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41화 (41/353)

EP.41 제안 (3)

김명현 교수가 꺼내든 검으로 허공을 몇 번 휘저었다.

너무도 가벼운 움직임.

잠깐 검을 휘두른 것인데도…

알 수 없는 품격이 느껴졌다.

“유수활검은 물결처럼 부드러운 유수의 검 중에서도 가장 가벼운 검입니다.”

“가장 가벼운 검이요?”

“네. 도재현 홀더는 혹시 파상검법과 유수검법이 모두 물의 움직임을 본따 만든 검법이라는 걸 알고 있나요?”

그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탁원호 교수님께 들은 적이 있습니다. 파상은 거친 물의 흐름을, 유수는 부드러운 물의 흐름을 검으로 형상화한 것 아닌가요?”

밀려왔다 밀려가는 물결의 파상.

부드럽게 흐르는 물결의 유수.

두 검법은 상반되는 이름처럼 검의 성질 역시 확연하게 달랐다.

“맞습니다. 더 구체적인 예시로 파상이 바다의 파도와 같은 거친 물결이라면, 유수는 흐르는 강물의 부드러운 물결이라고 볼 수 있죠.”

김명현 교수가 [연격]을 사용하듯.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따라서 유수검법은 더 부드럽게, 혹은 더 가볍게 검을 휘두르는 데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유수가 찌르기보다 베기에 특화된 이유입니다.”

검을 휘두르는 그의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이거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들어지는데.

“궁극스킬인 유수활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부드러운 검의 형태를 취하면서도, 더욱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 마력의 힘을 빌려, 속력에 더 큰 힘을 실어주는 겁니다.”

“아하….”

“그래서 유수활검은 보법류 룬의 보조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속력 수치만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룬의 영역이 있거든요. 혹시 도재현 홀더는 보법류 룬을 보유하고 있나요?”

“아, 네. 있습니다.”

보법류 룬은 암살자 계열들이 공통적으로 보유하는 룬.

홀더 계의 이단아인 나는 이러한 공통룬이 없었지만…

다행히 노멀보다 더 뛰어난 레어룬이 있었다.

[날렵한 몸놀림].

돌격류 [질주]와 더불어, 내가 가진 속력 쪽 핵심 룬이다.

문득 김명현 교수의 검이 내 허리춤을 향했다.

“그럼 도재현 홀더. 제게 쿼터 나이프를 써보시겠습니까?”

“…예?”

순간 당황했다.

스승을 향해 단검을 던지라니.

그것도 레벨이 높은 [단검]의 파생스킬…

이제는 마력도 꽤 많이 담기는 공격이다.

자칫 실수하면 다칠 수도 있었다.

“괜찮습니다. 다치지 않으니 한 번 써보시죠.”

하지만 웃으며 말하는 그의 모습에 곧바로 수긍했다.

김명현 교수는 A급 홀더.

막말로 내가 전력을 다해 싸워도 이기지 못하는 상대다.

게다가 A급이면 내구 수치만 해도 상당하다.

내 [쿼터 나이프]로는 뚫기 힘든 내구 수치.

아마 별다른 상처를 남기지 못할 것이다.

나는 허리춤의 단검 네 자루를 꺼내 들었다.

“흐읍…!!”

이제는 익숙해진 투척 자세.

한 차례 기합을 넣고…

곧바로 [쿼터 나이프]를 김명현 교수에게 날렸다.

팔, 다리, 가슴, 배.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급소는 최대한 피해서 던졌다.

무서운 기세로 쏘아지는 단검들.

금세 김명현 교수의 신체에 꽂히며 피를 낼 것만 같았다.

“흘러라.”

“…어?”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흘러라’라는 작은 언령과 함께.

천천히 검을 휘두르던 김명현 교수가, 이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며 검을 휘둘러…

[쿼터 나이프]의 네 자루 단검을 모두 쳐낸 것이다.

조금씩 스텝을 밟던 그의 발조차 보이질 않았다.

‘너무 빨라…!!’

나는 그걸 보며, 김명현 교수가 직접 [유수활검]의 시범을 보여주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유수활검].

이는 극한의 속력으로 검을 움직여 대상을 베어내는, 혹은 날아드는 투척물을 모두 쳐내는 회피 및 공격스킬이었다.

압도적인 속도 앞에.

내 단검들은 어느 것도 김명현 교수에게 닿지 못했다.

스킬의 사용이 끝났을 땐…

이미 단검들은 땅에 처박히고, 그는 검을 집어넣은 후였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꽤 쉽죠?”

상황이 끝나고, 김명현 교수가 웃었다.

억울하다.

어떻게 쓰는 건지 보지도 못했다고.

* * *

아카데미의 1학기가 끝이 났다.

이번 학기는 내게 있어 꽤 의미가 많았다.

어쩌다 운 좋게 두 명교수의 전속 제자가 되어 가르침을 받고, 아카데미에 출현한 괴수, 그리고 그 근원이 지하 던전까지 공략에 성공했다.

이후 학기 말 평가와 안도권의 살인 사건을 막는 것까지.

이런저런 사건도 많았고, 홀더로서 다양한 경험도 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입학 때 F급 홀더 수준으로 임시 하급반이었던 내가, 이제는 상급반 C급 홀더 수준까지 능력을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사기를 좀 치긴 했어도….’

사기적인 성능의 [룬 사냥꾼]과 그걸로 얻은 또 다른 사기룬 [구도자의 땀방울].

두 룬을 통해 나는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물론, 나 역시 많은 노력을 기울이긴 했다.

하지만 임시 하급반에서 상급반까지 한 학기 만에 올라간다는 건, 평범하게 룬을 성장시키는 홀더라면 불가한 일이었다.

“부산 가는 워프 게이트 같이 이용하실 분-!!”

“전사 계열 D급 홀더 임시 파티원으로 구해요! 지금 당장이요!”

“응, 마력석 가격 계속 떨어져 봐~ 파산하면 그만이야~”

“사진 찍고 가세요! 순간을 추억으로 남겨드려요!”

북적이는 아카데미의 중앙로가 학기의 끝을 알렸다.

학생들은 제각기 집으로 갈 준비를 하거나, 훈련장이나 도서관을 이용하며 각자만의 방학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 시끌벅적한 아카데미 중앙로를 지나.

나는 어느덧 특수 계열 측 건물에 와 있었다.

학기를 마치기 전.

최유민에게서 밀린 장비들을 받기 위해서였다.

“여기…!!”

건물 안 스터디 라운지.

한쪽에 앉아있던 최유민이 손을 들었다.

그녀는 미리 제작품들을 가져왔는지, 옆에 꽤 무거워 보이는 장비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나는 웃으며 마주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안녕. 엄청 오랜만인 것 같다?”

“응. 재현이 네가 한동안 장비를 찾으러 안 왔으니까.”

그녀와 계약한 장비 요구 횟수는 한 달에 5회.

저번 던전 공략 때 하나를 날려 먹고 새로 검을 받은 후로, 한 번도 그녀를 찾지 않았으니 벌써 10개가 넘는 장비를 받아야 했다.

최유민 옆에 쌓인 장비들이 이해가 간다.

“그동안 좀 열심히 만들었어?”

“응! 나 이번에 새로운 룬도 얻었어.”

“뭐? 야, 그런 건 말 안 해줘도 돼.”

보유 룬이나 스킬, 능력치에 관한 정보는 함구하는 게 홀더들의 암묵적인 규칙이다.

기계로 대략적인 능력치 측정이 가능하고, 몇몇 테스트를 통해 룬 레벨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이 보유한 룬은 해당 홀더만 아는 거고, 룬은 곧 홀더의 힘이니까.

내가 주요 인물들의 룬을 대부분 파악하고 있더라도, 그건 나만 아는 일이지 내게 말해주는 것과는 별개였다.

저번의 강주연도 그렇고 최유민까지…

다들 나한테 왜 이래?

“헤헤- 괜찮아. 재현이 네 덕에 야장 룬들 성장하면서 얻게 된 거니까. 고마워. 투자금이 정말 정말 큰 도움이 됐어.”

최유민이 갈색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웃었다.

아마 그녀가 얻었을 새로운 룬은 [철혈의 야장].

훗날 최유민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룬이다.

‘빠르긴 하네.’

최유민이 벌써 이 룬을 획득한 건 의외다.

그래도 1학년은 지나고야 얻게 될 줄 알았는데…

한 학기 만에 룬을 획득한 건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역시 대장장이들은 갈아내면 뭔가 나오는 건가?’

야장 계열에서도 최고로 평가받는 에픽룬.

그걸 고작 지원 몇 번 해줬다고 바로 얻다니…

최유민도 박진우나 강주연에 버금가는 재능러인 것 같다.

아마 그녀는 이제 이 룬을 꾸준히 성장시키며, 대장장이로서 더욱 뛰어난 성과를 보여낼 것이다.

“네 실력이면 충분히 그거 받고도 남아. 이제 고급 장비들 만들기 시작하면, 투자금 쯤 우습게 보일걸? 내가 운이 좋아서 싸게 계약한 거야.”

“히힛.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낯 간지러운 얘기는 그만하고, 이제 장비 좀 볼까?”

“응!”

최유민은 옆에 쌓인 장비 중 검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저걸 다 직접 들고 온 건가?

마법 가방이 그렇게 비싸지도 않을 텐데…

기회가 되면 하나 선물해줘야겠다.

“룬 레벨이 올라서 그런지… 이제 아이템 정보가 뜨더라구.”

그녀의 말처럼 검을 건네받자마자.

곧바로 정보창이 눈앞을 어지럽혔다.

<아이템 정보>

◎이름: 잘 벼려진 롱소드

◎종류: 검

◎등급: 노멀(Normal)

◎내구도: 정상

◎제작자: 최유민

◎특수효과: -

◎세부정보

: 이제 막 입문 단계의 대장장이가 만든 괜찮은 수준의 롱소드. 단단하고 날카로운 예기를 지녔다.

드디어 최유민의 제작품에 아이템 정보가 떴다.

그녀가 이전에 만든 물건들은 전부, 일반인들이 만든 무기들처럼 아무런 정보가 뜨지 않았었다.

대장장이 계열의 룬 홀더는 어느 정도 수준이 올라왔을 때부터 제작품들이 아이템으로 인정을 받는데, 최근 꾸준한 성장을 이룬 최유민도 이제야 그들과 동일 선상에 서게 된 것이다.

게다가 큰 의미는 없어도 ‘잘 벼려진’이라는 수식어구까지 붙었다.

다른 평범한 롱소드보다는 조금 더 낫다는 뜻.

아직은 초기 단계이기에 등급도 노멀에 특별한 효과도 없지만, 일단 그녀의 장비가 ‘아이템’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게 중요했다.

“축하해. 이제 어엿한 대장장이 계열 홀더네.”

“고마워. 그리고 그 검,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괜찮아! 코어 마력석으로 B급 마력석 사용했거든.”

“뭐? 왜 그렇게 비싼 걸 썼어.”

“헤헤- 새로운 룬 얻고 나서 처음 만들었던 검이라, 제대로 만들고 싶었거든.”

그녀의 말을 듣고 나니.

평범한 롱소드에 수식어구가 붙은 게 이해가 간다.

B급 마력석이면 시가가 4200만원이다.

비싸고 좋은 재료를 쓰면 당연히 장비의 품질은 올라간다.

‘아무리 그래도 지원금 반의 반을 쓰냐….’

최유민도 묘한 부분에서 자신만의 고집이 있었다.

그렇기에 훗날 이름 있는 대장장이가 된 거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검의 손잡이를 어루만졌다.

“그럼 이건 좀 나중에 써야겠다.”

그러자 최유민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응? 왜? 바로 쓰는 게 좋지 않아?”

“음… 평범한 무기부터 먼저 쓸 일이 좀 있거든.”

현재 내 능력은 C급 홀더 수준.

하지만 실제 능력만 그럴 뿐, 홀더 협회에 등록된 내 등급은 아예 미산정 홀더다.

처음 홀더가 되고 등록만 한 후.

바로 아카데미에 입학해 등급 갱신할 일이 없었거든.

‘그런데 이젠 다르지.’

정식으로 C급 홀더의 등급이 필요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전부터 계획하던 S급 괴수, 스월 레비아탄의 사냥.

필드 괴수로 나타나는 그 대형 괴수를 사냥하는 공격대에 참가하려면, 최소 홀더 등급이 C급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주력 능력치가 모두 30이 넘기에 능력치 측정에선 C급으로의 승급에 떨어질 일이 없다.

그렇다면 남은 건 성과.

던전 공략이나 필드 사냥 성과가 필요했다.

‘한 사흘이면 되겠지?’

더 늦으면 스월 레비아탄이 먼저 출현한다.

그 전에 성과를 모두 내고 홀더 등급을 갱신해야 했다.

나는 그 사흘간.

최유민이 준 장비를 모두 써서…

조금의 쉴 틈도 없이 사냥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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