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4 C급 홀더 승급 (3)
-케륵!
-케르, 케르륵…!!
또다시 홉고블린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지긋지긋한 놈들.
이놈들은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다.
아무리 단검을 던져대고, 검을 쑤셔 박고.
그마저도 부족해서 주먹과 발로 패도…
내 체력만 지칠 뿐, 숫자가 줄어들지를 않았다.
때문에 나도 단조로운 공격만을 할 수는 없었다.
더 쉽고 빠르게 사냥할 수 있게.
다양한 공격 루트를 개발해야만 했다.
[정확히 한가운데에 꽂히는 화살! 활을 쏘는 당신의 적중도가 상당히 높아집니다.]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 첫 번째가 [활].
레벨 1 상태로 썩혀두고 있던 룬의 재활용이다.
다양한 룬을 섭렵하며 멀티홀더가 된 나지만, 그간 주력 전투룬으로 활용할 만한 건 [검], [단검], [격투] 정도밖에 없다.
이는 세 개의 전투룬이 적을 상대할 때 가장 효율이 높고, 홀더 계에서도 범용적인 전투 수단이기 때문.
하지만 일 대 다수의, 그것도 동급인 C급 괴수를 상대로 할 땐 [활]의 활용이 필연적이다.
“멀리서 선빵 먹이고 시작하니까.”
근거리로서 거슬리기 짝이 없는 원거리 괴수들.
놈들을 먼저 잡고 들어가야 전투에 유리하거든.
이럴 때를 대비해 최유민에게 미리 부탁했었다.
검이나 단검뿐 아닌, 다양한 무기들을 제작해달라고.
처음엔 허접하기 짝이 없던 내 궁술 실력은, 끝이 없는 홉고블린을 사냥해가며 조금씩 개선되어 갔다.
[철벽 같은 단단함으로.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당신의 방패 솜씨가 점점 능숙해집니다.]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두 번째는 [방패].
[도마뱀의 비늘]이나 파생스킬인 [단단해지기]를 쓰는 것도 좋지만, 특정 룬과 스킬의 지속적인 활용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아무리 내구가 단단하더라도.
계속 찔리고 베이면 언젠가 타격은 들어온다.
“최아린한테 받은 포션도 거의 동이 났고….”
그래서 나는 또 다른 룬을 성장시켰다.
[방패].
탱커를 주로 맡는 전사 계열들의 핵심 공통룬.
내게 있어서는 [활]과 더불어, 홀더 초창기에 히든피스로 획득했던 룬이다.
[방패]의 활용은 끝이 없는 홉고블린들의 물량 공세를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게 해줬다.
평소 양손검을 쓰던 내가 방패로 인해 한손검을 쓰게 되어 살짝 불편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던전 공략과 전투가 길어지니 익숙해졌다.
[분노의 질주와 돌격! 자비 없는 당신의 돌격에 적은 맥없이 쓰러질 것입니다.]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속력을 1 획득합니다.]
[타오르는 불길, 이글거리는 불꽃. 불을 다루는 당신의 능력이 더욱 향상됩니다.]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마력을 1 획득합니다.]
마지막으로 [무자비한 돌격]과 [이글거리는 불꽃].
한동안 전혀 쓰지 못했던 룬들의 성장.
타인의 보는 눈 없이, 홀로 던전을 사냥하니 이러한 룬들도 마음껏 활용할 수 있었다.
두 룬의 활용가치는 생각 이상으로 엄청났다.
“으다다다-!!”
-케륵?
-케르륵!!
[무자비한 돌격]은 돌격 시 물리 공격을 무시하기에 첫 공격 때 거침없이 전진하며 상대 진영을 무너뜨릴 수 있다.
[질주]를 활용해 돌격하고, [무자비한 돌격]으로 불도저처럼 적진에 돌진한다.
일 대 다수의 싸움에서.
다수의 중간을 찔러 들어가 진형을 붕괴시키는 건…
상당한 이점을 가져오는 전투 구도였다.
화르르-!
-케, 케르륵…!!
거기에 [이글거리는 불꽃]의 활용.
온몸 곳곳과 각종 무기에 붙여지는 불.
진영 한가운데에서 다양한 무기를 사용하고, 불이 붙은 마력 공격까지 더해지니…
홉고블린들은 도무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원래라면 절대 불가능한데….”
C급 홀더 혼자서.
무리 지어 다니는 C급 괴수 사이로 뛰쳐들어간다?
보통이라면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위험 행동이다.
하지만 나는 그게 가능하다.
탱커와 딜러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고, 능력치 및 룬도 일반 C급보다 훨씬 앞서기에.
앞서 말한 룬들의 활용 역시 적절했고 말이다.
무엇보다 에픽룬 [위압]의 힘이 컸다.
‘나보다 낮은 능력치의 적’을 상대할 때.
룬 보유자의 힘이 더욱 강해지는 특수효과.
홉고블린들은 C급 괴수지만 모두 나보다 능력치가 낮았고, 덕분에 [위압]의 특수효과가 상시 적용이 됐다.
그래서 큰 힘을 들이지 않았음에도.
나는 수월한 사냥을 할 수 있었다.
“어우… 팔이 다 저리네.”
왼팔과 오른팔에 뭉친 근육들을 조금씩 풀었다.
스스로 쉴 틈을 주지 않고 싸웠다.
거기에 그간 안 쓰던 룬들의 활용까지.
아주 오랜만에 근육통이 찾아온 기분이 든다.
“이제 다 온 것 같은데….”
들을 때마다 짜증 나던 ‘케륵’ 소리가.
언제부턴가 들리지 않는다.
수를 헤아리기 힘들던 홉고블린도 이제 정리가 끝난 것.
남은 건 보스 룸인 ‘족장의 집’.
그리고 보스인 홉고블린 족장이었다.
녀석을 찾고 사냥에 성공하면.
이번 던전의 공략은 끝이었다.
“……!”
그렇게 한참을 찾던 중.
시야에 웬 나무집 하나가 들어왔다.
나는 괴수들에게 들킬 세라 서둘러 몸을 숨겼다.
다행히 주변엔 수풀이 많아 숨을 만한 곳이 많았다.
‘족장의 집… 맞는 것 같은데.’
척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나무집.
그리고 그 앞을 지키고 있는 몇몇 홉고블린.
아까부터 찾던 족장의 집이 확실해 보였다.
‘경비 괴수들이 있는 보스구나.’
보스 룸의 형태는 던전마다 다르다.
일전 아카데미 지하 던전에서는 보스인 그리즐리 드레이크 혼자 보스 룸을 지켰다면, 지금처럼 일반 괴수들이 보스 룸의 경비를 맡는 경우도 있었다.
둘 다 장단점이 있지만, 이번 경우엔 녀석들과 보스를 함께 상대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나는 천천히 거리를 좁혀 갔다.
그리곤 조금의 정보라도 얻기 위해…
귀를 기울여 녀석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케륵! 케-륵?
-케르, 케르르….
씨발.
그럼 그렇지.
그놈의 케륵, 케륵.
다른 소설 같은 데 보면 고블린들도 인간 언어를 잘만 쓰던데, 여기 괴수들은 어째 울음소리밖에 못 내는지 이해가 안 간다.
이딴 쓸데없는 소리에 귀 기울인 나 자신을 꾸짖었다.
‘정보 탐색은 무슨.’
싸움이나 하자.
나는 조심스럽게 마법 가방에서 장비를 꺼냈다.
지금껏 계속 이어왔던 전투 방식.
[활]을 활용한 선공이었다.
‘활도 5레벨은 되어야 스킬이 나오려나?’
문가은의 [익스트림 샷]이나 [트리플 파워샷].
그런 화려한 스킬들은 바라지도 않는다.
[일점사] 정도만 나와줘도 [활]의 활용성이 훨씬 높아질 텐데.
룬의 성장이나 스킬은 일반적으로 해당 홀더의 재능에 관련된 문제라, 언제쯤 스킬이 나오게 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3레벨에 획득했던 [검]의 [연격]도 평범한 홀더는 5레벨에 획득하고, 너무 재능이 없는 홀더라면 7레벨이나 10레벨… 심지어는 평생 스킬을 획득하지 못하는 홀더도 있다.
그런 면에서 벌써 7개의 파생스킬을 획득한 나는, 김명현 교수의 말처럼 의외로 재능 있는 홀더일 지도 몰랐다.
물론, [선전포고]나 [포이즌 클로우]처럼.
룬 획득부터 스킬이 있는 특수 경우도 있긴 했다.
끼기긱-
살짝 긴장을 품은 채.
천천히 활의 시위를 당긴다.
화살과 줄이 당겨지며 독특한 소리가 났지만, 거리가 있는 터라 홉고블린들은 내 공격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집 앞을 경비 중인 홉고블린 전사는 둘.
그중 이번 공격의 타겟은 왼쪽.
조준하는 부위는 놈의 머리.
적중할 수만 있다면.
한 놈을 잡고 시작하는 전투다.
‘지금…!!’
타악, 하는 소리로 시위를 놨다.
그대로 활을 내리는 순간 깨달았다.
이번 조준은…
오늘 내 전투 중 가장 완벽했던 [활] 공격이라고.
[백발백중! 시위를 당기는 당신의 궁술에 정확도가 올라갑니다.]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케륵, 케르륵!!
[활]의 룬 레벨이 올라가는 소리와 함께.
오른쪽의 홉고블린이 펄펄 뛰며 괴성을 냈다.
동료가 화살 한 방에 즉사해서 분노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질주]를 사용해 돌격했다.
[무자비한 돌격].
돌격 시 모든 물리 공격을 무시하고, 근력의 두 배로 상대를 밀어버리는 특수효과.
남은 홉고블린이 방패를 들며 막으려 들었지만, 순간 근력이 70에 다다른 내 밀치기를 막을 순 없었다.
-케륵?!
내 밀치기에 공중에 떠 오른 홉고블린 전사.
나는 녀석이 땅에 떨어지는 걸 기다리지 않았다.
녀석이 공중에 떠 있는 상태에서.
그대로 내 팔을 옆으로 돌려 훅을 먹였다.
콰아앙-!!
발리슛을 팔꿈치로 쓸 수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격투]의 보조를 받은 내 팔꿈치 훅은 놈의 턱을 돌려치며, 그대로 몸 전체를 나무에 처박게 만들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흡…!!”
등 뒤에서 느껴지는 날붙이의 서늘한 감각.
거기엔 강렬한 적의와 살의가 느껴졌다.
나는 순간 등 뒤의 검을 뽑고.
회전하듯 몸을 돌려 그 감각에 맞섰다.
카강-
채애앵!!
커다란 도끼와 맞부딪히는 내 검.
근력 차이가 나는지 힘은 꽤 부쳤지만…
완전히 밀릴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씨익 웃었다.
“기습하기엔 더럽게 느린데?”
내 앞을 가로막은 마지막 적.
잔뜩 험악한 인상으로 날 바라보는 괴수.
이 던전의 보스.
홉고블린 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