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0 스월 레비아탄 (4)
정선영은 긴장 어린 얼굴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오랜만의 S급 괴수였다.
재난 괴수가 나타날 때마다 매번 리더격 A급 홀더로 신청했던 그녀는, 이번 괴수야말로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5명의 A급 홀더가 참가하긴 했지만.
자신들보다 한 수 위 등급인 S급 괴수.
거기에 무려 바다에서 출몰한 거대 괴수였으니까.
지형도 좋지 않고, 괴수의 능력도 까다로웠다.
‘이번 홀더들 수준도… 좋아 보이진 않고.’
주변을 살짝 둘러본다.
현장을 가득 메운 부상자들의 신음성.
이러한 대규모 사냥을 처음 겪는 C급 홀더들이 대부분이었다.
재난 괴수 사냥 공격대는 거창한 이름에 비해, 홀더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지 않다.
‘…이득이 적으니까.’
위험도와 사냥 난이도가 매우 높은 반면.
그에 대한 보상은 아쉽기 때문이다.
던전을 최초로 공략하고 얻는 레스트 룸도 없고, 필드 괴수를 잡을 거면 굳이 재난 괴수를 잡을 필요가 없다.
특히 클랜을 이끌거나 그에 소속된 홀더들은 더욱 재난 괴수 사냥에 참가하지 않는다.
그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던전을 공략하거나, 훈련 커리큘럼을 이어가는 게 훨씬 이득이기에.
그나마 S급 괴수는 낫다.
부산물도 많고 보상도 다른 괴수에 비하면 호화로운 편이니까.
하지만 모든 일엔 대가가 있는 법.
S급 괴수는 그만큼의 리스크도 어마어마했다.
‘더 조심해야 해.’
조금만 작전이 어긋나거나 변수가 발생하면.
리스크는 구체화 되어 돌아온다.
그 주된 타겟은 C급 홀더들.
재난 괴수 사냥에 자주 참여하는 A급 및 B급 홀더들과 달리, C급 홀더들은 이제 막 승급한 풋내기들이 많다.
그래서 더 쉽게 위험에 노출되는 편이고, 다치거나 죽는 홀더들도 상대적으로 많았다.
“딜러진 쪽으로 온다!”
“젠장! 전사 계열 5분대, 전원 방패 들고 앞으로!”
그리고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C급 홀더들과 지원 인원이 대거 포진된 후방을 향해.
스월 레비아탄의 물 마법이 날아들었다.
거침없이 쏘아지는 물의 탄환.
정선영은 다급히 [아이스 월]을 펼쳐 호위를 맡은 전사 계열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했다.
“이게 대체 무슨….”
정선영은 방어 마법을 펼치면서도.
S급 괴수의 끈질긴 반격에 혀를 찼다.
그녀는 마법사 계열.
그중에서도 얼음 계열을 주력 마법으로 사용하는 홀더다.
보유한 룬은 [얼어붙은 전장].
[빙결] 계열의 룬에서도 최고로 평가받는 에픽룬.
이러한 최고 수준 에픽룬의 궁극스킬.
[블리자드]까지 사용했는데 쓰러지지 않은 괴수다.
벗겨진 가죽과 피가 쏟아지는 걸 보며 확실한 유효타를 먹이긴 했지만, 아직 이 정도로 반격할 힘이 있다는 게 대단했다.
과연 S급 괴수의 사냥은 쉽게 이루어지는 게 아니었다.
‘저 아이는… 잘 막아내고 있네.’
정선영의 시선이 다른 한쪽에 닿았다.
엉겁결에 그녀 자신의 호위를 맡게 된 C급 홀더.
잘생긴 얼굴에 상당히 젊은 모습이, 아카데미에서 이제 막 졸업했거나 재학 중인 학생 홀더인 것 같았다.
정선영은 파생스킬인 [아이스 월]로 자체적인 방어가 가능했기에 어설픈 그를 호위로 뒀던 것이지만…
의외로 그는 잘 막아내고 있었다.
척 봐도 괜찮아 보이는 등급의 방패 아이템.
그리고 단단한 자세로 막아내는 [방패] 룬 활용까지.
탱커 역할군 전사 계열의 정석적인 자세였다.
갑작스러운 S급 괴수의 반격에 당황할 만도 한데, 나름 침착하게 그녀를 지키려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믿음직스럽기도 했다.
아마 이곳에 모인 C급 홀더 중.
저 아이의 전투 센스와 판단력이 가장 뛰어나지 않을까.
“또, 또 온다…!!”
그리고 변수가 또다시 발생했다.
한 번의 반격으로 끝날 줄 알았던 스월 레비아탄의 물 마법이, 마치 연타로 이어지듯 다시 퍼부어졌다.
방향은 역시 후방이었다.
전방의 전사 계열들이 어떻게든 괴수를 저지하려는 게 보였지만, 이미 날려진 물 마법을 막아낼 방도는 없었다.
‘…위험해.’
정선영은 입술을 물고 [아이스 월]을 더 많이 꺼냈다.
이미 호위를 맡은 전사 계열 중 많은 이들이 다치고 죽었다.
더 공격을 허용했다간 후방 지원 인원들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었다.
‘…아! 그 아이!’
[아이스 월]을 통해 최대한의 많은 물 탄환을 막아내고 있던 정선영은, 문득 자신의 호위를 맡은 C급 홀더가 생각났다.
분명 [방패]를 활용해 든든하게 자신의 곁을 지켰던 그였지만, 마지막 물 탄환이 떨어질 땐 내구도가 거의 다 돼 방패를 버리고 검을 들었었다.
즉, 그의 현 상황은 무방비 상태.
정선영의 [아이스 월]이 아니면.
그대로 물 탄환에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안 돼…!!”
명백한 실수.
정선영은 최대한 빨리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
[아이스 월]의 방향을 바꾸려 했다.
그런데.
“흘러라.”
분명 C급 홀더였다.
처음 보는 얼굴에, 젊어 보이는 나이.
전사 계열에서 분대원으로 편입된 상태.
[방패]의 숙련도가 높지 않아, 금세 닳아 사라진 방패.
그는 이번 공격대에 모집된…
50명의 C급 홀더 중 한 명인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의 입에선 언령이 흘러나왔다.
보통은 A급 홀더.
빨라야 B급 홀더에게서나 나올 수 있다는…
‘궁극스킬’의 발현이었다.
“말…도 안 돼.”
정선영은 똑바로 눈을 뜬 채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건 하나의 춤사위였다.
양손으로 검을 든 그는 춤을 추듯 여유롭게 발걸음을 옮겼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그의 검은 날아드는 모든 물 탄환을 쳐내는 데에 성공했다.
물리적인 타격도.
마력적인 기세도.
모두 검 하나에 빗겨 흘러갔다.
그 이상 정선영과 그에게 다가오는 물 탄환은 없었다.
전부 그의 검에 막혔기에.
흐르는 물결.
그건 마치 흐르는 물결을 표현한 춤사위 같았다.
‘궁극스킬이 확실해.’
언령도 그렇고, 지금의 모습도 그렇고.
분명 저건 궁극스킬이었다.
고작 C급 홀더가 궁극스킬을 사용한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궁극스킬을 파생시킬 수 있는 룬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했다.
일반적으로 홀더들이 지니는 ‘노멀룬’으론…
거의 궁극스킬이 파생되지 않으니까.
즉, 눈앞의 C급 홀더는 레어룬 이상의 등급 룬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가… 그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만한 능력치와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었다.
‘엄청난 인재가 여기 있었구나.’
정선영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름 모를 젊은 C급 홀더.
그를 그대로 자신의 호위로 둔 건 탁월했다고.
역시 자신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고.
…엉겁결에 호위가 된 거지만, 아무튼 탁월했다.
* * *
‘씨발, 섹스. 해냈다.’
내 언사가 상스럽다고 욕해도 어쩔 수 없다.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유수활검].
이를 완벽히 구현해내는 데에 성공했다.
아직 [유수검법]의 레벨이 10이 아니고, 마력이 부족하기에 또다시 ‘사용제한’이 걸렸지만.
어쨌든 구현을 해낸 게 중요했다.
조건만 만족한다면, 나는 다시 [유수활검]을 쓸 수 있다.
‘아, 기분 너무 좋네.’
[파상천검]을 얻을 때와는 느낌이 또 다르다.
그땐 극한의 상황에 몰려 너무 절박했었고, 정상의 몸 상태가 아니었던 만큼 운 적인 요소도 많이 따랐었다.
언령도 쓰지 못했었고.
하지만 이번엔 최상의 몸 상태였다.
방패만 쓰느라 검과 마력을 쓰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고, 내가 실패하더라도 정선영 홀더가 얼음벽으로 지켜줄 거란 믿음이 있었다.
게다가 그간 던전과 필드를 돌며, 꾸준히 [유수활검]을 연습했었다.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지만, 그 방법만은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런 궁극스킬이,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필요한 시점에서 구현이 되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유수검법] 또한 이해도가 급격히 올라, [파상검법]과 같은 7레벨이 되어있었다.
“괴수가 탈력 상태에 빠졌다!”
“공격대 전 인원! 괴수를 처치하는 데에 집중해라!”
그렇게 [유수활검]을 활용해 모든 물 탄환을 쳐낸 후.
임시 공격대는 또다시 반격에 들어갔다.
공격대의 돌진, 스월 레비아탄의 반격, 다시 공격대의 돌진.
비슷한 형태의 패턴이었다.
아까의 물 마법 공격이 매섭긴 했지만, 그건 녀석의 한계를 넘어선 발악이었다.
이미 녀석은 전방 전사 계열들의 자잘한 공격, 후방 딜러진의 견디기 힘든 폭격, A급 홀더들의 몇몇 궁극스킬까지.
너무 많은 공격을 허용했다.
단단했던 내구력은 뚫리기 시작했고.
끝이 없던 체력도 고갈됐다.
지칠 수밖에 없었다.
-카, 카아아….
승기는 완전히 공격대 쪽으로 넘어왔다.
물 마법 공격으로 혼란에 빠졌던 딜러진.
그들이 다시 기운을 되찾고, 3차 폭격을 가했기 때문.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또 한 번 쏟아지는 딜러진의 폭격.
이를 감당해내는 건…
아무리 S급 괴수라고 해도 쉽지 않았다.
쿠우웅-!!
스월 레비아탄은 모든 공격을 허용한 후.
마침내 쓰러졌다.
“와아아아!”
“이, 이겼다…!!”
“개 같은 괴수! 내 친구를 죽이다니…!!”
“살았다….”
주변에 있던 홀더들도.
전방에 있던 홀더들도.
모두 무기를 던지고 소리를 질렀다.
지긋지긋하던 전투가 모두 끝이 났다.
많은 이들의 노력과 희생 끝에 성공한 S급 괴수 사냥.
드디어 일구어낸 승리였다.
‘조금 아쉽긴 하네….’
나는 주먹을 쥐고 같이 환호하면서도.
속으론 약간의 아쉬움을 표했다.
이번 전투를 통해 [유수활검], [철벽수비] 등의 새로운 스킬들을 얻으며 값진 성장을 이뤘지만, 딱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었다.
바로 [룬 사냥꾼]이 발동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점.
[룬 사냥꾼]은 결투에서 승리하면 상대의 룬을 하향 복제해 가져올 수 있는 룬이다.
여기서 결투와 승리의 기준은 꽤 후한 편.
일대일이 아닌 다대일의 전투도 결투로 판정하고, 기여도만 높다면 승리로 인정되어 룬을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전투에서 내 기여도는 낮은 편이지.’
이번 전투에선 탱킹도, 딜링도 애매했다.
방패를 들고 나서긴 했지만 괴수의 공격을 다 막아내지 못했고, 딜적인 측면에선 아예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막판에 녀석의 물 마법 공격을 [유수활검]으로 막아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기여도가 높다고 하기엔 솔직히 도둑놈 심보다.
‘에휴. 스킬 두 개 얻은 걸로 만족하자.’
나는 한숨을 쉬며 빠르게 단념했다.
애초에 목적은 놈의 마력석이었다.
더 욕심을 부리다간 괜히 체할 수 있다.
아무래도 S급 괴수의 룬을 가져오는 건.
먼 훗날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결투에서의 애매한 기여도로 인해 승리가 절반만 인정됩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절반의 승리로, 복제될 룬은 무작위로 선택됩니다.]
[소용돌이를 삼킨 파도가 선택되었습니다. 7레벨의 에픽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해, 4레벨로 등록됩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물 내성을 4, 마력을 3 획득합니다.]
아니, 미친.
애매한 기여도?
이딴 게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