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38화 (38/353)

EP.38 태동 (3)

언령.

룬 홀더가 자신의 궁극스킬을 사용할 때 내뱉는 말.

궁극스킬을 사용하기 위한 일종의 조건 중 하나로, 내 [파상천검] 같은 경우 ‘터져라’라는 언령을 지니고 있다.

다만, 처음 이를 제한적으로 사용할 땐 숙련도가 미숙해 스킬을 보유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언령 없이도 스킬이 시전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홀더는 궁극스킬을 사용할 때 이 언령을 입에 담는다.

타올라라.

그건 분명 강주연이 지닌 [꺼지지 않는 불꽃]의 궁극스킬… [인페르노]의 언령이었다.

극의 중반쯤에 다다라야 획득하는 궁극스킬인데, 강주연은 벌써 이 궁극스킬을 언령까지 뱉으며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그, 그아아악…!!”

광폭화 된 안도권이 [인페르노]에 의해 완전히 소각되어 갔다.

아마 이런 고위 마법은 불 내성이 꽤 있는 나라고 해도 쉽게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잘못하면 그대로 죽을 수도 있겠는데?

“이철호 교수! 물 마법을!”

“이미 준비됐습니다!”

그런 생각을 대변하듯.

아까 전, 리타이어됐던 마법사 계열 교수가 정신을 차리고 물 계열 마법을 안도권에게 퍼부었다.

어쨌든 안도권은 잡아서 심문해야 할 중요 인물이니까.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무기를 쥔 교수진을 바라봤다.

감독관을 포함해 총 5명의 교수진.

이번 학기 말 평가 실전 대련의 안전 감독을 맡은 교수진은 유독 허술하고 수준이 떨어졌다.

아무리 광폭화가 진행되어 능력치가 두 배로 증폭된 홀더라곤 하지만, 다수로 안도권 하나를 못 막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이것도 빌런에서 개입한 건가?’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수밖에 없다.

애초에 원작에선 학기 말 평가의 동기 홀더 살해 사건은 작중 언급으로만 나온다.

때문에 자리에 있던 감독관과 교수진이 어떤 대응을 했는지, 이후 사건 처리를 어떻게 했는지 명확하게 나오질 않았었다.

단지 안도권이 <빌런> 소속이고, 그게 아카데미를 흔들려는 수작이었다는 게 밝혀졌을 뿐.

그래서 아까 교수진의 대응에 대해 의심이 조금씩 들었다.

아카데미에 침투한 <빌런>의 스파이는 한둘이 아니니까.

“…괜찮아?”

강주연이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사건에 휘말린 나와 김채은은 만신창이가 된 상태.

그녀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예기치 못한 변수에 둘 다 크게 다쳤을 게 분명했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괜찮아. 고마워. 덕분에 살았다.”

“…아니야.”

오늘 처음 보는 강주연의 궁극스킬.

준비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리는 [인페르노]의 조건을 생각하면, 내가 [선전포고]를 사용하고 내려갔을 때부터 미리 준비를 한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딱 맞아 떨어지기 힘든 타이밍이었다.

게다가 그녀 역시 이를 획득한 후에.

한 번도 어디서 스킬을 보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강주연이 날 구하기 위해 그런 스킬을 처음 선보였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괜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게 던전을 다니며 쌓인 동료애인가.

시험장엔 어느새 박진우와 문가은도 내려와…

걱정 어린 눈빛으로 우릴 보고 있었다.

“야, 도재현! 저 새끼 도대체 뭐야? 뭔데 막 저렇게…”

“조용히 좀 해. 귀 울려.”

“어? 어. 미안.”

“검은 잘 썼다. 가져가.”

나는 박진우에게 검을 돌려준 후.

이내 시선을 안도권과 교수진 쪽으로 돌렸다.

완전히 정신을 잃은 안도권은 이제야 포박되며 호송되고 있었고… 교수진은 여전히 당황한 기색으로 허둥대며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확실히 뭔가 이상한데.’

교수진의 평균 홀더 등급은 B급~A급이다.

아무리 안도권이 <빌런> 소속의 스파이이고, 광폭화를 통해 터무니없이 강해졌다곤 하지만… 다섯 명의 교수진으로 그를 못 막을 이유가 없었다.

과도하게 답답한 모습을 보였던 교수진.

그런 엉성한 점이 오히려 수상했다.

‘교수님께 말해봐야겠다.’

이 아카데미에서 내가 신뢰하는 교수라면.

탁원호 교수와 김명현 교수뿐.

특히 탁원호 교수는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운영진 중 한 명이기에,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결투에서의 높은 기여도로 인해 승리가 인정됩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이번에도 승리 기여도에 대한 판정은 후했다.

도대체 기준이 뭘까.

* * *

-또 학생이 죽을 뻔했다. 아카데미는 그동안 뭘 했나…

-아카데미 교수진의 무능. 어디까지 지켜봐야 하는가.

-괴수 출현에 이어 광폭화 홀더까지. <빌런>의 소행?

-A급 홀더 장유환, “아카데미는 졸업장만 따는 곳”

“빌어먹을!”

정장을 차려입은 한 노인이 거칠게 핸드폰을 집어 던졌다.

그의 이름은 탁윤재.

두 검술 명가로 이름 높은 탁씨 가문의 가주이자, 서울 홀더 아카데미를 전적으로 운영하는 재단의 이사장이기도 했다.

탁윤재는 어제와 오늘.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신문, TV, 인터넷.

모든 대중매체를 가리지 않고, 사방에서 아카데미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방향은… 부정적이기 그지없는 쪽이었다.

탁자로 나란히 모인 여러 사람 앞에서.

탁윤재는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내며 말했다.

“내가 이딴 기사나 보고 있어야 되겠냐?”

“아닙니다. 아버지.”

장남인 탁원혁이 급하게 고개를 숙여 답했다.

그는 지금껏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자주 봐왔다.

탁원혁은 이러한 긴박한 순간에, 어떻게 해야 그의 화가 가라앉을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우선 무슨 말이 됐든.

그의 의도에 수긍하며 대충 고개를 숙이면 끝이다.

“말 잘했다. 그럼 뭐가 아닌지 네가 한번 말 해봐라.”

“예?”

하지만 이번엔 경우가 달랐다.

지금의 탁윤재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아카데미 운영을 얼마나 거지같이 하면, 교수진이 무능하다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리냐고!!”

아카데미에 괴수가 출현했다거나, 살인 사건이 일어날 뻔했다거나, <빌런>이 개입했다거나…

그런 가십거리들은 탁윤재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명예.

아카데미의 운영이 뭔가 잘못되고 실책이 일어나, 그의 명예를 실추하는 것.

그것만이 탁윤재의 집중적인 관심사였다.

탁원혁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번엔 타이밍을 완전히 잘못 잡았다.

“…죄송합니다.”

“그놈의 죄송, 죄송! 할 줄 아는 말이 죄송밖에 없는 머저리 같은 놈.”

어지간해선 풀리지 않을 것 같은 화.

그를 보며, 한쪽에 서 있던 둘째.

탁원상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아버지. 제가 한마디 올려도 될까요.”

“오, 그래. 원상이. 네가 한번 말 해봐라. 이 빌어먹을 기사들을 안 보려면 어떻게 해야겠냐.”

탁원상이 공손한 자세로 손을 쥐며 말했다.

“예. 아버지도 아시다시피, 저희 서울 홀더 아카데미엔 황금기였던 예전과 달리, 수준이 뛰어난 교수들이 많지 않습니다. A급 홀더 교수가 10명밖에 되지 않고, 그마저도 잘 나가는 클랜의 A급 홀더와 비교하면 급이 떨어지죠.”

“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카데미에서 교수로 급여를 받는 것보다, 클랜에 들어가 던전 혹은 필드를 돌며 직접 돈을 버는 게 훨씬 수익적으로 이득이기 때문이죠.”

탁윤재가 이상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렇지만 지금까진 잘 운영되지 않았냐.”

“그건 지금껏 아카데미에 별다른 일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조금씩 말은 나왔어도 잡음 수준이었죠. 하지만 저번 괴수 출현 사건과 이번 살인미수 사건. 뭐 빌런이 개입했다, 이런 건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일련의 사건을 통해, 이런 인력 부족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겁니다.”

탁원상의 말은 합리적이었다.

능력만 된다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현 홀더 계에서, 아카데미 교수직은 그렇게 선호되는 직업은 아니다.

버는 돈도 적고, 홀더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교수직을 맡는 이들은 주로 명확한 신념과 남다른 교육열을 지닌 교육자들이거나, 능력이 부족해 중견 이상의 클랜에 들어가지 못한 홀더가 대부분이었다.

탁윤재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이냐?”

“결국은 지원입니다. 교수들의 연봉을 대폭 늘려 수준 높은 인력을 충원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추가 예산을 제게 맡겨주신다면, 저와 아카데미 인사부에서 책임지고 교수진의 수준을 높이도록 하겠습니다.”

“음….”

아카데미 운영.

그중에서도 인사부를 맡은 탁원상.

그는 자신에게 예산을 맡기라는 대안을 건네고 있었다.

탁윤재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슬쩍 돌렸다.

“…….”

막내임에도 형들보다 검술 실력이 월등히 뛰어나, 가문의 적정 후계자로 유력한 인물.

아카데미 운영진이면서, 교수를 동시에 맡은 홀더.

아까부터 말이 없던, 막내아들 탁원호였다.

“원호, 네 생각은 어떠냐?”

문득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의 화살에.

탁원호는 잠시 고민하는 듯 망설이더니 답했다.

“저도 원상이 형의 말에 찬성합니다.”

“인사부에 예산을 대폭 늘리라는 말 말이냐?”

“예. 대신 방향이 조금 달랐으면 합니다.”

“방향?”

탁원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어중간하게 잘 나가는 홀더들이 아니라, 확실한 강자이자 유명한 홀더를 영입해야 합니다.”

“음…?”

확실한 강자이자 유명한 홀더?

그 특이한 말에 탁윤재가 의문 섞인 표정을 지었다.

탁원호는 확신에 찬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저는 추가 예산을 모두 쏟아부어서, 현재 클랜이 없는 S급 홀더. 암살자 계열의 유은설 홀더를 영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섯 명의 S급 홀더 중 하나.

홀더 계의 유명인사이자, 인력이 가장 부족한 암살자 계열의 혈을 뚫어줄 인물.

홀더 유은설.

탁원호는 그녀의 영입을 주장하고 있었다.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