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42화 (42/353)

EP.42 C급 홀더 승급 (1)

“또 실패했니?”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방안을 덮었다.

차수연의 표정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표정으론 알 수 없는 그녀의 감정이.

방 안의 분위기를 더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윤재야.”

“예, 지부장님.”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런 말이 아닌데.”

“…….”

무릎을 꿇고 있던 지윤재의 몸이 긴장으로 가득 찼다.

또 한 번 차수연의 룬 마법이 닥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번엔 고요한 침묵뿐.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빌런> 클랜답게.

오늘의 지윤재는…

다행히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기껏 인사부에 힘써서 교수진 배치를 바꿔놨는데, 한 명도 못 죽이면 어떡해.”

“죄송합니다. 예기치 못한 변수가 있었습니다.”

“음음- 그 도재현이라는 아이 말이지?”

도재현.

이번 작전에서 제일 거슬렸던 변수.

그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김채은이라는 홀더는 죽음을 맞이했을 거고, 교수의 딸이 사망했다는 소식과 함께 아카데미는 엄청난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무능한 교수진과 <빌런>의 개입.

그에 대한 비난과 추측들만 쏟아질 뿐이었다.

어떻게든 아카데미를 혼란에 빠뜨리긴 했지만…

반쯤밖에 성공하지 못한 작전이었던 것이다.

지윤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입학 당시 임시 하급반으로 선정됐는데, 다음 학기엔 상급반 진급이 유력한 홀더입니다. 성장 폭도 상당히 빠르고, 안도권 클랜원이 일을 치르려고 할 때도 기다렸다는 듯 빨리 대처를 했었습니다. 의심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음음-”

차수연이 기다란 손가락으로 탁자를 몇 번 두드렸다.

무표정하던 그녀의 얼굴에 그제야 미소가 깃들었다.

“재밌는 아이네.”

쪼르륵-

차수연이 천천히 유리잔에 와인을 따랐다.

최소 7년 이상을 숙성시킨 네비올로.

아름다운 색깔과 은은한 향이 주변을 맴돈다.

이 시각에 그녀가 즐기는 건 늘 레드와인이었다.

“너랑 붙으면 어때?”

“제가 무조건 이깁니다.”

“푸흐-”

차수연이 이번엔 참기 힘들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질 것 같으면, 도권이처럼 또 광폭화 포션 쓰려고?”

“그건…”

광폭화 포션은 <빌런>에서 유통되는 불법 포션.

순간적으로 홀더의 능력치를 배로 증폭시키는 물약.

하지만 이는 알려진 것과 달리 절대 만능이 아니다.

능력치의 증가폭이 상당하기는 해도 오로지 육체적인 능력치에만 국한된 버프이고, 순간적으로 이성을 유지하기 힘든 탓에 사용 시의 목적만 관념적으로 느낄 수 있다.

거기에 홀더의 힘을 잃을 가능성까지 있는 강한 부작용.

높은 수준의 힘을 가진 홀더일수록, 사용을 지양해야 하는 게 ‘광폭화 포션’이었다.

다만 안도권은 워낙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스타일이라 이성적인 분간이 안 됐을 뿐.

“윤재는 그거 안 썼으면 좋겠다~ 창창한 나이에 그런 거 쓰기엔 너무 아깝잖아.”

“저도 클랜이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쓸 생각은 없습니다.”

“에이. 이런 클랜에 무슨 그 정도 충성심을 가져. 그냥 이기적으로 움직여. 너 하고 싶은대로. 대신, 내 말은 들으면서. 알지?”

“…예.”

온갖 싸이코들이 모두 모인 <빌런> 클랜.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안엔 또 나름의 위계질서가 자리하고 있었다.

“윤재도 얼른 내 지부장 자리 가져가야지?”

그렇게 말하고 웃은 차수연은.

또다시 손가락으로 탁자를 몇 번 두드렸다.

“어쨌든 네가 말한 변수, 잘 지켜봐. 우리 클랜에 대해 뭔가 아는 것 같으면, 바로 보고하고.”

“예.”

“아. 써클 같은 거 같이 들어가도 좋겠네.”

“써클… 말입니까?”

“음음- 너희 2학기에 써클 들어가잖니. 다음 작전 명령 떨어지기 전까지, 도재현. 그 아이랑 연결점 좀 만들어 놔.”

차수연이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곤 말을 이었다.

“수틀리면 언제든 죽일 수 있게.”

* * *

서울에서 가장 높은 산, 북한산.

북한산은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결계 밖 필드’다.

홀더들의 [마력 결계]가 괴수를 막는 가장 기초적인 방안이 되고, 이 결계 밖으로 괴수가들이 밀려난 지도 꽤 지난 지금.

이렇듯 규모가 큰 산들은 대개 ‘필드’로 지정되어 결계가 적용되지 않았다.

북한산은 한국에서도 꽤 유명한 필드다.

초입부터 괴수들이 넘실거리고, 공개된 던전도 많다.

북한산 내 던전들에 대한 소유권은 각종 클랜들이 나눠 가지지만, 북한산 자체의 필드 소유권은 홀더 협회에 있었다.

‘그래 봤자 업무 용도로밖에 안 쓰지만.’

한국 홀더 협회 소속.

C급 홀더 이지혜는 업무차 이 북한산에 와 있었다.

그녀의 이번 업무는 승급 테스트.

홀더 등록 후 한 번도 등급 갱신을 안 한, 햇병아리 홀더의 승급 요청 테스트였다.

F급에서 C급까지.

무려 3단 승급에 다다르는 요청이다.

‘에휴. 그냥 돌려 보냈어야 하는데….’

이미 능력치 테스트에선 합격한 홀더다.

측정 기구에서 C급에 적절한 능력치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어진 룬 테스트에서도 상당히 괜찮은 실력을 보였다.

특히 요즘 핫하다는 ‘멀티홀더’로서의 능력도 선보이며, 검과 단검을 모두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능력치 테스트와 성과 테스트는 개념부터 다르다.

아무리 능력치가 좋고 룬 활용도가 높아도 실전의 변수 앞에 무너지는 홀더는 많고, 징그럽기 짝이 없는 괴수들과의 전투에서 평정심을 찾지 못하는 이들도 상당히 많다.

직접 괴수와 싸워보기 전까진 그를 경험할 수 없다.

이번 지원자가 그동안 천천히 경력을 쌓아온 홀더라면 모를까, 무턱대고 3단 승급 요청을 하는 홀더라면 그 괴리감이 더욱 심할 것이다.

‘이래서 아카데미 학생들은 받기 싫은 건데.’

대개 실전 경험이 없는 아카데미 학생들이 이렇듯 무리한 요구를 한다.

이지혜는 그간 협회 생활을 하며.

이런 부류의 지원자를 너무 많이 봐왔다.

경험은 없으면서, 자신은 다르다며 호기롭게 승급 신청을 하는 학생 홀더들.

당연히 결과는 모두 꽝.

C급 홀더는 그렇게 쉽게 승급 가능한 등급이 아니었다.

“저기요. 검이라도 미리 뽑아 놓으시는 게 어때요? 언제 괴수가 나올지 모르는데.”

이지혜가 참다못해 한 마디를 건넸다.

북한산의 초입.

별다른 준비도 없이 터벅터벅 산을 오르는 지원자.

그 답답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충고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원래는 지원자에게 신경도 안 쓰는 그녀지만, 이번 지원자는 유난히 허술한 면이 많았다.

절대 그에게 관심이 있어 말을 거는 건 아니었다.

“괜찮아요. 보일 때 뽑아도 안 늦어요.”

“그때 가면 늦는… 하, 됐다. 알아서 하세요. 다치셔도 전 안 도와줄 거예요.”

“하하, 네. 그리고 북한산 초입은 D급 괴수까지만 나와서, 그렇게 위험하진 않아요.”

“…어?”

그걸 아네?

아카데미에서만 룬을 다루던 햇병아리라 아무것도 모를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필드에 관한 정보가 빠삭했다.

그의 말처럼 북한산 초입은 E급과 D급의 괴수만 나온다.

주로 서식하는 괴수는 E급 그렘린과 D급 임프.

산과 숲을 좋아해 북한산 필드로 몰려든 녀석들이다.

적당히 수준 높은 홀더라면.

혼자서도 가볍게 잡을 수 있을 정도의 괴수들.

전혀 대책이 없어 보이던 지원자는…

예상 외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지혜는 살짝 놀라 눈을 깜빡였다.

“…북한산 필드에 와 본 적 있나 봐요?”

“아뇨. 처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알아요?”

“공부를 많이 해놔서요.”

-키릭, 키릭.

-키리릭!

그리고 그때.

대화를 단절하듯 괴수들이 나타났다.

산속 나무 곳곳에 걸터앉은 그렘린들과…

그 위를 헤엄치듯 날고 있는 임프들.

두 종류의 괴수들이 북한산 필드의 입장을 환영했다.

-키리릭…!!

이어서 곧바로 달려드는 임프.

하늘을 나는 괴수답게 공격의 방향이 자유롭다.

이지혜는 그 광경을 보고 순간 당황했다.

눈앞의 승급 요청 지원자가, 날아드는 임프를 보고도 아무런 자세를 취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 이쯤 되면 좀 무기를 뽑아야 하는 거 아니야?

금방이라도 공격을 허용하고 다칠 것 같은 모양새였다.

“조심…!!”

그녀는 조심하라는 말을 전하려 했지만…

굳이 말을 끝마칠 필요가 없었다.

퍼억-

하는 주먹 소리와 함께.

날아든 세 마리의 임프가 모조리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기 때문이다.

마치 동시 타격인 듯.

재빠르게 이어지는 세 번의 주먹 공격.

[격투] 룬의 파생스킬인 [연타]였다.

당연히 그를 알아볼 리 없는 이지혜는.

벙찐 채 눈을 의심해야 했다.

‘뭐야, 저게…?’

협회에서 보고서를 받았을 땐 분명 검과 단검을 쓰는 멀티홀더라고 했는데, D급 괴수인 임프를 주먹으로 때려잡는다.

근력만 담은 가벼운 공격이 아니다.

아무리 봐도 룬과 스킬을 활용한 듯한…

전문적이고 입체적인 공격이었다.

“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원자는 그대로 허리춤의 단검을 뽑아…

하늘 위에 남은 임프들에게 모두 던졌다.

칼같이 정확한 투척 솜씨.

날아든 단검들은 모조리 임프들에게 적중하며 공중 공격을 준비하던 녀석들을 땅으로 떨어뜨렸다.

측정 단계에서도 미리 확인했었던 [단검] 실력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깔끔하게?’

연습과 훈련 땐 누구나 좋은 모습을 보인다.

홀더에겐 가진 바 능력치와 룬이 힘의 전부니까.

하지만 변수가 많은 필드나 던전에서.

괴수를 직접 상대하며 본 실력을 내는 건 쉽지 않다.

특히 그게 첫 사냥이라면.

더욱 긴장하며 힘을 못 쓰는 게 홀더들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 지원자는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이지혜보다 더 침착한 자세로.

깔끔하고 간결하게 괴수들을 처리했다.

필요한 부분에 필요한 힘만을 쓰는…

마치 고위 홀더 같은 전투 센스였다.

“…심사관님?”

“네, 네?”

정신을 차려 보니, 지원자 도재현은 벌써 그렘린까지 처리하며 주변 정리를 끝낸 상황이었다.

그의 손엔 어느새 투박한 검 하나가 들려있었다.

못 본 사이 [검]으로 그렘린을 잡은 것.

그는 별로 힘 들이지 않은 듯.

흔들리지 않은 자세로 물어왔다.

“E급이나 D급 괴수는 승급 성과로 안 치죠?”

“아, 아니요. D급 괴수까지는 성과로 쳐요. D급 10마리 당 C급 1마리의 성과로 칩니다.”

“오케이. 그럼 E급만 대충 거르면 되겠네. 먼저 갑니다. 따라오세요!”

“자, 잠깐만요!”

도재현이 말을 마치고 문득 달리기 시작했다.

매서운 속도로 시야에서 멀어지는 그.

C급 수준의 속력을 고려해도 너무 빠른 속도였다.

“저건 또 뭐야… 돌격류 룬이라도 있는 거야?”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이지혜가 멍하니 혼잣말을 내뱉었다.

질주하는 속도 자체가 빠른 것이기에 보법류 룬이 아닌, 돌격류 룬을 지닌 것 같다.

돌격류 룬은 전사 계열 중에서도 완전히 특수 계열로 분류되는 ‘기병대 계열’들이나 지니는 룬이다.

[검]과 [단검]을 모두 능숙하게 쓰는 것도 신기한데, [격투]로 보이는 전투룬에 돌격류 룬까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 걸까.

파도 파도 괴담 같은 내용만 나온다.

게다가…

“아니,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건데?”

저 사람.

뭘 그렇게 서두르는 건지, 괴수들의 마력석도 챙기지 않았다.

D급 마력석이면 그래도 200만 원 정도는 하는데….

어딘가에 이름 모를 부자라도 되나?

“테스트를 빨리 끝내고 싶어서 그런가.”

그렇다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간 필드나 던전 공략 성과가 아예 없던 홀더라, 이번 테스트는 최소 일주일은 넘게 거리는 장기간 성과 측정이다.

물론, 이지혜는 오늘 하루만 측정하고, 나머지는 보고서와 성과물로 측정을 하겠지만… 혼자서 성과를 낸다 해도 시간을 꽤 써야 했다.

멍하니 생각에 잠기던 이지혜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허튼 생각을 계속할 틈이 없었다.

이러다간 정말 지원자의 기척을 놓치겠다.

“저기, 같이 가요!”

땅에 떨어진 돈다발들이 아깝긴 하지만, 눈물을 머금고 도재현을 따라가야 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지금 업무 수행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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