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80화 (80/353)

EP.80 보상 (4)

“친구 사이입니다.”

속으론 크게 당황했지만,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원래 이런 질문은 칼 대답이 중요하다.

우물거리는 순간 뭔가 진정성이 없어 보이잖아.

실제로 ‘친구 사이’가 가장 정확한 답이기도 하고.

하지만 답을 들은 강우현이 혀를 찼다.

“허어- 고민 한 번 안 하고 답하는군. 내 딸이 그렇게 매력이 없나?”

나왔다!

팔불출 아빠의 필살 가불기.

어떻게 된 게 예상을 벗어나질 않는다.

이런 얘기가 나올 줄 알고 있었기에 좆됐음을 감지했던 거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대답을 마치는 순간부터, 미리 이어지는 변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침착하게 준비한 답변을 말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강주연 홀더는 누가 봐도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외관적으로도 그렇고, 본연의 강함도 견줄 데가 없는 뛰어난 홀더죠. 아카데미 내에서도 선망의 대상으로 손꼽히는 인기 많은 학생입니다. 다만, 마스터께서 저와 강주연 홀더 사이의 정확한 관계를 물으셔서 오해가 없도록 답을 했을 뿐입니다.”

후우, 후우.

속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머릿속에서 미리 준비해 둔 대답이 파바밧- 하고 나왔다.

이 정도면 거의 속사포 랩이다.

강우현 역시 이런 초고속 대답이 나올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는지, 괜히 헛기침을 하며 당황했다.

“흠, 흠흠. 그렇군. 내 딸이 그 정도란 말이지?”

“예. 더 말해 뭐하겠습니까.”

쐐기를 박자, 강우현의 얼굴이 만족스러운 미소로 가득 찼다.

“역시 내 딸이야. 불의 심판 후계자면 그 정도는 되어야지. 암.”

…사회생활 힘드네.

살짝 현타가 올 뻔했지만, 영 틀린 말도 아니었다.

강주연에 대한 평가는 대외적으로도 내가 내린 평가와 일치하고, 외모도 아카데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예쁜 게 사실이니까.

다만 무뚝뚝하고 차가운 성격에 다가가기가 어려울 뿐.

게다가 국내 3대 클랜인 <불의 심판>의 후계자니까…

오르기는커녕 쳐다보기도 힘든 나무가, 강주연이었다.

“어쨌든 다행이군. 주연이가 하도 자네 얘기를 많이 하길래 난 또 오해했지 뭔가.”

“…….”

“혹여나 내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였다면, 보상이고 나발이고 당장 클랜에서 내쫓으려고 했지.”

“…예?”

“하하하. 내 딸을 데려가려는 도둑놈을 클랜에 그대로 놔둘 수야 없지 않은가.”

미친…

진짜 좆될 뻔했네.

뭐, 이런 비상식적인 사람이 다 있어?

자신의 딸에게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면.

클랜원이고 나발이고 그냥 다 쳐낸다는 거잖아?

마음 한켠에 자리하던 클랜 마스터 강우현의 위엄이.

끝을 모르고 추락한다.

분명 처음 볼 때만 해도 긴장해서 말도 걸기 힘든 S급 홀더였는데…

지금 보니 그냥 팔불출 딸바보 아빠였다.

그리고 누군진 몰라도, 훗날 강주연을 데려가게 될 남자에게 명복을 빌어줬다.

<불의 심판> 사위가 된다는 거.

절대 쉬운 일이 아니구나.

“어쨌든 알겠네. 오늘 자네와의 면담은 이걸로 끝이네. 다음에도 또 대화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군.”

“…예.”

전 그만 대화하고 싶습니다, 마스터….

지독하기 짝이 없는 강우현의 화법을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생각보다 깔끔하네.’

강우현과의 면담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았다.

나 스스로도 면담에서 크게 실수한 부분이 없고, 강우현 역시 마스터답지 않은 호쾌한 태도로 대화를 주도해주며 부담없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활약상을 인정받으며, [참회자의 검]까지 얻은 건 덤.

여러모로 이득이 많던 대화였다.

‘영입 제안도 막 깊게 하진 않는 것 같고.’

김칫국 마시는 걸 수도 있지만, 솔직히 강우현에게서 클랜의 정식 영입 제안이 들어오면 어떡할지 고민하기도 했다.

이번 공략의 내 활약은 내가 생각해도 괜찮았거든.

한 파티의 팀원으로서 묵묵히 제 몫을 다했고, 보스룸에선 다른 팀원을 지키는 동시에 보스를 사냥하는 데에 크게 일조했으니…

막말로 C급이 아닌, B급 홀더라고 봐도 무방한 활약이었다.

‘보상만 줬지, 제안은 없었지.’

그런데 강우현은 이러한 활약에 대해 보상으로서 치하해줄 뿐, 별다른 정식 영입 제안 같은 건 없었다.

그런 인사 관련 문제를 마스터가 제안하기엔 곤란한 걸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말 그대로 내 김칫국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아직은 특정 클랜에 정식으로 소속될 생각이 없는 내게, 지금의 상태는 나쁘지 않은 관계였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마스터.”

“그래, 또 보도록 하지.”

강우현에게 가볍게 인사하며 마스터 사무실을 나왔다.

다행히 별 탈 없이 끝난 마스터와의 면담이었다.

* * *

서울의 한 투룸.

방이 두 개밖에 없어 부엌 쪽은 굉장히 협소했지만, 어떻게든 식탁과 소파는 비좁은 공간을 뚫으며 놓여 있었다.

최아린은 식탁 한 편에 앉아 핸드폰을 봤다.

곧장 찾은 곳은 음식 배달 앱.

치킨, 피자, 족발, 파스타, 분식…

금요일 저녁을 불태우기 딱 좋은 메뉴들이었다.

“언니. 배달시킬 건데, 저녁 같이 먹을래?”

군침을 삼키며 족발 결제를 누르려던 순간.

최아린은 고개를 들어 소파 쪽을 봤다.

시체처럼 소파에 누워 휴식 중인 자신의 언니.

최유민에게 건네는 질문이었다.

벌떡-

“아씨, 깜짝이야.”

그리고 난데없이 일어선 시체 비스무리한 것.

최아린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비록 자신의 언니지만,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귀신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물씬 든다.

퀭한 얼굴에 영 기색이 좋지 않은 최유민.

그녀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최아린의 제안에 답했다.

“아니… 나 일해야 해.”

“또? 아니, 좀 쉬엄쉬엄해. 그러다 진짜 죽겠어.”

“작업 거의 다 끝나간단 말이야… 곧 있으면 계약일이라서, 그때까지 완성하고 싶어.”

“으이구. 도재현이 뭐라고 그렇게까지 해주냐? 어차피 그냥 고객 중 한 명인데.”

최아린은 질린다는 얼굴로 언니를 바라봤다.

시간이 꽤 흐른 덕에, 이제는 최아린도 자신들 자매와 계약한 홀더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도재현.

얼굴조차 모르는 자신과 언니에게 거금을 투자하며, 경제적으로 도움을 줬던 특별 고객이었다.

그런 최아린의 핀잔에 최유민의 얼굴이 순간 험해졌다.

“뭐? 도재현? 너 투자자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뭐래. 나한텐 그냥 고객인데. 언니야 기간 계약으로 했지만, 난 건당 계약이거든? 그리고 저번 계약 이후로 별로 찾지도 않더만, 뭐.”

첫 계약에 5천만 원.

다음 계약에 2억 원.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으로 포션을 구매해갔던 고객이지만, 이후 별다른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다.

아마 사냥을 뜸하게 가거나, 포션이 필요치 않은 상황이겠지.

그래서 최아린은 여전히 감사한 고객이라는 데엔 동의하지만, 최유민처럼 막 투자자님이라고 받들 정도로 도재현을 특별히 생각지는 않았다.

애초에 사냥보다 훈련이 더 많은 학생 홀더이기에 큰 기대도 안 했었다.

“아무튼 나 일해야 해. 혼자 먹어….”

“맘대로 해라. 안 먹으면 언니만 손해지.”

또 자신을 자극하는 최아린의 말에, 최유민은 대충 손을 휘저으며 상대하기를 그만뒀다.

그리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어 방 아래에 숨겨진 또 다른 공간.

계단을 타고, 좁은 지하까지 들어간다.

아카데미가 방학에 들어서며 활용하게 된 간이 대장간.

아직 개인 공방을 차리기엔 돈이 너무 부족해…

간략하게나마 직접 꾸린 아담한 공방이었다.

시간당 돈을 내고 쓰는 사설 대장간을 이용해도 되지만, 아무래도 장기간 특정 장비를 작업하려면 작더라도 개인 공방이 있는 게 나았다.

“어제 작업하던 게 어딨더라….”

최유민은 공방 한쪽으로 움직여 작업물을 찾았다.

아직 마무리 작업이 덜 끝난 장비.

정확히는 가죽을 활용해 만드는 중인 갑옷.

방어구 계열의 장비였다.

“쓸 만한 방어구가 필요하다고 했으니까…”

도재현은 일전에 장비 제작 시 방어구를 중점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냐는 오더를 했었다.

무구 쪽은 저번에 만들어 준 장비들이 아직 많이 남았고, 특히 [잘 벼려진 롱소드]를 괜찮게 쓰는 중이라 달리 보강이 필요치 않다고 언급했었다.

사실 계약 내용은 단순히 한 달에 5개의 장비만 주면 되기에, 그를 무시하고 아무 장비나 줘도 상관없겠지만…

최유민은 웬만하면 그의 오더를 맞춰주고 싶었다.

“흠흠. 어쨌든 재현이 덕에 에픽룬도 생겼으니까.”

야금 계열의 에픽룬인 [철혈의 야장].

최근 제작에 불이 붙은 최유민에게 생긴 룬.

다음이나 다다음 학기쯤엔 상급반으로의 승급을 확정지을 수 있는, 최유민이 가진 야금 계열의 재능이었다.

그녀는 만약 도재현의 지원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그러한 성장도 없었을 거라 생각했다.

어쨌든 그가 투자금을 지원하고 난 이후, 그녀의 성장에 계속해서 가속이 붙었으니까.

계약으로 묶인 작업에 밥까지 거르며 이토록 열중하는 건, 단순히 그런 이유였다.

…정말 그뿐이었다.

깡- 깡-

까강-

잠시 잡념을 떨쳐버린 최유민은, 어느새 야금 도구를 들고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만들고자 하는 건 가죽 갑옷.

예전에 도재현이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도마뱀의 가죽’을 줬던 적이 있어, 그를 통해 제작 중인 갑옷이다.

게다가 해당 도마뱀이 꽤 특이한 괴수였는지, 군데군데 붉은 빛을 보이는 가죽이었다.

거의 다 완성해가는 장비.

남은 건 이음매들을 잇는 마무리 작업뿐이었다.

사삭-

사사삭-

최유민은 꼼꼼하게 남은 이음매를 잇고, 최종 디자인까지 마무리 지으며 작업을 마쳤다.

“됐다…!!”

더없이 깔끔해진 작업물을 보며, 최유민이 환하게 웃었다.

닷새? 엿새?

아니, 일주일이었을까?

정말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 제작한 방어구 계열 장비가, 드디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장비가 성공한 작업물임을, 오랜만에 나타난 정보창이 알려줬다.

[능숙해지는 솜씨와 발전하는 기술! 오래도록 단련된 당신의 야금술이 점점 깊이를 더해갑니다. 제작 장비에 대한 이해도가 급격히 증가합니다.]

[‘철혈의 야장’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근력, 정신을 각각 1씩 획득합니다.]

완성된 아이템의 이름은 [그을린 도마뱀 가죽갑옷].

그녀가 대장장이 계열 홀더가 된 후.

처음으로 제작에 성공한 레어 아이템이었다.

“와. 이 정도면 진짜 좋아하겠네.”

…막상 그런 성과를 낸 최유민은.

그저 의뢰 고객의 감상을 기대할 뿐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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