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2 뱀이 뒤덮은 숲 (6)
-하늘의 별보다 더 많은 게 던전의 개수다.
한때 던전 발굴자로 유명했던 탐험가 홀더가 남겼던 명언이다.
괴수와 홀더의 대립이 생기고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던전이 발견되고 공략됐지만…
여전히 발견되지 않은 던전은 많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새로운 던전을 협회에 등록하고 있었다.
아직도 미발견 던전을 찾아 한 몫 챙기려는 탐험가 홀더들이 성행하는 이유다.
‘개수가 많은 만큼 종류도 많고.’
던전의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내가 처음 공략했던 아카데미 지하 던전처럼 동굴 형태도 많지만, 수풀과 산, 바다나 사막, 심지어는 마을 같은 형태까지…
하늘의 별보다 더 많은 게 던전이라는 그 홀더의 말처럼, 세상엔 정말 다양한 형태의 던전들이 존재한다.
더구나 원작 후반부에선 인간과 의사소통을 하는 이종족들이 던전에 나타난 적도 있었다.
…그들을 괴수로 봐야 할지는 부차적인 문제지만.
“어쨌든 뱀이 뒤덮은 숲 정도면 공략 시간이 짧은 편이지.”
나무에 기대앉은 최동욱이 장비를 점검하며 말했다.
말을 편하게 해달라는 내 요청에.
그는 나와 가볍게 대화하고 있었다.
“수풀 형태의 던전인데도요?”
“헤매지만 않으면 금방 보스룸에 도착하니까. 수풀 형태 던전은 길이 자체가 생각보다 짧거든. 뭐, 그걸 고려해도 우리가 너무 빨리 공략한 면이 있지.”
사냥 5팀 내 B급 파견 파티.
신유나와 나를 빼곤, 워낙 정예로 구성된 파티인 탓일까.
우리는 ‘초고속’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빠르게 사냥을 마쳤다.
인왕산 필드는 대략 1시간.
뱀이 뒤덮은 숲은 약 3시간.
총 4시간.
오후 2시에 파견 임무를 시작했으니, 딱 저녁 6시 정도에 보스룸에 도달한 것이다.
아무리 공략 시간이 짧은 형태의 던전이라고 하더라도 평균 공략 시간이 8시간인 걸 생각하면, 분명 놀라울 정도의 공략 속도였다.
때문에 파티장인 권오준도 휴식을 선언했다.
보스룸 입장에 앞서, 잠깐의 정비 시간이었다.
“저번에 어디더라. 로열이었나? 거기서 공략한 던전 중에 사막 형태 있는데, 그건 일주일 넘게 걸렸다더라.”
“그렇게 오래 걸려요?”
“던전 범위가 너무 넓고 보스 룸 찾기도 힘들잖아. 그런 곳 갈 땐 뭐 야영 준비하고 가야지. 출퇴근 식으로 기간 나눠서 공략하거나.”
사실 나도 다 아는 내용이다.
아마 던전의 종류나 형태에 대해선 내가 최동욱보다 훨씬 잘 알 거다.
다만, 이렇게 하면 그에게 조금이라도 암살 계열 룬 활용을 배울 수 있을까 싶어, 쓸데없는 얘기에도 맞장구를 쳐 줄 뿐이었다.
투척술 밖에 활용하지 못하는 내 암살 계열 룬이 아쉬웠기에.
어쨌든 다 아는 주제로 대화를 이어간 덕에, 단검술에 대한 간략한 교육도 받을 수 있었다.
“단검보단 소검을 쓰는 게 좋아.”
“소검이요?”
“어. 단검술의 최대 단점이 무기 리치가 짧다는 건데, 소검을 쓰면 그게 어느 정도 커버 되거든. 단검술 특유의 빠른 속력, 그 장점을 유지하면서 단점은 줄이는 거지.”
“아하….”
“그래서 뭐, 이걸 소검술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더라. 당연히 시스템상으론 단검 룬에 해당하는 무기술이고.”
아카데미에선 단검을 쓰는 걸 가르쳤었다.
그리고 최동욱의 말처럼 리치가 짧은 단점이 드러났고, 나 역시 그런 이유 때문에 근접 물리 공격은 양손검이나 한손검 쪽으로 방향을 틀었었다.
‘그때 그 교수는 소검에 대해선 언급도 없던데….’
같은 B급 홀더라도 수준 차이가 심하다더니.
당시의 교수와 최동욱이 딱 그랬다.
유난히 약하다고 평가 받는 한국 암살 계열의 현실이었다.
아카데미에 최동욱 정도만 강사로 와도 딱 좋을 텐데.
“그럼 소검술에도 검법류 룬이 있나요?”
“당연히 있지. 삼재검법처럼 스탠다드한 노멀룬은 없지만, 레어룬 쪽으로 가면 괜찮은 파생룬들 있어. 나도 하나 보유하고 있고.”
그 말에 눈이 번쩍 떠졌다.
즉, 최동욱을 결투에서 이기면 해당 룬을 획득할 수 있다는 뜻이다.
룬 정보는 홀더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비밀이기에 자세한 내용까진 모르지만, 전투 때 그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상당히 쓸만한 룬일 게 분명했다.
‘솔직히 이길 자신은 없는데….’
암살자 계열 B급 홀더.
그중에서도 꽤 수준이 높아 보이는 최동욱이다.
여타 C급 홀더들보단 훨씬 강한 나지만, 그를 상대로 승리를 확신할 순 없었다.
그래도 궁극스킬 제한이 풀리고 어떻게든 버티면 한 번은 승리를 따내지 않을까.
<불의 심판> 입단 후 처음으로 가시적인 목표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다들 충분히 휴식했을 것 같은데, 슬슬 가자. 지긋지긋한 뱀 새끼들 그만 봐야지.”
권오준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그에 다른 파티원들도 정비를 마치며 일어섰다.
이젠 정말 보스룸에 들어가야 할 때였다.
* * *
“…나무?”
동굴에 들어가자마자 느낀 건.
이 보스룸이 전혀 동굴의 모양새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던전에서 꾸준히 밟아왔던 퍽퍽한 흙이 땅바닥을 점령하고 있었고, 안쪽엔 각양각색의 나무들이 천장으로 뻗어 있었다.
지하에 자리한 숲 같은 느낌?
게다가 나무들의 형태도 조금은 특이했다.
일반 나무보다 기둥이 훨씬 굵고, 잔가지들은 거의 없다.
특히 끝자락에 열려 있어야 할 이파리들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아, 초록색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황량한 모습의 나무들이었다.
“흐응- 갈색 숲 같은 느낌이네요.”
딱 들어맞는 이수미의 감상평.
인왕산 필드나 뱀이 뒤덮은 숲과 비슷한 외관이지만, 잎 없는 고목들이 넘쳐 ‘갈색 숲’과 같은 느낌이 났다.
우리는 그러한 특이한 모습을 살피며.
더 안쪽으로 파고들어, 보스룸의 중앙으로 다가갔다.
“구덩이가… 하나 더 있는 것 같습니다.”
입구에서부터 탐색을 시작하던 민채환이 말했다.
보스룸을 들어올 때 내려왔던 커다란 구덩이.
그런 구덩이가 보스룸 안에도 하나 더 있었다.
굳이 민채환이 말해주지 않더라도,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희미하게 보였다.
스스스-
그리고 그때.
그동안 지겹도록 들었던 소리가 한 번 더 들려왔다.
던전 내 뱀 계열 괴수들의 움직임.
특히 천천히 이동할 때 자주 들리는 소리였다.
스릉-
화르륵-
그에 맞춰 파티원들도 더 확실히 전투태세를 취했다.
이미 후방 지원 인원들은 각자의 공격을 위해 마력을 끌어올린 상태였고, 내 손에도 한손검과 방패가 들려있었다.
보스로 추정되는 괴수의 작은 소리와 파티원들의 발소리.
그 음들이 완전하게 겹쳐질 때쯤…
민채환이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옵니다!!”
스, 스스스-!!
캬오오오-!!
거대한 형상의 뱀이 구덩이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저걸 뱀으로 보는 게 맞을까.
커다란 머리부터 넙데데한 얼굴…
목덜미의 양옆을 장식한 가죽까지.
상체 부분만 보면 도마뱀이라고 봐도 무방한 생김새였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씨발… 뭐 이렇게 큰 거야.’
보자마자 욕이 절로 나온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 크기가 정말 어마어마하다.
중간부 끝자락에서 마주쳤던 A급 괴수 바실리스크와 비슷한 형상을 취하고 있지만, 형체의 크기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막대한 차이를 보인다.
도마뱀이라는 표현조차 실례 같다.
이 정도면 거의 용이 아닐까?
하나의 숲을 이룬 이 보스룸을…
전부 뒤덮을 정도의 크기를 지닌 뱀 괴수.
그야말로 ‘뱀이 뒤덮은 숲’이었다.
“최동욱!”
권오준이 재빨리 최동욱의 이름을 불렀다.
괴수의 정보를 알려 달라는 의미.
그러나 최동욱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정보에 없는 괴수입니다!”
괴수 정보에 대해 빠삭한 최동욱조차 모르는 괴수.
생김새는 상당히 익숙한데…
명확한 명칭은 알 수 없는 보스 괴수였다.
원작에서도 ‘뱀이 뒤덮은 숲’은 스치듯이 언급만 됐었기에, 나 역시 자세한 정보는 모른다.
직접 부딪히며 정보를 알아내야 했다.
“앞선은 나 혼자! 신유나랑 도재현은 후방 쪽으로!”
“예!”
“알겠습니다!”
다급하게 외치는 권오준의 판단은 옳았다.
보스 괴수의 등급이 A급인지 S급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전사 계열을 앞선에 세우는 건 자살 행위였다.
막말로 방어 쪽이 약한 신유나는 보스 괴수의 공격 한 번에 즉사할 수도 있었다.
캬오오오-!!
스, 스스스!!
권오준이 곧바로 창을 휘두르며 보스 괴수에게 달려들었다.
마법사 계열의 준비 시간을 벌기 위한 선제공격.
물론, 혼자 덤비는 건 아니다.
마법사 계열에 반해 준비가 빠른 궁수 계열, 민채환의 엄호사격과 측면을 공략하려 파고드는 최동욱의 습격이 함께였다.
쉬이이- 파박!!
쩍, 쩌저적-
“…뭐?”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최소 A급 괴수.
어쩌면 S급일지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보스 괴수가…
너무도 쉽게 공격을 허용했다.
마력을 담은 권오준의 창은 가볍게 보스 괴수의 벌어진 아래 입을 찔러냈고, 최동욱의 양 소검은 매서운 속도로 놈의 옆구리를 베어내며 커다란 상흔을 입혔다.
민채환의 화살 세례 역시 마찬가지.
화살 공격은 놈의 꼬리 쪽을 관통하며 강렬한 타격을 줬다.
‘이게 무슨…?’
상식적이지 않은 현상이 일어났다.
물론, 세 사람의 공격이 강력한 건 부정할 수 없다.
한 명의 A급 홀더와 두 명의 B급 홀더.
그중에서도 정예로 선발된 파티 핵심 인원들의 공격이다.
당연히 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등급을 알 수 없는 보스 괴수가 이렇게 허망하게 공격을 허용한 점은 분명 이상했다.
‘게다가 소리.’
공격을 허용할 때의 소리가 특이했다.
세 사람의 공격이 모두 적중했지만, 무기들이 꽂히는 소리는 분명 괴수의 몸을 상처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건 마치…
“…나무를 베는 듯한.”
“도재현! 뒤!!”
뭔가를 눈치챈 최동욱이 가장 먼저 소리쳤다.
후방에 자리한 우리를 향한 다급한 외침이었다.
스스스스-
캬오오오-!!
뒤를 돌아보니.
처음 마주했던 거대한 형상의 보스 괴수.
세 명의 물리 공격에 맥없이 쓰러졌던 거대 뱀이.
우리의 뒤를 점거하고 있었다.
“아…!!”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의 바로 뒤쪽에 자리했던 커다란 고목.
그 고목이 어느새 사라졌었다.
고목이.
보스 괴수로 모습을 변환한 것이다.
‘씨발. 기믹이구나.’
녀석은 기믹 보스였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 공격을 당했던 뱀 괴수는 또 다른 고목이 되어있었다.
처음 공격당한 신체를 고목으로 바꾸고, 또 다른 고목에 침투해 새로운 몸을 만든 것.
회심을 담은 우리 파티의 선제공격이 아무 의미 없어진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를 설명하는 정보창이 나타났다.
[던전 내 기묘한 기운이 대지에 맴돌고 있습니다. 알 수 없는 기운은 야산의 이무기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야산의 이무기가 전이했습니다.]
전투 중 원할 때마다 몸을 바꿔치기할 수 있는 기믹.
듣기만 해도 짜증 나는데.
마주 상대하니 아주 엿같은 기믹이다.
게다가 이름이 ‘야산의 이무기’라니.
지극히 토종의 향이 나는 괴수명에, 왠지 모르게 더 열 받는다.
분명 존나 약해 보이는 이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