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39화 (39/353)

EP.39 제안 (1)

김채은에게 있어, 도재현은 특별한 사람이다.

처음 그를 봤던 건 옆집에 그가 이사를 오고 난 후였다.

항상 휑하던 옆집에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사람이 와 있었고, 차가운 인상의 그는 어쩌다 마주치더라도 인사 한번이 없었다.

말 없고 조용한 옆집 이웃.

활발한 성격의 김채은에게조차.

처음의 그는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너무 잘생기기도 했고…’

부끄럽지만.

김채은은 살면서 그렇게 잘생긴 사람을 처음 봤다.

그녀 역시 자신의 외모에 꿀릴 일이 전혀 없는 사람인데도, 상대의 차가운 인상에 잘생긴 얼굴까지 더해지니 괜히 첫 마디를 떼는 게 어려웠었다.

그래서 아카데미 지원장에서 그를 다시 봤을 때.

같은 룬 홀더라는 동질감과…

옆집 이웃에 나이까지 같다는 친밀감.

그런 걸 핑계로 겨우 친근한 척 말을 건넬 수 있었다.

‘풋- 그땐 바보 같았는데.’

그 날의 도재현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멍한 얼굴로 입구에 서 있던 도재현.

말을 건넨 뒤, 홀리듯이 자신을 따라오던 그.

왠진 모르지만 각자의 집에 도착한 후.

연신 자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넸었다.

바보 같긴 해도, 나름 귀여웠다.

첫인상이 차가워 다가가기 어렵다…

그런 인식이 단숨에 깨진 순간이었다.

‘요리도 잘하고.’

도재현은 생긴 것과 다르게 반전 요소가 많았다.

홀더 각성 후 매일 쉬지 않고 훈련장에 나섰고, 멀티홀더의 특성을 지녔는지 매번 다루는 무기가 달랐다.

훈련이 끝나 가끔 집을 놀러 가면, 의외로 괜찮은 수준의 요리를 선보이곤 했다.

도재현의 요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수준이 높아지고 고급스러워져서, 이제는 김채은의 하루에 빼먹을 수 없는 필수 식사가 돼버렸다.

홀더가 되고 나서 처음 사귄 친구.

나른해 보이지만 매사에 열정적인 친구.

차가운 인상과 달리 누구보다 다정한 친구.

김채은에게 있어.

그 친구는 이제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이상한 생각 말고. 손잡아.

그리고 그 감정은.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더 강렬해졌다.

손을 잡으라던 그 가벼운 한마디에.

왠지 모르게 심장이 조금 뛰었었다.

죽음의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준 도재현.

그리고.

자신 때문에 죽음의 위기에 처했던 도재현.

이번 사건은 김채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죽을 뻔했기에 무서웠다…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다면…’

자신의 부족한 능력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더 강해져서.

도재현을 지켜줄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

그런 감정들이 그녀의 안에서 자꾸 문을 두드렸다.

마치…

스킬 한 번으로 광폭화된 안도권을 무너뜨렸던.

같은 학년의 강주연처럼.

“일어났어? 복숭아 잘라 왔으니까 먹자.”

때마침 아빠, 김명현이 과일을 들고 방에 들어왔다.

사건이 있고 나서 하루가 지난 지금.

심신의 안정이 필요하다는 그만의 독특한 간호 방식이었다.

김채은은 뭔가 결심한 듯.

입술을 앙 다물고서 그에게 말했다.

“아빠. 나 검술 가르쳐 줘.”

“…어?”

“검 가르쳐 달라구.”

“…채은아. 넌 검과 관련된 룬도 없고, 계열도 마법사 쪽이라 검술을 배워도 큰 의미가…”

“상관없어. 어차피 자기 단련을 위한 밑거름이야. 일단 신체 능력부터 좀 키워야겠어. 나 몸이 너무 약해.”

“…….”

너무도 단호한 표정의 딸.

그를 보며 김명현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또 왜 이럴까.

또 무슨 바람이 불어 이런 소리를 하는 걸까….

김채은은 마법사 계열의 홀더.

육체적인 능력은 전무하다시피 한 계열이기에 룬 없이 훈련을 해봤자 큰 효율이 나오질 않는다.

지금 김채은이 꺼낸 이야기는 거의 억지에 가까운 부탁인 것이다.

“…….”

하지만 그는 결국 이 터무니없는 말을 들어줄 것이다.

어차피 이런 얼굴을 한 딸은 누가 와도 못 말린다.

한 번 마음 먹은 건 꼭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딸이었다.

이런 부분은 엄마를 닮아, 유난히 고집이 셌다.

김명현은 포기한 얼굴로 복숭아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또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복숭아는 그의 속도 모르고 한없이 달았다.

* * *

아카데미는 안도권의 살인미수 사건으로 시끌벅적했다.

원작에서도 동기를 살해하며 엄청난 관심을 끌었지만, 그건 오로지 해당 사건과 안도권의 배후 <빌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반면 이번 사건은 동기 살해가 미수에 그치고, 갑자기 안도권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광폭화 포션’을 들이켜 난동을 피우면서 관심의 방향이 달라졌다.

처음 안도권의 살해 시도를 막은 나.

광폭화한 그를 궁극 스킬로 날려 버린 강주연.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무기를 꺼냈어도, 특별한 대응을 못 보여준 교수진.

그간 수준 낮은 아카데미 교수진에 쌓여 있던 홀더들의 불만과 불신이 쌓이고 쌓여, 활화산처럼 터지며 비난을 쏟아내고 있었다.

“황금기의 주역들은 모두 어디로? 아카데미 교육 수준, 끝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와. 기사 제목 너무 센데? 이렇게까지 표현할 일인가.”

어색한 목소리로 핸드폰에 나온 기사를 읽었다.

분위기를 풀려고 읽은 건데, 상황이 상황인 터라 죄다 부정적인 기사밖에 없다.

침묵이 흐르던 분위기가 괜히 더 어색해진 느낌이다.

“…….”

학생들이 자주 오는 아카데미 카페 안.

나는 강주연과 함께 자리를 마주하고 있었다.

학기 말 평가 안도권 사건 때 날 구해줬던 강주연.

그 행동이 너무 고마워서.

언제 밥 한 번 사겠다고 말했었는데…

-…좋아. 내일 사줘.

강주연은 그 제안을 덥석 물었다.

던전 공략을 함께할 때부터 놀라움의 연속이긴 했지만, 그녀와 식사를 같이 한다는 건 또 다른 의미로 신선했다.

강주연의 대외적인 이미지는 1%의 엘리트답게 차갑고 다가가기 힘드니까.

식사나 대화도 문가은이 아니면 다른 이와 하질 않는 그녀인데, 그 영역에 내가 들어갔다고 생각하니 뭔가 신기했다.

어쨌든 나도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기에…

제대로 된 레스토랑에 데려가 그녀를 대접했다.

‘내 요리가 더 맛있긴 한데….’

솔직히 어지간한 외식보다.

내 [요리] 룬의 수준이 더 높다.

5레벨에 다다른 요리 실력은 웬만한 요리사 뺨 치는 퀄리티를 자랑하니까.

하지만 아쉬운 대로 레스토랑 식사에 만족해야 했다.

그렇다고 강주연을 내 집에 데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지금은 그 식사가 끝난 후의 카페 타임이었다.

“…아카데미는 적이 많으니까. 교육을 독점한 재단을 공격하려는 세력이 많겠지.”

다행히 재미없는 주제는 아니었는지.

강주연도 작은 목소리로 방금 주제에 답했다.

그리고 분석도 꽤 냉철하다.

탁씨 가문의 홀더 아카데미 운영 독점은 예전부터 제기되어 왔던 문제 중 하나다.

초기 홀더들을 교육하는 공익적인 목적의 아카데미가, 한 가문과 재단에 의해 운영된다는 점에 불만을 가지는 클랜과 홀더는 꽤 많았다.

물론, 그건 홀더 계의 역사 속에서 무수히 많았던 아카데미를 흡수하고 통합한 탁씨 가문의 능력이었지만, 눈앞의 이익을 쫓는 홀더들에게 그런 배경은 중요치 않았다.

강주연은 그러한 전후사정을 이번 사건과 연결지으며 꽤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었다.

역시 한국 3대 클랜.

<불의 심판>의 후계자인가.

“그래도 다 합당한 비판이긴 하네. 그때 모여 있던 교수들 대처가 아쉬웠던 건 사실이니까. 광폭화한 안도권도 거의 강주연, 너 혼자 잡은 거잖아.”

다시 생각해도 그녀의 [인페르노]는 화려했다.

[꺼지지 않는 불꽃]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불 마법.

적당한 불 내성으론 사라지지 않는 억겁의 불꽃.

대상이 소각할 때까지 끝을 모르고 타오르는 불길.

아마 이제 막 획득에 성공해 기초적인 수준의 숙련도였겠지만, 그 웅장한 궁극 스킬을 내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마냥 신기했다.

하지만 강주연은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혼자 잡은 거 아니야.”

“어?”

“그때 그거. 도재현, 네가 있어서 잡을 수 있었던 거야.”

이건 또 무슨 신박한 소리일까.

강주연은 눈을 돌리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내가 썼던 궁극 스킬… 인페르노는 사용할 때 조건이 있어. 인페르노의 불길이, 마력이 집중되는 특정 지점을 타고 타올라야 한다는.”

“어, 어? 야야, 그런 거 말 안 해줘도 돼.”

[인페르노]에 조건이 있다는 건 나도 안다.

사용하려는 대상의 특정 마력 지점을 타고 불길이 올라가게 되고, 그 지점은 다른 신체 부위에 반해 조금이라도 내구가 마모되어 있어야 한다.

궁극 스킬치곤 꽤 까다로운 조건이지만, [인페르노]가 주로 사냥의 마무리 스킬로 사용된다는 점과 그 강력한 위력을 고려하면 그렇게 어려운 조건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내게 알려주는 건 별개의 문제.

아무리 우리가 던전 공략을 함께 한 동료 사이라지만, 자신의 스킬 조건까지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강주연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잘못 알고 있는 걸 바로 잡으려고. 도재현, 네가 그때 그 남자의 손목을 베지 않았다면… 아마 인페르노의 시작 지점을 찾는 건 어려웠을 거야.”

“아….”

그제야 강주연이 이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를 깨달았다.

처음 [선전포고]를 쓰고 안도권에게 도약했던 그때.

나는 분명 놈이 들고 있던 도끼를 검으로 쳐내고, 그대로 [연격]을 이어 놈의 손목에 상흔을 입혔었다.

위력이 부족해 완전히 잘라내지는 못했지만, 강주연의 [인페르노]의 시작 지점이 될 조건 정도는 충분히 만들어낸 유효타였다.

“그러니까… 혼자 잡은 거 아니야.”

“그래. 뭐, 그런 걸로 치자.”

솔직히 내 입장에선 [인페르노]를 사용한 강주연이 다 잡은 걸로 보이지만… 그녀 스스로 내 도움이 컸다는데 생각을 막을 수야 있나.

강주연은 알면 알수록 신기한 여자다.

엘리트 집안의 후계자로 자랐음에도 별다른 특권 의식이 없는 편이고, 던전을 공략하거나 함께 싸워야 할 일이 있을 땐 누구보다 든든한 동료가 된다.

심지어 알고 지낸 시간이 꽤 지나니.

이렇듯 말을 많이 한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다.

문가은이 아닌 사람에게도, 약간은 마음의 문을 연 것.

원작에서 그저 박진우의 동료였던 것과는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 알게 되는 모습들이었다.

그런 강주연이 커피를 조금씩 마시다 입을 열었다.

“저기… 도재현.”

“응.”

뭔가 중요한 얘기를 하려는 듯.

작게 오물거리는 입.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혹시… 방학 때 뭐해?”

“…예?”

뭐냐, 이거.

데이트 신청이야?

잔뜩 오해한 내 얼굴에.

강주연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 아니. 그… 클랜 같은 거, 생각 중인 곳 있나 해서. 너만 괜찮으면… 우리 클랜 인턴을 제안하고 싶은데…”

“인턴?”

“…응. 이번 방학 때 조금 채용할 생각이거든.”

클랜의 인턴.

일반 회사들이 견습의 형태로 계약직을 채용하듯, 홀더 계의 클랜들도 정식 클랜원이 아닌 인턴 클랜원을 자주 채용한다.

주로 아카데미 졸업 직전의 학생 홀더들이 견습 혹은 스펙을 쌓기 위해 이런 인턴직을 수행하고, 때로 클랜을 구하지 못한 정규 홀더들도 취업을 위해 인턴 클랜원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막 1학년으로 들어온 학생 홀더를, 그것도 <불의 심판>과 같은 거대 클랜에서 인턴으로 채용하는 경우는 없었다.

해당 클랜의 정식 후계자인 강주연이 내민 제안.

그녀는 내게 꽤 파격적인 제안을 건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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