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67화 (67/353)

EP.67 뱀이 뒤덮은 숲 (1)

다음 날, 클랜 타워 33층.

나는 아침 일찍 회의실로 올라와, 신유나와 함께 신입이 해야 할 일들을 정리했다.

일이라고 해봤자, 공략 계획 보고서를 자리에 까는 정도.

사실 이것도 수평적인 클랜 문화에서 필수적인 건 아니고, 신유나가 ‘신입이라면 이런 건 나서서 해야 해!’라고 말하며 날 잡아끈 것뿐이었다.

이번 작전 회의 인원은 총 8명.

공략 파티에 참여하는 모든 인원이 참석했다.

오전 9시가 되기 전.

클랜원들은 속속 회의실에 도착했다.

개중에 강주연도 있어 눈인사로 인사를 대신했다.

사냥 5팀 팀장이자 파티장인 권오준은 마지막으로 왔다.

그가 회의실에 들어오며, 작전 회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탁-

권오준은 오자마자 서류를 테이블에 소리 나게 놓았다.

“우선 공지사항부터 전달할게. 이번 작전의 파견 날짜가 앞당겨졌다. 내일이 아닌, 오늘 오후에 출발이야. 이건 상부에서 내려온 확정적인 사항이기 때문에, 논의 자체가 불가해. 그러니 다들 오늘 오후까지 파견 준비 마칠 수 있도록.”

이어지는 일정 변경 공지.

예정일보다 하루가 앞당겨진…

당장 오늘에 해당하는 날짜다.

하지만 그리 놀랄 일까진 아닌 건지,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변경 사항에 수긍했다.

물론, 의문을 품는 클랜원도 있었다.

“팀장님. 혹시 날짜 변경의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내 자리의 왼쪽 대각선에 자리한 홀더.

신유나가 건네준 책자에 의하면, 사냥 5팀 내 궁수 계열 B급 인원인 민채환 홀더였다.

민채환, 민채환…

분명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인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책자를 읽을 때도 묘한 느낌을 받았었다.

아마 머릿 속에서도 희미한 기억인 걸 보면.

원작에서 스쳐 지나갔던 엑스트라 중 한 명 아닐까.

어쨌든 손을 든 민채환의 질문에 권오준은 딱 잘라 말했다.

“넌 방금 뭐 들었냐? 논의 자체가 불가하다고. 상부 지시 사항이야. 토 달지 말고 바로 파견 준비해.”

“…알겠습니다.”

권오준의 날 선 대답에 오히려 내가 놀랐다.

‘너무 세게 말하는 거 아니야?’

아무리 권오준이 후배들에게 스스럼없이 반말하는 팀장이라지만, 과하다 싶을 정도의 반응이었다.

민채환이 권오준에게 뭔가 책 잡힌 게 있나 싶을 정도로.

그러나 민채환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수긍했다.

여느 때처럼 익숙한 상황인 모양이었다.

그를 끝으로 권오준의 작전 회의 설명이 재개됐다.

“우리가 이번에 공략하려는 던전의 위치는 종로 인왕산 필드 중간부에 있다. 기억하는 녀석들도 있겠지만, 일전에 사냥 4팀이 공략했던 호랑이 소굴 던전과 비슷한 위치다.”

회의실에 모인 클랜원들이 기억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공략 계획 보고서를 넘기며, 그의 말에 집중했다.

인왕산 필드.

산꼭대기에서 S급 괴수 ‘사신수 우백호’가 나타난다는 소문이 있는 결계 밖 필드.

물론, 아직 우백호를 발견했다는 홀더는 없다.

전부터 호랑이 괴수들이 잦은 필드로 유명한 산답게, 이 필드엔 호랑이와 관련된 던전도 꽤 많은 편이었다.

그중 ‘호랑이 소굴’ 던전은 <불의 심판>에서 몇 개월 전 공략을 마무리하고, 주력으로 수익을 내고 있는 던전 중 하나였다.

탁-

삐이이-

권오준이 잠시 계획서를 내려놓고, 빔 프로젝터를 켰다.

이번 파견 목적지에 대해 자세하게 정리된 PPT.

그 안엔…

독특한 모습의 ‘뱀’의 사진들이 띄워져 있었다.

“위치는 비슷하지만, 출현 괴수와 던전의 특성은 전혀 다르다. 보이는 것처럼 주요 출현 괴수는 뱀이다. 던전의 가칭은 ‘뱀이 뒤덮은 숲’으로 정해졌다.”

삑-

권오준이 포인터를 사용해 슬라이드를 넘긴다.

첫 번째로 보인 괴수.

기다란 몸통과 꼬리.

그에 반해 넓적한 안면부를 지닌 뱀.

B급 괴수 래피드 코브라였다.

“래피드 코브라는 이름처럼 속력에 치중된 뱀 계열 괴수다. 뱀 새끼들 빠른 거야 워낙 유명하지만, 이놈들은 유난히 빨라. 아마 관련 룬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 신유나, 도재현.”

“네!”

“예.”

갑작스러운 부름에 재빨리 답했다.

권오준은 나와 신유나를 번갈아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너희는 나와 함께 이번 작전의 3명뿐인 전사 계열이다.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탱킹에 임해야 한다. 너희가 빠른 속도에 당황해 괴수들을 놓치면, 그 공격은 우리 파티 후방으로 향한다는 걸 명심해라.”

“네, 명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권오준이 겁을 주긴 했지만, 나도 신유나도 그리 쉽게 당황하진 않을 것이다.

일단 둘 다 보법류 룬인 [날렵한 몸놀림]이 있다.

룬을 통해 빠른 속도의 공격에도 어렵지 않게 대처할 수 있고, 여차하면 방패를 들어도 된다.

특히 신유나는 속력 수치에 특화된 홀더이기에 ‘회피형 탱킹’으로 얼마든지 괴수들을 유인할 수 있을 거다.

‘나야 뭐… 여차하면 마력 공격 사용해도 되니까.’

이미 내 룬의 다양성을 권오준도 본 이상.

멀티 홀더로서 거리낄 게 없었다.

막말로 내 [이글거리는 불꽃]은 우리 파티 마법사 계열들보다 더 빠르게 발현된다.

마법을 시전하지 않고, 마력만 발현하니까.

나나 신유나나, 평범한 C급 홀더보다는 수준이 높은 홀더들이었다.

짤막한 경고 이후.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B급 괴수, 그린 아나콘다는 초입과 중간을 아울러 나타난다. 그린 아나콘다는 래피드 코브라와 다르게 속력이 과도하게 느린 대신, 내구가 높고 단단한 근력을 지녔다. 특히 마력 공격을 퍼부을 땐 까다로우니까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 … 마찬가지로 중간부에 주로 출현하는 B급 괴수 메가 스네이크는 … … ”

회의라기보다 통보 및 교육에 가까운 시간.

약 2시간 정도가 진행됐다.

권오준의 설명과 PPT 자료는 깔끔했다.

다양한 뱀 계열 괴수들과 그들의 특징.

던전의 특수한 성질 등이 일목요연하게 PPT에 정리되어 있었다.

꽤 지루한 설명이어도, 파티원들의 목숨과 연결되는 내용이라 권오준은 조금의 실수도 놓치지 않기 위해 꼼꼼하게 설명을 마쳤다.

그는 마지막으로 정찰이 완료되지 않은 괴수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중간부에선 가끔 A급 괴수인 바실리스크도 출현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확인되진 않았지만, 보스룸 괴수도 아마 A급으로 예상 받고 있어. 공략 계획 보고서에 괴수들의 특징과 약점, 관련 모든 사항이 적혀있으니까… 다들 오후 파견 전까지 종이가 닳아지게 외워라. 알았냐?”

“예!”

“알겠습니다…!!”

활기 넘치는 몇몇 파티원의 우렁찬 대답이 울렸다.

나, 신유나, 권오준의 전사 계열.

강주연, 그리고 김성철이라는 홀더의 마법사 계열.

신성 계열의 이수미라는 홀더.

암살자 계열의 최동욱이라는 홀더.

마지막으로 아까 질문하던 궁수 계열의 민채환까지.

총 8명의 파견 및 공략 파티 인원이었다.

권오준은 인원을 점검한 후.

테이블을 가볍게 치며 회의의 끝을 알렸다.

“각자 오전 준비 시간과 점심 알아서들 해결하고, 오후 2시까지 인왕산 필드 입구로 모여라. 그럼 해산.”

뱀이 뒤덮은 숲.

<불의 심판>에 인턴으로 들어온 후, 운 좋게 시작부터 맞이하는 던전 공략이었다.

* * *

던전 공략에 따로 필요한 건 없었다.

가진 장비가 충분해서 최유민을 만날 필요도 없었고, 저번 스월 레비아탄 사냥으로 망가졌던 장비들도 모두 수리가 끝난 상태였다.

늦은 파견 때문에 던전 내에서 야영하게 될 수도 있다는데, 그에 관한 건 이미 아침에 신유나와 함께 준비를 마쳤다.

필요한 건 자신감과 적절한 긴장감 뿐이었다.

“…그렇게 긴장 안 해도 돼.”

옆에서 걷던 강주연이 말을 건넸다.

인왕산 필드 입구까지 딱히 같이 갈 사람이 없어, 강주연과 함께 가는 중이다.

이제는 나도 나름 그녀와 친해지기도 했고, 둘이 있어도 별로 불편함이 없기에.

어제와 달리 오늘 강주연의 분위기는 한결 편안해 보인다.

내게 이런 조언을 먼저 건네는 걸 보면 말이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신유나가 자리에 없었다.

진짜 어제 신유나 때문에 화났었나?

“여러 가지 상황이 받쳐주긴 했지만… 넌 A급 괴수도 혼자 사냥해 본 경험이 있잖아.”

“그건 진짜 운이 좋았어.”

얘는 대체 언제적 얘기를 하는 걸까.

지금 와서 다시 그리즐리 드레이크를 잡으라고 하면 죽었다 깨어나도 못 잡는다.

…아닌가?

가진 룬을 모두 쏟아부으면 어떻게든 될지도…?

어쨌든 A급 괴수를 혼자 사냥한다는 건.

그때보다 훨씬 성장한 지금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알아. 그래도 어쨌든 평범한 C급 홀더보단 뛰어나다는 거고, 그건 B급 파티에 민폐가 되지 않을 정도라는 거니까… 그런 것들을 고려해서, 도재현. 네 파티 투입을 주장한 거야.”

강주연이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살짝 머금으며 말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땐 이런 표정 변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오랫동안 그녀와 여러 사건으로 만나다 보니 보이기 시작한다.

강주연은 크게 웃는 법을 모를 뿐.

분명 웃을 줄은 아는 여자였다.

그에 나도 미소로 화답했다.

“고마워. 인턴 들어올 때부터 계속 신경 써줘서. 덕분에 잘 나가는 클랜원들이랑 상급 던전도 가고. 운이 좋다, 내가.”

“…아니야.”

왠지 얼굴이 붉어진 듯한 강주연이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해 있었다.

클랜원들 중 가장 먼저 온 것인지, 입구엔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근처 벤치를 찾아 잠시 앉았다.

“아.”

벤치에 앉아있던 중.

강주연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마법 가방을 뒤졌다.

그리고 웬 약병 하나를 꺼내며 내게 건넸다.

“…이거.”

“이게 뭐야?”

초록 빛이 일렁이는 독특한 형태의 약병.

안의 내용물로 미루어 보아, 특수 형태의 ‘포션’이 분명했다.

“마비독에 대한 해독 예방제.”

“…마비독?”

“응. 뱀 계열 괴수들은 독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다른 건 상관없지만, 마비독은 당했을 때 위험하니까.”

독은 그 종류에 따라 성능이 천차만별이지만, 마비독의 경우 전사 계열에게 치명적이다.

앞선에 서서 탱킹을 해야 할 전사 계열이 마비독에 당해 움직이지 못하고 있으면, 이는 곧 파티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강주연은 그런 점을 걱정해 내게 [해독 예방제]를 건네고 있었다.

[해독 예방제]는 미리 마셔두기만 하면, 일정 시간 동안 해당 독에 당하지 않으니까.

계열을 고려한 배려가 엿보이는 선물이었다.

하지만…

‘나 독 내성 8인데….’

아카데미 지하 던전에서 톡신 이구아나를 상대로 독 내성 수련을 하도 했더니, 독 내성 수치가 벌써 8이었다.

[맹독]도 상당히 숙련도가 올라 이젠 5레벨.

이 정도면 만독불침이라고 하긴 뭣해도.

어지간한 뱀들의 독으로는 기별도 안 온다.

기껏 해독 예방제를 준비해 온 강주연에겐 미안하지만…

사실 내겐 아무런 쓸모도 없는 포션이었다.

“…고마워. 우, 운이 좋네, 내가.”

그러나 나는 최대한 입꼬리를 올리며 포션을 건네받았다.

선물 주는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는 건 둘째치고…

강주연의 선물을 거절하면.

또 어제처럼 얼마나 분위기가 차가워질지.

솔직히 상상하는 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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