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6 불의 심판 (2)
“아, 안녕하십니까, 강주연 홀더님.”
갑작스러운 강주연의 등장에 신유나가 고개를 숙였다.
강주연은 뭔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답했다.
“…네, 반가워요. 신유나 홀더.”
“어디 갔다가 이제 온 거야? 하루 내내 안 보이던데.”
듣기로는 강주연도 나와 함께 사냥 5팀에 배정됐다고 했었다.
그래서 어제 못다 한 클랜 타워 소개도 받을 겸, 그녀와 같이 출근하려 했었는데…
아침부터 코빼기도 안 보이던 그녀였다.
강주연은 내 물음에 고개를 돌렸다.
“…곧 있을 사냥 5팀 작전 투입 관련해서, 마스터랑 이야기할 게 있어서.”
“작전? 그거 내일 회의한다고 하던데.”
“그건 내부 계획 점검 회의고, 이미 투입 인선은 선발이 끝났어.”
사냥 5팀 작전 투입.
그리고 인원을 선발할 정도의 작전.
<불의 심판> 규모를 생각하면, 던전 공략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나는 살짝 기대감 어린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응. 네 문제로 얘기가 길어졌어. 인턴 클랜원을 바로 작전 투입하는 건 너무 이례적이라서.”
예스!
나는 속으로 환호하며 최대한 티를 안 내려 노력했다.
여기까지 듣고도 눈치 못 채고 ‘나 그럼 된 거야?’라고 묻는 건 하수다.
이 정도로 얘기가 됐으면, 높은 확률로 아마 나도 공략 투입 인선에 포함됐을 것이다.
하루만 일해도 진절머리가 나는 클랜 생활이었는데, 하루도 안 돼 파견을 나갈 탈출구가 생겼다.
‘이래서 강주연, 강주연 하는구나….’
강주연은 딱딱하고 차가운 성격이지만, 자기와 뜻이 맞다 생각하는 이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한 번 그녀의 관심을 사니,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된다.
클랜 인턴도 그렇고, 바로 작전에 투입되는 것도 그렇고….
역시 사람은 기회를 잘 잡아야 하는 것 같았다.
“…근데 지금까지 신유나 홀더랑 같이 있던 거야?”
문득 강주연이 나와 신유나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왠지 모르게 목소리에서 냉기가 느껴지는데…
착각인가?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의 말에 긍정했다.
“어. 오리엔테이션 맡아 줄 임시 사수로 연결됐거든. 너도 동의한 내용이라던데?”
“부족하지만 클랜과 사냥 5팀에 대해 최대한 정확하게 교육했습니다…!”
신유나가 깍듯한 자세로 대답했다.
저 정도면 거의 첫날 1층 가드들의 태도다.
나야 강주연과 동기지만…
신유나 입장에서는 소속 클랜 최고 권력자의 딸이자, 앞으로 모시게 될 수도 있는 후계자.
알게 모르게 군기가 들 수밖에 없었다.
강주연도 신입 클랜원들의 이런 태도가 익숙한 모양이고.
그런데 우리의 대답을 들은 강주연의 표정이 묘했다.
그녀는 살짝 시선을 돌린 후.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법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같이 밥까지 먹으라고 한 적은 없는데.”
…예?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데.
분명 뭔가 말했었는데….
상당히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깊게 캐묻지는 않았다.
묘하게 차가운 분위기를 뒤로 한 채.
강주연이 가방을 고쳐 잡으며 말했다.
“…가자. 클랜 타워 소개, 계속해줄게.”
“오늘 소개의 첫 타자는 구내식당이야?”
“응.”
이런저런 잡담을 하느라, 벌써 사냥 5팀 팀원들이 나간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지금쯤 구내식당에 도착하면.
아마 기다리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강주연.
그리고 자신이 뭔가 잘못한 건가 싶어, 안절부절못하는 중인 신유나.
우리 셋은 구내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클랜 타워 11층.
클랜 내 구내식당.
우리는 식당 한쪽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눈앞의 화려한 음식들을 보며…
내 입에선 당황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와…규네?”
커다란 접시에 예쁘게 놓여 있는 붉은 소고기.
그 옆, 숙주를 비롯한 다양한 채소.
갖은 소스와 주변을 장식하듯 자리한 고급 반찬들.
그리고 테이블 중앙에 자리한 작은 화로.
화로 안에 더미처럼 놓인 숯.
윗부분을 차지한 깨끗한 철판.
완벽한 와규(*일본식 소고기)의 조리 세팅이었다.
“…자주 이렇게 나와.”
강주연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 말에 내 얼굴은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아니, 무슨.
클랜 내 구내식당 점심으로 와규가 나와.
돈 많은 대형 클랜답게 통이 큰 건가?
아니면 <불의 심판>이라는 이름답게 불 쓰는 요리를 선보이는 건가…?
하지만 신유나는 이런 광경이 꽤 익숙한지.
자연스럽게 자신이 집게를 들며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맘을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놀랄 거 없어. 나도 처음엔 놀라긴 했는데, 홀더들 수입 생각하면 당연한 거라서.”
“수입?”
“응. 다들 기본급 연봉만 해도 10억은 가벼운 편이고, 사냥팀처럼 현장 뛰는 홀더들은 부수입도 엄청나잖아. 워낙 수입이 많다 보니까, 클랜 내 구내식당 메뉴도 이렇게 화려한 편이야.”
구내식당 메뉴가 맛없으면 클랜원들은 굳이 구내식당에 올 필요가 없다.
차고 넘치는 게 돈이고, 밖에서 사 먹으면 그만이니까.
그래서 클랜에선 추가 복지 차원으로 이런 고급 음식들을 제공한다… 라는 게 신유나의 설명이었다.
그제야 이해가 간다.
하긴.
‘구내식당에서 먹는 와규’가 너무 충격적이라 그렇지, C급 이상의 돈 잘버는 홀더들에게 이는 크게 비싼 음식도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유나에게서 집게를 가져왔다.
“내가 구울게.”
“어? 아니야. 우리 클랜은 그런 문화 없…”
“내가 잘 구워서 그래.”
고기야 어떻게 먹든 맛있겠지만, 기왕이면 취향에 맞게 잘 굽는 게 더 맛있지 않겠는가.
[요리]의 영역은 그 범위가 의외로 넓었다.
치이이-
치, 치익-
가볍게 버터를 한 바퀴 두른 후.
두툼한 소고기를 철판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미 고기를 양념할 소스들은 테이블에 충분하지만, 나는 소금과 후추를 조금씩만 뿌리며 미리 간을 했다.
첫 시식은 고기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소스 없이, 구워진 고기 그대로 먹을 수 있게 하는…
나만의 로스트 스타일이었다.
<불의 심판>에 꼰대 문화는 없다며 자기가 굽겠다던 신유나도, 능숙한 내 조리 실력을 보더니 어느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내게 말을 건넸다.
“저기, 도재현…”
“엉?”
“나는 그… 미디움 웰던으로….”
“푸흡- 알았어.”
강주연은 말하지 않았지만, 미디움 레어일 것이다.
그녀와는 저번에 레스토랑에 함께 간 적이 있어 스타일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고기들이 알맞게 익어 갈 무렵.
강주연이 아까 잠깐 얘기했던 화제를 다시 꺼냈다.
“이번에 사냥 5팀이 투입될 작전은… 아마 클랜에서 미공략 상태로 남아있는 던전이 될 거야.”
작전의 내용은 예상했던 대로 던전 공략.
그중에서도 아직 공략이 완료되지 않은 클랜 소유 미발견 던전인 모양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첫 임무의 중요성이 상당히 컸다.
나는 고기를 뒤집으며 물었다.
“벌써 말해줘도 되는 거야?”
“응. 어차피 내일 작전 회의에서 바로 발표될 거니까. 이번 작전에는 도재현, 그리고 신유나 홀더도 함께 투입될 거예요.”
그 말에 신유나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저, 저도 말입니까…?”
“네.”
뭘 그리 놀랄까.
나랑 같은 등급이면서.
오전 신유나의 교육대로라면, 사냥 5팀 인원들은 B급 인원과 C급 인원으로 나뉜다.
아마 홀더들의 등급과 사냥 효율을 조율하기 위해서겠지.
그중 신유나와 나는 C급 인원.
투입되는 작전이 같을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투입되는 파티는 B급 파티일 거야.”
“B급 파티?”
“응. 이번에 공략하려는 던전 내 괴수들이 주로 B급 괴수에, 종종 A급 괴수들이 나오곤 해. 아마 던전 보스도 A급으로 예상 받고 있어서, 이번 파티는 너와 신유나 홀더를 제외하면… 전부 B급 인원으로 구성될 거야.”
이건 의외다.
B급 파티에 A급 홀더가 리더 격으로 들어가는 경우는 있어도, C급 홀더들이 파티원으로 선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C급과 B급은 그만큼 간격이 큰 등급이다.
그런데 유망주라곤 해도 C급 홀더인 나와 신유나가 B급 파티에 낀다니…
이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아마 이래서 오늘 강주연의 오전 업무가 늦어졌나 보다.
“근데 나랑 신유나로 괜찮을까? 아무리 우리가 실력이 좋아도, B급 파티에 낄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
“괜찮아. 권오준 홀더가 파티장 및 전사 계열로 참여할 거니까.”
“아…!!”
가만히 듣던 신유나가 손뼉을 쳤다.
“그래서 저희를 투입한 거네요!”
“네. 이번 작전은 던전 공략의 이유도 있지만, 신유나 홀더의 성장에도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아무래도 권오준 홀더가 A급으로 승급하고, 새로 팀장이 되면서… B급 전사 계열 인원이 비게 됐으니까요.”
“그렇구나… 열심히 하겠습니다…!!”
신유나가 두 손을 모으며 말했고, 강주연은 왠지 부담스러운지 내가 굽는 고기로 시선을 돌렸다.
잘은 모르겠지만, 권오준이 팀장이 되며 사냥 5팀 B급 전사 계열의 인원이 공석이 된 모양이다.
그래서 인원 보충 요청을 했었고, 거기에 임시로 강주연과 내가 들어가게 된 것.
그쯤 되니 어제 권오준 팀장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B급 인원을 달랬더니, C급에 인턴… 그것도 두 달짜리를 줬다.
확실히 그의 입장에선 빡칠 만한 인사 발령이었다.
“내일 작전 회의하고, 모레 바로 파견이니까… 미리 준비하고 있어 둬.”
“오케이.”
“알겠습니다…!!”
<불의 심판> 입단 3일 만의 던전 파견.
두근거리는 그 소식을 모두 전하며.
강주연은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잠시 늦춰 놨던 식사의 재개였다.
치이이-
지글거리는 소리로 철판에서 익어가는 소고기.
나는 나이프로 그들을 먹기 좋게 잘라낸 후.
그릇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먹기 좋은 음식은 보기에도 좋아야 한다.
데코레이션은 내 요리의 철칙 중 하나다.
예쁜 그릇에 보기 좋게 담기는 와규.
만족스러운 외관이었다.
그리고 고기가 놓이기 무섭게…
강주연과 신유나의 젓가락은 빛의 속도로 움직였다.
속력을 활용하는 건가?
그런 의심이 들 정도로.
빠르고 정확한 움직임이었다.
덕분에 그릇에 남아있는 소고기는 하나도.
단 하나도 없었다.
“…….”
나는 멍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
고기 굽는 사람한테 먹여주고, 뭐 그런 건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