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1 뱀이 뒤덮은 숲 (5)
<불의 심판> 클랜 내 사냥 5팀.
신성 계열 B급 홀더를 맡은 이수미는 흥미로운 눈으로 파티의 전투를 지켜봤다.
그녀의 시선을 끄는 인물은 단연코 한 명.
오늘 파티에 처음 합류한 인턴 클랜원.
도재현의 모습이었다.
‘흐응- 인턴 씨는 정말 재밌는 사람이네요.’
도재현은 보면 볼수록 재밌는 홀더였다.
클랜의 후계자인 강주연의 추천으로 입단.
거기에 두 달이라는 파격적인 인턴 기간.
당연히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자신들이 국내 최고 클랜이라는 자부심이 있는 <불의 심판> 클랜원들은, 특히 이러한 소식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한참 전부터 예고됐던 ‘뱀이 뒤덮은 숲’ 공략 파견에 갑작스럽게 투입되며, 사냥 5팀 내에서 슈퍼 낙하산 소리를 듣던 게 바로 도재현이었다.
‘분명 그랬었는데….’
하지만 역시 룬 홀더는 본연의 능력으로 증명하는 걸까.
파견을 와 까고 보니.
그는 또래에 비할 상대가 없는 엄청난 재능이었다.
양손검과 한손검/방패, 그리고 단검.
세 종류의 무구 형태를 자유자재로 다루는데, 여기에 마력 공격까지 활용한다.
불 계열 마력 공격을 수족처럼 다루고, 그에 뒤지지 않을 만큼의 물리 공격까지 갖추고 있다.
또한 방어 능력 역시 얕은 게 아니기에, 앞선에서 탱킹을 하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도 드네요.’
인왕산 필드 초입부터 뱀이 뒤덮은 숲 중간부까지.
공략 내내 새로운 괴수들을 만나고 수많은 변수에 부딪히고 있었지만, 그때마다 도재현은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파티에 힘을 싣고 있었다.
특히 일렉트로포러스를 네 번째 만났을 때쯤엔…
거의 혼자서 두 마리를 담당했었으니, 말 다 한 셈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원래 사냥 5팀 소속 B급 홀더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활약상이었다.
‘주연 씨랑도… 재밌는 관계인 것 같구요.’
도재현은 강주연의 낙하산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강주연은 도재현의 인턴 입단 이후.
누가 봐도 쉽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를 자주 챙겼으니까.
이수미는 그런 광경 자체가 신기했다.
강주연이 누군가를 챙긴다?
<불의 심판> 클랜원이라면 누구든 쉽게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흐응- 청춘이네요.’
사냥 때마다 도재현에게 향하는 화력 지원.
걷는 와중에도 뒤쪽으로 힐끔거리는 눈길.
특히 전투가 끝난 후.
치료를 명목으로 은근히 도재현과 스킨쉽을 하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
이수미는 그를 알면서도 더 도재현을 괴롭혔다.
괜히 강주연을 놀리고 싶은 마음에.
벌써 입단 6년 차가 되어가는 이수미에게, 강주연은 여전히 귀여운 클랜의 아가씨였다.
사사사사-
쿠우웅!!
또 한 번 거대한 형상의 뱀 괴수가 쓰러졌다.
던전의 초입을 넘어선 중간부쯤에 나타나는 괴수.
B급 괴수 메가 스네이크.
주변엔 마찬가지로 B급인 그린 아나콘다 또한 쓰러져 있었다.
얼핏 보더라도 둘이 합쳐 8마리쯤.
점점 상대하는 괴수의 개체가 늘어나고 있다.
던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간다는 방증이었다.
“흐응-”
이수미는 흥미롭게 괴수들을 바라보며, 마력석을 캐기 위해 다가갔다.
이번 파견엔 클랜 내 도축 홀더가 오지 않았기에 괴수들의 부산물은 정리하기 어렵지만, 괴수의 마력석 정도는 전투 홀더들도 꺼낼 수 있었다.
부산물은 괴수들이 리젠되는 일주일 전까지만 도축 홀더들을 시켜 정리하면 될 일이었다.
“응?”
그렇게 마력석을 캐려던 도중.
이수미는 괴수의 시체에서 특이한 걸 발견했다.
B급 괴수 메가 스네이크의 시체.
전사 계열 중 도재현이 맡았던 괴수였다.
딜탱 밸런스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성장한 도재현은, 기어코 혼자서 B급 괴수 한 마리를 사냥하는 데에 성공했었다.
“이건….”
그런 메가 스네이크의 시체.
마력석이 박힌 머리 쪽이, 사이한 기운에 물들어 급격한 노화 상태가 되어있었다.
마치…
‘주술이라도 걸린 것 같은 모양새네요.’
이수미의 입가가 진한 미소로 물들었다.
다른 이들은 쉽게 눈치채지 못할 증상이지만, 신성 계열인 이수미는 저주나 주술에 관련해 반응이 훨씬 민감하고 빨랐다.
메가 스네이크가 걸린 건 주술 계열의 한 기술인 ‘쇠약’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를 사냥한 이는 우연히 또 인턴이다.
이수미의 시선이 다시 도재현에게 향했다.
그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마력석을 캐고 있었다.
‘인턴 씨는 정말… 정말 재밌는 사람이에요.’
홀더 계에서 다양한 재능을 지닌 멀티 홀더는 종종 있는 편이지만, 그 재능들을 모두 능숙하게 다루며 고위 홀더까지 올라가는 케이스는 거의 없다.
성공한 멀티 홀더를 논할 때.
괜히 <로열>의 성나연만 언급되는 게 아니었다.
그만큼 위로 올라갈수록 성장이 더뎌지는 게 멀티 홀더의 현실이다.
그런데 지금.
그러한 멀티 홀더의 역사를 또다시 깨려는 인물이 나타났다.
최소 3개 이상의 무구 활용에 불 계열 마력 공격.
거기에 주술 계열처럼 보이는 룬의 활용까지.
많은 룬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아는, 감각 있는 유망주였다.
이건 이수미만이 아니라, 다른 파티원들 역시.
말을 아낄 뿐 어렴풋이는 느끼고 있을 것이다.
‘주연 씨는 이 재밌는 사람을, 혼자 독차지하려 했던 거네요.’
마냥 청춘들의 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전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수미는 짙게 미소지으며, 마저 마력석을 캤다.
요즘 들어 무료하기만 하던 일상.
따분했던 클랜 생활에…
아주 흥미로운 사람이 들어온 것 같았다.
* * *
[‘수중질주’ 룬을 선택하셨습니다. 9레벨의 레어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해, 5레벨로 등록됩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물 내성을 3, 속력을 1 획득합니다.]
[다양한 무구를 다루는 당신의 솜씨가 더욱 현란해집니다. 검과 방패의 숙련도가 급격히 증가합니다.]
[‘무술의 달인’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근력을 2 획득합니다.]
‘뱀이 뒤덮은 숲’은 정말 황금알을 낳는 던전이었다.
괴수들의 평균등급이 B급에 워낙 수준이 높은 탓에, 사냥하는 족족 얻어내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꾸준히 주력룬의 레벨이 올랐고, [룬 사냥꾼]을 통해 새로운 룬들도 얻어냈다.
‘번개 내성은 8까지 올렸고.’
가끔 강에서 출몰하는 일렉트로포러스는 번개 내성을 올리는 영양제들이었다.
꾸준히 놈들의 전격을 몸으로 받아내며 번개 내성을 올렸고, 남은 룬이었던 [수중질주]까지 추가로 획득하며 뽑을 수 있는 전부를 뽑아냈다.
초입을 넘어, 던전의 중간부에 들어가고부터는 놈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진짜 뱀 괴수들이 나타났지만.’
B급 괴수 메가 스네이크와 그린 아나콘다.
뱀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대한 크기의 괴수들이 나오기 시작하며, 육지에서의 치열한 전투를 펼쳤다.
아쉽게도 놈들에게서 얻을 룬은 없었다.
두 괴수 모두 고등급의 능력치에 기반해 육탄전을 펼치는 녀석들이고, 활용하는 전투 룬들도 [견고한 이빨]이나 [날렵한 몸놀림] 등 내가 이미 보유한 룬들이 전부였다.
일렉트로포러스에게서 3개나 되는 룬을 얻었기에 큰 불만은 없었다.
‘물론, 아예 없는 건 아니지.’
던전의 초입과 중간부.
모든 괴수를 격파하며 넘어가자, 우리가 계획했던 보스룸 근처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끝자락에서.
A급 괴수 ‘바실리스크’를 마주했다.
뱀 계열 괴수 중엔 거의 최고난도로 분류되는 괴수답게, 녀석을 사냥했을 땐 룬을 획득할 수 있었다.
<룬 정보>
◎이름: 경직의 눈동자
◎등급: 레어(Rare)
◎레벨: 5
◎새겨진 부위: 눈
◎특수효과
: 전투 도중 서로 눈을 마주치면, 아주 낮은 확률로 상대를 경직 상태에 빠뜨릴 수 있다. 룬의 레벨이 오를수록 확률이 조금씩 올라가며, 상대의 정신 수치가 낮을수록 확률이 더욱 올라간다.
: 마력 +5
◎파생스킬: -
◎세부정보
: 상대를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강렬한 눈동자. 평범한 이들은 이 눈동자의 위엄만으로 크게 주눅이 들곤 한다.
[경직의 눈동자].
신체에 특수한 능력이 담기는 레어룬.
전설룬으로 알려진 S급 괴수 ‘고르곤 메두사’의 [석화의 마안]보다는 꽤 낮은 단계의 마안 계열 룬이지만, 지금의 내게 있어선 꼭 필요한 룬 중에 하나였다.
우선 특수효과.
[위압]의 [선전포고] 말고는 별다른 상태 이상 능력이 없던 내게, 이러한 룬의 특수효과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다.
‘경직’ 상태 이상은 전신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는, ‘공포’와 거의 맞먹는 수준의 상태 이상이다.
아주 낮은 확률이기에 비록 쉽게 걸리진 않겠지만, 능력치나 룬 레벨, 기타 여건 등에 의해서 얼마든지 변동될 수 있는 확률이었다.
‘거기에 마력 추가효과…!’
지금의 내게 가장 필요한 능력치.
마력.
이 수치를 무려 5나 올려준다.
덕분에 꾸준히 상승세를 기록하던 내 마력은 기어코 30을 찍고 말았다.
궁극스킬 제한 조건 중 하나의 해금이었다.
‘효자 룬도 이런 효자 룬이 없네.’
필요한 것만을 골라다 가져다 준 [경직의 눈동자].
바실리스크 사냥에 어떻게든 참여해 기여도를 따낸 보람이 있었다.
<홀더 정보>
◎이름: 도재현
◎성별: 남(20)
◎능력치
[근력: 40] [마력: 30]
[속력: 43] [신성: 15]
[내구: 32] [정신: 27]
◎내성 능력치
[독: 8] [물: 10] [불: 8] [번개: 8]
◎보유 룬
-에픽(Epic)
[룬 사냥꾼 Lv.Max] [구도자의 땀방울 Lv.Max]
[위압 Lv.2] [무자비한 돌격 Lv.2]
[소용돌이를 삼킨 파도 Lv.4] [무술의 달인 Lv.5]
-레어(Rare)
[도마뱀의 비늘 Lv.7] [수중호흡 Lv.3] [맹독 Lv.5]
[파상검법 Lv.9] [유수검법 Lv.9] [괴력 Lv.2]
[날렵한 몸놀림 Lv.6] [견고한 이빨 Lv.3]
[이글거리는 불꽃 Lv.7] [단단한 지구력 Lv.4]
[간단한 저주 Lv.2] [전투치유 Lv.5] [수중질주 Lv.5]
[날카로운 손톱 Lv.6] [침투하는 뇌기 Lv.4]
[경직의 눈동자 Lv.5]
-노멀(Normal)
[요리 Lv.5] [질주 Lv.5] [마력제어 Lv.6]
[사족 격투 Lv.2] [육탄방어 Lv.5] [은신 Lv.7]
◎보유 스킬
-무술의 달인
[백병전 선언] [쿼터 나이프] [연격] [연타] [철벽수비]
[포이즌 클로우] (맹독) [단단해지기] (도마뱀의 비늘)
[스태미나 푸드] (요리) [선전포고] (위압)
[뉴 웨이브] (소용돌이를 삼킨 파도)
[응급처치] (전투치유) [하이드 어택] (은신)
◎궁극 스킬
[파상천검] (파상검법/제한)
[유수활검] (유수검법/제한)
‘…화려하구만.’
아주 오랜만에 펼쳐 본 홀더 정보.
능력치는 물론, 세기 힘들 정도의 보유룬과 각종 스킬들이 화려하게 정보창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곳에 떨어지고 반년이 되어가는 시간.
그간 내가 얼마나 달려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양한 룬의 획득과 레벨도 그렇지만, 꾸준히 훈련과 실전을 거듭하며 능력치를 고루 상승시킨 것도 고무적이다.
[구도자의 땀방울]과 ‘룬 획득 보상 능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결과였다.
특히 주력 능력치인 근력과 속력은 벌써 40을 넘어가고 있었으니…
이제는 B급 홀더로 달려가기 위한, 순조로운 성장 속도였다.
“정지.”
홀더 정보와 새로 얻은 룬들을 점검하고 있던 와중.
선두의 권오준이 손을 들어 올렸다.
뭔가를 발견한 듯한 자세와 움직임이었다.
후방에 자리하던 파티원들은 모두 그의 옆으로 다가가, 그가 마주한 장소를 바라봤다.
바로 앞.
수풀 아래엔 구덩이가 생긴 듯 땅이 푹 꺼져 있고, 그 안엔 바위로 가려진 동굴 하나가 보인다.
그 주변엔 괴수로는 보이지 않는,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수의 뱀들이 나다니고 있었다.
누가 봐도 특수 공간임을 드러내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던전 내 괴수들을 사냥하며 여기까지 온 우리는, 모두 그 공간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멀고도 길었던 던전 공략의 끝.
보스 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