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57화 (57/353)

EP.57 복귀와 점검 (2)

-카아악…!!

오랜만에 도마뱀들의 울음소리가 던전에 퍼진다.

사방을 점령하다시피 한 리자드맨들.

C급 괴수여도 다수로 뭉치면 위험한 이들.

하지만 ‘홉고블린 부락’을 공략하며 다대일 전투에 익숙해진 나에겐, 녀석들과의 전투 정도는 이제 쉽게 느껴졌다.

게다가 이 녀석들은 방패도 없다.

오로지 삼지창과 근력만 믿고 싸우는 괴수들이다.

-카아악!!

-카악, 카아아…!!

“케륵보단 카악이 낫네.”

홉고블린보단 리자드맨의 울음소리가 더 정겨운 것 같다.

전투 구도는 홉고블린 부락 공략과 비슷했다.

[활]이나 [단검]으로 놈들의 주의를 끌고, 주력 전투룬으로 놈들을 각개격파.

주로 활용하는 룬은 [검].

그중 검법은 [파상검법]과 [유수검법]을 적절히 배합.

보법류로는 [날렵한 몸놀림]을 활용했다.

내겐 탱커와 딜러.

두 역할을 모두 겸할 수 있는 브루저의 역량이 있다.

다양하게 분포된 룬들이 그를 가능케 했고, 골고루 성장한 능력치들이 그를 뒷받침했다.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렇게 리자드맨을 70마리 정도 베어갈 때 쯤.

기다렸던 룬 레벨 상승의 정보창이 떴다.

“이게 진짜 되는구나.”

이번 점검에서 내가 시험하고자 했던 건, 스월 레비아탄을 잡으며 새로 얻은 [소용돌이를 삼킨 파도]의 범용성이다.

해당 룬의 특수효과, ‘물과 관련된 모든 룬에 성장 증가 및 효과 증폭’ 중 ‘물과 관련된’의 범위를 찾고자 했다.

[파상검법]과 [유수검법]은 모두 물의 형상을 본뜬 검법.

전자는 빠르게 밀려왔다 가는 물결을 형상화했고, 후자는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을 형상화한 검법이다.

때문에 나는 두 검법이 물과 관련된 룬에 해당될 거라 추측했다.

‘관련’이라는 단어는 관점에 따라 범위가 얼마든지 넓어질 수 있으니까.

그리고 예상대로 그 추측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성장 속도도 더 빠르고, 위력도 더 세졌어.”

검을 사용해 리자드맨을 사냥할 때.

이전보다 훨씬 수월해진 느낌을 받는다.

내 능력치와 룬 레벨이 이전에 비해 상승한 것도 있겠지만, [소용돌이를 삼킨 파도]가 주는 효과 보정도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두 검법의 레벨도 방금을 기점으로 8레벨로 올랐다.

앞선 물 관련 룬의 성장 증가와 [구도자의 땀방울]의 성장 증가가 맞물려 이뤄낸 말도 안 되는 상승 속도.

이제 10레벨까지 각각 2레벨만이 남았으니…

어쩌면 B급으로 승급하기 전에, 궁극스킬의 사용제한이 풀릴지도 모르겠다.

-키에에…!!

중간부에서도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톡신 이구아나.

체구는 작지만 날렵하고 빠른 공격과 [맹독]으로 홀더를 위협에 빠뜨리는 괴수.

녀석을 상대로는 잘 때리는 법보다 잘 맞는 법을 연구했다.

리자드맨에 비해 훨씬 강한 녀석이라 몰이 사냥이 어렵고, 탱킹 위주의 룬들 역시 점검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맛있게 맞는 법! 육탄공세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는 당신의 방어에 요령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내구를 1 획득합니다.]

[지독한 독 성분이 몸을 타고 흐릅니다. 맹독을 다루는 당신의 이해도가 더욱 상승합니다.]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독 내성을 1 획득합니다.]

저레벨이던 룬들이 꾸준한 성장을 이뤘다.

홉고블린 족장으로부터 얻었던 [육탄방어]가 5레벨에 올랐고, 톡신 이구아나의 독을 맨몸으로 받아내다 보니 [맹독]도 계속 성장해 5레벨을 달성했다.

“이제 어지간한 주력 룬은 거의 다 5레벨 이상이네.”

[위압]이나 [견고한 이빨], [사족 격투]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성장시킬 수 있는 룬들을 제외하면, 전투에 활용되는 주력 룬들은 모두 5레벨을 넘어가고 있었다.

탱킹이면 탱킹.

딜링이면 딜링.

보조면 보조.

파티에서 분배될 역할을 혼자 다 한다.

잡캐도 이런 잡캐가 없었다.

“…단점도 있긴 하지만.”

룬이 늘어난 만큼 그들에 쏟아야 하는 시간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구도자의 땀방울]이 있다고 하더라도, 룬의 성장이 더뎌지는 요소 중 하나다.

이 부분은 아마 내가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겠지.

주력 룬 성장에 더 가속이 붙으면, 아마 몇몇 룬들은 성장 자체를 포기해야 할지도 몰랐다.

예를 들어, 획득 후 1레벨도 못 올리고 있는 [간단한 저주]처럼.

-키에에!!

-키, 키에에…!!

주변을 둘러보니 톡신 이구아나가 끝도 없이 몰려들고 있다.

잠깐 정신을 딴 데 뒀더니 그새 무리를 지은 놈들이었다.

“…간다, 가.”

내 선택은 [질주]였다.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내가 아무리 강해졌다지만, 솔직히 이 정도 숫자의 B급 괴수를 한 번에 다 상대하기는 힘들다.

정확히 말하면, 어떻게든 상대할 수는 있다.

[이글거리는 불꽃]과 [소용돌이를 삼킨 파도].

이제는 마력을 활용한 두 룬이 딜 전용 룬으로 자리를 잡았기에.

하지만 두 룬은 상대 괴수와 상성이 안 좋다.

물과 불을 도마뱀 계열 괴수에게 써봤자 큰 효과가 없다.

강주연의 마력 공격이 효과가 있었던 건, 그녀의 불 마법이 상성을 무시할 만큼 강력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아마 나도 두 마력 관련 룬들이 크게 성장한다면 놈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냥 번개 계열 룬을 얻을까?”

어쩌면 그게 더 빠를지도.

* * *

<불의 심판> 인턴 클랜원 입단 당일.

나는 여의도역에 와 있었다.

국내 클랜들의 클랜 건물들은 다양하게 분포해 있는 편이지만, 3대 클랜을 비롯해 몇몇 중견 클랜들은 대부분 여의도에 기반을 잡고 있다.

아무래도 정치권과 재계 핵심이 모두 여의도에 있기 때문이겠지.

하늘을 뚫을 것처럼 높게 솟은 건물들을 구경하며 출구에 서 있자,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리는 게 느껴졌다.

약속 시각보다 10분 더 빠른데?

벌써 온 것에 살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일찍 왔…”

그리고 시야에 들어온 그녀를 봤을 때.

놀라움은 두 배가 돼서 숨을 삼키고 말았다.

오늘은 강주연에게 간단히 클랜 소개를 받고, 클랜 인사부에 들러 인턴 입단을 확정 짓기로 한 날.

때문에 여의도역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예상대로 내 어깨를 두드린 건 강주연이었다.

그런데…

‘…예뻐도 너무 예쁘잖아.’

나는 순간 멍하니 강주연을 바라봤다.

원래도 독보적인 외모를 지닌 그녀지만, 캐주얼한 외출복을 입고 밖에 나오니 더 빛이 나는 것 같다.

하늘하늘한 흰색 블라우스에 달라붙는 블랙진.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과.

항상 차고 다니는 붉은색 목걸이까지.

찰떡처럼 맞아 떨어진 의상이…

날카롭고 고급스러운 그녀의 이미지를 더 짙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아카데미에서 볼 때랑은 또 다르네.’

주변에 예쁜 여자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아카데미 밖에서 강주연을 보게 되니, 느낌이 또 새롭다.

“…안녕.”

“어, 어. 안녕.”

덕분에 인사도 한 템포 늦었다.

너무 빤히 바라본 것 같아서, 민망함에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돌렸다.

“엄청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우리. 한 일주일 만인가?”

“응.”

“…하하. 진 입은 건 처음 보네. 잘 어울린다.”

그 말에 강주연의 표정이 묘해졌다.

…또 뭔 실수했나?

괜히 더 조심하게 된다.

다행히 그녀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평범했다.

“기억하네?”

“어? 어, 그치. 슬랙스만 입고 다녔잖아. 가끔 치마 입고.”

이건 너무 구체적인가?

뭔가 스토커처럼 느껴지잖아.

그래도 기분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는지, 강주연은 마법 가방과 옷을 살짝 매만지며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울려?”

“어. 너무. 완전히. 더할 나위 없이. 매일 그렇게 입고 다녀도 될 것 같아.”

순간 속사포처럼 쏟아진 내 말.

아차.

나도 모르게 진심이 나와버렸네.

그에 강주연이 살짝 미소지었다.

웃음소리가 들릴 정도로 웃은 건 아니지만, 이런 미소를 짓게 만든 것만으로 대단한 발전이다.

내가 아는 강주연은 이런 작은 미소도 쉽게 보이는 사람이 아니니까.

문가은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나마 그녀의 친한 사람 축에 속하게 됐다는 것 아닐까?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들었어. C급 승급했다는 거. …축하해.”

“어? 어어, 고마워.”

이런 축하까지 받는 걸 보면 말이다.

이제 어디 가서 강주연 친구라고 자랑하고 다녀야겠다.

하지만 나는 약간 의문스러운 얼굴로 되물었다.

“근데 누구한테 들었어? 나 주변에 말 별로 안 했는데.”

“…문가은한테.”

“역시 모든 소문과 루머의 중심은 걔구나.”

역시는 역시.

대충은 예상했다.

문가은, 김채은, 박진우.

이 셋에게만 승급 사실을 말했는데…

김채은은 강주연과 왠지 모를 앙숙이고, 박진우는 강주연과 별로 안 친하니까.

이를 알려줄 사람은 문가은밖에 없었다.

그런데 의외로 내 말에 강주연이 크게 공감했다.

“맞아. 걔가 하는 말은 거의 다 루머야.”

“예?”

“…아무것도 아니야.”

살짝 찡그린 얼굴로 말을 아끼는 강주연.

…이런 반응까지 예상한 건 아닌데.

그녀도 뭔가 쌓인 게 있는 모양이다.

문가은 얘는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걸까.

어쨌든 우리는 가볍게 회포를 풀고, 역을 벗어나 빌딩들 틈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불의 심판>.

나로서는 처음으로 방문하는 클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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