맨더나 톡신 이구아나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진 괴수는 아니다.

다만 놈들에 비해 근력과 속력, 그리고 내구가 비약적으로 높다.

극한의 신체강화.

그게 오히려 그리즐리 드레이크의 능력인 것이다.

마치 이 던전에 나오는 괴수들의 신체적 장점을 모두 업그레이드시켜 가져온 것 같은 괴수.

때문에 한 번 공격을 실패하면.

우린 그만큼의 타격을 입어야만 했다.

“도재현, 이거 맞아?”

“한 번만 더 해보자. 어차피 안 하면 우리 다 죽어.”

“…그건 맞지.”

나는 다시 몸의 균형을 잡고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이건 재밌게도 [사족 격투]의 보조를 받았다.

던전 중간부에서는 다수의 시즐링 샐러맨더를 사냥하며 저번에 미처 획득하지 못했던 룬들도 얻었는데, 그 중엔 [사족 격투]도 있었다.

인간인 내가 이딴 룬의 보조를 받을 일은 절대 없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활용할 상황이 빨리 찾아온 것이다.

역시 룬은 보유하고 볼 일이었다.

“박진우, 문가은! 지금!”

나는 한 번 더 그리즐리 드레이크에 달려가…

이번엔 다리를 물었다.

이후 이어지는 파티원들의 공격.

아쉽지만 여전히 효과는 미미했다.

반사효과로 나와 박진우는 또다시 던전 바닥을 뒹굴었다.

‘미친… 내구력이 너무 높아.’

저절로 욕이 나온다.

그리즐리 드레이크는 A급 괴수인 걸 고려해도 내구 수치가 너무 높다.

아마 특별한 능력을 배제한 만큼.

신체적인 부분에 룬 보조를 받았기 때문이겠지.

정말 놈을 공략할 방법이 없는 걸까?

혼미해지는 정신 속에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놈을 공략할 방법, 놈을 공략할 방법.’

놈을 공략할 방법이…

- …따라서 아무리 강력한 방어 룬과 내구 수치를 지닌 괴수라고 하더라도, 마력석이 자리한 곳은 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겠습니다.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있었다.

강주연에게 파티 제의를 하러 가던 날.

<괴수의 역사와 정보> 수업에 교수가 했던 말.

괴수의 약점은 마력석이 자리한 곳이다.

사실 이건 홀더들 사이에서도 흔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거의 없는 편이다.

애초에 전투 중 마력석이 자리한 미세한 위치를 찾아낸다는 것도 요원한 일이고, 그토록 복잡한 약점을 찾아낼 정도로 괴수의 내구력이 높은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즐리 드레이크는 달라.’

놈은 압도적인 수치의 내구력과 관련 룬으로 온몸을 보호받는 특수한 보스 괴수다.

어떻게든 약점이 될 만한 곳을 찾아내는 데에 의미가 있었고, 그를 공격할 수 있다면 충분한 효과가 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견고한 이빨]의 내구 감소 효과.

이를 놈의 마력석이 자리한 신체 부위에 먹일 수 있다면, 이후의 공격은 몇 배로 증가한 효율을 보일 것이다.

“박진우! 검…!!”

나는 바닥에 쓰러진 박진우를 다급히 불렀다.

내 몸은 거의 너덜너덜해져 쥐어진 무기조차 없었다.

“씨…바. 내가 다시는 너랑 던전 안 온다.”

박진우는 욕을 내뱉으면서도, 기어코 내게 검을 던졌다.

남은 모든 힘을 쥐어짰다.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김채은과 강주연으로부터 포션을 건네받아, 나름의 회복을 한 채 덤비는 공격이었다.

“뒤…져라, 좀!!”

나는 그리즐리 드레이크에게 달려들었다.

극한으로 치달아 분비된 아드레날린이 몸을 움직였다.

또다시 놈의 아가리가 벌어졌지만…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계획했던 곳을 향해 들어갔다.

마력석이 자리한 곳은 놈의 쇄골 쪽.

그대로 마력석 부분을 물고.

유일하게 움직이는 오른팔로 검을 들어 찔러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겼던 무기.

그간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해서…

차마 써 볼 엄두가 나지 않았던 기술.

그 발현을 위해.

얼마 안 되는 마력을 모두 오른손의 검에 쏟아 넣었다.

츠, 츠파앗-!!

검 안에 쏟아지는 마력.

그 기운이 만들어낸 하나의 참격.

이는 괴수의 몸 한가운데에서 작렬하며.

탄탄한 내구와 던전의 버프를 모두 뚫고 폭발했다.

너무 급박한 상황이라 사용 조건인 ‘언령’을 쓸 틈도 여유도 없었지만, 운 좋게도 하늘은 내 손을 들어줬다.

-그, 그르으아…!! 아아아…!!!

그리고 던전 안을 가득 채우는.

고통에 겨운 듯한 그리즐리 드레이크의 울음소리.

보스 룸에 들어온 이후로 처음 듣는.

기괴하면서도 소름 끼치는 소리.

“하… 존나 듣기 좋네.”

하지만 내게 있어선.

그 무엇보다 경쾌한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우리를 죽음의 문턱까지 몰아넣었던…

지독한 도마뱀의 끝을 담은 괴성이었다.

[미공략 던전을 최초로 공략했습니다! 홀더의 모든 능력치가 2씩 상승합니다.]

[보스 룸에 굳게 닫혀 있던 레스트 룸이 드러납니다. 던전의 스산한 기운이 일시적으로 사라집니다.]

[거침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검의 물결은 마치 파도와도 같습니다. 한 번 상대를 놓치지 않는 당신의 검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적의 급소를 찔러 들어갈 것입니다. 파상검법의 이해도가 급격히 증가합니다.]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파상검법 룬의 궁극스킬, ‘파상천검’을 획득했습니다. 한계를 넘어선 비정상적인 획득에 스킬 사용이 제한됩니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바닥에 낙하하며.

완전히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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