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7 보상 (1)
민채환 사건마저 모두 끝이 난 후.
우리는 드디어 편안하게 던전 보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난이도를 자랑하는 던전답게.
레스트 룸의 보상도 만만치 않았다.
각종 마력석과 장비, 특수 아이템들이 발에 치일 정도로 많았고, 레어 아이템은 물론, 에픽 아이템도 종종 보일 정도로 보상 수준이 화려했다.
이 보상들은 우선적으로 클랜에 귀속되지만, 우리 사냥 5팀은 직접 던전 공략을 성공한 장본인들이기에 적절한 보상 분배 및 자신이 원하는 보상을 지정해 신청할 수 있다.
“인턴 씨, 인턴 씨. 나한테만 말해줘 봐요. 아까 그거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그 많던 화살이 어떻게 전부 땅에 박혀요?”
레스트 룸 보상 확인 중 날 괴롭히는 팀원도 있었다.
신성 계열 이수미.
실력은 좋은데 장난기가 너무 많은 선배님이다.
“업계 비밀입니다. 알면 다쳐요.”
“흐응- 우리 사이에 이러기예요?”
“우리 사이가 대체 어떤 사이인데요….”
가끔, 아니 어쩌면 자주.
이수미와의 대화는 따라가기 힘든 면이 있다.
과하게 노출된 신체 부위를 보는 것도 꽤 민망하고.
그래도 이런 곤란한 상황을 해결해 주는 팀원도 있었다.
“…이수미 홀더.”
강주연의 이 한 마디면 끝이었다.
아무리 이수미여도, 클랜 후계자 앞에선 얄짤없지.
그렇게 우리는 레스트 룸 보상을 모두 챙긴 후.
깔끔하게 던전 공략을 완료했다.
이후 던전을 나가게 되니…
정말 권오준이 말했던 대로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빌런> 소속으로 보이는 듯한.
온몸을 구속 당한 채 무릎 꿇고 있는 홀더들.
그들을 감시 및 제압 중인 <불의 심판> 소속 클랜원들.
그리고 그 많은 이들 사이엔…
“…클랜 마스터?”
“마스터를 뵙습니다!”
“마스터를 뵙습니다!”
<불의 심판> 클랜 마스터인 강우현도 있었다.
나는 그를 두 눈에 담으며 속으로 기함했다.
‘와. 무슨 풍채가…’
처음 실물을 접하는 강우현의 풍채는 어마어마했다.
지겨운 표현이지만, 괜히 S급 홀더가 아니었다.
땅에 박힌 대검을 손에 쥔 것 외에 별다른 행동을 취하고 있지 않음에도, 그의 주변에선 마력이 넘쳐 흘러나왔고… 단지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무언가 압도되는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강주연이 지닌 카리스마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걸까.
과연 국내에서 손꼽히는 홀더 부녀다웠다.
“다들 던전 공략에 힘쓰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 오늘은 빌런 및 스파이와 관련해 처리해야 할 일도 많고, 날도 많이 저물었으니 빠르게 복귀하도록 하자. 보고 및 보상에 관한 이야기는 내일 클랜 타워에서 할 수 있도록.”
“예, 알겠습니다!”
권오준이 산에 메아리가 울릴 정도로 크게 답했다.
저렇게 큰 목청은 그를 만난 이후 처음 듣는다.
이게 팀장 급의 사회생활 레벨인가…?
어쨌든 우리는 해산 명령을 받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유난히 지치고 힘들었던 하루.
말썽 투성이던 던전 공략의 완료였다.
* * *
일전에 신유나와의 결투 승리 이후.
나는 한 가지 습관이 생겼다.
그건 바로 [룬 사냥꾼] 기준의 결투에서 승리하더라도, 웬만하면 룬 획득 보상을 혼자만 있을 때로 미루는 것이다.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단지 사람들이 몰려 있거나 처리할 일이 있을 땐 제대로 된 정보 판별이 어렵기도 하고, 혹여나 저번 ‘상위룬 조합’ 때처럼 온몸이 빛나는 등 남들에게 보이면 곤란한 현상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난감한 상황을 막기 위한 습관이었다.
“…그렇다고 화장실에서 확인하는 건 좀.”
대신 룬 획득 보상 장소는 항상 화장실이다.
어쩐지 화장실에서 룬을 얻으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서…
나만의 미신이다.
…내가 생각해도 좀 머쓱한 미신이긴 하지만.
어찌 됐든 나는 뱀이 뒤덮은 숲 공략이 끝난 후.
자취 집 화장실로 와 정보창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먼저… 민채환 룬부터.”
화살 세례를 [백병전 선언]으로 방어하고 이어 곧바로 민채환을 공격함으로써, [룬 사냥꾼]의 ‘결투 조건’을 만족하고자 했던 꼼수.
이 꼼수는 제대로 들어맞았다.
어수선했던 그때 상황이 끝나자마자.
이후 바로 나타난 정보창이 그를 증명했다.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결투에서의 높은 기여도로 인해 승리가 인정됩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1.활(선택불가) 2.냉철한 집중력 3.별절사법 4.천무사법 5.까다로운 화살촉 6.마력제어(선택불가) 7.민첩성 8.탐색]
민채환의 룬 세팅은 정석적이었다.
만약 궁수 계열 홀더가 그의 룬 세팅을 본다면, 누구나 눈이 돌아갈 법한…
깔끔하고 매력적인 룬들이었다.
민채환은 주력 무기가 활이기에 당연히 [활] 룬을 보유하고 있었고, 마력을 매끄럽게 다루는 [마력제어], 보법류 룬인 [민첩성], 궁수 계열의 공통룬인 [탐색] 또한 지니고 있었다.
이 넷은 고민을 할 여지조차 없다.
앞선 두 개는 이미 보유해 선택불가, [민첩성]은 그보다 상위호환인 [날렵한 몸놀림]이 내게 있기에 선택의 이유가 없었다.
[탐색]은 쓸만하긴 해도, 파티에서의 내 역할을 생각하면 크게 의미는 없었다.
“별절사법도… 별로고.”
[별절사법].
이는 궁수 계열의 가장 기초적인 궁술 관련 무공이다.
검을 쓰는 이들의 [삼재검법], 격투가들의 [영춘권]과 비슷한 부류의 무공 룬.
나한테 없는 룬이긴 하지만, 궁수 계열이라면 누구든 보유하고 있는 일종의 공통룬이라 보상으로 가져오기엔 조금 아까웠다.
“천무사법이랑 까다로운 화살촉. 이게 좀 고민되네….”
[천무사법]은 궁술 무공 중 레어급에 해당하는 룬이다.
자세한 룬의 정보나 내용까진 모른다.
나도 이름만 들어본 룬이거든.
하지만 공략 중 민채환의 뛰어났던 궁술 실력과 막판에 사냥 5팀을 향해 날렸던 ‘허공에서의 화살 세례’ 스킬… 그러한 것들은 모두 이 [천무사법]에 기인했을 확률이 높았다.
[까다로운 화살촉] 또한 레어룬이다.
이는 궁수 계열 중 재능이 뛰어난 일부 홀더들에게 가끔 나오게 되는 룬인데, 화살촉에 마력을 담아 사격 대상에게 특정 상태 이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능력이다.
내 보유 룬 중엔 [간단한 저주]와 유사한 측면이 있는 룬.
이 룬 때문에 궁수 계열은 파티의 CC(Crowd Control) 기술을 담당하는 계열로 불리기도 했다.
“그래도 역시…”
살짝 고민이 되긴 했지만.
내 시선은 결국 [냉철한 집중력]으로 향했다.
앞선 두 개의 룬이 분명 좋은 룬인 건 확실하다.
등급도 레어(Rare)에, 민채환의 주력 룬들이었기에 레벨도 꽤 높을 테니까.
하지만 두 룬은 궁수 계열에 국한된다는 단점이 있고, 또 이를 적극 활용할 정도로 내 궁술 실력이 뛰어나지 않다는 점이 걸린다.
반면 [냉철한 집중력].
이는 홀더의 전투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룬이다.
갑작스러운 습격이나 당황스러운 변수, 특별한 상태 이상 등에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전투를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정신 계열의 레어룬.
[까다로운 화살촉]이나 [간단한 저주] 부류의 상태 이상 관련 룬들을 완전히 카운터치는 룬이기도 했다.
이 분야 최고로 여겨지는 박진우의 [명경지수]보다는 한 단계 아래여도, 내게 도움이 될 건 확실했다.
[냉철한 집중력을 선택하셨습니다. 9레벨의 레어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해, 5레벨로 등록됩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정신을 4 획득합니다.]
몸 한 쪽에 새로이 룬이 새겨진다.
[냉철한 집중력]의 특수효과는 예상대로 ‘정신’ 수치에 비례해 각종 상태 이상에 저항하는 능력.
특별한 파생스킬은 없었다.
“그 다음은… 야산의 이무기.”
나는 미뤄뒀던 두 번째 정보창을 불러왔다.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결투에서의 높은 기여도로 인해 승리가 인정됩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1.갈라진 대지의 정원 2.단단한 지구력(선택불가) 3.견고한 이빨(선택불가) 4.괴력(선택불가) 5.육탄방어(선택불가) 6.날렵한 몸놀림(선택불가)]
‘야산의 이무기’의 룬 세팅은 단출했다.
대부분 내가 보유한 룬들로 구성되어 있어, 선택 가능한 게 하나밖에 없었다.
특히 룬 대부분이 신체 강화 쪽으로 몰린 것으로 미루어 보아, 기본적인 본연의 능력치 자체가 상당히 높았던 괴수였던 것 같다.
능력치와 룬 세팅이 일반 A급 괴수를 넘어서는 정도에, 추가로 자유자재로 고목을 다루는 던전 기믹까지 등에 업었었으니…
사실상 녀석을 사냥한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갈라진 대지의 정원을 선택하셨습니다. 11레벨의 에픽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해, 6레벨로 등록됩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땅 내성을 6, 마력을 3 획득합니다.]
[새로운 내성이 활성화됩니다.]
하나를 빼고 모두 선택불가인 탓에 자동으로 룬이 결정됐다.
나는 서둘러 룬 정보를 살펴봤다.
<룬 정보>
◎이름: 갈라진 대지의 정원
◎등급: 에픽(Epic)
◎레벨: 6
◎새겨진 부위: 발바닥
◎특수효과
: 땅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키고, 대지의 기운을 다룰 수 있게 된다. 사막과 같은 특수한 형태의 지역에서는 사용이 제한된다.
: 산이나 수풀과 같은 지형에서 능력이 증폭된다. 지면의 진동을 일으켜 발생하는 ‘산사태’의 이동 방향을 지정할 수 있다.
: 땅내성+6 마력+3
◎파생스킬
[파워 브레이크]
◎세부정보
: 갈라진 대지의 틈 안엔 오랜 세월의 기운이 축적되어 있다. 정원의 영역이 닿은 모든 곳에서, 사용자는 자유롭게 그 기운을 다룰 수 있게 된다.
룬 정보를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잭팟 터졌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하던가.
이건 뭐, 고생 끝에 슬롯머신 잭팟이 터진 수준이다.
죽을 고비를 넘겨 던전을 공략한…
달콤한 보상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