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68화 (68/353)

EP.68 뱀이 뒤덮은 숲 (2)

“그대로 몰아붙여! 끝까지 사냥해야 해!”

권오준의 목소리가 산속에 울려 퍼진다.

오후 2시.

인왕산 필드 입구에 모인 우리 파티는 각자의 준비를 모두 마친 채, 지체하지 않고 필드 내로 진입했다.

인왕산 필드는 일전에 C급 승급을 위해 갔었던 북한산 필드보다 더 수준이 높은 필드다.

초입부부터 등장하는 괴수들의 등급이 대부분 C급 이상이고, 중간부에 진입하면 B급 괴수들도 자주 나온다.

우리 파티의 이번 파견 던전이 괜히 난이도 있는 게 아니었다.

흐어엉-!!

으르르르-

호랑이들의 주 거주지라는 표현이 딱 맞다.

초입부터 중간에 이르기까지 등장하는 괴수의 대부분은 호랑이 계열 괴수였다.

샤벨 타이거나 블랙 타이거는 물론, ‘스밀로돈’과 같은 검치호 계열의 B급 괴수도 종종 나타났다.

녀석들은 별다른 마력 공격을 퍼붓지 않는 괴수들이지만, 근력과 속력 같은 물리적 능력치가 워낙 발달된 탓에 상대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번 전투는 후방 계열 지원 없이 마무리한다. 도재현은 마력 공격을 활용하고, 신유나는 타격에 집중해! 도재현은 방패로 탱킹하는 것까지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대답할 시간에 움직여!”

전투에 진입한 후부터.

파티장인 권오준의 분위기도 확 달라졌다.

평소 장난기 많던 그는 사냥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진지하게 전투 구도를 잡고, 적재적소에 필요인원을 투입.

집중력을 요하는 상황에선 확실하게 팀원들을 다그친다.

특히 이번 파견에서 유이하게 C급 홀더인, 그리고 성장을 주목적으로 투입된 나와 신유나는 더 빡세게 굴려졌다.

덕분에 내 방패와 검, 신유나의 너클에선 쉬지도 않고 불꽃이 튀었다.

[더 깊게, 더 빠르게! 활활 타오르는 당신의 불길 속 농도가 더 짙어집니다. 불을 다루는 숙련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이글거리는 불꽃’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마력을 1, 불 내성을 1 획득합니다.]

[마력을 다루는 깊이는 급박한 상황에서 더 빛을 발합니다. 당신의 마력 제어는 이미 수준급에 올라 와 있습니다.]

[‘마력제어’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마력을 1 획득합니다.]

최고의 실전은 곧 최고의 훈련이다.

역사 속에서 지겹도록 써먹어 온 이 말은.

홀더 계에서도 틀릴 게 하나 없었다.

최고의 동료, 최고의 파티원들.

그리고 다년간 사냥 경험을 쌓아온 최고의 실전 교관.

이들과 함께 전투를 이어가니, 룬의 성장 속도도 폭발적이었다.

인왕산 필드 중간부 끝자락에 도달할 때까지 사냥은 이어졌고, 그 시간 동안 내 [이글거리는 불꽃]과 [마력제어]의 룬 레벨은 2레벨씩 올라 각각 7레벨과 6레벨이 되어있었다.

무기를 쓰긴 해도 주로 한손검과 방패를 통해 탱킹을 도맡고, 공격적인 측면은 두 룬을 자주 활용했기에 일구어낸 성장이었다.

‘마력이 오르는 건 고무적이야.’

지금의 내가 중점적으로 두는 수련이 있다면.

그건 아마 ‘마력’ 수치의 성장과 [파상검법]/[유수검법]의 룬 레벨 성장이다.

두 룬의 궁극스킬인 [파상천검]과 [유수활검].

현재 사용제한인 이들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앞선 선행조건들이 필수적으로 만족되어야 한다.

검법들의 룬 레벨이야 꾸준히 훈련하다 보면 오르겠지만, 마력 수치는 훈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계가 있기에 룬에 의한 수치 성장이 반가웠다.

계속 오른 마력 수치는 벌써 22.

최근까지만 해도 10 언저리를 맴돌았던 걸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급격한 성장이다.

‘새로 얻은 룬도… 큰 이득은 없어도 쏠쏠한 편이고.’

호랑이 계열 괴수.

그간 내가 동물 괴수들에게서 워낙 많은 룬을 가져온 탓에, 이미 보유하고 있는 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내게 없는 룬도 있기는 했다.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결투에서의 높은 기여도로 인해 승리가 인정됩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날카로운 손톱을 선택하셨습니다. 11레벨의 레어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해, 6레벨로 등록됩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속력을 2 획득합니다.]

[날카로운 손톱].

중간부의 B급 괴수 ‘스밀로돈’을 사냥하며 획득한 룬이다.

녀석이 보유한 룬은 대개 [날렵한 몸놀림]이나 [견고한 이빨], [사족격투] 같은 것들이 전부였다.

한 마디로 이미 내가 다 가져온 룬들이란 뜻.

내심 호랑이의 가죽 같은 룬이 있지는 않을까 기대했는데, 모든 동물 괴수들에게 방어 계열 룬이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써먹을 데가 있긴 하려나.’

[날카로운 손톱]은 속력에 기반을 둔 육체 강화 계열 레어룬이다.

특수효과는 손톱을 활용해 상대를 공격할 경우, 내구 수치를 절반으로 깎는 것.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효과.

[견고한 이빨]과 같은 효과였다.

‘짐승들 룬만 엄청 얻네.’

비늘에 이빨에 손톱에 사족격투에…

이러다 진짜 동물의 왕, 뭐 이런 게 되는 건 아닐까 두렵다.

“오케이. 둘 다 고생했다.”

“허억… 허억…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

권오준이 전투종료를 알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근방의 괴수들을 모두 사냥했다.

주로 C급 괴수들에, B급 괴수인 스밀로돈이 두 마리쯤 있었는데…

신유나의 타격과 내 마력 공격이 더해지니 어떻게든 사냥이 가능했다.

C급 홀더의 딜링은 잘만 조합하면, B급 괴수에게도 충분히 통하니까.

“우아- 완전 대단해. 우리 인턴 씨는 거의 B급 홀더나 다름없구나?”

어디선가 농염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금발에 하얀 수녀복이라 눈에 띄는 여자.

파티의 유일한 신성 계열 홀더, 이수미였다.

그녀는 내게 다가와 뜬금없이 가슴팍을 만져댔다.

미친.

이거 성희롱 아냐?

하지만 그녀의 손이 연녹색의 불빛으로 물들어 있다.

…이수미만의 [치유] 방식이었다.

“저기, 인턴 씨. 인턴 씨는 그럼 검이랑 방패도 쓰고, 불 계열 룬도 쓰는 거야?”

“예, 보시다시피 멀티 홀더라서요.”

“헤에- 불과 검을 같이 쓰는 홀더라니. 멀티 홀더는 멋있는 거구나-”

이수미는 농염한 분위기답게 의상도 파격적이었다.

가슴골이 은근하게 드러나는 원피스형 수녀복에 허벅지 부분은 또 옆단이 갈라져 있다.

헤어는 금발에 나이는 20대 후반.

누가 봐도 누님 포스를 풀풀 내는 홀더다.

이렇게 야한 사람이 신성 계열이라니.

이딴 건 내가 알던 성녀님이 아니야….

“이수미 홀더. 다 치료된 것 같은데, 그만하셔도 될 것 같아요.”

역시 곤란할 땐 친구 뿐.

강주연이 나서며 이수미를 제지해줬다.

그런데 어쩐지 목소리는 어제보다 한층 차가웠다.

이수미는 얼굴에 미소를 잔뜩 띠며 내게서 손을 뗐다.

“흐응- 아직 덜된 것 같긴 한데… 주연 씨가 그렇게 말하니까 그만할게요.”

“…신유나 홀더도 많이 다쳤어요.”

“에이- 신입 씨는 자가치료가 되잖아요.”

신유나는 [전투치유] 룬이 있다는 걸 핑계로, 내게만 치료를 하러 오는 이수미다.

권오준도 전사 계열이긴 한데, 팀장님은 A급 홀더에 워낙 능력이 뛰어나서 잘 다치질 않으니까.

“잡담은 그만. 이제 본격적으로 파견 던전에 진입해야 해. 다들 조금씩은 긴장해라. 던전 들어가고부터는 전원 전투태세다.”

권오준이 어수선한 파티의 분위기를 정리했다.

인왕산 필드 초입과 중간부를 뚫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커다란 형상의 바위.

옆의 작은 바위와 겹쳐진 두 개의 바위였다.

권오준은 바위로 다가가 두 곳이 겹쳐진 틈을 가리켰다.

“이 틈 사이 끝자락에 던전 입구의 매개가 있다. 내가 먼저 들어갈 테니까, 곧바로들 따라와.”

그렇게 권오준을 시작으로 파티원들이 하나둘씩 던전 안으로 입장했다.

가칭 뱀이 뒤덮은 숲.

이번 파견의 목적지인 던전이었다.

* * *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던전의 불쾌한 기운이 홀더의 속력, 정신을 약간 저하시킵니다.]

‘뱀이 뒤덮은 숲’은 말 그대로 숲이었다.

일전에 ‘홉고블린 부락’을 경험하면서도 봤지만, 던전은 모두 동굴의 형태만 있는 건 아니다.

‘홉고블린 부락’처럼 평지 및 부락의 형태일 때도 있고, 이번처럼 산속 어딘가에 자리할 법한 숲이 던전일 때도 있다.

듣기로는 아예 마을의 형태인 던전도 있다고 하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궁금하긴 하다.

홀더 생활을 하다 보면 볼 일이 있겠지.

“아직 별다른 괴수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습니다.”

파티 내 유일한 궁수 계열.

민채환이 탐색을 마쳤다.

권오준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마 10분간은 계속 괴수가 없을 거다. 탐색 선발대가 미리 왔을 때도 그랬다는 보고를 받았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우리 파티는 천천히 숲을 걸어갔다.

울창하게 뻗은 숲은 끝이 없어 보였다.

솔직히 양옆으로도 상당히 넓어서 방향 감각을 잃을 법도 한데, 권오준은 미리 전달받은 경로가 있는 것인지 헷갈리지 않고 한 방향으로 걸어갔다.

나는 걸어가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얕게 지저귀는 새소리와 녹색 풀.

한데 모여 울창하게 뻗은 나무들.

그 근처에 자리를 튼 듯한 벌레들까지.

화창하기 그지없는 수풀의 아름다움이었다.

“강도 있네.”

숲 한쪽엔 깨끗한 수질의 물도 흐르고 있었다.

꽤 큰 크기의 강.

절경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온다.

아름다운 숲에 예쁘게 일렁이는 강.

던전만 아니라면…

놀러와 구경하기 딱 좋은 자연의 풍경이었다.

“팀장님, 잠시…!!”

그런데 그때.

민채환의 다급한 외침이 파티를 정지 시켰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땅을 짚고 있었다.

분명 10분간은 괴수가 없다고 함께 단정 지었는데…

탐색에 뭔가 걸린 모양이었다.

살짝 찡그려졌던 그의 표정이 금세 일그러진다.

“괴수들이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탐지에 안 걸리는 룬을 보유한 모양입니다.”

“뭐? 그런 보고는 못 받았는데… 어디서 오는데? 아니, 언제쯤 마주치는데?”

이상하다는 권오준의 물음에 민채환이 정신을 집중했다.

땅바닥을 손가락으로 조금씩 두드리던 그가, 이내 고개를 들며 말했다.

“1분… 아니, 30초! 강! 강에서 옵니다!”

그 말에 나는 재빨리 검과 방패를 쥐고 강을 노려봤다.

신유나도 너클을, 권오준도 창을 가볍게 쥐어 잡았다.

웅- 우우웅-

처음엔 전혀 들리지 않던 진동이, 점점 빠르게 커지기 시작했다.

민채환의 말처럼 딱 30초의 시간이었다.

쏴아아아-

우우우웅-!!

그리고 괴수의 윤곽이 드러났다.

매끈한 피부와 남색으로 뒤덮인 가죽.

그리고 엄청난 길이를 자랑하는 거대한 신체.

2m… 아니 3m에 가까울까?

그런 괴수들이 무려 6마리가 있었다.

괴수가 나타나자마자, 이번엔 암살자 계열인 최동욱이 입을 열었다.

사냥 5팀 클랜원 중 괴수 정보에 대해 가장 빠삭한 팀원이었다.

“B급 괴수, 일렉트로포러스입니다!”

일렉트로포러스(Electrophorus).

본래 내포한 뜻이야 많겠지만…

홀더 계에선 전기뱀장어와 유사한 괴수를 의미.

생체 전기량이 어마어마하고, 까다로운 번개 계열 마력 공격을 펼치는 B급 괴수였다.

오늘 보고서에서 눈 씻고 찾아도 발견하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괴수의 등장이다.

던전 공략 시작부터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파티원 전부가 빠른 속도로 전투 태세를 준비했다.

나 역시 검과 방패를 집어 들며…

괜히 억울한 눈으로 괴수들을 바라봤다.

‘아니, 뱀 계열 괴수만 나온다며.’

씨발…

뱀장어도 뱀으로 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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