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9 뱀이 뒤덮은 숲 (3)
전사 계열이 마력 공격에 대처하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방법은 특수 능력치인 ‘내성’을 올리는 것이다.
내가 보유한 내성 능력치는 독, 물, 불의 3가지.
이 중 독은 마력 발현의 결과물이 아니기에 논외지만, 물 내성과 불 내성은 확실히 해당 계열의 마력 공격 혹은 마법에 대항하는 데에 큰 힘을 발휘한다.
‘당장 불 내성 수치가 8이니까….’
기본 능력치와 달리 특수 능력치에선 8도 꽤 높은 수치다.
어지간한 D급 홀더의 불 계열 마법은 아예 타격조차 없을 정도다.
하지만 내성 수치를 올리려면 특수한 방법들이 필요했다.
해당 계열과 관련된 룬을 획득하거나, 처음부터 재능을 타고나 갖고 있거나…
그마저도 아니면 특수 아이템을 통해 발현하는 것.
평범한 전사 계열들에게 이러한 특수 능력치를 얻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내성 능력치가 많은 나조차 ‘번개 내성’은 없었다.
‘두 번째는 방패를 쓰는 것.’
[방패]의 레벨이 높고 장비 수준이 괜찮다면, 홀더의 방어 기술만으로 마력 공격을 잡아낼 수 있다.
탱커를 자처하는 전사 계열 홀더들이 대부분 방패를 활용하며, 검방 전사를 선호하는 이유다.
하지만 권오준과 신유나는 둘 다 방패를 쓰지 않는다.
권오준은 창을 주력 무기로 쓰는 공격형 전사 계열이고, 신유나는 속력을 활용하는 회피형 전사 계열이었다.
권오준이야 경력도 많고 등급도 A급인 고위 홀더이기에 상관없지만, 마력 공격에 약한 신유나는 삐끗하면 위험할 수도 있는 전투였다.
“정신차려, 신유나! 나랑 도재현이 먼저 앞선에 설 테니까, 넌 회피 위주로 놈들을 유인해!”
“네, 네!”
다행히 권오준이 그런 신유나의 불안을 바로 알아챘다.
곧장 지시를 내리며 전투 시작을 알렸고, 나 역시 방패를 거세게 쥐어 잡으며 재빨리 앞으로 튀어갔다.
쏴아아아-
우우우웅-!!
총 6마리의 일렉트로포러스.
놈들은 빠른 속도로 물길을 가르며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속력이 꽤 높긴 하지만,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정도.
준비가 끝난 내 방패는 한 놈의 몸통박치기를 막아냈다.
만약을 대비해 [철벽수비] 스킬까지 아끼지 않고 활용했다.
카아앙-!!
파츠, 파츠츠츠!
“흐읍…!!”
근력이 높은 괴수는 아닌 터라 충격 자체는 약하다.
하지만 녀석은 번개 계열 마력 공격을 활용하는 괴수.
부딪힌 순간.
생체에서 뿜어 나오는 다량의 전기가 방패를 타고 흘렀다.
‘아으, 따끔따끔하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방어 스킬인 [철벽수비]를 썼는데도 이 정도다.
[홉고블린의 청동 방패]에 미리 마력을 담아 두었기에 망정이지, 마력 공격을 못 막는 방패였다면 그대로 감전되어 기절 상태가 됐을지도 모른다.
우우우웅-!!
쉴 틈이 없었다.
한 마리의 공격은 방패로 막아냈지만, 다른 한 마리는 비어있는 내 몸 쪽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6마리의 괴수들을 산술적으로 나눠도 전사 계열당 2명씩.
내가 맡아야 할 괴수는 적어도 두 마리였다.
‘검으로 막으면 안 돼.’
첫 번째 괴수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던 건, [홉고블린의 청동 방패]가 마력 공격을 막는 레어 방패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방패를 돌려 한 번 더 막기엔 늦었다.
그렇다고 검을 사용하면 번개 계열 마력 공격에 당해 감전될 확률이 높다.
또다른 괴수의 공격에 완전한 무방비 상태.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내가 쓸 수 있는 건 하나였다.
“멈춰!”
아, 부끄럽다.
급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이런 단어가 나와버렸다.
그래도 효과는 확실했다.
오른쪽에서 날아들던 일렉트로포러스는, 순간 자신이 감전된 듯 움직임을 멈췄다.
…멈춰라고 말해서 멈춘 건 아니다.
[위압] 룬의 파생스킬, [선전포고]의 효과였다.
‘아직 다수에겐 안 먹히네.’
지금의 [위압] 룬은 2레벨.
그래서 그런지 [선전포고]의 범위가 넓지는 않다.
신유나와 권오준 쪽 괴수들에겐 통하지 않았고, 내가 맡은 두 마리의 괴수들만이 ‘공포’에 걸려 잠시 간 멈췄다.
그리고 나는 그를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무구교체술!’
무구교체술을 활용해 방패를 가방에 넣고, 무기를 양손검으로 전환한다.
이어 그대로 오른쪽 일렉트로포러스에게 뛰어들었다.
스르릉-!
우우우웅-!!
[유수검법]을 활용한 검의 움직임과 [연격].
바로 이어지는 [파상검법] 특유의 찌르기.
7레벨까지 오른 [이글거리는 불꽃]을 담는 건 덤이다.
공격에 치중된 괴수일수록 방어가 약하다.
이는 괴수 사냥에 있어, 일종의 공식과도 같다.
내구 수치가 낮은 일렉트로포러스는, 다양한 룬을 활용하며 조합한 내 검격을 너무 쉽게 허용했다.
강렬한 외상을 입으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윽…!”
물론, 나 역시 온전하진 않았다.
녀석은 생체 전기량 자체가 어마어마한 괴수.
번개 계열 마력 공격을 굳이 활용하지 않더라도, 자체적으로 방대한 양의 전기를 뿜어댄다.
덕분에 찔러 넣은 검을 타고, 내게도 전기가 넘어왔다.
‘살짝 위험할 수도 있겠는데.’
오른쪽 괴수는 거의 빈사 상태로 만들었다.
그에 반해 왼쪽 녀석은 공포가 풀렸고, 다시 달려들 수 있었다.
나는 잠시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바로 무구교체술을 펼쳐 방패를 들었다.
여차하면 바로 방어할 수 있도록.
[철벽수비]는 더 못 쓰지만, 방패가 망가지지 않아 아직 기본적인 탱킹은 가능했다.
“어…?”
그러나 예상했던 위험은 없었다.
정확히는 위험 자체가 아예 차단됐다.
스릉- 츠츠츠-
우우우웅-!!
맹렬한 속도로 한 남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거의 순간 이동을 하는 것과 같은 속도.
속력 수치와 보법류 룬 숙련도 극한에 다다른 듯한 움직임.
파티의 암살자 계열, 최동욱이었다.
그는 양손에 하나씩 소검을 든 채.
거침없이 일렉트로포러스에게 달려들었다.
녀석의 머리를 밟으며 한 번 벤 후.
뛰어올라 공중에서 한 바퀴 돌며 몸통으로 착지.
거기선 양손의 소검을 계단 타듯 휘둘러 놈을 베어낸다.
도륙.
도륙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최동욱의 단검술은 화려하고 속도감이 넘쳤다.
나는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봤다.
‘와… 저렇게 하는 거구나.’
아카데미에서 쓸 만한 단검술을 교육받지 못한 탓에, [단검]을 투척술 용도로만 활용하던 나와는 차원이 달랐다.
최동욱은 단검보다 약간 기다란 두 자루의 소검을 자신의 수족처럼 활용하며 자유자재로 괴수의 몸을 갈라냈다.
그 안에 어떤 룬이나 스킬이 활용된 건지 모르겠지만, ‘암살자’라는 계열의 장점과 멋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 그였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그에게서 단검술을 제대로 한 번 배워보고 싶었다.
슈우우- 콰아아-!!
콰아아앙!!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엔 마법이 날아와 괴수들을 덮쳤다.
하나는 불 계열, 다른 하나는 바람 계열.
준비가 끝난 강주연과 김성철의 공격 마법이었다.
빈사 상태였던 내 앞의 일렉트로포러스는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고, 다른 팀원들이 맡은 괴수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가만히 그 광경을 눈에 담았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순식간에 모든 곳의 전투가 끝이 났다.
신유나 쪽은 혼자 두 마리를 맡은 게 상당히 버거워 보였지만, 궁수 계열인 민채환의 엄호와 마법사 계열 팀원들의 지원으로 어떻게든 사냥을 마쳤다.
권오준 쪽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는 홀로 일렉트로포러스 두 마리를 맡았다.
창을 활용해 싸우는 브루저 능력은 극한에 다다라 있었고, 주변엔 두 마리의 시체와 피 웅덩이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래서 3대 클랜이구나.’
<불의 심판>.
<로열>, <용광검로>와 더불어 국내 3대 클랜으로 칭해지는 집단.
이들은 자신들이 괜히 최고의 클랜으로 불리는 게 아님을 증명하듯,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며 전투를 순식간에 끝마쳤다.
30초? 40초?
대략 그 정도의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인왕산 필드를 오며, 신유나와 둘이서 전투하던 때와는 비교 자체가 민망했다.
“전투종료. 다들 고생했다.”
권오준이 짤막하게 끝을 알렸다.
그리곤 패닉에 빠진 신유나를 바라봤다.
“신유나. 괜찮냐?”
“…네, 네. 괜찮습니다….”
신유나가 간신히 목소리를 내 대답했다.
대답이야 어떻게든 하지만, 사실 딱 봐도 괜찮지 않다.
그럴 만도 했다.
그녀는 나처럼 방패를 활용하는 홀더도 아니고, 그렇다고 권오준처럼 괴수 둘을 홀로 처치할 압도적인 무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회피형 탱킹 전사 계열.
분명 매력적인 능력의 홀더지만, 방금처럼 마력 공격을 활용하는 괴수 앞에선 애매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덕분에 민채환과 강주연, 김성철까지.
후방 지원 계열 중 세 명이 신유나 쪽 괴수를 담당했다.
신유나도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때문에 자신이 지금 팀에서 민폐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흐응- 신입 씨가 많이 힘들어하네-”
“아, 이수미 홀더님.”
여느 전투 때처럼 이수미가 다가왔다.
그리곤 신성력을 발휘하며 내게 가볍게 손을 댔다.
이번 불빛은 연녹색이 아닌 보라색이었다.
“인턴 씨, 아까 감전됐지? 레스트 좀 써줄게.”
[레스트]는 신성 계열의 다양한 버프 스킬 중에서도 안정화에 치중된 스킬.
아까 괴수에게 잠시 감전당한 내게 가장 필요한 치료였다.
나는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려다가, 또다시 슬금슬금 가슴팍을 파고드는 그녀의 손길에 눈을 찌푸렸다.
이 여자, 상습범이다.
“저, 감사하긴 한데… 너무 안쪽으로…”
“어머- 실수실수.”
이수미는 능글맞게 말한 후.
자연스레 손을 어깨 쪽으로 옮겼다.
그리곤 다시 아까 다가오며 말했던 화제를 꺼냈다.
“이따가 신입 씨 좀 많이 위로해줘. 이번 전투에서 좀 좌절한 것 같은데.”
의외다.
이런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역시 겉모습과 복장, 말투, 행동만으로 사람을 판가름하면 안 되는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배워가는 과정이니까요. 아마 신유나는 계속 싸울수록, 지금보다 더 잘 해낼 겁니다.”
“헤에- 그런 것치고 인턴 씨는 너무 잘 싸우던데? 두 마리 중 하나는 거의 인턴 씨가 다 잡은 것 아니야?”
“…운이 좋았습니다.”
사실 운이 좋은 건 아니었다.
이수미의 말처럼 잘 싸웠고, 생각보다 수월했다.
일렉트로포러스는 공격이 강렬한 대신 방어가 약한 괴수다.
그 탓에 자신이 공격당하기 전, 미리 강렬한 공격을 퍼붓는다.
공격에 치중한 홀더라면 얼핏 당하기 십상인 마력 공격으로.
다만, 내게 방어와 공격을 겸할 룬들이 많아서 쉬웠을 뿐이다.
밸런스 좋은 내 룬들의 조합은 녀석을 사냥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3초 정도 공포를 먹이는 [선전포고]가 너무 사기급 스킬이기도 했고.
아마 파티의 지원이 없었더라도, 어떻게든 나 혼자서도 두 마리는 잡을 수 있었을 것 같다.
능력치는 B급까지 한참 남았지만…
룬 활용도는 이제 정말 B급의 문턱까지 온 느낌이었다.
[흐르는 물과 거칠게 오르내리는 물. 상반된 두 성질을 다루는 당신의 이해도가 더욱 깊어집니다.]
[‘파상검법’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유수검법’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결투에서의 높은 기여도로 인해 승리가 인정됩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그리고 그에 더욱 힘을 실어주듯.
어김없이 괴수 사냥에 대한 나만의 보상이 눈앞에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