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76화 (76/353)

EP.76 뱀이 뒤덮은 숲 (10)

인왕산 필드 중간부.

미발견 던전 ‘뱀이 뒤덮은 숲’으로 입장하기 위한 매개체.

커다란 바위 근처.

복면인들은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지, 지부장님… 이게…”

“…….”

지부장이라고 불린 복면인 역시, 말없이 지금의 상황을 바라봤다.

계획 자체는 완벽했다.

스파이 명 ‘까마귀’로부터 정보를 입수한 후.

이 던전의 보상을 모두 빼앗기 위해 준비된 계획.

‘까마귀’는 <불의 심판> 내 사냥 5팀과 함께 던전을 공략하고, 자신들은 한 차례 늦게 던전에 입장한다.

그렇게 공략으로 지친 사냥 5팀을 모두 죽이고, 던전의 다양한 보상을 독차지하는 것.

스파이의 존재를 모르는 <불의 심판>에서…

당할 수밖에 없는 치밀한 작전.

<빌런> 클랜 소속 강남 지부에서 계획한 작전이었다.

“…….”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스파이의 존재를 모른다’는 가정의 이야기였다.

“빌런 놈들이 죄다 점조직 형태로 지부를 이루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나 가까이에 있을 줄 누가 알았겠나?”

복면인들의 바로 앞.

커다란 대검 한 자루를 땅에 박고 있는 중년이 말했다.

각기 무기를 든 수많은 홀더들 가운데에 서 있는 중년은, 존재 자체만으로 주변의 공기를 무겁게 만드는 위압감을 지니고 있었다.

“아무리 빌런이 잔혹함에 비해 허술하다곤 해도, 설마 스파이 한 명 말을 전적으로 믿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네. 자네들이 이렇게 우르르 떼로 몰려올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는 뜻이야.”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계획이 무너졌다.

던전에 한 차례 늦게 들어가 보상을 독차지하려던 <빌런> 강남 지부 클랜원들은, 그 시작부터 계획이 틀어졌음을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불의 심판>.

한국을 대표하는 3대 대형 클랜의 정예 클랜원들이 이곳, 뱀이 뒤덮은 숲 입구에 집결해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정예 클랜원들 사이에서 고고히 빛나고 있는 한 중년.

대한민국에 5명밖에 없다는 S급 홀더이자…

<불의 심판> 클랜의 마스터.

강우현이 있었다.

공식 석상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그가, 이곳 인왕산 필드 중간부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도 그래서 원래는 안 오려고 했는데 말이지…”

강우현이 천천히 복면인들을 바라봤다.

한 줌의 위기감도 느껴지지 않는.

너무나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예정에 없던 우리 딸이 공략에 참여해버려서 말이네. 딸이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아빠가 돼서 안 올 수야 있겠나. 하하.”

S급 홀더 강우현과 <불의 심판> 정예 클랜원들.

숫자와 능력.

모든 측면에서 앞서는 홀더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빌런>의 계획이 모두 간파된, 그야말로 철저한 포위였다.

* * *

권오준은 평온한 얼굴로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

“민채환. 더 말하기 귀찮으니 대꾸하지 말고 한 번에 알아들어라. 네가 빌런 클랜 소속 스파이라는 건… 이번 작전이 진행되기 전부터 인지하고 있던 사실이다. 파견일이 하루 일찍 당겨진 이유도, 네 같잖은 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도 마찬가지야.”

충격적인 사실이 터져 나왔다.

함께 자리한 파티원들의 얼굴도 경악으로 물들고 있었다.

아니, 여기까지 같이 싸워 온 궁수 계열이 스파이였다고?

심지어 능력이 출중한 고위 홀더였는데?

“네 움직임은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귀여운 짓을 많이 했더라고. 클랜 수뇌부와 보안팀에선 네 행동을 모두 체크하고 대비해왔다. 무슨 말인지 알아? 네가 갖다 바친 정보의 8할이 개소리란 뜻이야.”

매섭게 몰아치는 권오준의 말.

단어 선택에서 그가 얼마나 분노한 건지 알 수 있었다.

평소에는 장난기 가득한 팀장이지만, 동료에 대한 신뢰 만큼은 상당한 권오준이다.

그런 그에게, 팀원으로 잠입해 스파이 짓을 하는 건…

절대 용서할 수 없는 행동 중 하나일 것이다.

“아마 네가 소속된 지부 놈들도 던전 근처에 와 있겠지? 음흉한 새끼. 이미 클랜 지원 인력이 와 있고, 지금 나가면 네 동료들도 싸그리 잡혀 있을 거다.”

제압된 민채환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갔다.

억울함에서 경악으로.

경악에서 허망함으로.

허망함에서 분노로.

마지막에 다다른 그의 표정에선 마치 권오준을 찢어 죽일 듯한 눈빛이 보였다.

권오준의 말이 진실을 표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아…!! 민채환! 민채환이 그 이름이었구나.’

그리고 나는 그제야 민채환의 이름이 기억이 났다.

원작에서 불의 심판에 침투한 빌런 소속 스파이로 흘러가듯 언급됐던 홀더.

그 이름이 민채환이었다.

-불의 심판 클랜, 미발견 던전 1차 공략 실패… 클랜원이었던 민채환은 빌런 클랜의 스파이로 밝혀져…

당시 이야기는 신문 기사의 형태로 스치듯이 지나갔었다.

이번에 내가 인턴으로 들어오며 살짝 비틀렸을 뿐, 실제론 주연 중 누구도 참여하지 않았던 던전 공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역시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었다.

당시의 첫 던전 공략이 실패했다는 것도, 궁수 계열인 민채환이 <빌런>의 스파이였다는 것도.

권오준의 말을 듣고서야 그런 내용이 생각이 났다.

“다 끝났으니 무릎 꿇고 목이나 닦아.”

그렇게 권오준의 마지막 선고가 민채환을 향했다.

무섭도록 차갑고 치밀한 계획이었다.

<불의 심판>에선 <빌런>의 속셈을 모두 알고 있었다.

‘뱀이 뒤덮은 숲’에 관한 정보 획득도, 인력을 동원해 해당 던전의 보상을 독차지하려는 것도, 심지어 사냥 5팀의 힘을 빌려 대리로 던전을 공략하려던 것도.

<불의 심판>은 그들의 계획을 역이용한 계획을 세웠다.

정보 전달을 그대로 두는 대신, 파견일을 앞당겨 <빌런>의 준비를 미숙하게 만든다.

그 후 지원 인력을 동원해 변수를 원천 봉쇄.

스파이인 민채환은 던전 내 보스룸까지 데려와 전력으로 써먹은 후, 마지막 순간에 제압….

이건 시작부터 <빌런> 쪽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빌…어먹을.”

민채환이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활을 땅바닥에 던졌다.

굴욕으로 가득 찬 그의 표정.

사실상 기권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팀장님!”

그런데 그때였다.

분명 민채환의 행동반경은 제압이 끝났는데…

하늘에서 웬 화살 세례가 빠르게 쏟아졌다.

마치 아까 목조 뱀의 마력 공격을 보는 듯한 다중 공격.

하늘을 수놓은 까만 화살만으로 PTSD가 올 것 같았다.

“이런 씹…”

권오준이 순간 욕설을 내뱉으며 창을 들었다.

다른 파티원들도 각자만의 방법으로 방어할 자세를 취했다.

정확히 무슨 스킬인진 모르지만…

궁수 계열인 민채환이 활용한 원격 스킬.

모든 게 끝난 그가 던지는 최후의 발악이었다.

다들 긴장한 채 방어를 해야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며 난 생각했다.

‘이거… 어차피 물리 공격 아니야?’

이 화살 세례는 마력 공격이 아니다.

그건 민채환의 주변 기운만 파악해도 알 수 있다.

그에겐 마력을 끌어 올리는 어떤 기세도 보이지 않았다.

만약 민채환이 마력을 쓰려 했다면.

그 순간 이미 최동욱에게 공격을 당했을 것이다.

이 화살 세례는 아마 민채환이 활을 떨어뜨리는 걸 트리거로 발생시킨, 물리 공격 성향의 원격 스킬로 보였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원거리에서 날아드는 물리 공격.

개체 수가 얼마나 많든 간에…

내게 어떤 타격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투둑- 투둑-

투두두두-

투두두두두-

무수히 많은 수의 화살들이 맥없이 땅에 처박혔다.

그 놀라운 광경에 파티원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

“뭐야….”

“팀장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글쎄.”

나는 미소를 머금었다.

화살 세례가 무효화된 이유는 내 스킬에 있었다.

[백병전 선언].

상위룬 [무술의 달인]을 조합하며 획득했던 스킬.

전투 도중 10분간, 원거리에서 날아드는 모든 물리 공격을 무시할 수 있는 사기적인 스킬이었다.

‘이걸 기어코 써먹긴 하네.’

야산의 이무기와 싸울 땐 쓸 일이 없었다.

녀석의 공격이 대부분 근접 공격이었고, 원거리 공격은 마력을 활용한 땅 계열 마법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런 특정 상황에선, 200% 효과를 발휘하는 만점짜리 스킬이었다.

“이게 무슨….”

기습 화살 세례가 너무도 허무하게 끝났다.

그 탓에 민채환의 표정 역시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건 기회야.’

[백병전 선언]으로 모든 화살을 무위로 돌린 후.

나는 멈추지 않고 재빨리 검을 들고 달려갔다.

그리고 그대로 민채환의 어깨에 찔러 넣었다.

그를 제압 중이던 최동욱이 손을 쓰기도 전의 공격이었다.

“끄, 끄아아악…!!”

갑작스러운 습격에 민채환이 비명을 질렀다.

그의 내구 수치를 뚫을 기세로 마력까지 담아 찔렀다.

당연히 아프겠지.

하지만 스파이의 고통 따위 관심 없다.

‘이건 기회야!’

최동욱에게 가만히 제압만 된 상태의 민채환을 공격했다면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채환은 제압 상태에서도 스킬을 사용하며 공격을 가했고, 나는 [백병전 선언]을 활용하며 그 공격을 방어했다.

다시 말해…

민채환과 나는 서로 공격을 주고받은.

일종의 ‘전투’를 치른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기회였다.

민채환의 룬 하나를, 날로 먹을 수 있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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