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0 뱀이 뒤덮은 숲 (4)
결계 밖 인왕산 필드.
서식하는 괴수들의 수준이 꽤 높은 탓에, 중위 이상의 홀더들이 자주 찾는 사냥터.
필드 내 중간부에.
웬 복면을 쓴 사람들이 무리를 짓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복면을 쓰고 나름의 중장비를 갖추고 있어, 평범하게 필드에 사냥을 온 사람들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 중 가장 선두에 있던 복면인.
그는 잠시 복면을 내리고 연초를 입에 물었다.
벌써 다섯 개째 태우는 담배였다.
또한, 모두가 그의 부하인 듯.
남은 인원들은 고개를 숙인 채 대기하고 있었다.
복면인이 담배 연기를 사방에 흩뿌리며, 뒤의 또 다른 복면인에게 물었다.
“이 근처가 확실하지?”
“예, 지부장님. 까마귀가 던전에 들어가기 전, 신호를 알리는 마력석 가루를 뿌리고 들어갔습니다. 신호에 의하면 100m 근방입니다.”
“음….”
복면인이 주변을 둘러봤다.
이미 한 파티가 휩쓸고 간 것 같은 사냥의 흔적.
마력석을 제외하고 도축마저 하지 않은 걸 보면, 특정 목적이 있는 파티의 사냥이 분명했다.
부하의 말과 필드 내의 정황이…
자신들이 찾던 장소가 이곳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하여간 불의 심판 이 새끼들은 종잡을 수가 없어. 갑자기 파견 날짜를 바꾸다니. 급하게 준비하느라 담배도 못 피우고 왔잖아.”
“종종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 클랜의 마스터가 워낙 특이한 면이 있지 않습니까.”
“S급이라는 양반들은 왜 다 그 모양일까.”
마지막 담배꽁초를 버리며 밟은 복면인이 자리를 털었다.
그리곤 검 한 자루를 꺼낸 후.
자리에 모인 복면인들을 바라봤다.
“요즘 아카데미 새끼들이 워낙 삽질을 해댄 탓에, 이번 건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 몇 번 말했으니까, 다들 기억하지?”
“예.”
“예, 지부장님.”
복면인은 담배 때문에 내렸던 복면을 다시 쓰곤 앞을 봤다.
“그럼 슬슬 가자. 불쟁이들 죽이러.”
입이 가려졌지만, 그의 눈은 웃고 있었다.
* * *
[파상검법]과 [유수검법]의 레벨이 9까지 올랐다.
[구도자의 땀방울], 그리고 [소용돌이를 삼킨 파도].
두 룬의 성장 속도 증가가 합쳐져 어우러진 결과였다.
이제 궁극스킬의 제한이 풀리기까지 1레벨.
마력 수치는 8 정도가 남아있었다.
운이 좋으면 이번 던전 공략이 끝나고 제한이 풀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결투 보상을 얻어야지.’
눈앞을 장식하는 황금색 정보창.
일렉트로포러스를 처치한 [룬 사냥꾼]의 보상이었다.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결투에서의 높은 기여도로 인해 승리가 인정됩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1.은신 2.침투하는 뇌기 3.수중호흡(선택불가) 4.수중질주 5.마력제어(선택불가)]
일렉트로포러스의 보유 룬은 대충 예상이 가는 것들이었다.
번개를 다루는 능력을 활용했기에 [침투하는 뇌기]가 있을 건 당연했고, 그를 보조하기 위한 [마력제어]도 필수였다.
거기에 물속에서 활동하는 괴수기에 [수중호흡], 그 안에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돌격류 룬 [수중질주]도 있을 만 했다.
하지만 한 가지 특이한 룬이 있었다.
선택지 중 첫 번째에 자리한 룬, [은신]이었다.
‘얘가 대체 은신이 왜 있는 거지?’
[은신]은 암살자 계열이 주로 보유하는 공통룬 중 하나다.
여타 소설이나 게임 등에 나오는 것처럼 ‘투명인간’이 되는 능력은 아니다.
특정 지점이나 사물에 숨을 때 기척을 드러내지 않도록 보조해주고, 바로 옆에 있더라도 그 감각을 느끼지 않게 분위기 자체를 변화시키는 룬이다.
한 마디로 상대의 시야에서 사라지기만 한다면, 스스로 완전히 기척을 지울 수 있게 보조하는 룬.
‘레벨이 오를수록 그 수준이 올라가지.’
고레벨이 되면 마력감지나 궁수 계열의 탐색류 룬에도 드러나지 않게 된다.
은신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능력이 되는 것이다.
반쪽자리 암살자 계열인 내게도 아직은 없는 룬.
그걸 이 전기뱀장어가 보유하고 있었다.
‘아! 그래서 민채환 홀더에게 안 들켰구나.’
처음 던전에 입장한 후.
파티의 전투 태세 준비를 위해 탐색류 룬을 활용했던 민채환.
B급 홀더인 그의 탐색류 룬엔 어떤 괴수도 잡히지 않았다.
대략 10분 정도 괴수가 없을 거라는 확답까지 받았었다.
그 탐지에 걸리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그건 뱀장어 주제에 [은신]을 보유하고, 그 레벨이 의외로 꽤 높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일전에 선발대가 왔을 땐 아예 모습 자체를 드러내지 않은 것 같고.
‘그럼 선택할 건… 침투하는 뇌기와 은신.’
선택지는 정해져 있다.
두 룬 모두 지금의 내게 필요한 룬이었다.
전자는 번개 계열 마력을 다루는 능력에 내성을 갖기 위해서라도 필요하고, 후자는 암살자 계열 능력을 조금 더 강화할 수 있다.
다행히 내가 맡은 두 마리의 일렉트로포러스에 모두 기여도가 인정돼, 두 개체의 룬 사냥이 가능했다.
[침투하는 뇌기를 선택하셨습니다. 8레벨의 레어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해, 4레벨로 등록됩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번개 내성을 4, 마력을 3 획득합니다.]
[새로운 내성이 활성화됩니다.]
[은신을 선택하셨습니다. 13레벨의 노멀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해, 7레벨로 등록됩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정신을 4 획득합니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정보창을 봤다.
‘진짜 레벨이 더럽게도 높았구나.’
일렉트로포러스는 다른 능력이 부족한 대신, 활용하는 룬의 레벨들이 어마어마하게 높았다.
[침투하는 뇌기]야 그렇다쳐도, [은신]의 레벨이 엄청나다.
괴수의 [은신]이 13레벨이라니.
민채환의 탐색으로 못 찾을 만도 했다.
가볍게 새로 얻은 룬들의 정보를 확인했다.
‘침투하는 뇌기는… 예상대로고.’
[침투하는 뇌기]엔 별다른 파생스킬은 없었고, 특수효과 역시 번개를 일으킨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대신, 날붙이나 물을 통해 번개를 쓰면 더 강렬하게 침투한다는 특수효과가 있었다.
‘은신엔… 파생스킬이 있네.’
[은신]의 룬 정보는 내가 알던 것과 거의 비슷했지만, [하이드 어택]이라는 특수한 파생스킬이 있었다.
7레벨이라는 고레벨 덕에 자연히 파생된 모양이었다.
<스킬 정보>
◎이름: 하이드 어택
◎파생 룬: 은신
◎대기시간: 30분
◎사용조건: 공격 상대의 시야에 보이지 않는 상태여야 함.
◎사용효과
: 숨어있는 상태에서 대상을 기습해 공격한다. 공격에 성공 시 상대의 내구 수치를 일정 부분 무시하고, 사용자의 공격 위력 또한 증가시킨다. (룬 레벨 비례) 공격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상대에게 모습을 들킨다면, 스킬 효과가 사라지고 대기시간은 돌아간다.
[하이드 어택]은 나도 알고 있던 스킬이다.
암살자 계열이 괴수에게 선제 공격을 가할 때 주로 활용하는 스킬이고, 노멀룬의 스킬치곤 방깎과 위력 증가가 동시에 있어 효과도 상당히 쓸만한 스킬이다.
앞으로 솔플 사냥을 하거나 홀로 던전을 공략할 때, 적당히 써먹기 괜찮은 스킬 같았다.
“다시 이동한다! 언제 또 이 전기뱀장어들 나올지 모르니까, 다들 전투태세 풀지 말고.”
잠깐 룬을 정리하던 사이.
권오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략 계획에 없던 괴수의 등장에 당황스럽긴 했지만, 어쨌든 잘 처치해냈고 다시 이동할 차례였다.
턱- 터벅터벅-
아까보다 훨씬 조심스러워진 파티의 움직임.
나는 그를 천천히 따르며 주변을 봤다.
‘이젠 그냥 괴수들 서식지로만 보이네….’
분명 한껏 절경처럼 보이던 숲이, 이제는 그저 경계해야 할 괴수 서식지였다.
역시 던전 안이 아름답다는 건 다 개소리다.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봤다.
우울한 기색의 신유나가 걷고 있었다.
‘아직도 저러고 있구나.’
우리 파티의 진형은 정석적이다.
파티장인 권오준과 주로 탐색을 맡을 민채환이 선두에.
프리롤로 파티의 허리를 맡을 암살자, 최동욱이 중간에.
나머지 후방 인원이 뒤쪽에.
그리고 신유나와 나는 후방을 지키기 위해 파티의 가장 뒤쪽에 있었다.
뒤에 있다가 전투가 시작되면, 그 방향으로 움직이는 식이다.
덕분에 우리는 한바탕 전투가 끝난 후 같이 걷고 있었다.
“괜찮냐?”
옆쪽으로 거리를 조금 좁히며,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잘 위로해주라던 이수미의 말이 생각나기도 했고, 첫날 호기롭던 자세와 달리 기가 많이 죽은 것 같아서.
표정을 보니 아직도 풀이 죽어 있는 것 같았다.
“전혀….”
“기운 차려. 어차피 배우러 오는 거라고, 네가 시작부터 그랬잖아.”
파견 전 내게 OT를 하며, 크게 기대하지 말라고 말했던 게 신유나다.
어차피 우리는 배우러 오는 거라고.
그렇게 말해놓고 정작 자기가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
“그렇긴 한데… 마력 공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어.”
신유나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녀는 공격에 치중된 회피형 탱커.
관련 내성 능력치가 없다 보니, 회피에 성공하지 못하면 마력 공격에 그대로 노출된다.
이번 전투에서 후방 지원 인원이 모두 신유나를 본 것도 그런 이유였고.
신유나는 그런 쪽으로 고민을 하는 것 같다.
마력 공격에 대처하려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하지만 답은 사실 정해져 있었다.
“속력을 더 높여서 잘 피해야지. 아니면 팀장님처럼 강해져서 더 잘 싸우든가.”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하아….”
내 말에 신유나가 열을 내려다 이내 한숨을 쉬었다.
너무 정론만 얘기했나?
분명 위로를 하려고 했었는데, 어쩐지 화를 돋운 모양이다.
그러던 중, 신유나가 문득 고개를 들며 물었다.
“넌 아까 한 마리 잡았지?”
“어? 아, 그거… 공격은 먹혔는데, 잡기는 후방 인원들이 다 잡아줬지. 너도 봤잖아. 마법 쏟아지는 거.”
그 와중에 볼 건 다 봤구나.
그녀는 다시 한번 고개를 푹 숙였다.
“부럽다… 난 회피하느라 정신없어서 손도 못 대겠던데.”
“난 방패를 쓰잖아. 한 턴 막아내면, 내구 낮은 괴수들이라 어떻게든 기회가 나오지.”
게다가 신유나도 내구가 낮은 게 아닐 거다.
일전에 룬을 복제할 때 그녀에게도 [육탄방어]가 있었고, 이는 방패를 활용하지 않는 전사 계열일수록 더 성장이 빠른 공통룬이다.
이번에 상대한 괴수들이 마력 공격 위주라 당황했을 뿐, 물리 공격을 활용하는 괴수들에겐 굳이 회피하지 않아도 앞선에서 탱킹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그녀였다.
그렇게 평범한 대화를 이어가던 중.
신유나가 황당한 이야기를 꺼냈다.
“나도 방패 한 번 들어볼까?”
“뭐?”
이제 와서 [방패]를 키우겠다고?
단언컨대 이건 정말 최악의 선택이다.
[방패]가 공통룬에 해당하긴 해도, [격투]를 활용하는 그녀에겐 생성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당장 내가 암살자 계열인데 [은신]이 생성되지 않은 것처럼, 공통룬이란 건 모든 홀더에게 적용되는 사항이 아니니까.
아직도 얻지 못했다면 계속 얻지 못할 가능성이 있고, 얻는다 해도 성장시키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게 당연하다.
게다가 방패를 활용하면, 공격에 치중된 그녀의 장점이 죽을 수 있었다.
한손에 방패 들고 한손으론 격투를 한다니.
뭔가 사이즈가 안 나오잖아.
허튼 생각을 하는 신유나에게 꿀밤을 한 대 먹여줬다.
“악!”
“이게 룬도 없는 게 어디서 까불어.”
역시 위로 안 하길 잘했다.
얘는 괴수한테 맞으면서 더 혼나 봐야 해.
다재능 멀티 홀더가 그리 쉽게 되는 건 줄 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