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31화 (31/353)

EP.31 학기 말 평가 (1)

“부자다….”

데자뷰인가?

하지만 단연코 말할 수 있었다.

난 부자다.

이번엔 진짜 부자다.

5만 원짜리 지폐로 목욕해도 될 정도다.

목숨을 걸고 공략했던 아카데미 지하 던전.

그 공략의 보상 수준이 어마어마했다.

저번 리자드맨들을 잡고 정산했던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총 16억 8천만 원이네요.”

“어, 얼마요?”

“16억 8천만 원이요. 마력석의 상태가 모두 좋은 편이라, 개당 4200만 원의 가격으로 측정했습니다.”

중간부에서 사냥한 200여 마리의 괴수.

그들에게서 나온 B급 마력석.

내 몫은 40개 가량.

이를 정산하니 16억 8천만 원이라는 거금이 나왔다.

참고로 초입부의 C급 마력석 정산을 제외한 결과였다.

이렇게 수익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이유는 간단하다.

마력석은 등급이 올라갈수록 가격이 큰 폭으로 뛰기 때문.

“요즘 A급 마력석 시세는 어느 정도인가요?”

“품질이 괜찮은 건 3억 정도 하죠?”

“…….”

반대로 등급이 낮을수록 가격도 크게 내려간다.

D급 마력석은 200만원 대, E급 마력석은 30만원 대.

거기에 F급 괴수에게선 마력석이 아예 적출되지 않으니, F급 홀더들의 생활이 얼마나 고달픈지 파악할 수 있었다.

괜히 ‘아웃홀더’ 같은 부적응자들이 나오는 게 아니었다.

“재현아. 다 정리했어?”

김채은이 다가와 물었다.

혼자 정산하러 왔던 저번과 달리.

오늘은 그녀와 함께 협회에 왔다.

그녀 역시 자신에게 할당된 몫의 마력석과 레스트 룸 보상 등을 처리해야 했으니까.

“대충은? 품질이 좋아서 금방 처리해주시네.”

“나 실감이 안 나. 이렇게 큰돈 처음 만져봐서.”

“아빠랑 던전 안 가봤어?”

이건 의외다.

김채은은 나름 잘 나가는 전사 계열 교수의 딸이고, 당연히 던전 경험이 많았을 거라 생각했거든.

실제로 이번 공략 때 적응을 잘 하기도 했고.

하지만 김채은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우리 아빠는 그런 데 안 데려가. 이번에도 겨우겨우 허락받은 거란 말이야.”

그럼 이번 던전 공략이 거의 처음이라는 건데…

첫 던전 공략에 이 정도 적응력과 성과.

그녀 역시 어지간한 재능러인 게 분명했다.

이런 김채은이 원작에선 이름조차 나오지 않았다는 게 신기했지만, 이제는 그런 케이스가 한둘이 아니다.

당장 한국의 S급 홀더만 해도, 5명 중 1명은 이 세계에 오고 난 후 이름을 알게 됐다.

의외로 직접 드러나지 않은 강자와 룬들이 많은 것.

내가 더 이상 원작 내용에 의존하지 않는 이유였다.

“그럼 아빠한테는 뭐라 말했어? 교수님 성격에 어지간하면 허락 안 해주실 것 같은데.”

“재현이 너랑 같이 공략 간다니까 허락해주던데? 음… 도재현 홀더는 믿을만하죠. 이렇게 혼잣말하면서.”

“뭐야, 그게.”

쓸데없이 성대모사가 고퀄리티다.

김채은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치며 말을 이었다.

“아! A급 마력석도 팔았어? 직원분들 말로는 A급이 엄청 비싸다던데.”

“아니. 그건 좀 쓸데가 있어서.”

팔면 돈이야 되겠지만, 정작 필요한 곳에 쓸 수 없다.

그리즐리 드레이크의 마력석.

이는 내가 예상했던 대로…

[잊혀진 아룡의 석판]의 봉인을 해제하는 열쇠였다.

아이템에 마력석을 장착하고 정보를 다시 확인하니. (0/5)로 되어있던 칸이 금세 (1/5)로 바뀌어 있었다.

아직 네 번이나 더 채워야 하지만, 다행히 난 이 마력석들의 행방을 대략이나마 알고 있었다.

특히 이번 학기가 끝난 후.

얼마 안 있어 동해 앞에 출현할 S급 괴수, 스월 레비아탄.

녀석은 다섯 아룡 중 하나일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당장은 절대 못 잡지만….’

A급 괴수였던 그리즐리 드레이크를 잡았던 건 정말 운이 좋았다.

여러 가지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겹쳤고, 약점을 중점적으로 파고든 순간적 기치, 그리고 한계를 뛰어넘은 [파상천검]의 힘이 컸다.

이제는 사용이 제한되며 쓸 수 없게 된 [파상천검].

때문에 다시 녀석을 사냥하라고 해도 불가능이었다.

하물며 S급 괴수다.

이제야 C급에 다다른 능력으로 잡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물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S급 괴수를 사냥하는 것.

그건 당장의 나로는 힘들지만…

누군가가 대신 사냥해줄 수는 있다.

어쨌든 중요한 건 마력석이다.

직접 사냥하지 못한다면.

간접적인 방식으로 마력석을 구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 간접적인 방식의 대표적 예는.

누가 뭐라 해도 자본이었다.

“채은아.”

“응?”

“우리 일주일에 한 번씩 지하 던전 공략 갈까? 실력도 늘리고, 돈도 벌 겸.”

“두, 둘이?”

“응. 이제 경험도 쌓였고, 둘이서도 충분하지.”

그 자본을 축적할 훌륭한 수단과 동료가.

다행히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 * *

매주 수요일은 탁원호 교수에게 전속 강의를 받는 날이다.

모두가 수업을 마치고 각자의 집으로 떠난 저녁.

나와 탁원호 교수는 훈련장에 남아.

끝을 모르는 수련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압…!!”

“기합은 줄이고, 검은 더 빠르게. 파상은 유수와 다르다. 흐르는 물결이 아니라, 휘몰아치는 파도다. 그걸 네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껴야 한다. 직접 체화해내야 해.”

“알겠, 습니다-아!!”

탁원호 교수의 가르침은 언제나 혹독하다.

극한까지 몸을 몰아붙이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깨달음을 얻도록 만든다.

일종의 스파르타식 교육.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파상검법]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고, 목숨이 걸린 극한의 위험 상황에서 제한적으로 [파상천검]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의 강한 교육 방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 셈이다.

“찔러 들어갈 때 더 강하게. 검에 마력을 담는 걸 습관화해라.”

“예!”

[파상검법]에 관한 끝없는 개인 수련과 교정.

그리고 탁원호 교수와의 직접 대련까지.

시간을 정하지 않은 그 훈련이 모두 끝나면.

드디어 쉬는 시간이 찾아온다.

“그만. 오늘은 여기까지.”

“허억- 허억-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했다. 여전히 지구력은 좀 부족하군.”

“허억- 제가 관련 룬이 없어서… 허억-”

홀더의 체력 및 지구력은 능력치에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순전히 스스로 힘으로 키워나가거나 관련 룬을 보유해야 이에 관한 보조를 받을 수 있다.

사실 룬과 능력치 차이로 승패가 빠르게 결정되는 홀더의 전투에서, 체력이나 지구력이 크게 중요하진 않지만… 장기간 훈련을 이어갈 땐 필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탁원호 교수마저 이렇게 언급을 하니…

빨리 관련 룬을 얻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략 보고서는 어제부로 모두 읽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했더군.”

“팀원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파티 조합이 좋아서 변수들에 즉각 대응할 수 있었어요.”

“그런 것 치고는 보스 공략 때의 활약을 가감 없이 적었던데.”

“…파상검법이 없었으면 어려웠을 일입니다.”

“아부만 늘었군.”

그렇게 말하는 탁원호 교수의 입가는 살며시 올라가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정답이었나 보다.

“어쨌든 정말 고생 많았다. 보스 공략을 하면서 파상천검을 익혔다고?”

“예. 저번에 교수님께서 가르쳐주시고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스킬이… 운 좋게도 보스 공략 때 처음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홀더 정보엔 사용이 제한된다고 나오더라고요.”

“음….”

탁원호 교수가 턱을 한 번 쓸며 말을 이었다.

“아마 도재현, 네가 파상천검을 다루기엔 아직 부족해서 그럴 거다. 파상천검은 파상검법의 룬 레벨이 최소 10은 돼야 하고, 능력치 상 마력이 최소 30은 있어야 쓸 수 있는 궁극스킬이니까.”

“마, 마력이 그렇게 많이 필요합니까?”

“당연한 걸 묻나. 파상검법에서도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마력 관련 스킬인데.”

현재 내 마력 수치는 9.

최소 기준치라는 30에 다다르려면 한참은 더 필요하다.

이제야 그리즐리 드레이크를 잡고 나서 탈력 상태로 기절한 게 이해가 됐다.

나는 당시 부족한 마력을 채우고자, 체내에 남은 모든 마력을 티끌까지 쏟아내 [파상천검]을 사용했던 거다.

한계를 벗어난 기술을 썼으니 완전히 지칠 수밖에.

‘얻어야 할 룬의 폭이 더 넓어졌네.’

체력에 이어, 마력과 관련한 룬도 얻어야 할 것 같다.

슬슬 마력도 필요하고 수치를 올릴 시기가 됐다.

주먹구구식으로 무기만 쓰던 전과 달리.

이제 나는 마력을 활용해 전투하는 중위 홀더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아무튼 축하한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알려줬지만, 정말 그걸 해낼 줄은 몰랐군. 김명현 교수가 들으면 깜짝 놀라겠어. 하하.”

“감사합니다.”

내심 놀랐다.

은근히 칭찬에 박한 탁원호 교수인데, 이렇게 격한 축하를 해줄 줄은 몰랐다.

확실히 내 현재 능력으로 [파상천검]을 쓴 게 대단한 일이긴 했나 보다.

탁원호 교수는 훈련장 장비들을 정리하며 물었다.

“학기 말 평가 준비는 잘 돼가나?”

“학기 말… 아.”

그러고 보니 학기 말 평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학기 말 평가는 이론적인 평가가 주가 되는 강의 별 학점과 다른 개념이다.

순수히 홀더들의 전투력을 측정하고, 중하급반의 월반이나 상급반의 강등, 그리고 전체적인 홀더 간 석차 등을 결정하는 ‘실전 대련’이다.

아카데미 입학시험 때 했던 실전 대련과 유사한 형태의 평가였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지목이 아닌 ‘매칭’으로 대련 상대가 잡히고, 생산과 관련된 몇몇 특수 계열 홀더들은 평가에서 제외된다는 것.

학년 석차라는 것 자체가 직접 전투계열 홀더들에게나 의미 있는 지표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름 중요한 평가지.’

원작에서도 꽤 비중 있게 다루는 사건이다.

열혈 홀더인 박진우가 처음으로 동기 및 교수들에게 두각을 드러내는 대련이기도 하고, 전사 계열 수석이자 전체에선 만년 차석인 이태준이 어김없이 강주연에게 깨지는 대련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초반부에 성장을 이룬 주연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평가.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사건이 더 있다.

‘안도권.’

전사 계열 차석, 그리고 전체 순위권을 다투는 홀더.

안도권.

실제로는 신입생으로 잠입한 <빌런> 클랜의 스파이.

용을 탄 암살자, 지윤재의 동료였다.

안도권은 클랜의 명령에 따라, 이 학기 말 평가에서 마법사 계열의 동기 홀더 한 명을 살해한다.

대련을 하는 척 하다가, 눈 깜짝 할 사이에 일어나는 살인.

<빌런> 클랜의 본격적인 아카데미 흔들기가 시작된 것.

안도권은 그를 위한 버림패였다.

어쨌든 상급반에서도 꽤 이름 있는 그가 대련에서 갑자기 살인을 일으킴으로써, 아카데미는 내부 괴수 출현 이후 또다시 혼란에 빠지게 된다.

나는 그러한 일련의 사건을 떠올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와도 이길 자신은 있습니다.”

“쓸데없는 겸손이 없어서 좋군.”

난 누구와 대련하든 이길 자신이 있었다.

현재 내 능력치는 이미 상급반, C급 홀더 수준.

거기에 룬 성장과 전투 감각은 던전 공략을 겪으며 극한에 다다랐다.

중급반이든 상급반이든.

어떤 상대가 매칭되든 간에.

[룬 사냥꾼]의 일용할 양식일 뿐이었다.

‘기왕이면 체력이나 마력 관련 룬 있는 애면 좋겠네.’

학기 말 평가.

이건 합법적으로 룬을 뜯어낼 기회였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