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4 학기 말 평가 (4)
김효원은 자신의 승리를 직감했다.
혹시나 마법사 계열이나 궁수 계열 등이 상대로 잡히면 어쩔지 고민했었지만, 다행히도 상대는 암살자 계열.
그중 전사 계열에 가깝다는 중급반의 도재현.
그는 특수 아이템인 [부식 가루]로 검이 산화된 후, 순간 당황해 제대로 된 전투 준비가 어려워 보였다.
암살자 계열답게 [단검]도 사용할 수 있겠지만…
그러기엔 김효원의 공격이 너무 빠르게 들어와 있었다.
‘이기기만 하면 돼.’
전사 계열 상급반.
그 안에서 최하위를 달리고 있는 김효원은.
이번 학기 말 평가가 누구보다 절실했다.
능력치와 룬.
모든 게 애매한 그에게 있어, 이번 평가는 자칫 잘못하면 중급반으로 강등될 수도 있는 위기였기 때문.
그래서 김효원은 경기 시작에 앞서, 망설임 없이 특수 아이템을 사용했다.
‘규칙을 어긴 것도 아니잖아?’
솔직히 문제 될 것도 없다.
홀더의 대련은 곧 실전에서의 전투와 같다.
때문에 어떤 변수가 끼어들더라도 감독관들은 거기에 터치하지 않는 편이고, 누군가 비열하다며 이를 추궁했을 땐 보유 룬의 효과라고 말하면 된다.
현대의 룬 측정 기구는 해당 홀더가 룬을 보유했는지는 확인할 수 있어도 어떤 룬을 보유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김효원이 ‘이게 내 특수 룬이다!’라고 말하면 뭐라 토 달 사람이 없는 것이다.
물론, [부식 가루]에 관해 알고 있는 홀더들은 이를 단숨에 알아보겠지만.
어쨌든 이대로만 간다면 김효원의 승리.
정정당당하게 페어플레이를 해 얻은 자신의 승리였다.
“뭣…?!”
하지만 상대의 어깨를 찌르려던 김효원의 검이.
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갈랐다.
도재현이 순간적인 움직임으로 그의 검을 피한 것이다.
김효원은 다음 공격을 이어가야 하는 것도 잊은 채, 그의 날렵한 반응속도에 감탄했다.
‘무슨 속력이 이렇게…’
엄청난 수치의 속력.
관련 룬의 보조까지 받는 것처럼 보이는 움직임.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진짜 놀라운 건 그다음부터 시작이었다.
“커억…!!”
김효원은 갑자기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신음했다.
주먹.
웬 주먹 하나가 옆구리에 꽂혔다.
도재현의 쏜살같은 풋워크 이후.
강력한 바디 블로우가 김효원의 오른쪽 몸통에 작렬한 것.
그리고 그대로 이어지는 플리커 잽!
순식간에 옆구리와 얼굴을 가격당한 김효원은 순간적인 고통을 견디며 최대한 그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미…친….”
저게 뭐야, 도대체?
김효원은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도 믿을 수 없었다.
그냥 근력에 의존한 평범한 공격이 아니었다.
분명 자신의 내구 수치와 [육탄방어] 룬을 뚫고.
확실한 타격을 입히며 통증을 줬다.
[격투]와 관련된 룬의 보조를 받지 않고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격투 룬이 있다고…?’
그게 말이 돼?
아무리 멀티홀더라지만 정도가 있다.
[검]과 [단검]은 공유되는 영역이 있고, 이를 동시에 보유한 홀더들은 꽤 많은 편이다.
[검] 룬을 쓰는 암살자 계열도 있고, [단검] 룬을 쓰는 전사 계열도 있다.
타국의 아카데미에선 전사와 암살자의 계열 구분을 하지 않는 이유였다.
하지만 [격투] 룬의 경우엔 이야기가 다르다.
[격투]는 전사 계열로 분류되지만, 사실상 특수 계열에 가까운 룬이다.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히 맨몸으로 싸우는 전투방식.
[검]이나 [단검]과는 거리가 먼…
완전히 다른 성향의 주력 룬.
그런 룬을 눈앞의 동기가 지니고 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갔다.
‘왜 아예 활이나 창 룬도 있다고 그러지.’
저렇게 많은 룬을 가진 멀티홀더라니.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드는 김효원이었다.
기껏 도재현의 검을 부식시킨 게 다 물거품이 됐다.
“시작하자마자 달려오던 자신감이 사라졌네?”
살짝 벌어진 거리를 두고.
가드 자세를 취한 도재현이 웃으며 말했다.
김효원은 입술을 꾹 깨물며 답했다.
“멀티홀더라더니, 별 게 다 있네.”
“페어플레이 하려면 어쩔 수 없겠더라고.”
“그게 페어플레이냐?”
“그럼 네가 꼼수 쓴 건 페어플레이가 맞고?”
할 말을 잃었다.
어떻게든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꼼수를 써서 그의 검을 부식시켰던 건 사실이니까.
도재현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사람 잘못 골랐어. 넌 오늘 뒤지게 맞을 준비 해라.”
그 말을 끝으로.
도재현의 온 힘을 쏟은 스트레이트가 김효원을 향해 날아들었다.
브레이크 타임은 끝나고, 2라운드 시작이었다.
* * *
“재밌는 홀더네요.”
무기를 잃은 한 홀더가, 검을 든 전사 계열 홀더를 맨손으로 두들겨 패는 경기.
그 특이한 광경을 바라보던 한 남자가 말했다.
대한민국 3대 거대 클랜.
<로열> 클랜의 스카우트 팀장 고요한이었다.
“가끔 저런 멀티홀더가 있긴 하지. 거의 다른 성향의 주력 룬을 여러 개 다루는 홀더. 당장 로열의 성나연 홀더도 그런 부류 아니야? 바람 마법과 검을 동시에 다루잖아.”
마찬가지로 3대 클랜 <불의 심판>의 스카우트 팀장.
조규혁이 대답했다.
두 사람은 이번 학기 말 평가에서 클랜에 영입할 인재가 있는지 아카데미에 가볍게 탐사를 나와 있었다.
…실은 도재현이라는 홀더를 영입해달라고 조르던.
클랜의 못 말리는 아가씨들 때문이었지만.
고요한이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에이. 성나연 홀더하곤 완전히 다르죠. 그분은 멀티홀더로 A급 홀더에 오른 강자이고, 저 친구는 이제 막 아카데미 입학한 뜨내기 아닙니까.”
“예시가 그렇다는 거지. 넌 예전부터 꼭 그렇게 토를 달더라.”
“선배님의 그 이상한 예시도 변한 게 없습니다.”
고요한과 조규혁.
그들은 아카데미 시절부터 알고 지낸 선후배 관계였다.
오래 전부터 홀더 계 행정 업무에 관심이 많던 두 사람은, 어느새 나란히 거대 클랜의 스카우트 팀장을 달고 있었다.
“선배님이 보기엔 어떻습니까?”
고요한이 경기장 쪽을 고갯짓하며 물었다.
오늘 두 사람이 가장 관심 있게 봐야 할 홀더.
도재현.
그는 주력 무기인 검을 잃었지만, 또 다른 룬인 [격투]를 활용하며 맨몸으로 김효원이라는 상대를 두들겨 패고 있었다.
[단검] 룬도 활용하지 않고, 오로지 신체능력만으로.
같은 C급 수준 홀더라는 게 믿기지 않는…
일방적인 경기였다.
“글쎄. 지금까진 평범한데.”
“저게요?”
“그냥 저 도재현이라는 홀더의 능력치가 더 앞서는 거잖아. 김효원이라는 녀석도 그걸 대충 아니까 부식 가루를 썼을 거고. 아직까진 아가씨가 영입해야 한다고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를 못 찾겠어.”
“어? 선배님도 강주연 홀더가 부탁해서 온 겁니까? 저도 문가은 홀더가 하도 졸라대서 온건데.”
“그렇게 안 생겼는데 말괄량이들이야. 골치 아파 아주.”
떠드는 순간.
도재현의 콤보가 또 한 번 작렬했다.
잽, 스트레이트, 백스텝.
그리고 다시 스트레이트로 이어지는 쓰리 펀치.
이게 홀더 대련을 보는 건지, 격투 경기를 보는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그래도 격투를 쓰는 건 특이하잖습니까. 검과 단검에 격투라니. 오랜만에 나온 다재능 멀티홀더입니다.”
“그렇긴 하지. 그리고 뭐… 속력 관련 룬도 있는 것 같고. 지켜볼 가치는 있겠네.”
김효원도 계속 맞고만 있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자신의 능력치와 [검]을 활용해 반격을 이어가려 했지만, [날렵한 몸놀림]과 높은 속력을 이용한 도재현은 가볍게 그 공격들을 회피해냈다.
설령 한 번씩 공격을 허용하더라도, [도마뱀의 비늘]이 그를 커버해줬다.
능력치는 물론, 룬의 활용에서도 앞서가고…
또 그를 정확히 알고 전투에 적용하는 도재현.
조규혁은 그런 점을 높이 샀다.
확실히 유망주치고는 남다른 전투센스였다.
“근데 이거… 김효원이 이기겠는데?”
“음….”
압도적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도재현.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점점 지쳐간다.
관람자인 두 사람에게조차 그게 보였다.
반면 김효원은 끊임없이 공격을 허용하지만, 높은 내구 수치와 [육탄방어].
그리고 [지구력]을 통한 체력 관리로 계속 버티는 중이었다.
쉽게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싸울 수 있게 도와주는 룬.
[지구력].
이는 앞선에서 탱킹을 주로 하는 전사 계열이라면 대부분 각성 시에 얻는 공통 룬이다.
하지만 멀티홀더인 도재현은 [지구력]이 없다.
그게 보인다.
김효원과 달리, 빠르게 지쳐가고 있으니까.
그래서 조규혁은 김효원의 승리를 점쳤다.
두 사람의 능력치 차이가 몇 배 이상 차이 나면 모를까, 지금은 단지 도재현이 더 앞서는 정도일 뿐이기에.
“어?”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정신없이 맞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버티던 김효원의 몸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한 것.
처음엔 살짝 흔들리는 정도였지만.
점차 시간이 갈수록 완전히 자세가 무너졌다.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던 홀더라곤 믿기지 않는…
허무하게 쓰러져 가는 김효원이었다.
그걸 본 고요한이 깜짝 놀라 물었다.
“저거, 저거. 왜 저러는 겁니까?”
“미친…”
그 역시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더 가까이서 보려는 듯.
조규혁이 놀란 얼굴로 난관을 붙잡았다.
마침내 장내에 쓰러진 김효원의 몸을 보고서야…
그가 무엇에 당한 건지 확인할 수 있었다.
“독도 쓴다고?”
거무튀튀하게 물든 그의 몸은 아무리 봐도 중독 상태였다.
아마 도재현이 지닌 또 다른 특수 룬으로 보이는…
독 종류의 공격.
육체적인 공격만 막아내고 있던 김효원은, 갑작스러운 독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경기 종료. 암살자 계열 중급반, 도재현 홀더 승. 신성 의료팀은 서둘러 김효원 홀더의 상태를 확인해주십시오.
그대로 경기는 도재현의 승리로 끝이 났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 이를 봤다면.
도재현이 김효원을 가지고 논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거의 15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사람을 두들겨 패고…
마지막에 지칠 때 쯤엔.
갑자기 독을 써서 경기를 끝냈다.
사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치밀한 룬 활용.
그리고 완벽에 가까운 경기력.
조규혁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저 녀석.
도대체 뭐 하는 녀석인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