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2 동행 (2)
김채은은 정선영을 처음 보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잘 몰랐는데, 정선영은 빙결 쪽 마법사 계열에서 엄청 유명한 홀더라고 한다.
하긴 에픽룬으로 보이는 얼음 계열 룬에 최고에 가까운 실력을 지녔으니, 관련 계열 사이에서는 유명하지 않은 게 더 이상했다.
그간 존경하던 선배를 만나게 되고.
동행까지 하게 되니 기쁨이 배가 될 수밖에.
덕분에 대구로 가는 내내.
나는 김채은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선배님. 물 드릴까요?”
“…괜찮아. 이미 있잖니.”
밥 먹다가 물을 마실 때도.
“선배님. 숙소 물 온도는 어떠세요? 혹시 차갑던가요? 제가 카운터에 말하고 올까요?”
“…여기 내 지인이 하는 숙소란다.”
숙소에 짐을 풀 때도.
“선배님.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 아메리카노, 라떼, 모카 세 개 다 사왔어요. 편한 걸로 드세요, 헤헤.”
“…….”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조차.
김채은의 열정은 엄청났다.
워낙 사교성이 좋은 그녀지만, 이런 모습은 생소했다.
“불편하신 점 있으시면 저한테 꼭 말해주세요!”
“그, 그래….”
정선영이 부담스럽다는 눈빛을 내게 보냈다.
그녀는 나와 김채은에게 편하게 말을 놨다.
참고로 이것도 말을 놓아 달라는 김채은의 간고한 부탁 때문이었다.
‘얘 좀 어떻게 해 보렴.’
그녀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이건 나도 안 된다.
폭주한 김채은은 아빠인 김명현 교수도 못 막는다.
“아, 참. 경매장에선 따로 사고 싶은 거 있니?”
정선영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화제를 돌렸다.
우리는 동성로의 한 카페에 와 있었다.
중구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라는데, 확실히 인테리어가 알록달록하고 예쁘다.
내일 이곳 근처에서 열릴 경매장.
일반 경매 품목에 더해, 함께 이뤄질 S급 괴수의 부산물 경매.
나와 정선영은 이번 재난 괴수 사냥에 참가했고, 당연히 후자에 대한 구매 권리가 있었다.
“어… 그게.”
근데 이거 말해도 되나?
구매 희망 품목 겹치는 거 아냐?
그런 걱정을 안다는 듯.
정선영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으이구, 괜찮아. 내가 사려는 건 너희들 거랑 안 겹칠 테니까. 어차피 가죽 사고 싶은 거 아니니?”
“가죽이요?”
“그래. S급 괴수 가죽은 인기 많잖아.”
필드 괴수는 던전과 달리 레스트 룸의 보상이 없다.
홀더들이 주로 사용하는 장비나 장신구, 각종 포션 등의 특수 아이템을 획득할 수 없는 것.
물론 가끔 아이템을 무기로 든 괴수나 특정 신체 부위가 아이템이 되는 일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경우엔 마력석과 부산물만 떨구는 게 필드 괴수였다.
그리고 마력석을 제외하면.
부산물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건 ‘괴수의 가죽’이다.
“왜 가죽이 인기가 많아요?”
김채은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괴수의 역사와 정보> 시간에 잔 게 확실하다.
그 수업에 분명 다 나오는데.
나는 정선영을 대신해 그녀에게 답해줬다.
“대장장이 계열들이 방어구 만들 때 괴수 가죽이 핵심 재료잖아. 장신구 재료나, 연구 재료로도 쓰이고.”
괴수에게서 나오는 부산물은 꽤 다양하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건 마력석.
마력석은 홀더의 주 수입원이자, 상당히 범용적인 쓰임새의 물건.
[마력 결계], [워프 게이트] 등 마력적인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원료로서도 쓰이고, 무구 및 방어구를 만들거나 포션과 같은 특수한 아이템을 제작할 때도 종종 쓰인다.
마력을 품고 있는 돌.
그 이름 그대로 마력석은 마력이 필요한 모든 곳에 쓰인다.
그만큼 홀더 계에서 수요도 많고, 공급도 많았다.
“그다음으로 인기 많은 부산물이 가죽. 등급 높은 괴수일수록 질도 좋아서, A급 괴수 가죽은 몇 억에도 팔려.”
“와… 그렇게 비싸게 팔려?”
“응. 좋은 가죽이면 고등급 아이템이 제작될 확률이 높으니까.”
비싼 가죽은 좋은 아이템을 만든다.
솔직히 나도 여유만 된다면.
마력석에 더해 가죽까지 구매하고 싶다.
S급 괴수인 스월 레비아탄의 가죽이라면… 최소 레어 이상의 아이템이 만들어질 게 분명하니까.
게다가 그 정도 아이템을 만들 정도의 대장장이를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최우선으로 해야 할 건 마력석이다.
전설룬을 얻을 수 있는 기회와 레어 방어구는 비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김채은이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왜 난 가죽을 얻어본 적이 없지?”
“도축 계열 룬이 없으니까. 할 줄 알아야 가죽을 얻지.”
“도축에도 룬이 있어?”
“응. 특수 계열로 분류돼.”
홀더라면 누구나 간단히 획득할 수 있는 마력석과 달리.
가죽, 심장, 체액 등 괴수들의 다양한 부산물은 전문 도축업자가 있어야만 정확하게 채취할 수 있다.
일반 홀더도 도축을 할 수는 있지만, 부산물들이 훼손되거나 퀄리티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평범한 홀더들은 괴수를 사냥해도 부산물 얻는 게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국내 클랜들은 각자 자신들 클랜만의 도축업자를 클랜원으로 고용하곤 했다.
그들이 소유한 던전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여타 특수 계열은 능력이 부족하면 찬밥 신세지만, 도축 홀더들은 워낙 인원 자체가 적어 어떤 클랜에든 쉽게 채용된다.
심지어 홀더 협회나 정부도 이들을 고용하곤 하니…
그들에게 있어 취업 걱정이란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다음으로는 뭐, 심장이나 혈액, 체액 등등… 연구재료가 될 만한 건 모두 부산물로 팔리지. 특히 오늘 사냥한 S급 괴수 같은 녀석은 채취할 게 더 많고.”
괴수의 부산물은 단순히 제작재료로만 쓰이진 않는다.
룬 연구소와 같은 홀더 과학 단지에서도 인기 매물이다.
현대의 홀더 시스템은 의문투성이인 미지의 영역이고,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비밀들이 많으니까.
괴수의 부산물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고자 하는 과학자들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연구 중이었다.
“그럼 괴수한테서 아이템을 직접 얻진 못하는 건가?”
“아이템은 대부분 던전 레스트 룸에 있으니까. 거의 그렇다고 봐야지.”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정선영이 말을 꺼냈다.
“가끔 괴수들이 쓰는 무기 같은 것도 아이템일 때가 있단다. 확률은 희박하긴 한데.”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 필드 괴수에게서도 아이템을 얻을 수는 있다.
예를 들면 홉고블린 전사 같은 괴수들.
마치 게임에서 아이템을 드랍하는 것처럼, 녀석들을 사냥하다 보면 아주 가끔 그들이 쓰는 장비가 아이템일 때도 있다.
그런 장비는 노멀급만 되도 몇백은 되니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 부류의 괴수들만 찾아 사냥하는 홀더들도 종종 있었다.
물론, 나는 한 번도 못 얻었다.
‘홉고블린 부락’을 공략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심지어 보스 괴수인 ‘홉고블린 족장’의 장비들도 아이템이 아니더라고.
[홉고블린의 청동 방패]는 황금 고블린의 보물 주머니에서 나온 거니까.
그만큼 필드 괴수에게서 아이템을 얻을 확률은 낮았다.
“아. 그리고 최근에 최상급으로 분류됐던 언데드 던전… 뭐였더라?”
정선영의 말에 내가 답했다.
“죽음이 가까워진 방이요?”
“어, 그래! 거기 던전 보스가 S급 괴수였는데, 그 괴수가 쓰던 검이 에픽급 아이템이었단다.”
“데스 나이트….”
S급 괴수 데스 나이트.
최상급 던전으로 분류되는 <죽음이 가까워진 방>의 보스.
그 이름을 내가 중얼거리자 정선영이 손뼉을 쳤다.
“맞아, 데스 나이트. 너 모르는 게 없구나?”
“송도혁 홀더가 공략했던 던전이잖아요. 한창 기사 떴던 거 봤었어요.”
한국의 두 검술명가 중 하나, 송씨 가문을 이끄는 후계자.
<불의 심판>, <로열>에 이은 국내 3대 대형 클랜.
<용광검로>의 클랜 마스터.
S급 홀더 송도혁.
검술 하나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에 관한 내용은 너무도 유명해서, 굳이 내가 빙의자가 아니더라도 신문이나 기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어쨌든 난 가죽에 관심 없으니까 알아두렴. 난 아가미를 살 거거든.”
“아가미요?”
“응. 그 괴수, 물 계열 마법에 엄청 능숙한 괴수인 것 같은데, 아가미 연구해 보면 뭔가 나오는 게 있지 않을까 해서. 어차피 쓸만한 것들은 일반 경매에서도 살 수 있으니까.”
내일 대구에서 열리는 경매장.
여기에 나오는 품목이 전부 스월 레비아탄에 관한 부산물은 아니다.
일반 경매 품목이 먼저 나온 후.
스월 레비아탄의 부산물은 추가 품목으로 들어가는 것.
그래서 재난 괴수 사냥에 참여했더라도, 굳이 그 부산물 경매에 집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고위 홀더들이 참가하는 이번 경매에 내가 쫄지 않은 이유다.
S급 마력석 말고도, 충분히 좋은 아이템들이 경매로 많이 나오니까.
“선배님도 부산물 연구 자주 하시나 봐요?”
“당연하지. 모든 마법사 계열은 전투 홀더이기도 하지만, 연구자이기도 하단다. 오래 고민하고 연구해야 더 좋은 마법이 나오거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었다.
“저는 마력석 쪽에 관심 두고 있어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한참 전의 질문에 답했다.
그러자 정선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력석? S급 괴수 마력석은 가죽만큼 인기 많을 텐데. 너 돈 많니?”
그 말에 얕은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B급 괴수의 마력석 시가는 4200만원.
A급 괴수의 마력석 시가는 3억원이다.
그렇다면 S급 괴수의 마력석은 최소 10억을 넘어가는 금액.
들은 바로는 20억에서 50억까지 가는 일도 있다고 한다.
평범한 홀더라면 엄두도 못 낼 금액이지만…
‘이날을 위해서 탄알을 준비해뒀지.’
일주일마다 리젠되는 아카데미 지하 던전.
나는 그동안 던전을 꾸준히 공략하며 돈을 모았었다.
주된 사냥 괴수는 B급의 도마뱀들.
김채은과 둘이서 사냥하느라 5인 파티보다 효율은 좀 덜 나왔지만, 그래도 그간 사냥한 괴수들만 200마리에 가깝다.
마력석 수익을 둘로 나누기만 해도 내게 떨어지는 돈이 42억.
여기에 C급 홀더로 승급하며 잡은 괴수들의 부산물이나, ‘홉고블린 부락’ 소유에 의한 던전 수익도 상당하다.
최유민이나 최아린에게 들어가는 투자금, 내 생활비나 필수 비용, 기타 비용들을 전부 제하고도… 대략 40억은 당장 손에 남는다.
이 정도면 다른 홀더들에게.
구매력으로 크게 밀리진 않을 것이다.
‘정 부족하면 철판 깔고 채은이한테 좀 빌리지, 뭐.’
김채은도 나와 비슷한 수준의 돈이 있다.
함께 던전을 돌았었으니까.
솔직히 빌리기에는 액수가 너무 크긴 한데…
“왜 그렇게 봐?”
내가 빤히 쳐다보자, 김채은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답했다.
“든든해서.”
채은이니까.
어떻게든 빌릴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