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1 A급 때려잡는 C급 (1)
주말이 찾아오고, 파란만장하던 일주일이 끝났다.
<불의 심판> 인턴으로 들어가고 첫 주.
솔직히 첫 주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팀장의 신임을 얻으려 신유나와 싸우고, 거기서 획득한 룬으로 [룬 사냥꾼]의 새로운 효과가 개화했으며, 이어서 ‘상위룬’이라는 시스템이 열려 조합된 [무술의 달인].
게다가 입단 사흘 만에 미발견 던전 공략 파견에 참여하며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고, ‘궁극스킬’의 사용제한이 모두 풀리며 겨우 보스를 물리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팀원이 스파이였던 건 덤이다.
“이건 뭐, 책으로 만들어도 한 권은 나오겠네.”
덕분에 많은 성장을 이루긴 했지만, 다시 하라고 하면 고민이 좀 될 정도로 과격하고 스피디한 클랜 활동이었다.
“…항상 이렇진 않을 거야.”
혼잣말이었는데, 앞에 있던 강주연이 답했다.
신사동의 한 한식집.
강주연과 나는 토요일 저녁을 함께하고 있었다.
이번 파견의 성공을 자축하기 위한 회식.
평일은 너무 바빠 주말에야 겨우 가지는 자리였다.
물론, 회식이라기엔 팀장 권오준을 비롯해 신유나, 이수미 등 대부분 팀원이 없긴 했지만…
어쨌든 주역이었던 강주연과 내가 있으니 회식이다.
“원래 이렇게까지 바쁘진 않아?”
“응. 이번 파견이 워낙 예전부터 계획하던 거라….”
‘뱀이 뒤덮은 숲’ 공략은 <불의 심판>과 사냥 5팀이 아주 오래전부터 계획해 온 대형 프로젝트였던 모양이다.
권오준의 A급 승급과 클랜 내 유망주인 신유나의 성장.
이를 바탕으로 6개월 전부터 계획됐던, 공식적인 사냥 5팀의 공략 프로젝트였다.
이렇게 스펙타클한 미발견 던전 공략 기회는 쉽게 오지 않고, 내가 참여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아귀가 잘 맞았다는 뜻.
…이런 프로젝트에 인턴인 날 넣다니.
새삼 강주연의 클랜 내 파워가 얼마나 센지 느껴졌다.
“고마워. 그런 데에 나 껴줘서. 입단 때부터 내가 받기만 하네.”
“…아니야.”
강주연이 고개를 저으며 날 봤다.
“네가 없었으면, 던전 공략은 힘들었을 거야.”
“그건 인정.”
“……?”
뜬금없는 대답에 강주연이 눈을 깜빡였다.
평소라면 여기서 겸손의 대답이 나와야 하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눈빛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
“하하. 장난, 장난. 그게 뭐, 나만 잘해서 된 건가. 그 전까지 팀원들이 다 도와줬었고, 특히 마지막엔 네가 마무리했으니까 가능했지. 인페르노 없었으면 그 이무기 절대 안 죽었을걸.”
분명 내 활약상이 뛰어나긴 했지만, 그건 보스 공략에 있어 하나의 조각이었을 뿐이다.
모두 합심했기에 가능했던 성공이었다.
“기껏 주말에 밥 먹으러 왔는데, 또 일 얘기만 하고 있다. 얼른 먹자.”
잠시 한눈팔았더니 그새 일 얘기만 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둘 다 중독 수준이다.
“…응.”
강주연도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제는 그녀에게도 꽤 어울리는, 보기 좋은 미소였다.
식사를 위해 고개를 돌려 테이블을 봤다.
그리곤 곧바로 감탄했다.
‘와… 뭐가 이렇게 많아?’
테이블엔 각양각색의 한식 메뉴들이 놓여 있었다.
얼핏 봐도 10가지는 넘는 나물에, 다섯 종류의 김치.
도토리묵과 단호박 조림, 계란말이와 잡채.
두부조림과 조기구이, 표고버섯과 낙지무침까지.
피날레로 가운데엔 불고기와 된장국이 자리했다.
강남에서 꽤 유명한 한식집이라더니, 확실히 종류가 셀 수 없이 다양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식단이었다.
‘나중에 이거 다 만들어봐야겠다.’
또다시 요리 욕심이 샘솟는다.
외식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런 종류의 특색 있는 외식은 [요리]의 다양성에도 도움을 준다.
호화로운 음식들을 모두 눈에 담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성과 보상은… 다 받았어?”
표고버섯 한 점을 베어 문 강주연이 물었다.
‘뱀이 뒤덮은 숲’ 공략 보상.
이는 더할 나위 없이 퍼펙트했다.
공략 도중 사냥한 괴수들의 마력석 혹은 성과급을 배분받았고, 활약상에 따라 추가 성과급과 에픽 아이템인 [참회자의 검], 그리고 내가 따로 신청하는 보상을 획득할 수 있었다.
당연히 신청 보상은 보스 괴수의 마력석.
다행히 우리 팀원 중 이를 신청한 이가 없는 탓에, 금요일인 어제 보급팀으로부터 마력석을 건네받을 수 있었다.
[잊혀진 아룡의 마력석이 채워집니다. 석판이 묘한 힘의 기운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결과는 빙고.
석판에 끼워 들어간 마력석은 그대로 홈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당연히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다.
살짝 기대하긴 했어도, 정말 녀석이 아룡 중 하나일 줄은 몰랐으니까.
솔직히 이 마력석 하나만으로 <불의 심판> 인턴을 한 이유가 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제 석판의 봉인이 풀리기까지 남은 마력석은 두 개.
내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응. 그저께 클랜 마스터와 잠깐 면담하고, 어제부로 보상 다 받았어. 너무 좋은 보상들을 받아서, 인턴인데 이거 받아도 되나 싶더라.”
[참회자의 검]은 당시 경매가가 무려 290억 원이었다.
추가 보상만으로 300억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거기에 공략 성과급, 공략 활약에 따른 추가 성과급, 마력석까지.
아무리 활약상이 좋았고 고생했다지만, 진짜 이걸 다 받아도 되는지 의문이 들긴 했었다.
그런데 내 말에 강주연이 살짝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빠랑… 면담했어?”
“어? 어, 했지. 팀원들 전부 다 했잖아.”
“…아빠가 별말 안 했어?”
왠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강주연의 눈빛.
그 모습에 그저께의 면담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자네, 내 딸하고 정확히 무슨 사이인가?
-내 딸이 그렇게 매력이 없나?
-보상이고 나발이고 당장 클랜에서 내쫓으려고 했지.
더 생각을 멈췄다.
딸바보 마스터와의 대화는 머리만 아픈 기억이었다.
그리곤 어색하게 웃으며 강주연에게 말했다.
“그냥 내 활약이 인상적이었다는 정도? 알잖아. 마스터, 공과 사 철저하신 거.”
공과 사가 철저하다고?
내가 말해놓고도 양심에 찔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건 강주연과 나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
강주연도 왠지 동의하지 않는 표정.
나는 애써 그를 무시하며 불고기로 젓가락을 향했다.
음.
이 집 맛있긴 하네.
* * *
이미 많은 사람과 클랜 내 팀원들에게 내 다중 능력을 선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혼자 간직해야 할 능력들은 몇몇 있었다.
예를 들어, [견고한 이빨]이나 [날카로운 손톱], [사족 격투]처럼 괴수의 신체 강화 관련 룬들이나… 이번 던전 사냥으로 획득하게 된 [침투하는 뇌기], [경직의 눈동자] 등의 완전히 새로운 룬들.
괴수의 룬이나 새로운 룬을 연달아 보여준다면, 아무리 신뢰가 깊은 사냥 5팀이라고 해도 이상하게 생각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이런 룬들은 홀로 수련을 하는 게 필수.
덕분에 나는 황금 같은 주말을 던전에서 보내고 있었다.
이번에도 장소는 아카데미 지하 던전.
실전 수련의 국밥과도 같은 내 아지트다.
[위엄이 바로 설 때 비로소 존재감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약한 상대를 몰아치는 당신의 카리스마가 더욱 짙어집니다.]
[‘위압’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정신을 1 획득합니다.]
초입부의 리자드맨을 모두 쓸어내니 [위압]의 레벨이 올랐다.
[위압]은 내 보유룬 중에서 유난히 성장이 더딘 편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위압]은 주로 나보다 약한 상대와 싸울 때 위력을 발휘하는 룬인데, 정작 내가 주로 싸우는 상대의 대부분은 능력치가 월등한 상위 괴수들.
다양한 룬의 활용도와 높은 숙련도로 능력치 차이를 커버하며 상위 괴수와 전투하는 나이기에, [위압]의 성장은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역시 양학엔 [위압]만 한 게 없다.
능력치 낮은 C급의 리자드맨들을 상대할 땐 거침이 없었다.
게다가….
“이거 손맛 죽이는데?”
초입부를 모조리 쓸어버리고 난 후.
나는 감탄하며 손에 든 검을 바라봤다.
[참회자의 검].
이번 공략 보상으로 <불의 심판>에서 받은 에픽 아이템.
괜히 에픽급이 아니라는 듯.
전투 시작 시 손에 쥘 때부터 느낌이 남달랐는데, 막상 리자드맨들을 베어내고 나니 그 손맛이 어마어마했다.
[유수검법]으로 적의 공격을 흘려낼 때도.
[파상검법]으로 적의 빈틈을 찔러낼 때도.
검을 사용해 전투하는 어떤 상황에서도, 삐걱거리는 느낌 하나 없이 깔끔하게 상대를 도려낼 수 있었다.
찌르기보단 베기에서 그 느낌이 더 강했다.
마치 식칼로 묵을 베어내는 것 같은 깔끔한 감각.
처음 느껴 보는 고급 아이템의 진가에 감탄만 나왔다.
“이래서 비싼 아이템 쓰는 거구나.”
게다가 [참회자의 검]은 신성 수치에 따라서 위력이 증가하는 검이다.
지금의 내 신성 수치는 15.
주력 능력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증가량으로 보면 절대 무시할 만한 수치는 아니다.
[위압]의 특수효과와 [참회자의 검] 성능.
이들과 기존의 내 전투력이 더해지니, 리자드맨 정도는 다른 어떤 것도 활용하지 않고 ‘검’만으로 처리가 가능했다.
키에에-!!
키에, 키에에!!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도마뱀도 그랬다.
초입부를 넘어서 중간부에 도달하자, ‘검만으로는’ 상대하기 어려운 도마뱀 괴수들이 나타났다.
시즐링 샐러맨더와 톡신 이구아나.
도합 열 마리쯤은 돼 보이는 괴수들이 나를 포위했다.
“씨발. 뭐 이렇게 많아?”
구성이 변칙적으로 바뀐 건지.
아니면 던전을 너무 오래 비워둔 것인지.
처음 봤을 때와는 다른 구성으로 괴수들이 찾아왔다.
그땐 분명 톡신 이구아나만 여섯 정도였던 것 같은데….
“그래도, 뭐. 많을수록 좋지.”
‘뱀이 뒤덮은 숲’을 공략하며 얻어냈던 보상들.
괴수들이 많을수록 효과를 더 확실하게 시험할 수 있다.
애초에 오늘 여길 온 것도.
그들의 정확한 성능을 체크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싱긋 웃으며 도마뱀들을 바라봤다.
“일단 땅부터 가르고 보자.”
시작은 [파워 브레이크].
새로 얻은 [갈라진 대지의 정원]의 파생스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