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29화 (29/353)

EP.29 잊혀진 아룡 (1)

깊은 어둠이 깔린 방.

갖은 종류의 와인이 컬렉션처럼 방안에 진열되어 있다.

일반인이 구매할 수 없는 진귀한 와인부터…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값싼 와인까지.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 방의 주인은 와인 수집가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어두운 방의 주인.

차수연은 창밖을 보며 천천히 와인을 음미했다.

많은 것을 잃고 삭막해진 삶이지만…

이렇게 와인을 마시며 바깥세상의 사람들을 볼 때면.

그녀는 여전히 살아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지부장님.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흥을 깨는 목소리가 들렸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자.

이번 홀더 아카데미에서 암살자 계열 차석으로 입학한 신입생이자, <빌런> 클랜 아카데미 지부 소속 홀더.

지윤재였다.

예고 없이 찾아온 부하에 짜증이 몰려온다.

하지만 차수연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음음. 무슨 문제가 생겼을까?”

<빌런> 클랜에서 서울 홀더 아카데미에 계획한 바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괴수를 부르는 특수 아이템 [오드 베이트]를 통해, B급 괴수를 아카데미 내부에 나타나게 했다는 것?

그마저도 전면전은 아니었다.

단순히 [마력 결계]가 깨질 수 있다는 가능성.

그를 아카데미에 보여준 것이니.

준비 단계에 불과한 지금은…

문제가 생길 여지 자체가 없었다.

그런데 지윤재의 입에선 정말 문제가 될 법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아카데미 지하 던전이, 아무래도 공략된 것 같습니다.”

“음?”

차수연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뭔가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녀는 와인을 한 모금 들이킨 후.

기다란 손으로 지윤재의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게 무슨 말일까?”

“지하 던전 입구에 연동해 두었던 아티팩트가 반응했습니다. 아무래도 타 홀더에게 발견되고, 공략이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아티팩트의 성능을 고려했을 때 아마 확실한…”

“윤재야.”

“예, 지부장님.”

차수연의 주변에서 조금씩 마력이 끌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동자는 한없이 차가웠다.

“그게, 무슨 말일까?”

“컥. 커억- 지부, 장님… 커헉.”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지윤재의 자세가 무너졌다.

그는 비틀린 자세로 엎드린 채.

고통스러운 얼굴로 숨을 토해냈다.

차수연의 트레이드 마크인 [견딜 수 없는 중력].

이 룬의 마법이 그에게 쏟아진 것이다.

목이 졸리는 것 같은 압박감.

압도적인 강도의 중력이 주는 위협.

[견딜 수 없는 중력]은 지극히 위험한 룬이었다.

차수연은 와인을 탁자에 놓은 후.

지윤재가 엎어진 곳 앞에, 무릎을 구부리며 앉았다.

“음음- 윤재, 아프니?”

“크읍- 아닙…니다.”

“거짓말. 아프면서.”

차수연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그러자 그에게 가해지던 압박이 조금 풀렸다.

지윤재는 헐떡거리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윤재야.”

“예, 지부장님.”

“미발견 던전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지?”

“예. 알고 있습니다.”

미발견 던전, 혹은 미공략 던전.

최초로 공략을 완료하면 시스템에 의해 홀더 정보와 관련한 보상을 받고, 마지막 방인 레스트 룸에서의 보상도 독식할 수 있는 숨겨진 던전.

홀더라면 누구나 찾기를 원하고…

찾는다면 누구나 공략을 시도한다.

<빌런> 클랜 아카데미 지부는 최근.

이러한 미발견 던전의 공략을 앞두는 중이었다.

차수연이 웃으며 다시 물었다.

“클랜에 지원 요청한 상태라, 일주일만 있으면 공략할 수 있던 것도 알고?”

“예.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윤재가 최초로 발견한 던전이라 믿고 맡겼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발견자가 아무도 없다며.”

“죄송합니다. 제가 아무래도 놓친 부분이…”

“음음- 안 되겠다, 역시.”

원하지 않는 대답이 나왔다.

차수연은 그런 논리로 다시 마법을 시전했다.

“윤재는 혼 좀 나야할 것 같아.”

“컥- 커어억- 사, 살려주십…”

지윤재의 몸에 또 한 번, [견딜 수 없는 중력]이 작렬했다.

…애초에 원하는 대답이 있긴 했던 걸까?

그런 질문은 의미가 없었다.

<빌런> 클랜은 일반적인 논리가 통하지 않는.

괴이하고 냉혈한 싸이코들의 집합체니까.

* * *

눈을 뜨니 익숙한 천장이었다.

요 며칠 계속해서 공략했던 던전의 천장.

동굴과 같은 구조로 만들어진 던전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를 확인하자마자 곧장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온몸에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

특히 왼쪽 어깨에 입은 부상은 과도하게 아프다.

난 내 의도와 상관없이 다시 몸을 굽혀야만 했다.

“아! 아윽….”

“도재현, 괜찮아? 아직 일어나기 힘들 거야.”

쓰러진 나를 돌보고 있던 걸까.

옆에서 문가은이 급히 나를 부축했다.

뜬금없지만 그녀의 손이 꽤 따뜻한 게 느껴졌다.

털털한 그녀의 성격과 뭔가 안 어울리는….

문가은은 은근히 겉보기와 다른 면이 많았다.

나는 왼쪽 어깨를 부여잡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다른 애들은?”

“보스 룸에서 마력석이랑 보상 정리하고 있어. 너 일어나면 분배하려고.”

“나 일어나면?”

그러고 보니 얼마나 쓰러져 있던 걸까.

그 지독한 도마뱀 새끼 잡았던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문가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공략 마무리하는 데에 네 역할이 제일 컸잖아. 당연히 네가 선택권을 갖는 게 맞는 것 같아서.”

“에이, 그건 보스 잡을 때나 그랬고. 일반 괴수들 잡을 땐 딜러들이 다 했지.”

“그런 소리 하지 마. 네 덕분에 우리 다 살 수 있었어.”

“…민망하네.”

이번 던전 공략에서 가장 위험했던 보스 룸.

여기서 죽음의 위기를 느꼈던 건.

모두의 생각이 같았던 걸까.

감사를 표하는 문가은의 말에 진심이 느껴졌다.

그녀는 잠시 내 몸 상태를 살피더니 되물었다.

“몸은 좀 어때? 어깨 쪽은 심각한 것 같은데.”

“사 놨던 포션 다 들이부어서 그런지 괜찮아. 어깨야 뭐… 나가서 신성 계열 홀더들한테 치료받으면 될 거고.”

최아린에게서 포션을 대량구매했던 건 신의 한수였다.

대부분을 내가 다 쓰긴 했어도…

어쨌든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나중에 최유민과 최아린을 찾아 감사 인사를 한 번 해야 할 것 같다.

거기에 심각한 부상인 어깨.

이건 신성 계열 홀더들에게 치료받으면 된다.

홀더들이 자신의 능력을 직업으로 삼는 세계다.

여기선 병원 의사들보다, 신성 계열 홀더들이 운영하는 ‘신성 치료소’를 방문하는 게 더 효과가 좋았다.

돈만 적당히 지불하면.

그들은 어떤 외상이든 치료해준다.

“근데 아직 일어날 힘까진 없다.”

“부축해줄까?”

“그럼 나야 고맙지.”

그렇게 문가은의 부축을 받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내 한쪽 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치고, 다른 손으론 내 허리를 붙잡았다.

정석적인 부축 자세.

하지만 너무 몸이 가까워진 탓인지.

예상치 못한 신체 부위들도 서로 닿아 있었다.

나는 순간 당황해 시선을 돌렸다.

‘…민망하네.’

문가은은 정말…

정말 겉보기와 다른 면이 많은 것 같다.

그렇게 그녀의 부축을 받으며 보스룸으로 나가는 도중.

밀려있던 정보창들이 단번에 나타나 눈앞을 어지럽혔다.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결투에서의 높은 기여도로 인해 승리가 인정됩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1.위압 2.도마뱀의 비늘(선택불가) 3.날렵한 몸놀림(선택불가) 4.괴력(선택불가) 5.사족격투(선택불가)]

[위압을 선택하셨습니다. 3레벨의 에픽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해, 1레벨로 등록됩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정신을 1 획득합니다.]

<룬 정보>

◎이름: 위압

◎등급: 에픽(Epic)

◎레벨: 1

◎새겨진 부위: 볼

◎특수효과

: 자신보다 능력치가 낮은 상대와 전투 시, 해당 능력치의 5%(Lv.1)만큼을 보조받는다.

: 정신 +1

◎파생스킬

[선전포고]

◎세부정보

: 강한 힘을 가진 자에겐 그만큼의 위엄이 갖춰진다. 약자를 상대할 때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한다.

그리즐리 드레이크를 사냥하고 얻은 룬에 관한 정보창이 나타났다.

예상했던 대로…

그리즐리 드레이크는 던전에 출몰하는 모든 괴수.

그들의 룬을 고스란히 지닌 보스 괴수였다.

[도마뱀의 비늘]과 [날렵한 몸놀림], [괴력], 그리고 [사족 격투]는 초입부와 중간부에서 마주쳤던 괴수들이 각각 지닌 ‘신체와 관련된 룬’이다.

그리즐리 드레이크는 이 룬들을 극한까지 성장시켰기에 그토록 압도적인 전투력을 보인 것이다.

특히 엄청난 위력을 보였던 방어력을 고려하면.

[도마뱀의 비늘]은 거의 Max 레벨에 다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이미 해당 룬들을 모두 보유했기에 자동으로 [위압]이 선택되어 룬으로 등록됐다.

[룬 사냥꾼]과 [구도자의 땀방울] 이후.

처음으로 획득하는 에픽룬이었다.

‘성능이 엄청나네….’

나는 [위압]의 룬 정보를 읽으며 혀를 내둘렀다.

정보창에 보이는 하나하나가 다 매력적인 효과들뿐이다.

우선 정신 관련 룬이라는 것.

정신은 홀더에게 꽤 중요한 능력치인 반면, 내가 지닌 능력치 중엔 수치가 꽤 낮은 편에 속한다.

때문에 정신을 보조해주는 룬 획득은 내 입장에선 귀하다.

거기에 특수효과.

자신보다 능력치가 낮은 상대와 전투 시, 해당 능력치에 보조를 받는 효과.

만약 내 근력이 상대 근력보다 높다면, 거기에 5%의 보조를 받은 근력으로 전투가 가능하다는 것.

이는 아마 레벨에 따라 퍼센티지가 달라지는 것 같다.

[위압]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특수효과였다.

‘그래서 그리즐리 드레이크가 그렇게 강했던 거구나.’

아무리 A급 괴수에 던전 보스라곤 해도.

우리 파티 역시 절대 약하지 않았다.

강주연은 B급 홀더에, 나머지 파티원들은 같은 등급 내에서도 더 뛰어난 실력을 보이는 C급 홀더들.

나와 박진우가 이제 막 C급 수준에 다다르긴 했지만, 특수한 능력들이 많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A급 괴수를 사냥하는 정석적인 B급 홀더 파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하지만 마법 공격을 완전히 무시하는 던전 기믹.

그리고 [위압]이나 강화룬들이 겹쳐진 전투력.

이런 다양한 변수 때문에…

그리즐리 드레이크가 더욱 강할 수밖에 없었다.

‘선전포고도 쓸만하고.’

그리즐리 드레이크가 우리와 처음 맞닥뜨렸을 때 상태 이상 ‘공포’를 걸었던 스킬, [선전포고].

전투 시 상대에게 일시적이지만 상태 이상을 걸 수 있다는 건 상당히 매력적이다.

특히 상태 이상 스킬은 얻기도 힘들고…

관련 룬도 귀한 편이기에 더 반가웠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1시간의 긴 쿨타임 정도.

그럼에도 활용할 부분은 충분히 많아 보였다.

“재현아! 괜찮아?”

“오우, 일어났냐.”

레스트 룸을 벗어나 보스 룸에 돌아오자.

김채은과 박진우가 날 반겼다.

그 옆엔 강주연도 안심이라는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부담스러운 환영인데.

확실히 목숨을 걸고 함께 한 공략은 전우애를 만드는 것 같다.

처음 던전에 들어올 때의 어색함은 거의 없고, 왠지 모를 끈끈함만 파티에 남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들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 보상 확인 중이라며.”

“응! 다 정리해놨어. 와서 봐 봐.”

김채은의 손길에 발걸음을 옮겼다.

보스 룸 한가운데에 가지런히 진열된…

각종 마력석과 아이템들.

미공략 및 미발견 던전의 진정한 꽃.

레스트 룸 보상을 확인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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