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1 새로운 효과 (1)
부산, 남포동의 한 숙소.
넓은 방 안.
김채은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마력을 운용하는 중이었다.
정선영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 고된 수련을 지켜봤다.
벌써 사흘째.
김채은의 수련을 전담 마크해 준 지 그 정도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유의미한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마법사 계열의 성장은 더디고 추상적인 편이었다.
가만히 바라보던 정선영이 말문을 열었다.
“더 정교하게. 대충 얼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마력을 쓰지 마. 얼음 계열 마법이 다른 마법보다 마력 컨트롤이 쉽다고 해서, 강도의 제어까지 쉬운 건 아니란다. 상대를 제압할 정도로만 사용할지, 혹은 강렬한 타격을 입힐 정도로 사용할지. 그 설정값은 채은이 네가 정하는 거야.”
“네…!!”
김채은은 고도로 집중한 상태에서도, 정선영의 말을 놓치지 않고 대답했다.
정선영은 그런 김채은을 내심 대견스럽게 바라봤다.
‘확실히 재능이 있어.’
정선영이 봤을 때.
김채은은 재능이 있는 홀더였다.
그녀를 일시적인 제자로 받고, 부산에 내려온 후 사흘.
옆에서 봤을 때 가시적인 성과는 없어 보이지만, A급 홀더인 정선영의 눈엔 미세한 변화가 분명 들어온다.
여타 C급 홀더에 비해 마력 수치가 더 높고, 얼음 계열 마법사치곤 마력 컨트롤이 뛰어나다.
또한 정선영이 가르치는 부분을 빠르게 흡수하며, 때론 자의적인 응용까지 시도한다.
처음 그녀를 가르칠 때만 해도 별다른 생각 없이 재밌어 보여 받았던 건데, 정작 뚜껑을 까고 보니 김채은은 한 명의 제자로서 부족함이 없는 아이였다.
‘룬이 노멀인 것도 신기하고.’
[빙결]이 마법 계열 룬중 꽤 희귀한 룬이긴 해도, 어쨌든 등급상으론 ‘노멀급’으로 판정되는 룬이다.
김채은 정도 재능 있는 홀더의 주력룬이 노멀룬이라는 건 꽤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장 정선영의 [얼어붙은 전장]만 해도 에픽급이니까.
그래도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각성 시 얻어지는 룬들이 가장 핵심이긴 하지만, 수련이나 성장 도중에 얻어지는 케이스도 상당히 많고, 운이 좋으면 던전 공략 중에 획득하게 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멀룬을 주력으로 다루고 있는 지금,
이렇듯 눈에 띄는 재능을 보였다는 점이 더 중요했다.
“그만. 잠깐 휴식.”
정선영이 손을 들며 신호를 줬다.
그 말에 김채은은 마력 운용을 멈추며 쌓였던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고생했어. 점점 좋아지네.”
“하아… 감사합니다. 하아… 선생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일시적인 사제 관계가 된 후.
김채은의 정선영을 부르는 호칭은 선생님이 됐다.
교수가 아니니까 교수님이라고 부를 순 없고, 전속 사제 관계도 아니기에 스승님이라고도 부를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건 선생님!
…이라는 논리로 호칭이 결정됐다.
정선영은 그냥 전과 같이 선배님으로 부르라고 했지만, 김채은의 고집을 말릴 순 없었다.
원래 이런 면에선 독불장군인 그녀였다.
“마력 호흡은 꾸준히 하고 있니?”
“네. 부산 온 이후로, 하루도 안 빠지고 하고 있어요.”
“그래. 누누이 말하지만, 전사 계열만 호흡을 쓰는 게 아니란다. 마력을 쓰는 계열의 홀더라면 누구나 마력 호흡을 습관화해야 해. 종종 호흡 도중에 자연의 마력 농도가 짙고 질이 좋으면, 마력 수치가 상승할 때도 있거든.”
마력을 사용하는 홀더들의 공통룬 [마력 제어].
이 룬의 대표적인 활용법으론 감응, 운용, 배열, 발현 등의 사용방식이 있다.
[마력 방어막]이나 [마력 결계]와는 달리, 스킬로 인정되지 않는 일종의 룬 고유능력들이다.
감응과 운용은 대부분 홀더들에게 적용되는 부분이고, 배열과 발현은 마법사 계열만이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그 외에도 ‘호흡’ 등의 특별한 사용방식이 있는데, 이는 단순히 마력과의 친화도를 높이기 위한 전사 계열들의 활용법으로 큰 효과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법사 계열에게도 중요해.’
하지만 정선영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는 마법사 계열도 호흡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마법사 계열은 반복 수련으로 강해지는 데에 한계가 있고, 때문에 대부분 수련보단 깨달음이나 재능에 몸을 맡기며 게을러지는 성향이 있다.
마력 호흡은 그런 게으름을 잡아주는 효과가 있었다.
이미 마력 친화력이 높은 마법사 계열에겐 별로 도움 되지 않지만, 김채은처럼 향상을 목표로 수련 패턴을 잡아야 하는 홀더에겐 꽤 중요했다.
“후우. 빨리 강해지고 싶어요.”
김채은이 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정선영은 그런 제자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목적이 있다곤 하지만, 어린 나이에 향상심이 뛰어난 친구다.
귀여워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렴. 지금의 네 능력도 충분히 또래보다 뛰어난 거야.”
“그래도… 빨리 B급 달고 싶거든요.”
“풋. 아카데미 수석이라는 그 동기 때문에? 강우현 홀더 딸이라고 했나?”
“…네.”
동기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B급까지 승급한 학생 홀더.
강주연.
김채은은 그녀를 따라잡기 위해 이토록 고된 수련을 마다하지 않고 달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건…
자유로운 성향의 정선영이 처음으로 제자를 받은 이유이기도 했다.
대구 경매장이 열리기 하루 전.
김채은은 ‘재현이에게 도움이 되는 홀더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찾아왔었다.
그 간절함이 기특했기에 받아준 제자 요청이었다.
정선영은 얼굴에 장난기를 가득 품고 다시 물었다.
“그래서? 재현이, 그 아이는 지금 불의 심판 인턴으로 들어가 있는 거니?”
“네.”
“어머. 그러다가 강우현 홀더 딸에게 뺏기면 어떡하니? 도둑고양이처럼.”
“…그럴 일 없어요. 아니, 아니! 애초에 뺏고 뺏기고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호호. 우리 제자, 귀엽네.”
오랜 시간 동안 김채은을 봐주느라 정선영 역시 체력 소모가 꽤 있었지만…
그녀는 왠지 모르게 조금도 힘이 들지 않았다.
스무 살짜리 학생 홀더들의 풋풋한 연애 이야기.
이는 홀더 생활에 찌든 그녀가, 하루를 버틸 수 있도록 해주는 신선한 활력소였다.
* * *
대련이 끝났다.
결과는 내 승리.
처음엔 페이크도 당하고 신성 계열을 겸한 멀티 홀더라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지만…
결국은 내가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일단 능력치에서 너무 많은 차이가 난다.
같은 전사 계열에 C급이라고는 해도, 나는 [구도자의 땀방울] 특수효과와 다양한 룬 획득으로 평범한 C급보다 훨씬 능력치가 높다.
근력, 속력, 내구 등 근접 계열의 핵심 능력치들.
속력은 신유나도 꽤 높은 것 같았지만, 그 외 대부분은 내 능력치와 꽤 차이가 났을 것이다.
‘능력치 차이 나면, 바로 위압 발동이지.’
[위압]은 능력치가 낮은 상대와 전투할 때 일정 퍼센트의 능력치를 보조받는다.
안 그래도 차이 나는 능력치가, 룬 특수효과로 더욱 벌어졌다는 뜻.
거기에 다양한 룬 활용.
[무자비한 돌격]으로 거리를 좁히며 쉴 틈을 주지 않았고, [이글거리는 불꽃]으로는 마력 공격을 더했다.
물리 공격도 막아내기 쉽지 않은데, 마력 공격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불 내성이 없는 신유나에게, 불 계열 마력 공격은 쥐약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대련이 끝난 지금도 온몸이 화끈화끈할 거다.
‘안 쓴 룬도 많은데….’
[소용돌이를 삼킨 파도]부터 [간단한 저주]나 [맹독] 등.
보유한 다른 룬들을 활용하지 않고도 이겼다.
심지어 확정적으로 공포 상태이상을 주고 시작하는 [위압]의 [선전포고]도 안 썼으니…
지금의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몸소 체험할 수 있는 대련이었다.
“저기…”
“응?”
가만히 서서 전투를 곱씹고 있는데, 누군가가 날 부르는 게 느껴졌다.
아까까지 신나게 나와 치고박고 싸우던 신유나였다.
그녀는 우물쭈물한 표정으로 힘겹게 내게 말을 꺼냈다.
“그… 미안해….”
“…예?”
뭐야, 갑자기.
날씨 바뀌어서 비라도 오나?
왜 이래.
신유나는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아까부터 계속 무시한 거… 네가 실력도 없는 낙하산이라고 생각해서 그랬어…. 미안….”
“아- 그거? 난 또 뭐라고. 신경쓰지 마. 어차피 나도 별생각 없어.”
정말 말 그대로 신경 안 쓴다.
난 도발이 전투의 일환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내가 그런 류의 싸움에 익숙하지 않은 풋내기였다면, 신유나의 도발은 충분히 먹힐 만한 작전이었다.
게다가 이제 막 들어온 신입 홀더 입장에선 내가 아니꼽게 보일 만도 하다.
실력도 없는 건 아니지만, 낙하산은 맞기도 하고.
그래서 신유나의 사과를 가볍게 받아줬다.
당당하고 확신에 차 있던 그녀가 이런 얼굴을 하니 그냥 신기했다.
“다들 고생 많았다! 멋진 대련이었다.”
이번엔 연무장 한쪽에서 권오준이 내려오며 말했다.
그 옆엔 강주연도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이미 대련 결과로 입증했으니 더 볼 것도 없겠지. 도재현, 아깐 무시해서 미안하다. 내 생각이 짧았다.”
게다가 이런 안 어울리는 인사까지 한다.
이 사람들… 도대체 왜 이래?
아까랑 너무 다르잖아.
그 옆에선 강주연이 아주 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저도 충분히 필요한 대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하, 그렇겠지. 그렇게 잘 싸우니까. 내가 인재를 몰라봤어.”
“과찬이십니다.”
확실히 성격이 밝은 사람이라 그런지, 꼬인 관계를 푸는 것도 금방이었다.
권오준은 호탕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아무튼 정식으로 다시 소개하지. 난 불의 심판 클랜 내 사냥 5팀 팀장, 권오준이라고 한다. 입구에서 인사해서 대충은 알지?”
“예, 도재현입니다.”
“늦었지만 우리 사냥 5팀에 온 걸 환영한다. 앞으로 잘해보자.”
나는 손을 맞잡으며 권오준과 신유나를 봤다.
아까까지만 해도 날 믿지 못하고 의심하던 사람들.
이제부터는 동료가 되어 함께 싸울 사람들이었다.
* * *
말 많고 탈 많던 대련이 끝난 후.
첫 출근은 내일 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고 우리는 해산했다.
아직 강주연에게 클랜 타워 소개를 다 받지 못했지만, 시간이 시간인지라 나중을 기약하고 오늘은 헤어지기로 했다.
“내 할 일은 아직 안 끝났지만.”
하지만 나는 모두와 헤어진 후.
클랜 타워 내 남자 화장실에 와 있었다.
홀로 저녁을 먹으려는 건 아니다.
아까 대련에서 승리하고 나서 미처 확인하지 못한 정보들을 다루기 위함이었다.
정신을 집중하자, 잠시 미뤄뒀던 황금색 정보창들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1.격투(선택불가) 2.전투치유 3.마력제어(선택불가) 4.영춘권 5.지구력 6.육탄방어(선택불가) 7.날렵한 몸놀림(선택불가)]
신유나의 룬 세팅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전사 계열의 공통룬을 대부분 보유하고 있었고, 속력을 보조해 줄 [날렵한 몸놀림]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력 전투룬인 [격투], 그중 권법에 해당하는 [영춘권].
마지막으로 신성 계열 룬인 [전투치유].
[격투]는 이미 보유한 룬이고, [영춘권]은 권법 계열 중 가장 기초적인 권법이다.
셋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희귀성이 짙어 보이는 [전투치유]가 가장 적합했다.
나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전투치유]를 선택했다.
드디어 내게도 신성 계열.
그중 치유와 관련된 룬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전투치유를 선택하셨습니다. 9레벨의 레어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해, 5레벨로 등록됩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신성을 4 획득합니다.]
과연.
일반적인 신성 계열 공통룬이자 노멀룬인 [치유]와 달리, [전투치유]는 레어룬인 모양이었다.
아카데미 과정을 모두 마친 신유나의 경력답게 레벨도 상당하다.
단숨에 5레벨로 획득하고, 신성 수치는 4를 얻었다.
뒤처져있던 신성 계열의 급격한 성장이었다.
“그럼 룬 정보를…”
이 정도면 가벼웠던 대련 치고는 대만족이다.
그렇게 웃으며 새 룬 정보를 확인하려던 순간이었다.
츳-
츠츠츳-!
그 순간.
갑자기 내 몸에서 차마 보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룬(Rune).
평소엔 살갗이나 외관에 스며들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룬’이, 예고 없이 빛을 발산하며 온몸에서 터져 나왔다.
하나, 둘, 다섯, 열…
몇 개일까?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개수의 룬이 빛나고 있었다.
온몸을 가득 메운 룬의 빛.
이 정도면 모든 룬이 빛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내.
웬 황금색 정보창이 눈앞을 어지럽혔다.
“이건….”
익숙한 색깔.
익숙한 형태.
이곳 세계에 떨어지고 난 후.
처음 [룬 사냥꾼]을 얻게 될 때와 비슷한 정보창이었다.
[룬이 새겨질 수 있는 부위가 가득 찼습니다. 한 개체가 보유할 수 있는 룬의 개수가 모두 채워집니다.]
[놀라운 업적! 선택받은 이들의 전유물인 ‘룬’을 한계(30)까지 얻어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최초의 업적으로 인해 특별한 힘이 부여됩니다.]
[룬 사냥꾼에 신묘한 힘이 깃들고 있습니다. 새로운 특수효과가 추가되어, 룬의 정보가 갱신됩니다.]
…또다시 예상치 못한 정보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