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54화 (54/353)

EP.54 경매의 신 (1)

<아이템 정보>

◎이름: 참회자의 검

◎종류: 검

◎등급: 에픽(Epic)

◎제작자: -

◎특수효과

: 근력+3 신성+5

: 언데드 형태의 상대와 전투할 때 50%의 추가 성능을 낼 수 있다.

: 보유자의 신성 수치가 높을수록, 검의 위력이 급격하게 올라간다.

◎내재스킬

[디바인 슬래쉬]

◎세부정보

: 한때 악행을 일삼던 인간의 회개하는 마음이 담긴 검. 참회하는 자의 일격은, 죽음을 잊고 살던 이들에게조차 소멸을 선사할 수 있다.

-첫 번째 경매 품목입니다. 최소 주문가격은 1억 원, 1억 원부터 호가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디지털 화면에 아이템 정보가 등록됨과 동시에 진행자의 음성이 울렸다.

‘첫 경매품부터 센데.’

시작부터 에픽 아이템이다.

특수효과만 해도 엄청난 성능에 ‘내재스킬’까지 있는 사기적인 아이템.

마력석을 최우선으로 놓고 참여한 나도 혹할 정도다.

특히 신성 수치가 높을수록 위력이 상승한다는 특수효과.

이건 특수 전사 계열에 속하는 ‘성기사’들이 보면 눈이 돌아갈 정도의 매력적인 효과였다.

‘내 거랑 비교하면… 조금 더 좋긴 하네.’

내게도 에픽 아이템이 있다.

[저주받은 주술서].

‘홉고블린 부락’을 공략하며 레스트 룸에서 얻었던 아이템.

[저주받은 주술서]는 에픽급 중에서도 상당히 괜찮은 효과를 지녔다.

하루에 3시간씩 열흘간 주술서를 탐독하면, 마력, 신성, 정신을 각각 2씩 획득하는 능력치 보정형 효과.

‘특수 아이템 중에선 거의 탑급이지.’

전투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특수 아이템의 효과치곤 상당했다.

반면 [참회자의 검]은 장비를 사용해야 쓸 수 있는 한정적인 능력치 보정에, 성기사들이 사용하는 것에 치중된 효과를 지녔다.

대신 전반적으로 가격대가 높은 무구류 장비라는 점과 여타 장비에는 없는 ‘내재스킬’을 보유하고 있다는 게 큰 강점이었다.

에픽급 무구 아이템의 가격을 고려했을 때.

이 정도 아이템은 최소 100억은 찍지 않을까.

지금의 내 자금 사정으론 절대 못 사는 아이템이다.

“흠흠.”

하지만 경매 초반에 참여하지 말란 법은 없었다.

-1억.

나는 가장 먼저 버저를 누르고 호가했다.

1억 원.

해당 경매품의 최소 주문가격.

당연히 이 가격엔 절대 낙찰이 안 된다.

경쟁 입찰이 붙으니까.

그리고 내 호가가 시작되기 무섭게.

다른 홀더들이 코웃음을 치며 경매에 참여했다.

-10억.

-15억.

-25억.

곧바로 경쟁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최소 주문가격이 1억 원에 호가 단위는 억 단위였는데, 큼지막한 단위로 가격이 오르더니 어느새 30억 가까이 호가가 진행됐다.

“더 참여 안 하니?”

옆에 있던 정선영이 웃으며 물었다.

말려도 모자랄 판에 부추기시네….

솔직히 에픽 아이템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니까 나도 지르고 싶긴 하다.

원래 경매하다 보면 뭐든 사고 싶은 게 사람 심리라.

하지만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제 물건은 아닌 것 같네요.”

변명은 그럴싸하지만.

솔직히 사고 싶어도 돈이 없다.

-290억 호가 됐습니다. 더 호가하실 분 없으십니까?

진행자의 말이 울렸다.

[참회자의 검]은 기어코 290억이라는 아득한 가격까지 올라갔다.

역시 홀더들의 자금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참여자들을 얼핏 보니 평범한 전사 계열들.

아마 굳이 성기사가 아니더라도, 이 아이템을 주력 무기로 쓰기에 괜찮다는 거겠지.

진행자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을 이었다.

-세 번 호가하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290억, 290억… 290억. 축하합니다. 첫 번째 경매품은 290억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와….”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에 김채은이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 엄청 비싸네요. 저렇게 비싼 아이템은 처음 봐요.”

그 모습에 정선영이 웃으며 대답했다.

“사는 애들이 거의 A급 홀더잖니. 돈 잘 버는.”

“그래도 저 정도 가격은 부담되지 않나요?”

“당연히 부담되지. 그래서 쟤네도 큰맘 먹고 지르는 거란다. 성능 좋은 에픽급이니까.”

“그렇구나….”

고개를 주억거리는 김채은에게 한 마디 덧붙여줬다.

“진짜 비싼 에픽급은 1000억까지 하는 것도 있어.”

“처, 천억?”

“응. 원래 홀더 경매라는 게 그래. 사실상 미술품 경매 수준이거나, 그보다 더하지.”

그나마 우리가 구매하고자 하는 품목이 그들과 겹치지 않는다는 게 다행이었다.

뭐, 애초에 공격대에 참가하지 않으면 괴수 부산물은 구매 기회조차 없긴 하지만.

이후 경매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무구와 방어구부터 시작해, 화려하게 꾸며진 홀더 장신구, 각종 포션 및 영약, 특별한 효과를 지닌 특수 아이템까지.

등급에 구분 없이 다양한 아이템들이 품목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호가했다.

-5천만.

-1억.

-100만.

-3천만.

경매품의 최소 주문가격.

그를 듣고 나면.

나는 가장 먼저 해당 경매품의 첫 번째 호가를 도맡았다.

…당연히 낙찰이 될 리가 없었다.

첫 호가 이후 참여를 안 하는데, 물건을 어떻게 살까.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주변 홀더들이 비웃고, 일행들도 이상하게 바라봤지만…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건 나만의 경매 전략이었다.

정확히는 경매 초짜들을 매번 잡아먹는 경력직 홀더.

그 남자를 잡기 위한 일종의 미끼.

‘한현민.’

<석양의 꽃> 클랜 소속.

경매장이 열릴 때마다 상주하다시피 하는 고인물.

내가 알고 있는 그라면.

이 미끼에 분명 걸려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이번 경매에서 원하는 물건들을 가져가려면, 걸림돌이 되는 한현민의 자금 풀을 낮춰 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일곱 번째 경매 품목입니다. 화면에 나오는 대로, 이번 경매 품목은 미감정 아이템입니다. 경매 참여자분들께서는 이 점에 유의해 호가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품목의 최소 주문가격은 1억 원입니다.

드디어 나왔다.

스월 레비아탄의 마력석을 제외하고.

내가 계속해서 기다리던 종류의 품목이.

* * *

<석양의 꽃> 소속 B급 홀더.

한현민은 긴장감 어린 얼굴로 경매장 한쪽을 바라봤다.

홀을 기준으로 오른쪽 대각선 끝자리.

무소속 A급 홀더로 이름을 날리는 정선영.

그리고 이름 모를 홀더 둘이 앉아있는 곳이었다.

정확히는 그 셋 중.

돋보이는 인상의 젊은 홀더 한 명을 보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명판엔 도재현이라는 생소한 이름이 적혀있었다.

‘만만치 않은 놈이야.’

처음엔 그냥 정선영이 데리고 다니는 풋내기 홀더 중 한 명인 줄 알았다.

이번 S급 괴수 사냥을 함께 하고, 경매장에 대해서도 경험시키려는.

하지만 도재현의 경매를 보고 난 후.

한현민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정선영 홀더와는 단지 일행일 뿐.’

경매에 있어선 별개의 참여자였다.

그의 경매는 독특했다.

여느 고위 홀더들처럼 압도적인 자금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방식 자체가 특이하다.

진행자가 경매 품목을 설명할 때마다.

그는 항상 첫 번째로 품목의 최소 주문가격을 호가한다.

그리고 멈춘다.

마치 경매의 시작을 알리는 사람이라도 되듯.

이후 이어지는 가격 경쟁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는다.

무구, 방어구, 장신구, 특수 아이템 등.

종류에 가리지 않고, 어떤 품목이든.

그는 모든 경매 품목에 이런 방식을 고수했다.

경매품 입찰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그런 식으로 미감정 아이템을 5개나 쓸어갔지.’

미감정 아이템은 어지간해선 구매하기 껄끄러운 품목이다.

우선 ‘감정’과 관련된 룬, 스킬을 보유한 홀더가 매우 적어 감정료가 너무 비싸고, 막상 감정하더라도 ‘꽝’일 확률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일종의 사행성 판패 품목.

그 때문에 최소 주문가격도 높고, 의도적으로 이를 사지 않으려는 홀더들도 많았다.

느낌이 크게 오는 묘한 아이템이거나, 특별한 이유로 홀더들의 경쟁이 불붙지 않는 이상.

미감정 아이템 중 많은 품목은 주로 유찰이 된다.

그렇게 유찰이 될 아이템을, 벌써 5개나 낙찰한 게 도재현이었다.

‘경매 방식은 계속 똑같아.’

그렇다고 도재현이 미감정 아이템만 노리는 건 아니다.

주변 다른 홀더들이 간간히 미감정 아이템 대박을 노리고 그보다 높은 가격을 호가했지만, 여전히 도재현은 경쟁에 참여하질 않았다.

오로지 최소 주문가격만을 호가.

경매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스탠스였다.

‘하지만 내 눈은 못 속인다.’

<석양의 꽃> 소속 홀더로서 홀더 경매장에 오랫동안 참석하며, ‘경매장 홀더’라는 수식어구가 생길 정도로 경력이 쌓인 한현민이다.

그가 본 도재현은 분명 경매에 숙달된 경험자였다.

홀더 경매장에선 처음 보는 풋내기지만, 아마 홀더가 되기 전 일반인일 때는 경매를 해 본 경험이 많을 것이다.

꾸준한 그의 경매 방식.

호가할 때의 고저 없는 목소리.

화려한 아이템들에 동요하지 않는 태도.

모든 면이 그가 경험자라는 걸 가리켰다.

게다가 평범한 경매 참가자들과 달리.

한현민의 눈에 들어온 참가자라는 것만으로 이미 특별한 케이스였다.

그는 도재현에게 다른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가다가 분명 변수가 발생할 것이다.

경매장에서 별의별 홀더들을 다 만나 본 그의 직감이었다.

-1억.

또 한 번.

오른쪽 끝자리에서 마이크가 울렸다.

도재현의 첫 호가였다.

한현민은 이번 경매 품목의 상태를 유심히 봤다.

언뜻 보기엔 오래되어 낡고 녹슨 철검처럼 보이지만, 깊게 살펴보면 유물의 기운이 느껴지는 검.

그의 촉은 이 검이 절대 평범한 검이 아님을 알리고 있었다.

‘이거다!’

대부분 꽝일 확률이 높은 미감정 아이템.

그중에서도 이 검은 뭔가 다른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2억.

한현민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한 단위 높은 가격을 호가했다.

그리고 곧바로 도재현 쪽을 바라봤다.

그는 계속 그래왔던 것처럼.

경쟁 입찰을 포기… 하지 않았다.

도재현은 표정을 찡그린 채 고민하고 있었다!

경매가 시작한 후.

처음 있는 그의 표정 변화였다.

그리고 진행자가 2억을 세 번 호가하기 전.

그는 기어코 자신의 룰을 깨며.

처음으로 경쟁 입찰에 참여했다.

-3억.

‘왔구나.’

한현민은 쾌재를 불렀다.

다른 홀더들은 이 이변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꾸준히 첫 가격만 호가하던 도재현이 새 입찰을 시도했다는 것.

자신들의 경매에만 집중하는 경매 초보들이 이를 알 리가 없었다.

다년간 경매 경력을 쌓은 한현민만이 눈치챌 수 있는 맹점이었다.

‘도재현… 좋은 물건을 쉽게 가져간다고 생각하겠지.’

지금까지는 별다른 경쟁 없이.

다들 미감정 아이템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한현민은 달랐다.

도재현의 경매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변화가 생긴 지금.

한현민은 그의 경매를 잡아먹을 자신이 있었다.

누구보다 맹렬한 자세로.

‘걸려들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그물에.

도재현은 걸려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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