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1 얼룩진 암석 더미 (3)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일정을 잡았다며 오랜만에 마주친 탁원호는, 그 말과 함께 물러났었다.
그동안 찾던 홀더가 아카데미에 있을지도 모른다!
탁원호가 제시한 가능성에 살짝 혹하긴 했지만, 유은설은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어차피 학생 홀더다.
끽해야 C급 홀더가 대다수에, 정말 뛰어난 학생이라고 평가받는 B급 홀더들도 유은설의 눈에 찰 정도는 아니었다.
당연히 기대가 될 리 없었다.
‘불의 심판 후계자 정도면 괜찮겠지만…’
물론,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한 명 정도는 있다.
강주연.
스무 살의 나이에 B급 홀더를 달성하고, 벌써 클랜을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학생 홀더.
아카데미 입학 때부터 화제였고, 현시점에서 젊은 홀더들 중 최고의 유망주로 꼽히는 여자였다.
‘…어렵겠지.’
강주연은 <불의 심판>의 후계자다.
S급 홀더 클랜 마스터로 유명한 강우현의 딸.
그런 그녀와 함께 공략을 간다는 건, <용광검로>의 송도혁을 파티원으로 데려가는 것과 딱히 다를 게 없었다.
결국 대형 클랜과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는 것.
이는 유은설 쪽에서 거절이었다.
게다가 강주연이 뛰어난 유망주라곤 해도, 유은설이 찾는 기준에 맞는 홀더일지도 의문이었고 말이다.
“…….”
유은설은 울창한 설악산의 나무들을 바라봤다.
근 한 달간 매일 같이 임시 파티를 이끌고 올랐던 필드.
내일 있을 약속에 오늘은 달리 파티를 구성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녀는 홀로 설악산 필드 입구에 와 있었다.
“산책… 할까.”
이미 솔플로 최고의 경지에 다다른 그녀에게 있어, 필드 사냥 정도는 산책에 가까웠다.
…그게 설사 고위 괴수들이 넘실거리는 설악산 필드라고 해도 말이다.
유은설은 천천히 산을 올랐다.
어쩌면 오늘도, 산꼭대기에서 운 좋게 S급 괴수를 만날지도 몰랐다.
* * *
아우우우-!!
늑대 소리가 온 산에 울려 퍼진다.
설악산 필드에 올라왔음을 실감하게 되는 울음소리다.
호랑이 계열 괴수들로 유명한 인왕산 필드처럼, 설악산 필드는 늑대 계열 괴수가 많기로 유명한 필드였다.
“저건….”
산을 오르던 우리의 앞에도 괴수들이 나타났다.
설악산 필드 초입에 자주 나타나는 늑대.
C급 괴수, 다이어 울프.
동족과 무리 지어 다니는 놈들의 습성답게, 열 마리 정도 되는 수가 수풀을 점령하고 있었다.
‘뭐가 이렇게 많아?’
평소에도 무리 지어 다니는 괴수들을 본 적은 있지만, 열 마리는 나도 처음 보는 것 같다.
이제는 사냥이 수월해진 C급 괴수라고 해도, 이는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신중하게 상대할 필요가 있었다.
괴수들이 달려들기 직전.
긴장감이 맴도는 수풀에서의 대치 상태.
문득 뒤에 있던 김채은에게서 목소리가 들렸다.
“재현아 준비 끝났어!”
벌써 준비가 끝났다고?
깜짝 놀라, 바보처럼 되물을 뻔한 걸 겨우 참았다.
[고속영창]이라도 익힌 걸까.
미리 마력을 끌어올리며 긴장하고 있었다 해도 상당히 빠른 속도다.
나는 전방을 계속 주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지금!”
“응!”
그간 수없이 맞춰 본 호흡.
김채은은 망설임 없이 마법을 펼쳤다.
[빙결]의 파생스킬인 [프로즌 포그]가 수풀 곳곳에 뻗쳐간다.
괴수들의 움직임을 묶는 김채은의 스킬.
이후 내가 달려가 퍼붓는 근접 공격.
이런 방식으로 괴수 무리의 숫자를 어느 정도 줄여 놓으면, 다시 김채은과 내 역할이 스위칭된다.
내가 앞선에서 탱킹을 하고, 이후 김채은이 공격에 치중한 마법 및 스킬을 퍼붓는 식으로.
한창 아카데미 지하 던전을 둘이서 사냥할 때, 우리가 자주 사용하던 복합 콤보였다.
‘확실히… 얼음 안개가 더 짙어졌어.’
다이어 울프들에 뻗어가는 안개를 보며 생각했다.
한 달 전 정선영에게 단기 훈련을 받았던 김채은.
무언가 달라지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지만, 그녀는 분명 한 단계 성장해 있었다.
얼음 결정의 농도도 훨씬 높아져 있었고, 마법을 시전하는 속도 자체도 빠르다.
특히 김채은의 주위에서 넘실거리는 상당량의 마력.
이는 고레벨의 [마력증폭]이 활용되고 있음을, 이제는 알 수 있다.
이 정도 마법 보조면.
생각보다 더 빨리 괴수들을 사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내심 감탄하면서, ‘돌격’을 시작했다.
이번 돌격은 [질주]가 아니다.
새로 익힌 [분노의 질주]였다.
아우우우-!!
[프로즌 포그]가 몸에 닿자, 늑대들이 더 강하게 짖었다.
신체를 천천히 구속해가는 제어형 마법.
그 답답함이 몸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다는 못 묶었고.’
아쉽게도 열 마리 모두 얼음 안개에 묶이진 않았다.
완전히 얼어붙어 움직임이 묶인 다이어 울프는 7마리.
나머지 3마리의 늑대.
그들은 으르렁거리며 내게 달려들고 있었다.
‘멍청한 새끼들.’
내가 먼저 가도 모자랄 판에, 돌격 중인 홀더에게 알아서 달려들어 주다니.
호재도 이런 호재가 없다.
“흐읍…!!”
돌격의 추진력을 이용해, 있는 힘껏 늑대들에게 부딪쳤다.
아우우-?!
내 몸을 찢을 듯한 기세로 날아들던 다이어 울프들이, 충돌 한 번에 모조리 쓸려 갔다.
이게 정말 단순 돌격의 효과가 맞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격렬한 충돌이다.
‘…거의 낙엽처럼 쓸리네.’
그 이유엔 다양한 룬의 조합이 숨어있었다.
우선, 레드 드레이크 공략으로 획득한 [분노의 질주].
돌격류 룬 중에서도 상당히 고위 룬에 속하는 이 룬의 보조로 돌격 속도를 최대한으로 높였다.
[질주]의 보조도 좋긴 했지만, 확실히 레어룬은 다르다.
더 빠르고, 더 정확했다.
이후 돌격 시 물리 공격 무시와 근력의 두 배로 타격을 입히는 [무자비한 돌격]을 활용.
여기에 다이어 울프들이 나보다 능력치가 낮아, [위압]의 능력치 보조 특수효과가 발동한다.
녀석들이 나와의 충돌 한 번에 맥없이 쓰러진 건.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던 것이다.
아우우우-!!
삭- 삭- 사삭-
다이어 울프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내 검은 그 리듬에 맞춰 춤을 추듯 움직였다.
[유수검법]과 [파상검법]을 활용한 강약조절.
빠르면서 부드러운 검격에 다이어 울프들은 적절한 타격을 입었다.
‘양념은 다 됐고…’
[프로즌 포그]로 살짝 얼어붙은 7마리의 다이어 울프.
나는 그들에게 더 큰 타격을 주기 위해.
검에 [침투하는 뇌기]를 일으켰다.
파츠- 파츠츠-
검을 타고 흘러나온 번개는 점점 강렬해졌다.
[침투하는 뇌기]의 레벨이 높아서만은 아니다.
바로 어제 김성철에게 획득했던 [마력증폭]의 효과다.
마법사 계열 홀더들의 공통룬을, 이제는 나도 쓸 수 있었다.
나는 마력 공격의 준비를 모두 마친 후.
가장 앞에 있던 늑대에게 그 번개를 모조리 꽂아 넣었다.
아, 아우우-!!
파츠츠츠-!!
번개는 [프로즌 포그]를 타고 연계됐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폭발적인 양의 전기를 뽑아냈고, 이는 7마리의 다이어 울프에게 모두 쏟아지며 그들을 감전시켰다.
늑대 계열 C급 주제에 번개 내성이 있을 리 없다.
당연히 효과는 상당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번개를 담은 마력 공격이 강렬하긴 해도, 7마리 전부를 죽일 순 없다.
마무리 단계가 필요했다.
‘마력이… 다 모였다.’
[참회자의 검]에 강하게 마력을 모은 후.
곧바로 신성력으로 변환시킨다.
푸르게 모이던 마력은 흰색을 덧대 거대한 빛으로 변해갔다.
곡도 같은 모양새로 바뀐 고강한 마력.
내재 스킬인 [디바인 슬래쉬]의 준비 완료였다.
콰, 콰아아-!!
아우, 아욱….
마력 참격이 허공을 갈라 7마리의 다이어 울프를 덮쳤다.
이미 빈사 상태에 빠진 다이어 울프들에게, [디바인 슬래쉬]는 너무 강력한 마력 공격이었다.
A급 보스 괴수 레드 드레이크는 이걸 맞고도 또다시 내게 돌격을 하러 왔었지만…
C급 괴수인 다이어 울프들은 이를 막을 능력도, 피할 여유도 없었다.
순식간에 사냥이 끝난 7마리의 늑대들이었다.
아우우우-!!
“아직 살아있었냐?”
7마리는 사냥을 마쳤지만, 아까의 ‘돌격’으로 한 번 쓰러뜨렸던 다이어 울프들이 몸을 일으켰다.
다이어 울프는 공격에 치중된 괴수이기에 내구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닌데, 아무래도 [무자비한 돌격]의 충돌 효과가 상대를 즉사시킬 정도의 위력은 아니기에 정신을 차린 듯 보였다.
나는 여유롭게 웃으며 놈들을 바라봤다.
7마리도 단번에 죽였는데, 3마리는 훨씬 쉽다.
‘하나는 쿼터 나이프.’
허리춤의 단검 네 자루.
이들을 다이어 울프 한 마리에게 투척한다.
이제는 [무술의 달인]의 파생스킬이 된 [쿼터 나이프].
각개 사냥을 할 때나 선제공격을 가할 때 늘 애용하는, 내게는 든든한 국밥 같은 스킬이다.
빠르게 바람을 가르며 쏘아진 네 자루의 단검은 다이어 울프의 머리부터 허리까지를 4등분하며 찔렀다.
‘나머지 둘은 연격으로…!!’
[날렵한 몸놀림]과 [유수검법]의 묘리를 이용해 남은 두 늑대에게 검을 휘두른다.
동시에 세 번을 베어내는 [연격].
한 번은 왼쪽 늑대의 몸통.
다른 한 번은 오른쪽 늑대의 몸통.
마지막 베기는 두 놈의 다리를 동시에 베어내며 마무리.
스르릉-
피가 잔뜩 묻은 [참회자의 검]을 검집에 꽂을 땐, 이미 열 마리의 다이어 울프가 다 죽어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깔끔했다.’
그간 클랜 활동과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성장해 온 보람이 있었다.
내 실력은 확실히 방학 전보다 일취월장해 있었다.
당장 ‘홉고블린 부락’을 사냥할 때와 비교해도 그렇다.
그땐 나무에 숨어서 [활]로 원거리 공격을 한 번 하고, [방패]로 괴수들의 공격을 막아내며 겨우 몰이 사냥을 했었는데…
지금은 돌격과 검, 마력만으로 상대를 마쳤다.
다수의 C급 괴수를 상대하는 게 전혀 어렵지 않았다.
‘스킬도… 거의 안 썼고.’
[쿼터 나이프]와 [연격], 그리고 무구 내재 스킬인 [디바인 슬래쉬].
스킬 또한 총 세 개밖에 쓰지 않았다.
이제는 룬 활용과 본연의 무력만으로도 몰이 사냥이 되는 것.
설악산 필드 초입부 사냥은, 내게 있어 더없이 만족스러운 전투였다.
하지만 내가 예상치 못한 게 있었다.
“재, 재현아. 이게 다 뭐야…?”
김채은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곤 멍하니 날 바라봤다.
그 당황 가득한 표정에.
나도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됐다.
“…아.”
순식간에 정리된 10마리의 괴수들.
마법사 계열이 딜을 안 하고 끝난 전투.
이거 뭐라 말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