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6 C급 홀더 승급 (5)
“저 새끼 잡아!”
아차.
여기 지금 나밖에 없지.
보물 주머니를 든 황금 고블린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케륵…!!
내 고함에 깜짝 놀란 걸까.
황금 고블린이 다급히 도망갈 태세를 취했다.
그걸 보고 있을 내가 아니었다.
“안 되지, 절대 안 되지.”
내 예상이 맞다면.
황금 고블린은 이 던전의 레스트 룸이다.
걸어 다니는 레스트 룸.
들어본 적 없는 얘기지만, 그렇지 않고선 이 미발견 던전에 레스트 룸이 없는 걸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나는 금세 황금 고블린의 앞에 도달했다.
그리고 녀석의 뒷덜미를 잡으며 도망을 못 치게 막았다.
확실히 속력이 현저하게 느리다.
홉고블린 족장은커녕, C급 괴수였던 홉고블린 전사.
혹은 궁수나 주술사들에 비해서도 너무 느린 속도였다.
이 녀석이 일반 괴수가 아닌, 던전의 특수 목적성 괴수라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
그런데 녀석을 붙잡고 보물 주머니를 강탈하던 중.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꽉 쥐고 있던 손에 뭔가 기운이 빠진다.
뒷덜미를 잡힌 황금 고블린이 발버둥을 치더니…
이내 축 늘어지며 힘을 뺀 것이다.
마치… 죽은 것처럼.
아니, 씨발.
이거에 죽는다고?
“…목적에 충실한 괴수네.”
걸어 다니는 레스트 룸.
던전을 공략한 홀더에게 보상을 주기 위한 괴수.
그 목적에 충실하게…
황금 고블린은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명을 다 했다.
목덜미 좀 잡았다고 죽어버리다니.
아마 이 녀석은 등급으로 치면 F급 괴수가 아닐까.
가진 바 룬도 없는지 [룬 사냥꾼]의 메시지도 안 떴다.
“보상이나 확인하자.”
짧게 녀석의 명복을 빌어준 후.
나는 보물 주머니를 털어내며 보상을 확인했다.
방안에 쏟아지는 보상들.
각종 마력석과 장비, 영약 및 포션 등의 다양한 아이템이 보물 주머니에 숨어있었다.
나는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장비.
청동색으로 광을 내는 방패 하나를 집었다.
<아이템 정보>
◎이름: 홉고블린의 청동 방패
◎종류: 방패
◎등급: 레어(Rare)
◎내구도: 정상
◎제작자: -
◎특수효과
: 내구+2
: 사용하는 이가 마력을 불어넣을 경우, 물리 공격뿐 아니라 마력 공격도 막아낼 수 있다. 이는 사용자가 해당 속성의 내성을 지니고 있지 않더라도 발동하며, 상대의 공격 수준에 따라 방어할 수 있는 단계가 달라진다.
◎세부정보
: 홉고블린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패. 호화로운 장식과 탄탄한 완성도로 미루어 보면, 홉고블린 부족의 족장이 사용하는 청동 방패임을 알 수 있다.
“심 봤다.”
첫 아이템부터 대박이다.
‘홉고블린 족장’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레어 아이템.
내구 수치를 2 올려주고, 단순 물리 공격에 마력 공격까지 막을 수 있는 방패.
뭣도 모르고 방패에 마력 공격을 먹였다간 그대로 막힐 뻔했다.
“운이 좋네.”
공략 자체도 그렇고, 아이템 운도 그렇다.
B급 괴수가 넘실거리고 보스가 A급이었던 아카데미 지하 던전과 다르게, 홉고블린 부락은 괴수들의 평균등급이 C급인 중하급 던전이다.
당연히 공략 보상도 지하 던전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걸 뚫고, 첫 아이템부터 레어 아이템이 떴다.
황금 고블린이 놓고 간 건…
말 그대로 보물 주머니였다.
“슬슬 한손검을 써야 하나?”
레어 등급의 방패를 보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동안 내가 [검]을 활용할 때 쓰던 건 양손검이다.
양손검을 쓰면 근력과 속력에 있어 일반 탱커들보다 더 강한 위력을 낼 수 있고, [검]을 활용한 전투에서 더 매끄럽게 싸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방패를 들고 한손검을 쓰면, 이전보다 훨씬 방어에 강점을 보일 수 있다.
“…필요할 때 바꾸는 게 낫겠다.”
그래도 지금껏 쭉 양손검만 써왔는데 좋은 방패 하나 나왔다고 쉽게 전투 스타일을 바꿀 순 없었다.
게다가 무작정 방패를 써버리면 자유롭던 내 전투에도 제약이 걸린다.
[단검]도 쓰기 어렵고, [격투]도 거의 못 쓸 테니까.
지금처럼 딱 필요할 때만.
예를 들어 탱커의 역할이 더 중요한 파티의 경우에만…
방패를 꺼내 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영약, 포션, 도끼, 갑옷…”
나머지 아이템들은 평범했다.
장비는 대부분 노멀 등급의 아이템.
그 외엔 시중에서 구매할 수 있는 각종 포션이 있었다.
그중 마력을 올려주는 영약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복용해서 능력치를 올렸다.
딱 1 오르긴 했지만…
당장 마력이 필요한 내겐 그것마저 귀하다.
“끝인가?”
아이템을 다 정리하니 남은 건 마력석 뿐.
그런데 쌓여 있는 마력석들 사이로.
웬 책 한 권이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다.
어두운 기운이 넘실거리는 책.
나는 그걸 곰곰이 보다가.
곧바로 꺼내 정보를 확인했다.
<아이템 정보>
◎이름: 저주받은 주술서
◎종류: 특수
◎등급: 에픽(Epic)
◎제작자: -
◎특수효과
: 하루에 3시간씩 열흘 간 탐독하면, 마력, 신성, 정신을 각각 2씩 획득할 수 있다.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효과이며, 한 번 사용하면 다시 쓸 수 없다.
◎세부정보
: 저주 계열에 관한 다양한 주술과 시전 방법이 기록되어 있는 서책. 저주 계열 룬을 보유하고 있다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다.
“…진짜 심 봤다.”
레어 아이템 하나로 끝난 줄 알았는데, 웬걸.
에픽 아이템이 숨겨져 있었다.
효과도 죽여준다.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세 개의 능력치를 각각 2씩 올려주는 효과.
거기에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마력 수치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걸로 주술을 배우는 거구나.”
이 던전에서 홉고블린 주술사를 사냥하며 [가벼운 저주]를 얻었지만, 사용 방법을 몰라 활용을 못하고 있었다.
마법처럼 복잡한 능력은 아니어도, 분명 주술도 사용 방법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이 주술서에 적혀있었다.
부식, 쇠약, 둔화, 왜곡 등…
다양한 종류의 주술이 책에 모두 담겨 있다.
특수 아이템인 것치고는 상당히 활용가치가 높은 아이템이었다.
나는 [저주받은 주술서]까지 가방에 집어넣으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황금 고블린… 맛있다.”
역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황금 고블린은 언제나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 * *
이지혜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게 대체….”
산처럼 쌓여 있는 마력석과 괴수 부산물.
모두 승급을 위한 성과로 협회에서 지정한 물건들이다.
한두 달 만에 쌓인 게 아니다.
이틀.
승급심사가 시작되고, 무려 이틀 만에 모인 결과물이다.
사정이 급해 서둘러야 한다던 승급 신청 지원자.
도재현은 정말 말 그대로… 서둘러 일을 처리하는 것의 끝판왕을 보여주며 성과를 모두 가져왔다.
“오랜만입니다, 심사관님. 아니, 오랜만이라고 하기엔 너무 빨리 만났나요?”
“도…재현 홀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듯한 이지혜.
그녀를 보며 도재현이 웃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사냥 도중에 미발견 던전을 찾았거든요.”
“미발견 던전이요?”
“네. 여기 관련 보고서입니다.”
그가 건네는 종이뭉치를 받는다.
<미발견 던전: 홉고블린 부락(가칭)에 대한 보고 및 던전 소유권 심사 신청서 - 홀더 도재현>
서류를 펼쳐 보니 정말 미발견 던전에 대한 내용이었다.
북한산 필드 중간부.
그 우거진 나무들 사이에서 작은 구멍 하나를 매개로 입장 가능한 던전.
이미 북한산 필드는 수많은 클랜과 홀더들이 다녀가며 탐색을 마친 곳인데, 아직도 미발견 던전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놀라웠다.
그런데 보고서에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단순히 발견에서 그친 게 아니라, ‘던전 소유권에 대한 심사를 신청한다’는 말이 추가로 적혀 있었다.
그걸 읽던 이지혜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도재현 홀더. 혹시 이 던전…”
“네. 발견부터 공략까지 모두 마쳤습니다. 대부분 C급 괴수들이라 운이 좋았어요.”
“…….”
미발견 던전.
이는 최초 발견자 혹은 클랜에게 공략 우선권이 있다.
발견자와 던전의 수준이 맞든 맞지 않든.
발견자에게 던전을 공략할 능력이 있든 없든.
이는 무조건적으로 정해진 규정 및 법규다.
그렇게 공략 우선권을 획득해 각자의 방법으로 던전의 최초 공략을 마무리하면…
이후 던전 소유권에 대한 심사가 이뤄진다.
즉, 도재현은 지금.
발견부터 공략에 이르기까지 혼자 모든 마무리를 마치고, 해당 던전의 소유권에 대한 심사 요청 보고서까지 제출하고 있는 것이었다.
도재현이 이지혜를 보며 웃었다.
“던전 소유권에 관한 심사도 심사관님께서 맡아주시겠네요. 이번에도 잘 부탁드려요.”
이지혜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온다.
머리에 과부하가 걸릴 것만 같다.
그러니까…
홀더 등록 이후 최초로 등급 갱신을 하려는 홀더가, C급 홀더로의 3단 승급 신청을 하고…
무려 이틀 만에 그에 필요한 협회 지정 성과를 가져오며, 필요 심사조건을 모두 만족하고…
또 그 과정에서 미발견 던전을 찾아 공략까지 마치며, 던전 소유권 심사마저 신청한다고?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의 연속이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보고서와 부산물들이 그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머쓱한 얼굴로 속도 없이 웃고 있었다.
“하하. 죄송해요. 본의 아니게 심사관님께 많은 일을 떠맡겼네요.”
“아, 아니에요. 이건 저한테도 성과라서 좋은 거긴 한데…”
인사고과 때 가장 높은 성과로 분류되는 것 중 하나가 미발견 던전의 탐색이다.
특히 이 정도 성과를 이룩한 결과물들은 일부러 만들려고 해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솔직히 이지혜로서도 전혀 나쁠 게 없는.
오히려 도움이 되는 상황이었다.
단지….
“그냥 좀 신기해서요. 도재현 홀더는… 제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었네요.”
첫 만남 때 만용을 부리는 이라고 생각했던 홀더.
아카데미 출신의 햇병아리인 줄만 알았던 홀더.
그런 편견을 모두 깨부순 사람이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의 주인공이었다.
반년 전 승급심사 시즌 때.
강주연이 B급 홀더에 오른 이후로…
아주 오랜만에 나타난 특급 신인 홀더였다.
“운이 좋았습니다.”
“그 운이 계속되면 실력으로밖에 안 보이는걸요.”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고요.”
미발견 던전을 찾은 건 운이지만, 그를 공략하고 이틀 만에 승급 성과를 모두 가져온 건 결코 운의 영역이 아니다.
첫날 봤던 그의 미친 듯한 사냥 속도.
그게 아니었다면 절대 불가했을 성과들이었다.
“심사 결과는 오늘 내로 나올 거예요. 이 정도 성과면… 거의 확정이나 다름없겠죠. 던전 소유권에 대한 심사도 최대한 빨리 처리해 볼게요.”
“아, 감사합니다.”
“말씀드렸잖아요. 저한테도 성과라고. 제가 고마워요. 도재현 홀더 덕에, 저도 이번에 성과급 좀 받겠네요.”
이지혜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많은 보고서를 정리하려면 슬슬 준비가 필요했다.
“어쨌든! 만나서 반가웠어요. 다음에 또 협회 올 일 있으시면, 그때 뵙는 걸로 해요.”
“네, 알겠습니다.”
“혹시 부탁할 일 같은 거 있으면 편하게 연락해요. 제가 들어줄 수 있는 거면 신경 써 볼게요.”
승급심사로 심사관의 성과까지 챙겨준 홀더다.
그가 부탁하는 일이 있다면 어지간해선 들어주고 싶었다.
“네, 그럴게요. 심사관님도 고생하셨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도재현.
그 모습에 이지혜는 잠시 고개를 돌렸다.
…절대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