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7 태동 (2)
김채은을 향해 거침없이 내지르던 안도권의 도끼가 순간 멈춰섰다.
다행이다.
이 정도면 시간 안에 세이프다.
조금만 타이밍이 늦었다면 김채은이 잘못될 수도 있었다.
[선전포고]는 정신 수치에 영향을 받는다.
아무래도 안도권의 정신은 내 정신에 비해 상당히 낮은 모양이다.
[위압]이 1레벨인데도 곧바로 걸리는 걸 보니.
나는 [위압]의 [선전포고]를 통해 안도권을 공포 상태로 만든 후, 곧바로 단검들을 던져 [쿼터 나이프]를 먹였다.
“크읍…!!”
도끼를 든 그의 양 손목에 박히는 단검 네 자루.
그중 하나엔 마력이 깊게 담겨 있다.
꽤 타격을 입혔는지 안도권은 고통에 찬 신음성을 흘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놈을 완전히 몰아내진 못한다.
3초 정도 지났으니, 슬슬 공포가 풀릴 시간이다.
그 안에 더 많은 피해를 줘야 했다.
나는 어느새 놈과 김채은 사이까지 와 있었다.
[질주]와 [날렵한 몸놀림]을 활용하며…
미리 이곳으로 와 있을 준비를 한 덕이었다.
“누굴 죽이려 들어.”
“끄, 끄아아악-!!”
검으로 도끼를 쳐서 걷어낸 후.
그대로 놈의 양 손목을 베어냈다.
이번엔 정말 괴로운 듯, 안도권이 고통에 차 소리친다.
강한 내구 탓에 손목이 잘리지 않았지만, 상흔을 남기며 그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3번의 연속적인 베기, [연격].
박진우가 건넨 검엔 예기가 넘쳐 흘렀다.
이 정도면 짧은 공포 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했다.
“…….”
나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감독관을 바라봤다.
이미 자리엔 많은 교수가 와 있었다.
감독관을 비롯해 시험장에 대기하던 예비 교수진 4명.
그들이 모두 나타나 안도권을 향해 무기를 내밀었다.
안도권이 도끼로 김채은의 머리를 찍어 내리려던 순간.
공포에 걸려 몸이 움직이지 않았기에…
그 장면을 모두가 두 눈으로 확인했다.
즉, 안도권에게 동기 홀더를 살해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
그걸 지금 상황에 눈치채지 못한 교수는 없었다.
“안도권 홀더. 아카데미 실전 대련 규칙 위반 및 살인미수의 범죄적 행위 의심 정황으로 구속조치 하도록 하겠다. 무릎을 꿇어라.”
중앙에 선 감독관이 무뚝뚝한 음성으로 말했다.
문득 이 자리에 김명현 교수가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만약 이런 광경을 봤다면, 안도권에 대한 조사나 심문 등을 고려하지 않고 그대로 놈을 죽여버렸을 것이다.
그를 오래 보진 않았지만… 그가 누구보다 김채은을 아끼는 아버지라는 건, 옆에서 검을 배우던 나조차 알 수 있었으니까.
“채은아, 괜찮아?”
“재현아….”
넘어져 있던 김채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눈망울엔 아주 살짝 눈물이 고여있었다.
자세가 무너져 안도권의 공격을 보진 못했어도, 이후 내 대처와 소란해진 시험장으로 대충 정황을 파악한 것 같다.
같은 동기 홀더에게 살해당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
잠깐이라 하더라도.
그런 소름 끼치는 감각은 꽤 무서웠을 것이다.
“다친 데는 없어?”
“응. 도와줘서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이상한 생각 말고. 손잡아.”
“응….”
김채은이 내 손을 잡고 일어섰다.
아직 손이 떨리는 게 불안감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원작엔 없던 던전에서의 실전 경험.
그게 그녀를 꽤 단단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
첫 공격을 막아냈던 [필드 프리징]과 이어지는 안도권의 도끼 공격을 한 번 피한 것.
워낙 변수가 많았던 전투였기에 그런 게 아니었다면, 아무리 상황을 알고 있던 나라도 이렇듯 적절히 끼어들 각이 많지 않았다.
다양한 상황과 경험, 스킬.
그리고 결정적으로 [선전포고]의 공포 효과.
이러한 요소들이 겹쳐져, 김채은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었다.
“안도권 홀더. 무릎을 꿇고,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려라. 명령 불응 시, 무력으로 대응하도록 하겠다.”
딱딱한 감독관의 말에 괜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처음부터 무력으로 대응하면 안 되나?
저 새끼가 김채은을 죽이려 드는 걸 다들 봤으면서, 뭘 그렇게 규율에 맞춰 진행하려는 건지 이해가 잘 안 간다.
안도권은 피가 쏟아지는 손목을 붙잡은 채.
미친놈처럼 웃으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흐으, 흐흐….”
“안도권 홀더.”
“흐흐흐. 진짜 재밌는 상황인데. 흐으….”
“안도권 홀…”
“거, 씨발. 더럽게 시끄럽네.”
“뭐, 뭐?”
“시끄럽다고. 감독관 아저씨.”
안도권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에 맞춰 교수진의 움직임도 달라졌다.
챙- 챙-
하는 소리와 함께…
감독관과 교수진이 검을 뽑아 들었다.
한 교수는 마법사 계열인 듯 마력을 모으는 중이었다.
다수의 교수진에 완전히 포위된 상황.
한 발자국만 움직이면 즉시 대응할 태세.
하지만 안도권은 그런 위협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는 여전히 미친 사람처럼 실소를 흘리며…
붉은 눈동자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재밌어… 이 정도로 계획이 어그러지는 건 생각도 못 했는데… 흐으….”
이거 뭔가 살짝 위험해 보이는데….
그 살기 어린 눈동자에.
김채은이 내 뒤에서 옷깃을 잡는 게 느껴진다.
나 역시 긴장감이 든다.
그와의 거리가 꽤 떨어져 있고, 앞엔 교수진이 있는데도.
알 수 없는 위기감이 들었다.
‘원래 저런 인물이었나?’
그에 대해서는 나도 완전히 처음 접해본다.
원작에서는 안도권이 마법사 계열의 동기 홀더를 살해했고, 그게 <빌런> 클랜의 계획이었다는 것만 밝혀졌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사건들이 태동하는 연결고리였을 뿐이다.
안도권이라는 사람이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 혹은 어떤 방식으로 동기를 살해했었는지, 심지어는 살해한 동기의 이름이 뭐였는지….
처음부터 알고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계획을 막아섰을 때.
그가 어떤 식으로 반응하게 될지 도통 종잡을 수 없었다.
“크으- 크으으…!!”
그리고 그때.
안도권의 몸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신체 변화.
그 모습에 그를 둘러싼 교수진을 비롯해 모든 홀더들이 당황했다.
그 이유는 손쉽게 눈에 들어왔다.
손끝에서 웬 작은 약병 하나가 터뜨리듯 부서져.
그의 몸에 액체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광폭화 포션이다! 다들 저지해!”
감독관이 당황해 크게 소리쳤다.
광폭화 포션.
순간적으로 홀더의 이성을 잃게 하지만, 일정 시간 동안 능력치를 폭주시키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만드는 포션.
그러나 부작용이 너무 심한 탓에.
현 홀더 계에서는 금지 약물로 선정됐다.
폭주 상태에서 처음 생각했던 의념대로만 움직이고, 폭주가 끝나면 홀더의 능력이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돼서… 한국에선 마약보다 더 위험한 약물로 불리는 포션이었다.
현재 이를 유통하는 클랜은 범죄조직인 <빌런> 뿐.
학생 홀더인 안도권이 이런 광폭화 포션을 사용한 데에.
모든 이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저 녀석이 빌런 소속이었다고?”
“이철호 교수, 지금 당장…”
다급하게 소리치던 교수진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광폭화가 끝난 안도권이.
마법을 준비하던 교수 한 명을 그대로 들이박으며 달려갔기 때문.
“크아아아-!!”
안도권이 정신을 잃은 채 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광폭화 포션은 홀더의 능력치를 증폭시키는 것 외에 한 가지 효과가 더 있다.
바로 연구 완료된 B급 괴수 켄타우로스의 체액을 포션에 담아, 그들의 고유룬인 [무자비한 돌격]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점.
이는 최초로 괴수의 룬을 연구하는 것에 성공한 케이스였고, 그 강력한 힘만큼 포션 사용 시 딱 한 번 외에는 그를 다룰 수 없었다.
즉, 안도권은 지금 [무자비한 돌격]의 특수 능력으로 모든 물리 공격을 무시한 채 내게 달려오는 중인 것이다.
유일하게 마법을 다루던 교수도 리타이어 됐으니, 폭증한 능력치로 물리 공격까지 무시하는 안도권을 막을 교수는 없었다.
“미친… 버서커가 따로 없네.”
쿵쿵.
강렬한 발소리로 다가오는 안도권을 바라봤다.
광폭화 포션으로 온몸이 빨개진 안도권.
정말 인간이 아니라 괴수를 보는 것 같다.
나는 그 짧은 시간에, 최대한 그를 막을 방법을 강구했다.
‘단단해지기? 안 돼.’
[단단해지기] 스킬은 순간 내구 수치를 두 배로 올려준다.
하지만 안도권의 근력 역시 현재 두 배 이상.
거기에 [무자비한 돌격]까지 고려하면 이를 맨몸으로 막는 건 자살 행위다.
‘회피? 속력이 부족해.’
안도권은 광폭화 포션으로 모든 능력치가 증폭했다.
운 좋게 공격을 피할 수 있다고 해도, 그다음, 그다음 다음이 문제였다.
이미 능력치가 폭증한 안도권의 속력은 우리보다 배 이상이었다.
지금의 그를 잡으려면.
마력을 담은 강력한 제어기가 필요했다.
거기까지 떠올린 나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김채은! 필드 프리징!”
“이미 준비했어…!!”
나와 여러 번 호흡을 맞춰본 김채은은 벌써 마법의 준비가 끝나 있었다.
그녀의 혼을 다한 [필드 프리징]이 장내를 감쌌다.
안도권은 엄청난 속력으로 얼어붙는 땅을 모두 피해갔지만, 기어코 얼음의 방해에 발목이 한 번 잡히고 말았다.
“크, 아아아…!!”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대로 검을 들고서 놈에게 달려갔다.
내가 현재 쓸 수 있는 스킬 중.
마력을 담을 수 있는 건 [쿼터 나이프] 하나.
하지만 처음에 시험장에 난입할 때 투척용 단검을 모두 써 버렸고, 쿨타임도 있어 [쿼터 나이프]는 사용이 어렵다.
그렇다면 당장 쓸 수 있는 마력 공격.
그건 직접 검에 마력을 담아 공격하는 것 뿐.
순간 안도권을 놓친 교수진도 그걸 깨달았는지, 각자의 무기로 안도권을 향해 달려오는 게 보였다.
‘일찍도 온다, 씨발.’
교수진을 기다리기엔 우리가 먼저 당할 확률이 높았다.
안도권의 광폭화 포션 섭취가 원작에 없던 의외의 전개이긴 했지만, 이곳에 자리한 교수진의 수준이 살짝 떨어지는 것도 느껴졌다.
탁원호 교수나 김명현 교수가 이곳에 있었다면, 이렇게 대처가 느리진 않았을 텐데.
나는 재빨리 안도권에게 다가가, 묶인 놈의 발에 검을 찔러 넣었다.
한 번 묶이거나 타격을 입힌 곳을 계속 찔러야 효과가 있다.
[파상검법]의 묘리를 활용해 놈의 발에 강력한 검격을 날렸다.
아직 [파상천검]은 못 쓰지만, 그 흉내는 낼 수 있다.
“크아아아--!!”
하지만 역부족이다.
완전히 놈을 제압하기엔 내 마력 수치가 너무 낮았다.
안도권은 [필드 프리징]과 내 검격으로 묶였던 제어를 모두 힘으로 끊어내며, 그대로 눈앞의 나를 걷어찼다.
“커…억!!”
씨…발.
이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인데.
시즐링 샐러맨더에게 맞을 때보다, 그리즐리 드레이크에게 맞을 때보다 더 아픈 통증이 찾아온다.
능력치 차이가 두 배 이상이 나버리면.
[격투] 룬이 없어도 이 정도 타격이 들어오는 모양이다.
내구 수치를 아득히 넘어서는 육탄 공격에.
나는 그대로 기절하듯 쓰러졌다.
일어서야 하는데…
안도권을 막아야 하는데…
[무자비한 돌격]의 돌진도 끝나 물리 공격도 통할 텐데…
손발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도무지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크아, 크아아아-!!”
그 이상의 자비는 없었다.
환호에 찬 소리를 지르던 안도권은 그대로 주먹을 들었다.
쓰러진 나를 그대로 내려치려는 자세.
아마 저 주먹 한 번에 몸 안의 모든 내장이 파열할 거다.
끝이 보이는 절망적인 상황.
…그리고 그때.
“타올라라.”
짧은 한마디와 함께.
눈으로 보기 힘들 정도의 강렬한 불꽃이 터진다.
모든 걸 집어삼킬 듯한 불길이 눈앞을 감싼다.
궁극스킬의 ‘언령’.
[파상천검]을 처음 시전할 땐 너무 미숙했던 터라, 입에 담을 생각조차 못 했던 ‘언령’이 낮게 울려 퍼졌다.
“크- 크아아아-!!”
과하게 높은 내구 수치에 비해.
불 내성이 없어 불 계열 마법에 취약한 안도권.
녀석은 온몸에 타오르는 불길에.
시험장 안을 가득 메운 연기에.
견디지 못한 채, 고통 섞인 괴성을 질러댔다.
철벽처럼 보이던 ‘광폭화 홀더’가.
너무도 쉽게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 눈앞의 여자를 바라봤다.
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그림자.
1학년 최고의 홀더이자…
이곳에 자리한 최고의 마법사.
강주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