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5 C급 홀더 승급 (4)
미발견 던전, 홉고블린 부락.
이곳에 대해 내가 아는 건 그리 많지 않다.
이 던전은 워낙 스치듯이 언급됐던 히든피스고, 설정집에도 별다른 정보가 없던 걸로 기억한다.
단지 던전 내 괴수 등급이 대부분 C급이라는 점만을 보고 이곳을 찾아왔다.
지금 수준의 내게 가장 적합한 던전이라 생각했기에.
‘게다가 B급 보스면 해볼 만하기도 하고.’
눈앞의 상대를 바라봤다.
매서운 눈빛으로 내게 도끼를 찍으려는 홉고블린 족장.
그는 이 던전의 유일한 B급 괴수다.
B급 괴수는 보통 C급 홀더 다섯 명이 모여야 정석적으로 사냥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계산일 때의 이야기.
해당 괴수가 무리 지어 다니는 것이 아닌 단일 개체에, 상대하는 홀더의 계열이 전사 계열이라면.
상황과 변수에 따라 충분히 C급 홀더 혼자서도 B급 괴수의 사냥이 가능하다.
그리고 나는…
그 ‘변수’를 누구보다 많이 가진 C급 홀더였다.
-케르, 으으으…!!
“보스라는 새끼도 울음소리가 똑같네.”
홉고블린 족장은 홉고블린 전사와 비슷한 차림이다.
한손엔 방패, 한손엔 무기를 든 모습.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전사들은 검을 들고 있었고, 족장은 팔뚝보다 더 큰 도끼를 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맞부딪힌 검에.
곧장 [이글거리는 불꽃]을 끌어올렸다.
여기서 몇 시간 동안 사냥해 본 결과.
홉고블린 전사들은 마력 공격에 지독히 약했거든.
-케르으윽!!
효과가 상당히 좋았다.
순간 불 계열 마력 공격을 얻어맞은 홉고블린 족장은 괴성을 지르며 한발 물러섰다.
전사 계열의 B급 괴수라면.
아마 나보다 육체적인 능력치가 높을 것이다.
속력은 느린 것 같으니, 근력과 내구가 높겠지.
그럴 땐 육체적인 부딪힘은 탱킹으로서만 쓰고.
딜링엔 마력을 활용한 공격을 먹이면 그만이다.
스스로 탱커와 딜러의 역할을 모두 하는 것.
내 능력치와 룬도 예전과는 달라졌다.
이제 난 마력 공격도 활용할 줄 아는 브루저였다.
-케륵, 케르으…!!
홉고블린 족장이 괴성을 지르며 다시 달려든다.
아깐 다급한 상황이라 정면에서 무기를 맞부딪쳤지만, 녀석보다 근력이 밀리는 내가 굳이 정면 승부를 받아 줄 필요는 없다.
잠깐 공격을 받아치고, 다시 마력 공격으로 맞서면 그만이다.
나는 [유수검법]의 묘리를 이용해 녀석의 도끼를 부드럽게 받아쳤다.
아니.
받아치려고 했다.
“어?”
순간 벙찌고 말았다.
녀석의 도끼를 사선으로 부딪히며 부드럽게 흘려내려던 내 검이, 갑자기 낡은 검처럼 녹이 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익숙한 광경.
경험한 적 있는 상황.
이건 마치 학기 말 평가 때.
김효원이 사용했던 [부식 가루]…?
“미친!”
회피하거나 방패를 들 시간도 부족한 상황.
나는 곧바로 [단단해지기]를 사용했다.
부식한 검을 뚫고, 녀석의 도끼가 내 몸에 타고 들어왔다.
“끄읍…!!”
단단해져도 아픈 건 아프더라.
순간 두 배가 된 내구력은 녀석의 도끼 공격을 한 차례 막아냈지만, 도끼가 몸에 박히고 피가 솟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어깻죽지에 파고든 고통을 참아내며 한발 물러섰다.
‘아이템을 쓴 건 아닌 것 같고.’
김효원처럼 [부식 가루]를 쓴 건 아니다.
녀석의 두 손엔 도끼와 방패가 들려 있었고, 애초에 고블린들이 아이템까지 사용할 정도로 지능이 높지는 않다.
아마 고블린 주술사들이 쓰던 [간단한 저주].
그 안에 내재된 특정 주술일 확률이 높았다.
홉고블린 족장이라는 이름과 보스인 걸 고려하면 당연히 주술을 쓸 수 있을 거고, 그 레벨도 꽤 높을 게 분명했다.
‘부식 디버프가 만능은 아니긴 한데…’
[부식 가루] 혹은 그와 관련된 룬이 모든 장비를 부식시킬 수는 없다.
그랬다면 비용이 얼마가 들든지, 홀더들이 이를 필수 아이템으로 사용했겠지.
아이템 등급이 조금만 높아져도 쉽게 부식이 되지 않고, 홀더의 개인 능력에 따라 그를 막을 방법도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지금 내 장비들은 대부분 노멀 등급.
거기에 부식을 막을 만한 별다른 방법도 없다.
녀석의 주술에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어깻죽지에 대충 포션을 들이붓고 앞을 봤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의 전투도 벌써 몇 번이나 겪었다.
이젠 상황에 닥칠 때마다.
머릿속에서 조건 반사처럼 해결책이 떠오른다.
“흡!”
나는 허리춤의 단검 네 자루로 [쿼터 나이프]를 날렸다.
동시에 방패를 드는 홉고블린 족장.
녀석은 [방패] 룬 레벨도 상당해 보인다.
나름 일정 수준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내 [쿼터 나이프]는 놈의 방패에 맥 없이 막혔다.
하지만 이건 일종의 페이크 어택.
시선 끌기 용도였다.
나는 그 사이의 틈을 노리며.
[날렵한 몸놀림]으로 순식간에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격투는 안 돼.’
안 그래도 근력이 부족한데, 레벨까지 부족한 [격투]로는 녀석에게 타격을 줄 수 없다.
어떻게든 검과 마력을 써야 한다.
그래야만 녀석에게 유효타를 먹일 수 있다.
방패를 든 녀석의 옆쪽으로 몸을 튼다.
그리고 왼손에 든 검을 찔러 들어갔다.
-케륵!!
내 진입을 확인한 홉고블린 족장이 눈을 크게 떴다.
녀석은 또다시 부식과 관련된 저주를 사용했다.
저주의 속도는 빠르고, 강도는 충분하다.
순식간에 부식되는 검.
허무하리만큼 빠른 속도로 가루가 됐다.
‘먹혔다.’
그러나 나는 성공을 직감했다.
이미 내 오른손엔.
또 다른 검 한 자루가 자리하고 있었다.
-케륵?
“이럴 줄 알고 10개 넘게 준비했다.”
순간 끌어올린 [이글거리는 불꽃].
검을 찔러 넣을 때 활용하는 [파상검법]의 묘리.
물리 공격과 마력 공격이 적절하게 배합된 내 찌르기는, 녀석의 높은 내구 수치를 뚫어내며 큰 타격을 줬다.
-케르윽…!!
순간적인 타격으로 멈칫한 홉고블린 족장.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연이어 [위압]의 파생스킬인 [선전포고]를 사용했다.
마지막까지 아껴뒀던 디버프 효과다.
녀석은 큰 타격에 이어 3초간의 공포까지 걸렸다.
녀석의 몸 안에 박힌 검은 또다시 부식됐지만…
나는 여유로웠다.
“이거 양산형 검이야, 이 개새끼야.”
내 마법 가방엔 아직.
열 자루의 검이 더 남아있었다.
* * *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1.간단한 저주(선택불가) 2.도끼(선택불가) 3.방패(선택불가) 4.괴력(선택불가) 5.육탄방어]
[육탄방어를 선택하셨습니다. 5레벨의 노멀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해, 3레벨로 등록됩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내구를 1 획득합니다.]
홉고블린 족장은 기어코 내 검에 쓰러졌다.
한번 유효타를 먹인 이후.
녀석은 끊임없이 내 무기들을 부식시키려 했지만, 최유민이 만든 무수히 많은 장비는 녀석의 숨통을 끊기 충분했다.
예상했던 대로 녀석이 사용하던 룬은 [간단한 저주].
녀석에게 한 가지 패착이 있다면…
부식에만 집중해서 힘을 쓰느라, 다른 주술을 활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전 홉고블린 주술사들이 사용했던 [간단한 저주]에는, ‘쇠약’이나 ‘둔화’ 같은 다양한 주술들이 있었다.
그런 주술들을 전투에 활용했다면.
녀석과 나의 승패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똑같았으려나?”
사실 별 차이가 없었을 것 같긴 하다.
어쨌든 부식의 정도가 뛰어났던 걸 보면 녀석의 룬 레벨이 상당히 높았을 텐데, [간단한 저주]는 이미 획득이 완료된 룬이라 선택불가인 게 아쉬웠다.
“그래도 육탄방어는 얻었네.”
아쉽긴 해도, 아예 획득 룬이 없는 건 아니다.
전사 계열 홀더들의 대표적인 공통룬.
[육탄방어].
내구를 보조하는 이 룬은 [도마뱀의 비늘]과 더불어 좋은 시너지를 보일 것 같다.
게다가 이번 룬 획득으로 내구 수치를 1 얻으며.
드디어 내구 능력치가 30에 다다랐다.
이로써 내 주력 육체 능력치인 근력, 속력, 내구.
세 능력치가 모두 30을 넘기게 됐다.
“보자… 레스트 룸이….”
홉고블린 전사 두 마리와 홉고블린 족장.
놈들의 부산물을 모두 챙긴 나는 족장의 집에 들어가 레스트 룸을 탐색했다.
모든 던전의 보스 룸엔 레스트 룸이 존재한다.
휴식을 취하고, 보상을 획득하는 또다른 방.
여긴 아직 미발견 던전이기에 레스트 룸의 보상을 내가 독식할 수 있었다.
“…….”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몇 분 동안 족장의 집을 뒤졌는데…
눈을 씻고 찾아도 레스트 룸이 보이질 않았다.
“에, 에이- 장난치지 마, 진짜.”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나는 침착하게 다시 족장의 집을 뒤졌다.
안방과 거실로 보이는 방부터 시작해.
부엌, 화장실, 용도를 알 수 없는 방까지.
모든 방을 다 뒤졌다.
…그런데 없다.
레스트 룸이 없었다.
“아니. 진짜 없다고?”
이거 설마 미발견 던전이 아닌 건가?
내가 오기 전에 이미 공략됐던 던전이라고?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분명 공략된 적 없는 미발견 던전일 텐데….
망연자실한 감정과 혼란스러운 기분이 공존하는 순간.
-케륵?
“……?”
모든 공략이 끝난 보스 룸에.
웬 고블린 한 마리가 나타났다.
기존 홉고블린 괴수와는 모양새가 크게 달랐다.
전사들이나 궁수들이 들고 있는 무기가 없었고, 그렇다고 주술사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전투를 위한 준비가 하나도 되지 않은 고블린 괴수.
무엇보다…
“뭐야, 저거?”
무엇보다 녀석은 온몸이 금빛으로 뒤덮이고.
무슨 보물 주머니 같은 것을 등에 지고 있다.
고블린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호화로운 차림새.
멍청한 얼굴로 깜빡이는 눈동자.
“…….”
황금 고블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