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9 진짜 인턴 맞아? (2)
띠링-
우리는 지하 연무장에 도착했다.
듣기로는 일산 쪽에 클랜원 연수 장소 및 훈련을 겸하는 거대 연무장이 있다곤 하는데, 거대 클랜답게 클랜 타워에도 연무장이 있는 모양이다.
‘나 아직 건물 구경도 다 못했는데….’
1층과 30층대 몇몇 건물.
그리고 25층 구경이 전부다.
이제 막 부서 구경을 하려고 하는데, 웬 박진우 같은 팀장님에게 잡혀버렸다.
강주연도 대련을 거절하기까진 어려웠는지.
살짝 미안하다는 기색으로 날 바라봤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입 모양으로 의사를 전달했다.
-괜찮아.
솔직히 이해는 된다.
나 같아도 갑자기 특별 채용으로 굴러 들어온 신입, 그것도 두 달만 체험하고 가겠다는 아카데미 학생이 곱게 보일 리 없을 것 같거든.
막말로 클랜 마스터에게 5700자짜리 항의 메일을 보내도 무죄다.
게다가 강주연이 클랜의 후계자이긴 하지만, 어찌 됐든 권오준 역시 클랜의 중요 인력.
팀장급 인사의 의견 피력을 완전히 무시할 수만은 없다.
또한, 합리적인 내용의 대련 제안이었기에 존중해 줄 필요가 있었다.
‘연무장도 엄청 크네.’
여긴 뭐, 안 큰 장소가 없다.
한 층을 통째로 차지하는 지하 연무장은 곳곳에 대련에 필요한 아이템들이 놓여 있었다.
각종 무기부터 시작해 갑옷이나 기타 방어구, 몇몇 특수 아이템.
연무장 한쪽엔 위급 상황을 대비한 다양한 포션들도 준비되어 있다.
이 정도면 신성 계열 없이 대련하더라도, 바로 응급 처치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대련이야 아카데미에서 입학할 때부터 해봤으니 익숙할 거고, 규칙은 역시 아카데미 룰에 따를 거다. 급소 공격만 금지되고, 이외 모든 물리 공격이나 마력 공격이 허용돼. 대련자가 기권하거나 객관적으로 봤을 때 승패가 결정된 상황, 혹은 감독관 판단하에 끝이라고 여겨질 경우, 대련은 종료될 거다.”
권오준이 기나긴 규칙을 설명한 후.
가볍게 나와 상대 홀더를 번갈아 봤다.
“이의 있는 사람?”
“없습니다!”
“저도 없습니다.”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인 권오준이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이템은 곧 홀더의 전력. 자신이 보유한 아이템은 얼마든지 사용해도 좋아. 단, 명백하게 전투 구도를 바꿀 만한 특수 아이템. 부식 가루나 마력 통제 가스 등의 사용은 금지돼. 아카데미랑 다르게 그런 건 안 봐주니까 알아두고… 혹시 필요하다면 연무장의 무구나 방어구를 사용해라. 대부분 노멀급이어도 상태가 좋아 쓸 만할 테니까.”
그 말에 나는 살짝 고민이 됐다.
무구는 이미 [잘 벼려진 롱소드]와 노멀급 단검 등이 있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내겐 마땅한 방어구가 없다.
이는 지금 시점에서 딱히 쓸 만한 방어구를 못 구한 것도 있지만, 전투 시 속력의 극대화를 위해 몸을 가볍게 하는 이유도 있었다.
어쨌든 난 능력치 중 속력 수치가 가장 높은 근접 계열 홀더니까.
‘무기가 없는 걸 보면 마법사 계열 같은데….’
그런데 상대 홀더의 몸 어디에도 무기가 없다.
대련이 곧 시작되는 걸 고려하면, 상대가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홀더.
즉, 마법사 계열 홀더일 확률이 높다는 뜻.
마법사 계열을 상대할 땐 확실히 방어구를 사용하는 게 좋았다.
그것도 속력이 급감하는 중갑 위주로.
‘…그냥 방패를 쓰자.’
나는 마법 가방에서 [홉고블린의 청동 방패]를 꺼내 들었다.
아직은 한손검 사용이 어색하지만, 전투 도중 방패를 버리고 얼마든 양손검으로 전환할 수 있으니 괜찮을 것이다.
방패를 쓰게 되면 마법을 막아내는 데에 더 효율적이기도 하고.
“그럼 본격적으로 불의 심판 사냥 5팀 내 클랜원 간 대련을 시작하도록 한다. 신유나, 도재현. 두 홀더는 악수 후 대련을 준비해라.”
풀네임이 신유나였구나.
예쁜 이름이다.
외관과는 살짝 안 어울리는 것 같지만.
나는 그녀와 악수하며 가볍게 말을 건넸다.
“잘해봅시다.”
“흥.”
하지만 태도가 상당히 쌀쌀맞았다.
…미운털 박힌 건가.
팀장뿐 아니라, 팀원인 홀더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뭔가 앞으로의 클랜 생활이 쉽지 않을 것이 예상된다.
아카데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계속해서 증명의 연속이었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마력을 끌어올릴 준비를 했다.
상대는 아카데미를 졸업한 어엿한 현역 홀더.
풋내기 학생들을 상대할 때처럼 여유 부릴 틈이 없었다.
“대련, 시작.”
그리고 권오준의 시작 사인이 울렸다.
대련의 시작이었다.
“흐읍…!!”
조금의 틈도 기다리지 않았다.
나는 숨을 참고 곧바로 [질주]를 활용했다.
그리고 연이어 활용되는 [무자비한 돌격].
돌격 속도를 극대화하고, 돌격류 룬 활용 시 특수효과를 발동하는 룬들의 연계.
선공을 차지할 때 내가 주로 사용하는 콤보다.
‘마력 공격은 통하지만….’
[무자비한 돌격]은 돌격 시 물리 공격만을 무시한다.
그 말은 즉, 마력 공격엔 방어가 안 된다는 뜻.
마법사 계열 신유나에겐 크게 상관이 없는 방어 효과다.
‘중요한 건 상대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
그러나 마법사 계열 상대로는 선공을 차지하는 게 중요하다.
마법 시전 자체만으로 시간이 걸리는데, 근접 계열의 갑작스러운 공격까지 막아내려면 신경이 분산되어 집중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돌격 및 공격을 동시에 진행하는 이 콤보는 중요했다.
특히 물리 공격 무시 외에도 ‘근력 수치의 2배로 상대를 가격한다’는 추가효과에는, 당황한 상대에게 무기 없이 데미지를 입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적중이다!’
예상대로 신유나는 크게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기병대 계열도 아닌데, 웬 전사 계열 홀더가 엄청난 속도로 돌격하니 평정심을 잃을 만도 했다.
나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신유나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대로 그녀를 가격하면 이후 대련은 쉬워진다.
한 번 데미지를 입은 마법사 계열은 전투에서 크게 힘을 잃으니까.
괜히 씁쓸한 기분이 든다.
역시 평범한 C급 홀더는 내 상대가 아닌 걸까.
이런 간단한 공격조차 대처하지 못하는 신유나의 모습에 살짝 아쉬움을 느끼며, 나는 그대로 그녀를…
“어?”
…가격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코앞.
신유나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지만.
갑자기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건 속력 수치로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날렵한 몸놀림]과 같은 보법류 룬이 아니고선 설명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신유나가 보법류 룬을 가지고 있다는 뜻.
‘말도 안 돼. 마법사 계열이 보법류 룬이라고?’
솔직히 말 안 될 건 없다.
난 그보다 더한 새끼니까.
하지만 특수 케이스인 나와 달리, 신유나는 멀티 홀더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놀라운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질주]를 멈추고 [무자비한 돌격]의 물리 공격 효과가 끝나자마자, 매서운 속도로 신유나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그렇다.
‘주먹’이었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띵해진다.
‘격투 룬!’
신유나가 근접 계열 홀더였다.
꼼짝없이 마법사 계열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격투] 룬을 보유한 모양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보법류 룬을 보유한 것도, 내 돌격을 이토록 빠른 속도로 회피해낸 것도 모두 이해가 갔다.
격투 계열은 당연히 속력이 높을 수밖에 없고, 보법류 룬의 보정을 받으면 반응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
그런 홀더에게 내 돌격을 피하는 것 쯤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근접 계열인데도 내 돌격을 맞받아치지 않았다.
일단 회피한 후, 빈틈을 노려 반격했다.
상대가 보유한 룬이나 스킬을 무시하지 않는 것.
탁월한 전투 감각과 자만하지 않는 자세였다.
‘빨리 방패를….’
그녀가 정말 [격투] 관련 룬을 보유하고 있다면, 단순 내구 수치만으로 버티는 건 하책이다.
방패를 든 순간엔 [방패]를 활용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방어였다.
다행히 내게도 보법류 룬은 있다.
[날렵한 몸놀림] 덕분에, 나는 신유나의 기습에도 늦지 않은 반응속도로 방어할 수 있었다.
깡- 깡- 까강-!!
찌그러질 것 같은 방패의 울림과 타격감이 고스란히 몸에 전해진다.
동시에 이어진 세 번의 공격.
마력이 담긴 강렬한 주먹이 세 차례 날아들었다.
이건 나도 잘 아는 스킬이다.
[격투] 계열 룬 레벨을 올리다 보면 얻을 수 있는 파생스킬, [연타]가 분명했다.
신유나가 격투 계열 룬을 보유했다는 게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어제 수리한 건데….’
방패가 망가진 느낌에 속이 쓰리다.
이 정도 타격감과 소리면 찌그러졌을 게 분명했다.
나는 방패를 내리고 잠시 주변을 살폈다.
어느새 신유나는 첫 공격을 마치고 나로부터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공격이 끝난 후.
빈틈을 주지 않고, 다시 방어 및 회피 자세.
아까도 느꼈지만 변수를 주지 않으려는 전투 방식이 돋보였다.
“흥. 무기 없다고 마법사 계열이라고 생각했나 봐? 시야가 좁네.”
신유나가 코웃음을 치며 날 봤다.
그리고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에 빠진 틈을 타, 자신의 마법가방에서 ‘너클’처럼 보이는 장비를 꺼내 손에 꼈다.
‘…너클을 지금 끼는 건 반칙이지.’
아무래도 날 방심에 빠뜨리기 위해 첫 공격엔 맨주먹을 쓴 모양이다.
…그 의도대로 내가 방심하기도 했고.
속으로 욕이 나왔지만, 내심 감탄했다.
‘게임 좆같이 하네’와 같은 느낌이 든다는 건.
그만큼 초반부터 대련 설계를 잘했다는 거니까.
열정적인 자세와 달리, 그녀의 전투는 꽤 침착하고 깔끔했다.
게다가 내 돌격을 의심하며 피하고, 그대로 방심한 틈을 타 반격, 다시 거리를 벌려 방어 자세에서 재정비하기까지의 과정.
같은 근접 계열 홀더로서 흠잡을 데 없는.
그야말로 근접 계열의 정석과도 같은 전투 방식이었다.
이제 막 <불의 심판>에 입단했다고 했나?
과연 국내 3대 클랜의 입단 심사를 통과한 게 납득이 됐다.
“또 그 이상한 돌격 같은 거 써봐. 이번엔 스트레이트 제대로 꽂아줄 테니까.”
“잘하긴 하는데 혀가 기네.”
“흥. 쫄았나봐?”
누가 주먹 쓰는 홀더 아니랄까 봐, 도발 실력도 만렙이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홉고블린의 청동 방패]를 마법 가방에 집어넣었다.
상대가 속력이 강점인 계열인 걸 알게 된 이상.
내 속력을 저하할 방패 사용은 지양하는 게 좋았다.
핵심 방어 스킬인 [철벽수비]를 안 쓰는 건 아깝지만, 어차피 반격을 못하면 막아봤자 의미가 없다.
“…방패를 넣어? 기권으로 봐도 되는 거지?”
“말 진짜 많네. 덤비기나 해.”
“흥.”
신유나가 본격적인 공격 자세를 취할 준비를 했다.
나도 양손검으로 자세를 바꾸기 위해.
방패를 쓰던 손을 검 손잡이로 옮기다가…
그대로 허리춤의 단검을 뽑아 신유나에게 날렸다.
“……?”
[쿼터 나이프].
네 자루 중 단 하나에만 마력이 집중된 룰렛형 스킬.
이제는 7레벨까지 오른 내 [단검]의 파생스킬이었다.
당황한 신유나가 네 자루의 단검을 피하려는 게 보인다.
2차전 시작이다, 신유나.
너도 페이크 맛 좀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