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55화 (55/353)

EP.55 경매의 신 (2)

한현민은 입가에 미소를 숨긴 채.

낮은 목소리로 호가했다.

-4억.

-5억.

또 한 번의 이변이 일어났다.

도재현이 이번엔 고민하지 않고 경쟁 가격을 호가했다.

3억을 호가할 땐 표정을 찡그렸지만, 5억을 호가할 땐 무표정한 얼굴.

처음 호가할 때와 똑같은 얼굴이다.

다른 이들에겐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한현민은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반드시 가져가겠다는 거군.’

원하는 품목에 경쟁자가 붙자, 이전과 달리 고민하지 않고 경쟁 입찰을 한다.

이번 품목만큼은 구매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태도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그게 네 실책이다, 도재현.’

경매 사냥꾼인 그에게 있어, 허점투성이 먹잇감일 뿐이었다.

-10억.

한현민이 확신을 가진 채 호가 단위를 단숨에 올렸다.

1억씩 경쟁이 붙다가, 단번에 5억이 올라버린 가격.

경매에선 흔히 있는 일이지만, 미감정 아이템 경매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든 가격 경쟁이었다.

물론, 미감정 아이템에도 몇백억을 넘어가는 경쟁이 붙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국내 유물 중 ‘아이템’으로 판정받은 물건들.

역사가 담긴 아이템은 전설급일 가능성도 있고, 굳이 전설급이 아니더라도 아이템의 성능이 상당하다.

경매 가격은 그런 점들을 고려해 책정된다.

실제로 [사인참사검] 같은 경우는 당시 미감정 아이템이었음에도, 발굴 상황 및 여건과 아이템의 외관을 고려해 900억 상당의 경매가를 기록했었다.

하지만 이번 경매품은 관련 기반이 전혀 없는…

완전한 생 미감정 아이템.

막말로 1억에만 팔려도 잘 팔리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쯤 되자.

조용하던 주변 홀더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뭐야. 10억이라고?”

“저게 뭐길래 10억을 질러? 미감정 아이템 아니야?”

“야야, 저 사람 그 사람이다. 석양의 꽃 소속 경매 전담 홀더. 타율도 엄청 좋다던데, 우리도 따라붙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씨, 미감정에서 뭐가 나올 줄 알고 따라붙어. 10억이 뉘 집 개 이름이냐.”

미감정 아이템은 말 그대로 사행성 품목이다.

아무리 홀더들이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그런 품목에 10억 이상을 쓰는 건 미친 짓이었다.

10억 단위가 부담스럽지 않은 홀더는 A급 홀더들 뿐.

그리고 그들은 미감정 아이템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자금력이라면, 이미 검증된 아이템을 구매하고도 남으니까.

‘자. 어떻게 나올 거냐, 도재현.’

한현민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잘 보이진 않지만, 찡그리고 있는 그의 얼굴은 포착이 된다.

뭔가 잘 안 풀린다는 듯한 표정.

첫 호가에 한현민이 참여했을 때 이후.

두 번째 표정 변화였다.

-10억 호가 됐습니다. 더 호가하실 분 없습니까? 없으면 세 번 호가하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10억, 10억…

그리고 진행자의 낙찰 선언이 이루어지기 바로 직전.

도재현이 새로운 가격을 호가했다.

-20억.

“20억이라고?”

“뭐야. 도대체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건데.”

“진짜 저 아이템에 뭐 있는 거 아냐? 지금이라도 사야되는 거 아니냐고.”

“아, 몰라. 사려면 너나 사. 내가 미감정 긁다가 날린 돈이 얼만데.”

입찰가 20억.

순식간에 두 배가 된 가격.

주변의 술렁임은 더 심해졌고, 한현민도 깜짝 놀라 그를 바라봤다.

‘이렇게 세게 나온다는 거지.’

뭔가 있다.

분명 뭔가가 있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상황.

뭔가 의심스러운 행동.

한현민은 줄곧 생각하던 가설에 더 힘이 실리는 걸 느꼈다.

‘룬이나 아이템이 있는 게 분명해.’

미감정 아이템을 대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스킬 혹은 아이템.

직접 경험한 적은 없지만, 경매장에서 만났던 다른 홀더들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은 뭔가 알고 있다는 듯 경매에 참여했었다고.

그리고 해당 미감정 아이템은 거의 대박이었다고.

말로만 듣던 특수 경매 조건.

도재현은 그런 조건을 지니고 경매하는 게 분명했다.

아무리 느낌이 왔어도, 바로 20억을 지른다고?

관련 룬으로 미감정 아이템을 체크할 수 있지 않은 이상.

절대 쉽게 나올 수 없는 액수였다.

‘아마 내가 떨어져 나갈 거라 생각했겠지.’

당연한 이야기다.

이 정도 액수는, 단순히 경쟁심리로 따라붙을 수 있는 가격이 아니니까.

여기에 따라붙으면, 오히려 그 사람이 바보였다.

하지만 한현민은 속으로 미소지었다.

‘아직 한참 이르다, 도재현.’

그는 최소한 홀더 경매에 있어서만큼은.

도재현의 머리 위에서 노는 베테랑이었다.

“은철아, 지금 감정 스킬 있는 홀더 대기하고 있지?”

한현민은 옆자리의 후배 클랜원에게 물었다.

이번 경매에 앞서.

그는 클랜으로부터 400억 원의 공금과 클랜 소속 ‘감정’ 관련 스킬 보유 홀더를 지원받았다.

클랜에서 요구하는 아이템을 낙찰받을 것을 요구받음과 동시에, 한현민의 재량으로 클랜에 도움이 될 만한 아이템들을 구매해 오라는 지시.

이는 그간 한현민이 <석양의 꽃> 소속으로 수많은 경매 성과를 올렸기에 가능했던 지원이었다.

덕분에 그는 330억 원가량의 자금을 사용하며 괜찮은 아이템을 다수 건졌다.

남은 자금은 대략 70억 정도.

풋내기 홀더 하나 상대하기엔, 여전히 충분한 액수였다.

“예. 지금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이번 품목 경매 끝나면, 6층 수령 데스크 가서 이번 거 받아와. 바로 감정할 수 있게.”

“예. 알겠습니다.”

일반 품목 아이템들과 달리.

미감정 아이템은 대리 수령이 가능하다.

경매 시간이 워낙 오래 걸리는 탓에, 곧바로 감정을 마치고 정보를 확인하려는 홀더들이 많기 때문.

그렇기에 후배 클랜원을 시켜 대리 수령을 맡겼다.

이번 미감정 아이템.

분명 자신이 가져가게 될 테니까.

-30억.

-40억.

한현민이 30억을 호가했다.

그리고 도재현은 곧장 40억으로 따라붙었다.

처음 들어보는 풋내기 홀더가 저 정도 자금력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지만, 아마 거짓으로 호가하는 건 아닐 거다.

낙찰 후 수령 당시에 해당 금액이 없으면.

엄청난 페널티와 함께 벌금이 부과된다.

단순 블러핑으로 지를 수 있는 시장이 아니었다.

‘후후. 이성을 잃었군.’

멀리 보이는 도재현은 뭔가 다급해 보였다.

20억을 지를 때만 해도 금방 떨어져 나갈 거라 생각했을 텐데, 곧장 30억으로 따라붙으니 화가 나겠지.

이 미감정 아이템은, 도재현만 알고 있는 보물일 테니까.

‘초반은 좋았지만, 중요한 순간에 실수가 잦군. 아직 미숙한 녀석이야.’

한현민은 혀를 찼다.

오랜만에 나온 자신의 상대라고 생각했는데.

아쉽게도 여기까지였다.

예상외의 경쟁자가 붙으니 고민을 하다 호가.

원치 않던 가격까지 오르니 이성을 잃은 채 호가.

초반에 쌓아가던 빌드업은 참 좋았는데…

정작 필요할 때엔 실수가 잦았다.

한현민은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끼며, 버저를 누르고 입을 뗐다.

-70억.

그걸로 끝이었다.

“아….”

절망스러운 음성의 탄성이 여기까지 들려온다.

도재현은 압도적으로 올라간 가격에 입찰을 포기했다.

아무리 경매를 잘한다곤 해도 풋내기 홀더다.

자금 측면에서 클랜의 지원을 받는 한현민을 앞설 수 있을 리 없었다.

치열했던 심리전 끝에.

물질적인 우위를 앞세운 한현민의 승리였다.

‘됐다!’

낙찰이 완료되고.

이후 경매가 계속되었지만.

한현민은 흥분에 가득 차 다른 데에 눈길을 줄 여유가 없었다.

오로지 방금 낙찰받은 물건.

기묘한 미감정 아이템에만 관심이 쏠려 있었다.

‘흐흐. 최소 에픽급, 정말 운 좋으면 전설급일 지도.’

진작에 승패가 결정된 싸움이었다.

한현민은 이런 식으로 경매 참가자들을 사냥해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초짜들의 심리를 이용해 그저 그런 아이템들을 비싼 가격에 넘겼고, 이렇듯 경매를 좀 아는 참가자를 만나면 심리전과 압도적인 자금을 이용해 승리를 쟁취하곤 했다.

이번은 처음 마주치는 상대인 데다가, 상대의 초반 빌드업이 워낙 좋아 살짝 헷갈리긴 했지만…

빈틈을 노리니 역전은 꽤 쉬웠다.

조금만 흔들었는데 상대는 자멸하듯 쓰러졌다.

매번 높은 그의 경매 타율이, 또다시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30분쯤 시간이 지났을까.

수령 데스크로 떠났던 후배 클랜원이 돌아왔다.

“한현민 홀더님?”

“오, 그래. 왔구나, 드디어 왔어. 어떻게 됐냐.”

“그게….”

후배 클랜원은 쭈뼛거리는 움직임으로 검을 건넸다.

직접 확인하라는 의미였다.

‘뭐지?’

이 엄청난 아이템을 감정했으면 후배 녀석도 화들짝 놀라야 정상일 텐데.

하지만 한현민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오늘 자신의 경매는 완벽했다.

결과가 좋지 않다면.

그건 결과를 확인한 사람의 눈이 안 좋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게 검을 건네받은 후, 정보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들었다.

“이, 이게…”

오늘 자신의 경매는 완벽했다.

결과가 좋지 않다면.

그건 결과를 확인한 사람의 눈이…

‘그럼 내 눈이 안 좋은 건가?’

그런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최소 에픽급.

어쩌면 전설급까지도 기대했던 미감정 아이템.

하지만 그 결과는…

<아이템 정보>

◎이름: 녹슨 철검

◎종류: 검

◎등급: 노멀(Normal)

◎내구도: 위기 (수리 필요)

◎제작자: -

◎특수효과: -

◎세부정보

: 평범한 철검. 너무 녹이 슬어 내구도가 망가진 탓에, 뭔가를 베면 오히려 검이 망가질 것만 같다.

찾으라고 해도 찾기 힘든.

쓰레기 검이었다.

“말이 안 되잖아….”

고작.

고작 이딴 검을 사려고.

클랜의 자금, 70억 원을 투자했다고?

당장 박살날 것 같은 노멀 검에.

70억을 태워?

한현민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도재현을 바라봤다.

그는 미감정 아이템을 놓친 것에 울분을…

삼키기는커녕.

또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경매에 참여하고 있었다!

‘…당했다!’

미감정 아이템을 미리 체크할 수 있는 룬이나 아이템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무표정한 얼굴도.

당황한 듯한 기색도.

성급하게 말하던 호가도.

모두 연기였다.

그는 그저 한 명의 경쟁자를 블러핑으로 제거한 것뿐이었다.

마치.

한현민이 경매 초짜들을 사냥하는 것처럼.

‘아니. 그걸 경매 시작부터 빌드업하는 새끼가 어딨어.’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도재현을 바라봤다.

한현민은 계속해서 도재현을 의식하고 있었지만, 클랜의 요구에 따라 자신만의 경매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사용한 자금이 330억.

거기에 남은 70억으로 도재현의 픽을 사냥하고자 했다.

그런데 그게 처음부터 계획던 거였다니.

330억을 쓰는 것조차 기다린 거였다니.

거기까지 생각하자, 그저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멍하니 나오는 혼잣말.

“저 새끼… 경매의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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