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74화 (74/353)

EP.74 뱀이 뒤덮은 숲 (8)

땀방울이 머릿결을 타고 흐른다.

강주연은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걸 체감했다.

보스룸 내부의 고목을 모두 불태우기 위한 작전.

이는 분명 성공적이었다.

모두가 동의한 전략이었고, 실제로 큰 효과를 발휘하며 보스 괴수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이대로 기믹을 모두 파훼한 후, 파티원들이 합심해 최후 공격을 감행한다면… 보스 괴수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코앞까지 다가온 공략 성공이었다.

‘…기믹이 하나가 아니었어.’

하지만 야산의 이무기가 던전에서 보조받는 기믹은 단순히 ‘전이’만이 아니었다.

보스룸 내부에 자리 잡은 무수한 고목들.

그들을 어떤 형태로든 자유롭게 활용 가능한 것.

그게 이번 던전 기믹의 진짜 정체였다.

때문에 보스 괴수는 궁지에 몰리자, 전이를 멈추고 고목을 다르게 활용했다.

얼마 남지 않은 몇 그루의 나무.

그들 모조리 ‘목조 뱀’으로 조형한 후.

마력 공격의 형태로 파티에 날린 것이다.

이는 작전에 집중하던 파티원들에게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도재현.’

강주연은 문득 자신의 앞에 선 남자를 바라봤다.

도재현.

그는 앞선에서 보스를 상대하다, 목조 뱀이 나타나자 곧바로 후방으로 달려왔다.

방어의 여유가 없는 후방 인원을 지켜야 한다…

이런 이유로 달려왔겠지.

그간 함께 해왔던 파티에서.

이 남자는 언제나 올바른 판단만을 해왔었으니까.

도재현은… 늘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미안해.’

그래서 급박하고 위험한 지금 이 순간.

강주연은 그에게 더욱 미안한 감정이 치솟았다.

이미 스스로 빛나던 그를 끌어들인 게 자신이었기에.

앞날이 창창하던 홀더를 위험에 빠뜨린 게 자신이었기에.

그는 이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달려와 있었다.

…분명 더는 방어 수단이 없을 것인데도.

“아가씨! 피하셔야 합니다!”

함께 ‘산불 작전’을 펼치던 마법사 계열, 김성철.

그가 다급히 마법 시전을 취소하고 말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신성 계열의 이수미도, 신입 클랜원인 신유나도.

모두 강주연의 주변으로 와 있었다.

클랜의 후계자만은 지켜야 한다.

아마 그런 생각으로들 왔을 것이다.

그러나 강주연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막을게요.”

“아가씨!!”

물러설 수 없었다.

자신이 직접 제안하고 데려온 남자가 서 있었다.

무리한 파견에도 웃으며 고맙다고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더는 방어할 여력도…

버텨낼 힘조차 남지 않은 남자가 눈앞에 서 있었다.

홀더로 각성하고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봐 온, 모든 이들 중.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홀더가…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그런 그를 앞에 두고, 홀로 도망치는 건.

분명 비겁한 일이었다.

‘같이 막을게.’

솔직히 막을 자신은 없었다.

산불 작전을 펼치는 데에 이미 많은 마력을 활용했고, 집중력이 깨진 상황이라 마법을 시전하기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심지어 아직 쓰지 않은 궁극스킬, [인페르노]조차.

이러한 다량 공격의 방어에 적합한 스킬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강주연은 함께 막을 것이다.

자신과 똑같은, 어쩌면 더 안 좋은 상황의 도재현도…

막는 선택을 했으니까.

그렇게 결심을 마치고, 주변에서 말리던 클랜원들도 빠르게 체념하며 어떻게든 막을 준비를 했다.

수십 마리의 목조 뱀들이 지척까지 다가온 순간.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흘러라.”

굳은 의지가 담긴 목소리는.

강주연의 귓가에 똑똑히 울렸다.

‘언령?’

아카데미 지하 던전 공략이 끝나고, 학기 말 평가의 사건이 있을 때까지.

한 번도 궁극스킬을 보여준 적 없던 도재현이다.

자연스레 강주연도 그에게 궁극스킬이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C급인데.’

그의 홀더 등급은 C급이었고, 지금껏 홀더 계 역사에서 C급 홀더가 궁극스킬을 활용한 경우는 없었으니까.

궁극스킬은 절대 일반적이지 않다.

얻고 싶다고 해서 얻어지는 스킬이 아니다.

완숙의 경지인 B급 홀더들마저 쉽게 가지지 못하는 게 궁극스킬이었다.

절대적인 능력치와 룬 레벨, 재능.

삼박자가 다 맞아떨어져야만 스킬의 시전이 가능했다.

당장 이 파티에도 궁극스킬을 활용할 홀더는, 그녀 자신과 파티장인 권오준뿐이었다.

스스스-

스스스스-!!

타닥, 타닥, 타다다-

그런 궁극스킬이 도재현의 검에서 펼쳐졌다.

보법류 룬을 활용하는 듯한 빠른 움직임.

그 속도는 가속이 붙고 또 가속이 붙어…

움직임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라졌다.

부드러움이 더해진 쾌속은 유려함이 되었다.

도재현의 검은 마치 춤을 추듯 움직이며.

목조 뱀들을 하나하나 쳐냈다.

‘물… 같아.’

검과 물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면.

아마 이런 느낌일까.

도재현의 검은 흐르는 물결이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게다가 궁극스킬을 보유한 강주연은 알 수 있었다.

‘…처음 써보는 게 아니야.’

그의 궁극스킬은 절대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인페르노]를 얻은지 꽤 시간이 흐른 그녀조차 아직 활용이 미숙한데, 도재현은 그 흐름과 구조를 모두 파악하고 있다는 듯… 완벽에 가깝게 궁극스킬을 구현하고 있었다.

타닥- 타닥-

타다다다-

스스스스-

거의 백여 마리에 가까웠던 목조 뱀.

그들은 결국 도재현의 검에 모두 무릎을 꿇었다.

“아…”

“저, 저게…”

“…….”

주변이 감탄사만으로 물들었다.

장난기도 잊은 채 버프에 집중하던 이수미도, 어떻게든 바람 마법으로 목조 뱀을 이동시키려던 김성철도, 체념한 얼굴로 너클을 쥐고 있던 신유나도.

모두가 넋을 잃은 채 도재현을 바라봤다.

앞선의 권오준과 최동욱에게 날아든 목조 뱀을 제외한…

후방으로 날아온 모든 목조 뱀이 바닥에 떨어졌다.

도재현.

이 남자는 오로지 자신의 능력만으로.

셀 수 없이 많던 목조 뱀들을 모조리 쳐낸 것이다.

“하아… 하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도재현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왼쪽.

이수미가 자리하던 곳이었다.

“하아… 하아… 이수미 홀더님, 버프를….”

“아! 응. 알겠어요. 잠깐만요.”

이수미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다가갔다.

이내 정신을 집중해 양손에 신성술을 펼쳐낸다.

왼손에 연녹빛, 오른손엔 보랏빛.

[큐어]와 [레스트]를 동시에 펼치는 더블 캐스팅이었다.

신성 계열 B급 홀더 중에서도 경력 많은 고위 홀더, 이수미이기에 가능한 기술이었다.

넝마에 가깝게 망가져 있던 도재현은, 덕분에 빠르게 몸을 회복해갔다.

“후우… 감사합니다.”

“에? 아직 인턴 씨 치료 안 끝났는걸요?”

“시간이 없어요.”

도재현의 시선이 전방으로 향한다.

후방에 들이닥친 목조 뱀과 비슷한 수.

더없이 많은 목조 뱀들이 전방에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공격받는 중인 권오준과 최동욱.

어떻게든 막아내곤 있었지만, 당장 그들을 향한 지원이 필요했다.

목조 뱀의 공격은 둘째치고, 전이를 마친 야산의 이무기 본체가 떡하니 전방에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든 이무기의 공격이 들이닥쳐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도재현의 고개가 다시 돌려진다.

이번엔 강주연을 향한 시선이었다.

“강주연, 더 싸울 수 있겠어? 네 힘이 필요해.”

네 힘이 필요해.

그 한마디가 강주연의 머리를 때렸다.

마력이 거의 바닥났다…

움직일 힘도 남아있지 않다…

어떤 구도와 방식으로 싸울 생각이냐…

머릿속에 떠오르던 무수한 의문들은 그 한마디에 모두 정지했다.

다른 말은 필요없었다.

강주연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케이. 나랑 같이 전방으로 가자.”

도재현의 눈동자가 재빨리 다른 파티원들을 향했다.

“선배님들, 상황이 급해서 그런데 혹시 제가 오더를 내려도 될까요?”

“흐응- 당연하죠. 인턴 씨가 우리 모두를 살렸는데. 다들 동의하죠?”

이수미가 곧바로 도재현의 말을 거들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의견을 묻자, 김성철, 신유나, 그리고 뒤쪽에서 뭔가를 준비 중이던 민채환도 고개를 끄덕였다.

후방 인원 전원의 동의였다.

도재현은 그에 빠르게 오더를 내렸다.

“이수미 홀더님은 김성철 홀더님의 회복에 힘을 좀 써주세요. 급한 상황이라 김성철 홀더님의 바람 마법이 다시 필요해질 수도 있어요. 김성철 홀더님은 최대한 힘을 아끼시면서 위기 상황에 주력 마법을 활용해주세요. 신유나는 두 홀더님들 호위를 해줘.”

“흐응- 알겠어요.”

“알겠어…!!”

도재현은 고개를 돌려 민채환을 봤다.

“민채환 홀더님은 저희가 보스 괴수에게 다가갈 때까지 엄호사격을 맡아주세요. 지금 후방 인원 중 가장 큰 전력이 민채환 홀더님입니다.”

“…그렇게 하죠. 적어도 아가씨는 다치지 않게 할 테니.”

“감사합니다.”

후방 인원 모두에게 오더를 마친 도재현은 다시 강주연에게 시선을 옮겼다.

다른 이들을 볼 때와는 명백히 다른…

신뢰가 가득 담긴 듯한 눈빛이었다.

“가자.”

그 별것 없는 두 글자에.

강주연은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아마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몸 전체에 긴장이 가득해져서 그런 게 아닐까?

처음 느껴 보는, 낯설고 신기한 감정.

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강주연은 그 느낌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온갖 기믹과 까다로운 능력으로 점철됐던 괴수.

야산의 이무기.

이제는 정말 그 보스를 사냥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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