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0 진짜 인턴 맞아? (3)
신유나는 보법류 룬을 활용하며 간신히 세 자루의 단검을 피해냈지만, 허벅지로 향한 마지막 단검 한 자루는 피하지 못했다.
“큿….”
애석하게도 그 단검은 당첨 룰렛.
마력이 담긴 공격이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검을 든 채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파상검법]의 묘리로 거침없이 찔러들어 가는 검.
카가강-!!
신유나는 당혹스러운 상황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너클로 내 검을 막아냈다.
너클을 낀 주먹으로 내 찌르기를 막아낸 후.
그녀는 다시 한번 몸을 움직이려 했다.
빠른 속력을 이용한 격투술.
아까와 비슷한 양상이었다.
‘또 당하겠냐?’
이번엔 나도 방심하지 않았다.
[파상검법]을 활용해 검을 찌르면서, 마력을 끌어올릴 준비까지도 미리 마쳐 놨다.
‘마법 계열 룬도 써야 해.’
그동안 마법 계열의 마력 공격은 홀로 던전을 다닐 때만 썼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가릴 처지가 아니다.
상대는 전투에 능숙한 근접 계열 홀더고, 근접 계열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은 언제나 마력 공격이다.
나는 이번 대련에서 능력을 숨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여기서 인정받지 못하면, <불의 심판> 인턴을 하며 얻어갈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일단은 대련에서 이기는 게 최우선이었다.
화륵- 화르륵-!!
검의 끝자락에서 불길이 튀어나온다.
[이글거리는 불꽃].
스킬화된 마법까진 아니지만, 명백한 마력 공격.
거칠게 피어오른 불길은 그대로 검과 너클을 타고 넘어가, 신유나의 손목에까지 닿으며 피해를 줬다.
신유나에게 불 내성이 얼마나 있는진 몰라도, 5레벨에 다다른 내 [이글거리는 불꽃]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무슨…?!”
깜짝 놀란 신유나가 재빨리 내게서 벗어나려 했다.
“아직!”
어림도 없지.
아까처럼 너클 꺼낼 시간을 주는 건 한 번이면 족하다.
나는 그대로 자세를 틀어 [유수검법]의 묘리를 펼쳤다.
흐르는 물처럼 부드럽게 이어지는 검격.
그리고 [검]의 파생스킬, [연격].
찌르기에서 베기로 전환하는 내 자세는 가벼웠고, [연격]은 깔끔하게 세 번의 베기를 이어갔다.
‘아. 아쉽네.’
아쉽게도 모두 유효타가 되진 못했다.
신유나의 높은 속력 수치와 보법류 룬 활용은 내 검격으로부터 도망갈 시간을 벌어줬다.
대신 아까 단검이 박혔던 허벅지 아래 쪽을 두 번까진 베어낼 수 있었다.
“하아… 하아…”
한참을 멀어진 신유나가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너, 도대체…”
“말했지? 넌 말이 너무 많다고.”
또 말을 걸려는 신유나의 개수작을 사전에 차단했다.
이내 내 손에서 뻗어 나가는 세 자루의 단검.
아까 신유나가 피했던 단검들을 주워 곧바로 던지는 투척술이었다.
쿨타임 문제와 개수 부족으로 [쿼터 나이프]를 다시 쓰진 못하지만, 이 정도 투척술만으로도 충분히 그녀를 괴롭힐 수 있다.
그야말로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공격.
여기에 화가 안 나면 그건 보살이니까.
‘적중이네.’
예상했던 대로.
신유나는 짜증 섞인 얼굴로 단검들을 피하고 쳐냈다.
솔직히 [활]까지 써서 더 귀찮게 만들어 주고 싶은데, 숙련도 낮은 무기를 써봤자 나만 손해다.
한차례 몰아쳤던 공격이 끝난 후.
신유나는 잠시 오른손의 너클을 빼며 내게 말했다.
“쓸데없이 잔재주가 많네.”
“너클을 넣어? 기권으로 봐도 되는 거지?”
“…시끄러워.”
신유나는 으르렁대며 대답하고는, 오른손을 깊게 베이고 찔린 허벅지 쪽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그녀의 손에서 연녹색 빛이 어스름처럼 새어 나오더니, 내 검에 베이고 단검에 찔린 곳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피는 멎고, 상처는 아물어간다.
직접 전투 계열의 홀더라면 너무나 익숙한 광경.
신성 계열 [치유] 룬의 활용이었다.
“…성기사?”
“무투 사제라고 불러줄래?”
“쓸데없이 잔재주가 많네.”
“왜 자꾸 따라하는…”
기세등등한 신유나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미 그녀가 너클을 벗을 때부터.
난 [질주]를 활용하며 [무자비한 돌격]을 준비중이었기 때문.
아무래도 신유나는 신성 계열과 전사 계열을 겸하는 멀티 홀더인 모양이다.
하지만…
‘치료하기 전에 들이박으면 그만이잖아?’
아까처럼 방심하던 내가 아니다.
이젠 더 놀랄 거리도 없다.
성기사? 라고 물었던 건 그저 방심 유도였다.
아까 내가 당한 것처럼.
나는 전속력으로 돌격하며, 그대로 신유나에게 몸을 들이박았다.
덕분에 신유나는 치료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몸을 움직여야만 했다.
“이익… 아까부터 말하는 도중에…!!”
당황한 그녀의 말에 헛웃음이 나온다.
애초에 대련하는데 말이 왜 필요해?
말하다가 당하는 사람이 바보지.
나는 쉴 새 없이 공격을 이어갔다.
신성 계열을 겸하는 멀티 홀더?
치료할 시간을 안 주면 그만이었다.
* * *
“…거의 끝나가네요.”
무표정한 얼굴로 대련을 바라보던 강주연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바람직한 결과가 연무장을 덮고 있는 탓이었다.
함께 연무장을 지켜보던 권오준의 얼굴이 민망함으로 물들었다.
“멀티 홀더라는 말은 왜 안 하셨습니까.”
“…보고서 받을 생각도 없었으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권오준 홀더의 제안도 합리적이었으니까.”
연무장에서의 대련은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도재현.
처음 신유나의 페이크에 잠시 당황하던 그는, 이내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고 쉴 새 없이 그녀를 몰아쳤다.
비슷한 지구력을 지닌 홀더들이 대련을 이어가면.
결국 지치는 건 공격당하는 쪽이다.
신유나는 장기인 격투 룬을 활용하며 어떻게든 도재현의 공격을 받아치려고 했지만…
검과 단검, 베기와 찌르기, 물리 공격과 마력 공격.
상반되는 다양한 종류의 공격을 쉬지 않고 퍼붓는 그를 막아내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런 장기전에선 그녀의 또 다른 룬인 신성 계열의 활용도 큰 의미가 없다.
다치고 나서 치료를 할 틈이 전혀 없기에.
권오준은 그런 일방적인 대련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감탄했다.
“정말 인턴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의 홀더네요. 능력치와 룬 활용, 전투 감각. 모든 면에서 유나보다 뛰어납니다. 능력치만 보면 평범한 C급 이상이군요.”
“…신유나 홀더의 최종 면접을 권오준 홀더가 봤었나요?”
“예. 스카우트 쪽 조규혁 팀장의 요청에 참석했었습니다. 당시엔 신성 계열 룬과 격투 계열 룬을 동시에 완벽히 구사하는 천재라 생각해 데려왔었는데… 이거, 아가씨가 데려온 친구에 비하면 새 발의 피네요.”
그렇게 말하지만, 사실 신유나 역시 뛰어난 재능이다.
정석적인 전투 방식에 신성 계열 룬을 섞어 ‘성기사’ 계열과 같은 느낌을 낸 멀티 홀더.
특히 룬에 대한 이해도도 높고 능력치도 준수해 성장이 빠르다.
신유나는 최근 들어온 신입 중.
제일 먼저 B급 홀더로 승격할 것이라 평가받는 클랜원이었다.
다만 오늘의 상대가 안 좋았을 뿐.
“특히 저 불. 우리 클랜과 찰떡처럼 어울리는 저 불 계열 룬이 인상적입니다. 검과 단검, 그리고 방패까지 동시에 다루는 근접 계열 홀더가, 마력이 담긴 원거리 공격까지 활용할 줄 안다니. 이건 마치…”
“…성나연 홀더.”
“예. 로열 클랜의 성나연 홀더를 보는 것 같네요.”
<로열>의 A급 홀더, 성나연.
그녀는 바람 계열 마법과 검을 동시에 다루는 마검사로 유명했다.
두 개 이상의 무기를 다루는 멀티 홀더는 종종 있지만, 이렇듯 마력 계열과 물리 계열을 동시에 다루는 멀티 홀더는 흔치 않았다.
‘…신기해.’
강주연 역시 도재현의 불 계열 룬은 처음 본다.
도재현이 멀티 홀더로 아카데미에서 유명하기는 해도, 마법 계열 룬까지 쓸 줄 안다는 건 전혀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언제나처럼, 도재현은 자신의 룬을 활용하는 데에 있어 막힘이 없었다.
새로 선보이는 룬에도 숙련도가 상당해 보인다.
아직 배열에 관한 건 배우지 못한 듯, 특별한 마법을 펼치진 않았지만… 능숙하게 불을 활용하며 근접 계열과의 전투를 자신에게 유리한 구도로 끌고 갔다.
대련의 승기가 그에게로 기울고 있는 이유였다.
불을 다루는 도재현.
그 신기한 모습에 강주연은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어쨌든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아까의 제가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해, 너무 경솔했습니다.”
권오준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는 평소 장난기 많은 팀장이지만, 진지해야 하는 순간에 객관적으로 자신과 주변을 바라볼 줄 아는 홀더였다.
강주연은 그의 사과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대신…”
그녀의 시선이 연무장 한가운데로 향했다.
“도재현…도 제대로 환영해주세요. 저도 꽤 어렵게, 나름 억지로 데려온 홀더니까.”
클랜 마스터의 딸이자 후계자.
클랜에서 절대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는 강주연이, 처음으로 클랜에 영입한 인재다.
비록 인턴 클랜원이지만, 아까의 도재현을 향한 태도는 권오준도, 신유나도 모두 무례했다.
같은 클랜원을 대하는 태도치곤 너무 쌀쌀맞고 냉담했다.
때문에 강주연은 자신의 체면도 생각해 달라는 이야기를 돌려 말하고 있었다.
눈치 빠른 권오준은 그를 알아듣고, 더욱 부끄러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예. 죄송합니다. 유나에게도 제가 잘 말해두겠습니다.”
“사냥 작전 투입은 문제없을 거예요. 워낙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
“그럴 것 같습니다. 대련할 때 전투 감각을 보니, 평범하게 아카데미에서 교육만 받은 홀더가 아닌 것 같네요.”
캉- 카가강-!!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던 도중.
기어코 신유나의 한쪽 너클이 벗겨졌다.
회피에 한계를 느끼고 너클로 직접 검에 맞서다가, 결국은 마모되고 힘에 부쳐 장착이 풀어진 것이다.
아차, 싶은 순간.
도재현의 검이 틈을 놓치지 않은 채 신유나의 목까지 다가왔다.
스릉-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대로 목이 베일 것 같은 구도.
어떻게든 반격을 시도하려던 신유나는, 이내 체념한 채 남은 한쪽의 너클까지 벗었다.
기권과 다름 없는 패배 선언.
그걸 본 권오준은 연무장으로 내려가 짤막하게 선언했다.
“경기 종료. 도재현, 승.”
인턴 클랜원인 도재현의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