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35화 (35/353)

EP.35 학기 말 평가 (5)

-경기 종료. 암살자 계열 중급반, 도재현 홀더 승. 신성 의료팀은 서둘러 김효원 홀더의 상태를 확인해주십시오.

감독관의 말과 함께.

지긋지긋했던 김효원과의 경기가 끝이 났다.

끈질긴 새끼.

녀석은 [지구력] 룬을 보유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애초에 전사 계열이라면 대부분 각성 시에 받는 노멀룬이니 당연하겠지.

덕분에 15분가량 [격투]로 놈을 팼는데도 경기가 끝나질 않아, [맹독]과 그 파생스킬인 [포이즌 클로우]까지 써가며 승기를 잡았다.

‘처음 써보는데 쓸만하네.’

[포이즌 클로우]는 그동안 쓸 일이 없어 활용하지 못했던 스킬인데, [격투]와 함께 곁들여 사용하니 위력이 상당하다.

[맹독] 룬도 벌써 4레벨이다.

레벨이 오를수록 스킬의 파괴력도 강해지기에, 독 내성이 없는 김효원에게 [포이즌 클로우]는 쥐약일 수밖에 없었다.

“정의구현 완료….”

솔직히 처음에 열 받아서 모든 룬을 쏟아부을까 생각했다.

페어플레이 드립을 쳐놓고 특수 아이템까지 쓰는 김효원이 괘씸해서.

하지만 그건 너무 어그로가 끌릴 것 같아 참았다.

이미 [격투]와 [맹독]만 보여줘도 충분히 관심이 쏠린다.

여기에 [이글거리는 불꽃]과 [견고한 이빨], 그리고 [사족 격투]까지 보여줬다면…

난 진짜 괴수 취급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불꽃을 일으키면서 두 손을 발처럼 활용해 싸우고.

이빨로는 짐승처럼 물어뜯기까지 한다?

이거 완전 도마뱀 계열 괴수잖아.

[거침없는 타격, 한 수 앞을 내다보는 움직임! 당신의 격투술이 더 단단하고 날렵해지기 시작합니다.]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격투 룬의 파생스킬, ‘연타’를 획득했습니다.]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1.단단한 지구력 2.검(선택불가) 3.마력제어(선택불가) 4.육탄방어 5.삼재검법 6.방패(선택불가)]

한 템포 늦게 정보창이 나타났다.

방금의 결투에 대한 보상들이었다.

[격투]에 혼을 쏟으며 대련을 마쳤더니 오랜만에 레벨이 올랐다.

그동안 갈고 닦은 격투 실력과 실전 경험이 버무려져, 단번에 두 단계가 올라 [격투]는 5레벨이 됐다.

더해서 새로운 파생스킬인 [연타]까지.

아마 [검]의 [연격]처럼, [격투]의 주력 파생스킬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김효원과의 결투에서 승리해 얻는 [룬 사냥꾼]의 보상.

김효원이 지닌 룬들은 꽤 의외였다.

‘그냥 지구력이 아니었네?’

[지구력]은 전사 계열 홀더들의 공통적인 룬이다.

파티에서 주로 탱킹을 맡는 그들은 오랫동안 싸울 수 있는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에, [지구력] 룬을 각성 시에 받고… 이를 얻지 못한 홀더들도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들으며 깨우치는 경우가 많다.

아직 난 [지구력]은커녕, [육탄방어]도… 심지어 암살자 계열의 공통룬들도 획득하지 못했다.

아마 박진우는 지금쯤 얻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김효원은 평범한 [지구력]을 지닌 게 아니었다.

레어룬인 [단단한 지구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쩐지 더럽게 오래 버티더라.’

김효원은 전형적인 전사 계열.

그중에서도 탱커 쪽의 룬을 보유하고 있었다.

레어룬인 [단단한 지구력]을 포함해, 검을 쓰는 전사 계열들의 가장 기초적인 검법룬 [삼재검법], 그리고 파티 사냥에서의 효율을 높여주는 [방패]와 [육탄방어]까지.

아마 방패는 일대일 전투였기에 쓰지 않은 것 같았다.

‘그냥 방패라도 쓰지.’

능력치도 나보다 부족한데, 활용되는 룬마저 내게 완전히 밀리다 보니…

김효원은 결투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높은 지구력과 [육탄방어] 룬마저, [맹독]에 뚫렸고.

나는 혀를 차며 룬을 골랐다.

그에게서 복제할 룬은 하나뿐이었다.

[단단한 지구력을 선택하셨습니다. 7레벨의 레어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해, 4레벨로 등록됩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내구를 2 획득합니다.]

<룬 정보>

◎이름: 단단한 지구력

◎등급: 레어(Rare)

◎레벨: 4

◎새겨진 부위: 폐

◎특수효과

: 오랫동안 전투와 훈련을 이어갈 수 있는 체력과 지구력을 갖게 된다. 이는 능력치 상의 수치로 표기되지 않는 힘이며, 룬의 레벨이 오를수록 그 힘이 강해진다.

: 내구+2

◎파생스킬: -

◎세부정보

: 버틸 수 있다는 건 곧 단단하다는 말로 직결된다. 더욱 단단해진 지구력은 홀더가 계속 싸우고, 오래 버틸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괜찮네.’

레어룬답게 만족스러운 효과들을 보여준 룬 정보를 닫으며, 나는 일행들이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와아- 격투기 선수다-”

문가은이 특유의 놀리는 표정으로 날 가리켰다.

이제는 그런 그녀의 표현이 익숙하고 나름 귀여워서, 괜히 웃음이 났다.

다른 일행 역시 놀란 얼굴로 날 바라봤다.

“재현아, 격투 룬은 언제부터 있던 거야?”

“역시 도재현! 내가 인정한 라이벌답다.”

“…….”

파티 사냥에서도 보여준 적 없는 [격투]와 [맹독].

때문에 이들이 이렇게 놀랄 만도 했다.

나는 살짝 웃으며 대답을 미뤘다.

어차피 룬은 홀더들의 영업기밀 같은 거니까…

다들 이해해 줄 거다.

“이제 세 명 남았나?”

남은 건 박진우, 김채은, 그리고 강주연.

이들 중 박진우와 김채은의 경기가 기대가 갔다.

박진우는 원작의 주인공답게 혼자서도 급격히 성장한 모습을 보여줄 거고, 김채은은 나와 던전을 몇 번이고 돌며 성장을 거듭했기에 얼마나 강해졌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강주연이야 뭐…

워낙 잘하는 애라 이번 대련도 문제없이 이길 테니까.

-열두 번째 경기입니다. 전사 계열 중급반의 박진우 홀더, 그리고 암살자 계열 상급반의 이동진 홀더입니다.

“예스! 나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내 경기 다음으로 바로 박진우가 호명됐다.

혹시나 지윤재가 상대로 나오진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번 경기는 원작의 흐름대로였다.

당시에도 평범한 암살자 계열과 붙었던 게 기억이 났다.

‘이번엔 얼마나 보여줄지 궁금하긴 하네.’

박진우는 학기 말 평가에서 자신의 이름을 똑똑히 알린다.

원작에선 높은 숙련도에 다다른 [파상검법]을 선보이며 상급반인 상대를 파괴적으로 찍어눌렀고, 그 압도적인 경기력은 그에 관한 주변 인물들의 인식이 완전히 뒤바뀌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이번의 박진우는 [파상검법]이 없다.

대신 그만큼을 더 열정적인 노력으로 메꿨다.

홀로 성장을 이어간 녀석이…

이번엔 또 어떤 경기력을 보여줄지 기대가 됐다.

-두 홀더, 서로 인사 후 경기 준비하십시오.

감독관의 멘트는 한결 같았다.

박진우와 상대는 가볍게 악수를 하고 전투를 준비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작 사인.

열두 번째 경기의 스타트였다.

“으리야압…!!”

박진우가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선공을 취했다.

…원래 저런 소리를 냈나?

뭔가 점점 기합 소리가 더 독특해지는 것 같은데.

하지만 우렁찬 기합과는 별개로.

그의 움직임은 바람처럼 빨랐다.

“우와. 박진우 쟤, 생긴 거랑 다르게 엄청 빠르네. 속력이 되게 높은 건가?”

“아니. 아마 룬 보조를 받았겠지.”

문가은의 물음에 간단히 대답해줬다.

아마 녀석이 활용 중인 룬은 [날렵한 몸놀림].

내가 톡신 이구아나를 사냥하며 획득한 룬이고, 박진우는 홀더 각성 시작부터 있었던 속력 보조 룬이다.

박진우는 그대로 최대 속력으로 달리며…

암살자 계열 상대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무슨…!!”

이동진이라는 상대 홀더가 당황한 게 여기까지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게, 본래 속력을 기반으로 우위를 점하는 전투는 암살자 계열의 전유물이다.

[은신] 룬이나 보법 관련 룬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 파생된 스킬들을 자유자재로 쓰며 빠르게 상대를 제압하는 게 암살자 계열이다.

‘…난 없긴 하지만.’

처음 각성할 때 [단검]밖에 없던 난 그런 공통적인 룬들이 거의 없었다.

말이 암살자 계열이지.

사실 난 전사 계열에 가까운 반쪽짜리 암살자 계열이다.

물론, 전사 계열이 공통적으로 가진 룬들도 없어서, 이번에야 새로 하나를 갖게 됐지만.

어쨌든 그런 암살자 계열 홀더가.

일시적이긴 해도 속력으로 전사 계열에게 밀렸다는 것.

이동진은 아마 그게 믿기지 않을 것이다.

상식적인 이야기는 아니니까.

“아- 아쉽다.”

문득 김채은이 아깝다는 탄성을 흘렸다.

최고 속력으로 회심의 일격을 담은 박진우의 공격이, 아쉽게도 이동진의 단검에 바로 막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진우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검을 회전시키며 쉼 없이 이동진을 몰아붙였다.

‘엄청 빠른데?’

나는 감탄 어린 표정으로 녀석의 전투를 지켜봤다.

이건 의외다.

녀석의 속력 수치와 관련 룬 보조.

그를 고려해도 과하게 빠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는 당연했다.

본래 박진우는 시작부터 속력이 우월하던 홀더다.

입학시험 때도 그랬고, 이후 탁원호 교수를 만나 [파상검법]을 배우기 전까지는 쭉 속력 위주로 검을 다룬다.

[파상검법]을 배우고 나서야 근력과 속력의 균형을 맞추는 것.

하지만 지금의 녀석은 탁원호 교수에게 배우지 않고, 혼자서 자신만의 검을 개척해가는 상황이다.

당연히 속력 위주의 전투가 더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동진이 아예 힘을 못 쓰네.”

“쟤가 원래 저렇게 강했나?”

“박진우가 암살자 계열보다 훨씬 빠른 것 같아.”

“중급반이랑 상급반 대련 맞아?”

“쟤랑 도재현은 솔직히 중급반 아니야. 아까 도재현 경기에서 증명됐잖아. 진짜 개 패듯이 패던데.”

주변의 동기들도 놀라서 웅성댔다.

학기 초 박진우와 나를 향했던 부정적인 시선을 생각하면, 상당히 반전된 여론이다.

역시 경기로 증명을 해야하는 걸까.

‘그런데 진짜 압도적이네.’

이동진은 박진우를 상대하며…

어떤 퍼포먼스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은신] 룬을 활용하기엔 이미 전투가 시작돼 각 자체가 나오질 않고, 보법류의 룬을 활용하자니 박진우의 [날렵한 몸놀림]이 그를 충분히 커버한다.

암살자 계열 홀더가 전사 계열에게 갖는 우위.

박진우는 그걸 모두 상쇄하고 있었다.

“미친!”

그러던 중.

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쉴 새 없이 몰아치던 박진우가…

순간 풍차처럼 온몸을 돌리며 이동진에게 검격을 먹인 것이다.

그 속도는 육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도 빨랐다.

‘말도 안 돼. 회전 연격이잖아….’

[회전 연격].

[연격]이 업그레이드 된 버전의 스킬로, 온몸과 검을 동시에 엄청난 속도로 회전시켜 상대에게 검격을 먹이는 스킬이다.

이 스킬은 [검] 룬으로는 파생되지 않는다.

[쫓을 수 없는 쾌검]이라는 에픽룬이 있어야 파생된다.

속력과 검술.

두 요소가 최고 수준으로 겹쳐져 탄생한 에픽룬.

[쫓을 수 없는 쾌검].

한 마디로 박진우는 지금.

혼자만의 힘으로 에픽룬을 깨닫고 획득한 것이다.

전투 시작부터 끝까지.

그의 엄청난 속도가 이해 가는 순간이었다.

-경기 종료. 전사 계열 중급반, 박진우 홀더. 승.

그대로 전투는 끝이었다.

이미 박진우의 검 자체가 버겁던 이동진이.

[회전 연격]까지 받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나는 멍한 얼굴로 경기장의 박진우를 바라봤다.

‘진짜 욕 나오는 재능이네….’

이게 어딜 봐서 성장형 주인공이야.

이렇게 성장 속도가 빠른데.

“으하, 으하하! 어떠냐, 도재현. 너랑 비빌 만하지?”

박진우가 한껏 의기양양해진 채 돌아왔다.

나는 질린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괴물 같은 놈… 너랑 안 싸울래, 이제.”

“오우! 누가 누구보고 괴물이라는 거야.”

이 자식은 점점 말투도 이상해진다.

원래 이 정도로 호쾌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어쨌든 박진우의 경기가 끝이 나고.

대련 경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중간엔 강주연의 경기도 있었다.

그녀는 만년 전체 차석, 이태준과의 경기에서 가볍게 승리했다.

완성에 가까운 [꺼지지 않는 불꽃]과 다양한 실전 경험.

이는 그녀로 하여금 패배라는 걸 잊게 만들어 줬다.

왜 그녀가 전체 수석이고 B급 홀더인지 증명하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이후 몇 번의 크고 작은 대련 경기가 지나갔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에…

기다렸던 이름이 감독관에게서 호명됐다.

-스물여섯 번째 경기입니다. 전사 계열 상급반의 안도권 홀더…

‘드디어 나왔구나.’

안도권.

이번 학기 말 평가의 가장 핵심적인 인물.

<빌런> 클랜의 스파이로서 동기를 살해하는 명령을 수행하고, 아카데미를 혼란 속으로 빠뜨리는 결정적인 홀더.

그의 경기가 드디어 나온 것이다.

누군가가 반드시 죽는 경기.

그게 시작되려는 감독관의 부름.

나는 약간 긴장한 얼굴로 다음 호명을 기다렸다.

슬슬 있을 혼란에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그리고 마법사 계열 중급반의 김채은 홀더. 두 학생은 시험장으로 나와주십시오.

“…어?”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김채은…

김채은이라고?

여기서 김채은의 이름이 왜 나오는 걸까.

분명 안도권과 대련하며 죽게 되는 마법사 계열 홀더의 이름은…

이름은…

‘…안 나왔어.’

망연자실하게 현실을 깨우쳤다.

커다란 망치가 머리를 두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원작에선 살해 당한 홀더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그건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건 말이 안 되잖아.

그게 김채은이었다고?

안도권의 학기 말 평가 대련 상대가…

<빌런>의 농간으로 죽게 되는 동기 홀더가…

김채은이었다고?

“그럴…리가.”

“재현아! 나, 갔다 올게!”

그 모두를 부정하듯.

김채은이 밝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리고 그대로 시험장 안으로 내려갔다.

나는 그저 멍한 얼굴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강한 인지 부조화가 머리를 덮친다.

곳곳에 흩어져 있던 난잡한 퍼즐 조각들이…

거짓말처럼 서로를 맞추곤 찾아와.

내 뇌리를 강한 울림으로 때렸다.

안도권에게 잔혹하게 살해되는 동기 홀더.

그건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이곳 세계에서의 내 첫 친구, 김채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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