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30화 (30/353)

EP.30 잊혀진 아룡 (2)

이 세상의 세계관은 독특하다.

‘룬’을 기반으로 한 일종의 게임 시스템이 홀더 사회 전반에 깔려있고, 홀더들은 그 시스템 아래에서 룬을 성장시키고 홀더 등급을 높여 본연의 능력을 증명한다.

괴수를 사냥해 돈을 벌고 성장하는 게 일종의 ‘플레잉(Playing)’처럼 돼버렸지만, 어떤 홀더든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부터 만들어진 시스템이고.

사람들 대부분은 여기에 적응했으니까.

홀더 시스템에 관한 건 수없이 많은 학자에게 연구가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밝혀진 게 많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진짜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고.’

형태가 게임과 비슷하다고 해서.

이를 게임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괴수의 위협은 뚜렷한 현실이었고…

여차하면 누구든 괴수에게 죽을 수 있었다.

‘던전도 마찬가지지.’

괴수의 리젠과 보스가 존재하는 던전도 비슷하다.

등급에 따라 충분히 위험할 수 있고 무자비한 괴수들이 넘실거리지만, 시스템 자체는 게임의 형태와 유사했다.

“와, 그럼 이 던전 다시 공략해도 이 보상들은 못 얻는다는 거네?”

박진우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하긴 탁원호 교수도 모르는 녀석이 던전이라고 잘 알까.

박진우는 정말 싸우는 것밖에 모르는 놈이었다.

난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답했다.

“그래. 우리도 고생한 만큼 보상받는 거지.”

“그럼 보스는 어떻게 되는 거야?”

“리젠은 되는데, 사냥 성공해도 레스트 룸은 다시 안 열리지. 아마 기믹도 사라져서 더 잡기 쉬워질 걸.”

레스트 룸은 처음으로 던전을 공략하고, 보스를 사냥한 파티에게만 열린다.

따라서 레스트 룸의 보상은 최초로 던전을 공략한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특혜였다.

괜히 미발견 던전을 공략 후 급성장했다는 홀더들이 많은 게 아니었다.

“근데 진짜 내가 먼저 골라도 돼?”

나란히 진열된 보상들 중 하나.

파티원들은 내게 그를 가장 먼저 고를 권한을 줬다.

그다음은 아이템을 전부 확인 후 다시 분배하는 방식.

다시 말해 보상을 미리 추가로 선택할 권한을 준 것.

상당히 파격적인 분배 방식이었다.

‘괜히 좀 그렇네.’

이래도 되나?

라는 생각이 안 들 수 없다.

물론, 이번 공략에서 내 기여도가 높았던 건 사실이다.

보스를 공략할 당시.

내가 가진 모든 걸 쏟아부었고…

그게 아니었다면 다들 위험했으니까.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논리적이지 않다.

막상 너무 좋은 아이템이면 배 아플 수도 있잖아.

혹시나 레스트 룸 보상 중에 에픽 아이템이라도 있으면 골치 아파지니까.

“…네가 없었으면 우린 다 죽었어.”

그런 내 말에 김채은이 뭐라 답하려던 찰나.

갑작스레 강주연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녀는 살짝 민망한 듯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충분히 자격 있어. 그러니까, 먼저 골라.”

“그, 그래! 보스 공략 때 재현이 네가 거의 다 했잖아! 미안해하지 말고, 먼저 골라.”

너무 의외의 인물이 예상 못 한 말을 꺼냈기 때문일까.

김채은도 당황하며 말을 덧붙였다.

…뭔가 자기가 할 말을 뺏겼다는 말투네.

박진우와 문가은도 고갯짓으로 뜻을 전했다.

같은 생각이라는 의미.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빼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란히 진열된 아이템들을 천천히 살폈다.

“음….”

레스트 룸의 보상은 다양하다.

특히 평균 괴수 등급이 B급인 이런 던전이라면 더더욱.

각종 무구와 방어구, 특수 아이템들에 마력석까지.

꽤 많은 종류의 아이템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어?”

그리고 그중.

가장 눈에 띄는 한 아이템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래된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지만.

고고한 기운이 담겨 있는 듯한 모양새의 석판.

투박한 생김새여도, 평범한 아이템은 아니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는 석판.

그런 석판 하나가.

많은 아이템들 사이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췄다.

그리고 나는.

그 석판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지윤재가 갖고 있던 석판 아니야?’

용을 탄 암살자, 지윤재.

<빌런> 클랜 출신의 스파이이자.

후반부 강력한 홀더로 성장하게 되는 미래의 적.

내 눈에 들어온 저 석판은…

작중 그가 완성하게 되는 특수 아이템의 생김새와 완전히 똑같았다.

나는 서둘러 다가가 석판을 집었다.

<아이템 정보>

◎이름: 잊혀진 아룡의 석판

◎종류: 특수

◎등급: 전설(Legendary)

◎제작자: -

◎특수효과

: 한때 세상을 지배했던 특별한 힘이 봉인되어 있다. 석판의 빈 홈에 잊혀진 아룡들의 마력석을 모두 채워 넣으면, 거대한 봉인이 해방된다. (0/5)

: 3시간 동안 꾸준히 석판에 마력을 주입하면 3의 정신을 획득할 수 있다. 단 한 번만 얻을 수 있는 효과이며, 한 번 사용하면 다시 쓸 수 없다.

◎세부정보

: 이름과 명예를 잊은 자들에겐, 군림하던 힘마저 되찾기 어렵다. 고대의 역사를 담은 아룡들의 흔적을 채워가다 보면, 석판의 비밀을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유레카!

나는 속으로 환호하듯 소리쳤다.

예상했던 대로.

원작의 지윤재가 완성했던 특수 아이템이 맞았다.

지윤재는 이 아이템을 완성한 후.

용과 관련된 전설룬을 획득하며…

‘용을 탄 암살자’라는 별칭을 얻었었다.

‘전설룬을 얻게 되는 아이템이었구나.’

전설(Legendary)룬.

고대의 역사나 흔적이 담긴 힘을 사용할 수 있는 룬.

이름만 들으면 에픽(Epic)룬의 상위호환인 룬처럼 들리지만, 사실 성능 자체는 에픽룬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뛰어난 정도다.

신의 숨결이 닿아 있다는 신화(Mythic)룬 또한 마찬가지.

세 종류의 룬 모두 한 종족이나 개체가 고유하게 가질 수 있는 룬이고, 성능 역시 노멀룬이나 레어룬에 비해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성질만 조금 다를 뿐이지.’

전설룬이나 신화룬은 그 성질과 획득방법이 독특한 탓에 효과를 내는 풀이 조금 더 넓을 뿐이었다.

일례로 [구도자의 땀방울]도 어떤 전설룬이나 신화룬에도 밀리지 않을 엄청난 효과를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구도자의 땀방울] 같은 특수 케이스를 제외하면.

보편적으로 전설룬이나 신화룬의 성능이 더 좋기는 하다.

[잊혀진 아룡의 석판]은 이러한 전설룬을 획득할 수 있게 홀더를 돕는 특수 아이템이었다.

나는 석판을 집어 든 채, 파티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 이걸로 할게!”

그러자 파티원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뭔가 이해가 가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재현아. 진짜 그거 고를 거야…?”

“전설 아이템이긴 한데….”

의문이 드는 게 당연했다.

아무리 전설 아이템이라곤 해도…

이건 당장에 주어지는 효과가 거의 없는 아이템이다.

끽해야 정신 3을 올려주는 효과에, ‘아룡들의 마력석을 투입해야 한다’는 뜬구름 잡는 형태의 봉인 해제.

다른 좋은 보상들을 놔두고, 굳이 특이 형태의 석판을 고를 이유가 없었다.

“대신 이거랑 그리즐리 드레이크에서 나온 마력석까지 주라. 난 그거면 보상 끝. 다른 건 더 필요 없어.”

그리즐리 드레이크의 마력석.

이는 [잊혀진 아룡의 석판]에서 요구하는 아룡들의 마력석 중 하나일 게 분명했다.

애초에 놈을 잡고 나온 레스트 룸의 보상이기도 했고, 그리즐리 드레이크라는 괴수명은 나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으니까.

즉, 그리즐리 드레이크는 다섯 마리의 아룡 중 하나인 것.

아마 이대로 던전이 리젠된다면.

보스 룸 괴수도 평범한 드레이크로 바뀔 확률이 높았다.

“도재현. 다시 생각해봐. 무구랑 방어구도 좋은 거 많아 보이는데, 진짜 그걸로 하려고…?”

문가은이 뭔가 떨떠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난 누구보다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이거랑 마력석이면 돼!”

어차피 무구와 방어구는 최유민이 만들면 된다.

그녀의 야장 계열 룬만 성장한다면…

이곳의 어지간한 아이템들보다 훨씬 성능이 좋은 제작 아이템이 나온다.

“그래, 뭐. 네가 그렇다니까…”

어색한 파티원들의 동의를 얻으며.

나는 [잊혀진 아룡의 석판]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 * *

아카데미 내 카페 안.

강주연과 문가은은 밀려있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도재현의 제안에 따라 던전 공략을 가기 전.

함께 가기로 했던 카페 약속이었다.

“으으- 달아. 여기 바닐라 라떼는 달아서 좋아. 우유의 느끼한 맛이 거의 안 나.”

“…….”

어깨를 떨며 바닐라 라떼를 마시는 문가은과 달리.

강주연은 조용히 빨대를 휘젓기만 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어딘가 깊게 생각에 잠겨있었다.

문가은이 그런 그녀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주연. 무슨 생각해?”

강주연이 이렇게 멍하니 있을 땐 둘 중 하나였다.

뭔가를 생각하거나, 뭔가를 생각하지 않을 때.

…단순하지만 정확하다.

그리고 오래도록 그녀를 봐온 문가은은.

지금이 전자의 경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도재현 생각.”

“헉. 뭐야. 진짜 도재현한테 관심이라도 생긴 거야?”

예상치 못한 대답에.

문가은의 호들갑이 시작됐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중급반 수업 하향신청할 때부터 느꼈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관심이 생겼냐…

망상의 끝을 달리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순간 강주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죽을래?”

“미안.”

강주연은 빨대로 계속 커피를 휘저으며.

아까 하던 생각을 마저 이었다.

그저 이상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홀더.

도재현.

원석을 찾으라던 아빠의 말을 쫓다 보니.

그의 흔적을 조금씩 밟고 있었고…

어느새 그와 함께 미발견 던전을 공략하고 있었다.

던전 공략을 이어가며 계속 성장하는 그.

점차 손발이 맞아가는 파티의 호흡.

어떤 면에선 그녀 자신보다 더 뛰어난 리더십까지.

‘그리고… 보스 공략.’

모두가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었던 위험했던 상황.

보스 룸 공략.

도재현은 그곳에서도 특별한 가치를 증명해냈다.

마법 공격이 아예 통하지 않는 치명적인 기믹을 안고도, 독특한 방식으로 공략 방법을 찾아내 기어코 보스를 사냥했다.

그에게 이빨로 물어뜯어 방어력을 깎아내는 룬이 있는 건 특이하긴 하다.

일반적인 홀더에겐 존재하지 않는 룬이니까.

하지만 강주연을 비롯한 파티원들은 그 공략 과정에 대해 크게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홀더가 보유한 룬은 각자의 무기이자 영업 기밀과도 같아서, 그에 대해 서로 묻지 않는 게 암묵적인 룰이기 때문이다.

과정이 짐승 같기는 했지만…

어쨌든 자신이 가진 모든 걸 활용해 보스를 사냥해낸 도재현이었다.

‘…….’

강주연은 이번 던전을 공략하며.

정말 의외로 자신이 배울 게 많다고 느꼈다.

방심하다가 괴수에게 당할 뻔한 순간도 있었고, 보스 공략 시에는 기믹에 당해 파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B급 홀더에 올랐지만, 그녀는 여전히 경험이 부족했다.

‘신기한 사람이야.’

어느새 도재현은 이상한 사람에서…

신기한 사람으로 그녀의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매번 새로운 길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람.

그게 도재현이었다.

“불의 심판에 영입할 거야.”

그래서 강주연은 생각했던 바를 고민 없이 말했다.

그녀의 절친이 쓸데없는 상상을 하는 걸 막기 위해.

“어?”

그런데 그걸 들은 문가은의 표정이 달라졌다.

정말 의외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얼굴.

강주연은 그를 미처 보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잠재력이 넘치는 홀더야. 보스 공략 때를 보면 판단력이랑 전투 센스도 뛰어나고. 졸업 전에 영입해야겠어.”

강주연치곤 상당히 길게 이어진 말.

그만큼 도재현을 영입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는 <불의 심판>에서 적극적으로 나설 가치가 충분한 홀더였다.

그리고 그걸 들은 문가은은…

난감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 로열 클랜에서도 영입 제안 넣을 건데?”

“…뭐?”

강주연의 표정이 드물게 당황으로 물들었다.

예상치 못한 경쟁자의 등장이었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