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63화 (63/353)

EP.63 새로운 효과 (3)

대방동의 사립 연무장.

내 자취 집이 있는 상도 근처에서 가장 큰 연무장이었다.

박진우는 문자를 보내자마자 달려왔는지, 어느새 연무장 한편에서 자리를 잡고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한결같은 열혈 홀더의 모습에 웃음을 지으며 나는 손을 흔들었다.

“여어.”

“오우.”

박진우는 집중을 풀고 내게 마주 손을 흔들었다.

녀석과의 대련은 틈날 때마다 한다.

한창 내가 10연승 넘게 이겨버릴 땐 재미가 없었지만, 박진우가 어느 날 [쫓을 수 없는 쾌검]을 홀로 익혀온 뒤로는 대련 수준이 비슷해졌다.

덕분에 총전적은 41전 30승 11패.

아직은 내가 앞서는데, 최근 전적으로만 따지면 비슷비슷했다.

“이번엔 내가 간다니까 왜 또 왔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에게 다가갔다.

아카데미에 있을 땐 내부 연무장에서 만나면 됐지만, 방학이 시작한 후로는 사립 연무장에서 대련하고 있다.

우리 집은 상도, 연무장은 대방동.

박진우의 집은 방배동 근방.

방학 후 두 번째 대련인데, 또 박진우가 이쪽으로 찾아왔다.

가까운 위치긴 해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박진우의 대답은 언제나 예상을 벗어난다.

“괜찮아. 여기까지 달려오는 것도 다 수련이지.”

“……?”

이게 뭔 개소릴까.

방배동에서 대방동까지 맨몸으로 왔다고?

순간 이해가 가질 않아 되물었다.

“뭔 소리야. 너 여기까지 걸어왔어?”

“하하하. 달려왔다니까.”

“…….”

정말 미친 걸까?

단순 거리만 거의 7km에, 걸어서 오면 2시간은 넘게 걸리는 곳을 달려왔다니….

나는 거기서 더 이상의 생각을 멈췄다.

역시 이 새끼는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되는 녀석이다.

“C급 승급은 해놨냐?”

박진우의 능력 수준도 어느새 C급 홀더를 넘어서고 있다.

일전의 나처럼, 그 역시 성과만 채우면 승급이 확정적인 상황.

그래서 저번에 만났을 때 빨리 승급해놓으라고 했었다.

녀석과 같이 가고픈 미발견 던전이 꽤 있기에.

하지만 어김없이.

박진우는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시간이 없어서.”

“아, 좀! 여기까지 달려올 시간에 좀 해놔라. 네 실력에 그거 성과 올리는 거 뭐 귀찮다고.”

“수련할 시간도 부족해!”

“진짜 미친놈….”

쓸데없이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더 열 받는다.

에휴.

언젠가 알아서 하겠지.

놔두면 뭐든 알아서 쭉쭉 향상시키는 녀석이니까.

나는 천천히 등 뒤의 검을 꺼내 들었다.

“바로 뜨자. 마침 싸우고 싶었거든.”

“오우. 바라던 바지.”

우리는 연무장 한편에 자리한 대련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은 이용료만 내면 부담 없이 대련하기에 편한 장소다.

실내 연무장이라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 쓸 일도 없어 더욱 편했다.

특히 나는 다양한 룬을 활용하는 멀티 홀더라, 내 전력을 누군가에게 보인다는 것에 괜한 거리낌이 있었다.

자리에 선 박진우가 진지한 눈빛으로 검을 바로 잡았다.

아깐 몰랐는데 녀석의 검이 상당히 좋아 보인다.

얼핏 봐도 괜찮은 노멀급, 아니 레어급인가?

유복한 집의 아들답게 장비에 쓰는 돈에 거침이 없었다.

“규칙은 예전에 했던 그대로 아카데미 대련 룰. 급소 공격은 금지 이외의 모든 공격 허용.”

“심판은 우리 눈으로, 맞지?”

“푸흐- 그래, 맞다. 그리고 기권은 자유.”

물론, 이렇게 말해도 기권이 나온 적은 한 번도 없다.

41번의 대련 동안 우리는 싸움에 미친 놈들처럼 치고박고를 반복했다.

누구 하나 지쳐 쓰러질 때까지.

혹은 목에 검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계속 싸운다.

기권 없는 우리만의 대련 방식이었다.

“네가 시작할래?”

“어.”

박진우가 짤막하게 대답하곤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나도 꺼내든 검을 양손으로 붙잡고 마력 투입을 준비했다.

이 녀석과 대련할 땐 긴장하고 집중해야 한다.

신유나를 상대할 때완 차원이 다르다.

같은 C급이라도 월등한 능력치와 룬 활용.

내게 해당하는 말이지만, 박진우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었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대치 상태에 빠진 우리.

그사이에 흐르는 침묵.

이내, 적막이 끝났다.

“시작.”

박진우가 사인을 줬다.

그리고 이내 쏜살같이 달려오는 박진우.

돌격류 룬을 쓴 걸까?

그의 높은 속력 수치를 고려해도 엄청난 속도였다.

나는 곧바로 [유수검법]을 펼칠 준비를 했다.

아마 박진우는 달려오면서 곧바로 [쫓을 수 없는 쾌검]을 활용할 거다.

[유수검법]은 [쫓을 수 없는 쾌검]에 살짝 밀리는 레어룬이지만, 속력을 기반으로 펼치는 유사한 형태의 검법이기에 이를 상대하기 가장 적합했다.

“흐읍…!!”

“하압…!!”

숨을 참고 녀석의 검을 기다리니, 퍼즐처럼 박진우의 검이 찔러 들어온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

[쫓을 수 없는 쾌검]의 특징이다.

나는 [유수검법]을 펼치며 감각에 몸을 맡겼다.

녀석의 검은 확실히 과도하게 빠르지만, 이제는 꽤 익숙해진 내 몸이 녀석의 검로를 기억했다.

챙- 카강, 카가가-!

가볍게 부딪히는 박진우의 검과 내 검.

여기까진 에피타이저.

진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하앗…!!”

휘몰아치던 박진우의 검이 문득 사라진다.

그리고 온몸을 회전시키듯 돌리는 박진우.

녀석은 순식간에 내 앞에서 벗어나 등 뒤로 향했다.

‘뻔하다, 뻔해.’

[회전 연격]이다.

[쫓을 수 없는 쾌검]의 파생스킬.

몸과 검을 일체화해 소용돌이처럼 회전시킨 후, [연격]과 비슷한 동시 타격을 끊임없이 가하는 스킬.

나는 박진우가 대련이 시작하고 곧장 이 스킬을 사용할 줄 알고 있었다.

‘저번엔 대련 끝날 때까지 아껴뒀으니까.’

박진우는 얼핏 멍청해 보여도, 전투에선 날카롭고 번뜩이는 센스를 발휘하는 홀더다.

당연히 같은 상대와의 대련에서 심리전도 자주 건다.

저번 대련 때는 [회전 연격]을 끝까지 아껴두다가 마지막의 마지막에 썼었다.

그렇다면 이번 대련은 시작하자마자 쓸 가능성이 있었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녀석과의 대련도 벌써 41번째다.

이제는 박진우의 생각이 대충은 읽힌다.

심리전도 걸 사람한테 걸어야지, 임마.

“핫…!!”

[날렵한 몸놀림]으로 박진우의 움직임을 최대한 따라간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얻은 룬.

[무술의 달인]의 특수효과, 일명 무구 교체술.

양손으로 붙잡던 검을 오른손으로 옮긴 후.

왼손에 방패를 떠올려 꺼내 들었다.

[홉고블린의 청동 방패]가 왼손에 들리기까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엄청 빠른데?’

무구가 교체되는 속도가 예상외로 꽤 빠르다.

살짝 버벅거리는 느낌은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전투에서 활용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새로운 효과치고 대만족이다.

나는 왼손에 들린 방패를 앞 방향으로 쭉 내밀었다.

‘바로 철벽수비!’

연이어 [철벽수비]를 사용한다.

이제는 [무술의 달인]의 하위룬이 된 [방패]의 파생스킬.

기존의 위력보다 두 배 더 높은 힘까지 막아낼 수 있다.

[단단해지기]와 더불어, 내가 지닌 방어 스킬 중 가장 뛰어난 스킬이었다.

캉! 캉! 캉!

카강! 카강! 카강!

그그그그-!!

박진우의 [회전 연격]이 [철벽수비]에 가로막혔다.

궁극스킬이었다면 막기 어려웠겠지만…

다행히 [회전 연격]은 일반 파생스킬이었다.

“후우… 후우… 뭐냐, 그거?”

한 차례 휘몰아친 공격이 허무하게 막힌 후.

박진우가 거리를 벌리고,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분명 검을 맞댈 때만 해도 양손검을 쓰던 내가, 어느새 한손에 방패를 들고 있는 게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뭐긴 뭐냐, 방패지.”

“언제 꺼냈냐? 분명 검만 있었는데. 이거 뭐야. 마술이야?”

“푸하하, 미친. 룬 홀더라는 놈이 마술 이러고 있다.”

박진우를 한껏 놀렸지만, 사실 나도 놀랐다.

[무술의 달인]의 특수효과 중 하나일 뿐인 ‘무구 교체술’이 이 정도로 뛰어난 활용도를 보일 줄은 몰랐다.

물론, 당장 이걸 시험해보고 싶어서 오늘 박진우와 대련한 거긴 한데… 어쨌든 목적 자체는 성공이었다.

“아니, 그래서 뭔데. 알려줘. 룬이야?”

“모르면 맞아야지. 딱 대. 오늘부터 다시 10연승 달린다.”

“쉣.”

나는 그대로 [질주]와 [무자비한 돌격] 콤보를 활용했다.

첫 공격을 가할 땐 돌격 시 물리 공격을 무시하는 이 콤보가 최고다.

드드드드-!!

쿵!

“또 그거냐? 이미 파악 완료다, 이 자식아.”

박진우가 여유롭게 내 돌격을 피해냈다.

[무자비한 돌격]의 물리 공격 무시는 언뜻 무적처럼 보이는 효과지만 분명 파훼법이 있다.

일단 마력 공격에 취약하다는 게 첫째고, 두 번째는 돌격을 못 하는 상황에서 효과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때문에 첫 돌격 시 맞부딪치지 않고 피해낸 후.

돌격할 각 자체를 안 만들어 주면 끝이다.

즉, 계속해서 각이 안 나오게 거리를 좁히면 된다.

확실히 내가 녀석의 전투에 대해 잘 아는 만큼, 이제는 녀석도 내 전투에 대해 잘 안다.

이 콤보의 파훼법 정도는 이미 숙지 완료한 박진우였다.

‘백병전 선언을 못 써보는 게 아쉽네.’

[무술의 달인] 파생스킬, [백병전 선언]은 10분간 원거리 물리 공격을 무시하는 스킬이다.

원거리에게만 해당할 뿐.

근거리 공격은 데미지가 들어온다.

그래서 박진우와의 전투에선 써먹을 수가 없었다.

아쉽다.

이거 보여주면 저 자식 진짜 놀랄 텐데.

‘그래도 놀랄 게 아직 더 남아있긴 하지.’

일전의 박진우와의 전투에서 [이글거리는 불꽃]은 보여준 적이 있다.

놀라울 정도로 성장해버린 녀석과의 대련에서 승리하려면, 그 정도 카드는 꺼내야 했으니까.

내 다양한 룬들을 보여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박진우는 내가 이곳 세계에서 김채은 다음으로 신뢰하는 친구이고, 사실상 C급 홀더 중에 이 녀석 말곤 나와 대련할 만한 홀더가 없으니까.

게다가 훈련이나 성장 말고는 다른 데에 관심이 없는 단순한 놈이라, 내가 새로운 룬을 계속 보여줘도 놀라기만 할 뿐 별다른 액션이 없었다.

‘그래도 이번 건 좀 많이 놀랄걸.’

잠시 소강상태인 틈을 타.

나는 미리 가져온 물병을 열었다.

이내 연무장에 쪼르르- 떨어지는 물.

그걸 보던 박진우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냐, 그건 또?”

“네가 좋아 죽을 만한 거.”

스스스-

바닥에 떨어진 물이,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천천히 움직이던 물은 이내 빠른 속도로 변환하더니 어느덧 내 등 뒤쪽에 파도처럼 몰려들었다.

[소용돌이를 삼킨 파도].

그중에서도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는 [뉴 웨이브]의 발현이었다.

“오우, 씨…바. 이게 무슨….”

멍하니 물길을 바라보던 박진우가.

감탄하며 극찬을 했다.

이럴 줄 알았다.

역시 좋아하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