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93화 (93/353)

EP.93 얼룩진 암석 더미 (5)

파티 사냥과 솔플은 전투 방식부터 차이가 난다.

파티 사냥은 주로 탐색과 적절한 딜탱 밸런스를 통해 정석적으로 괴수들을 사냥해 가지만, 솔플을 하는 홀더들은 효율을 중요시한다.

잡을 괴수는 잡고, 불필요한 괴수는 피하는 것.

그게 솔플 홀더들의 전투 방식이었다.

“…….”

유은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솔플에 최적화된 암살자 계열.

그중에서도 정상에 있다고 평가받는 고위 홀더.

거의 Max 레벨에 다다르고 있는 [은신]과 최고 수준의 능력을 뽐내는 보법류 룬은, 그녀가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설악산 필드 정상까지 갈 수 있게 만들었다.

산꼭대기까지 오르며 처치한 괴수는 단 10마리.

모두 A급 괴수였다.

“펜리르는… 오늘도 없네.”

유은설이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필드의 보스라고도 불리는 S급 괴수는 매번 나타나진 않는다.

개체 수 자체가 워낙 적어, 리젠 확률이 너무 낮기 때문.

이는 필드에서 사냥하는 평범한 홀더들에겐 천운과도 같은 일이지만, S급 괴수를 적당한 수익원쯤으로 여기는 유은설에겐 다소 불운한 일이었다.

“쓸 만한 홀더도 없었던 것 같고.”

산책이 명목이었어도, 단순히 등산만 한 건 아니다.

정상까지 올라오는 과정에서.

종종 파티 사냥을 하는 홀더들을 살펴봤었다.

결과는 역시나 꽝.

자신이 찾는 자격에 들기는커녕, 쓸 만한 실력을 지닌 홀더조차 보이질 않았다.

설악산 필드가 워낙 주류에서 벗어난 필드라 그럴까.

요즘 들어 유독 고위 홀더들이 안 보이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그냥 가야겠…’

중간부에서 사냥 중인 홀더들을 잠깐 지켜본 후.

그대로 하산하려던 유은설은, 순간 멈칫했다.

[은신]을 활용해 설악산 필드 중간부를 맴돌던 도중.

살짝 특이한 광경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터져라!”

중간부 끝자락.

수풀이 우거진 필드 내 특정 구역에서…

웬 2인 파티가 늑대 계열 괴수와 전투 중이었다.

방패와 검을 든 한 남자가 여자를 끌어안은 채.

거칠게 달려드는 늑대를 사냥했다.

주변엔 이미 한 차례가 전투가 끝난 듯, 무수히 많은 늑대의 사체가 있었다.

‘하이드 울프….’

유은설은 상대 괴수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봤다.

B급 괴수 하이드 울프.

[은신] 룬을 보유한 괴수 중 하나로, 각종 지형지물에 숨어 공격할 타이밍을 기다리는 악독한 괴수다.

상황을 대충 보니, 전투가 끝나자마자 녀석이 마법사 계열인 여자 홀더의 빈틈을 노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둘은 그 습격마저 잘 막아낸 듯 보였다.

“이 빌어먹을 늑대 새끼. 터져라, 터져.”

…비록 남자의 언행이 조금 거친 것 같지만 말이다.

‘…잘 싸우네.’

혹여나 위험한 상황이면 도우려던 유은설은.

이내 다시 발길을 돌렸다.

전사 계열과 마법사 계열 둘만 있는 2인 파티.

설악산 필드의 수준을 고려하면 꽤 패기 넘치는 구성이어도, 유은설의 시선을 끌 정도로 강렬한 실력은 아니었다.

많이 쳐줘야 B급 2인 파티.

그게 끝이었다.

‘……?’

하지만 유은설은 또다시 발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뭔가 이상하다.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생소하면서도 익숙한.

지겨우면서도 기다렸던.

그 특이하고 묘한 기운이…

저 앞의 남자에게서 느껴지고 있었다.

‘…….’

쉽게 믿기 힘든 일이었다.

유은설은 [은신]을 풀지 않은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여 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거리가 좁혀질수록.

더욱 선명하고 진해지는 기운.

확실했다.

그동안 자신이 찾아 헤맸던.

탁원호의 말에 혹해 아카데미까지 찾아가려 했던…

특별한 홀더.

자격에 맞는 이가 수풀 속에 있었다.

그 갑작스러운 발견에.

유은설은 당혹스러운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이런 곳에서 갑자기….’

등산하고, 하산하며 홀더들을 보긴 했지만.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간 직접 임시 파티를 꾸려 봐왔음에도 찾지 못했는데, 이렇듯 평범한 사냥 상황에서 찾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하다.

그녀의 몸에서도 공명하는 기운이, 저 홀더에게 자격이 충분함을 알려주고 있었다.

“채은아. 괜찮아? 다친 데 없어?”

한껏 걱정 어린 얼굴로 동료를 살피는 젊은 홀더.

그는 <용광검로>의 송도혁 이후.

처음으로 마주한 ‘용의 기운’을 지닌 홀더였다.

* * *

설악산 필드에서의 사냥은 순조로웠다.

중간부에 들어서고부터 괴수들의 수준이 꽤 높아졌고, 도중에 김채은이 위험했던 탓에 앞뒤 안 가리고 [파상천검]을 써버리긴 했지만…

어쨌든 던전으로 가기 위한 길에 막힘은 없었다.

‘슬슬 던전에 들어가야 해.’

얼룩진 암석 더미는 원작 중후반에 박진우가 공략했던 던전이다.

던전 내 괴수들의 수준은 대부분 B급으로, A급 괴수 ‘바르그’가 보스로 자리한 중상급의 던전.

특별한 기믹도 없고, 보스룸까지 가는 길도 까다롭지 않아 의외로 난공불락 수준의 던전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번 던전은 내가 잘 알기도 하고.’

지금껏 내가 공략해왔던 던전은 아카데미 지하 던전, 홉고블린 부락, 뱀이 뒤덮은 숲.

총 3개.

이중 내가 공략법을 아는 던전은 없었다.

아카데미 지하 던전은 초입부 공략만 봤었고, 홉고블린 부락은 입장 매개체와 대략적인 괴수 수준만 알고 있었다.

심지어 뱀이 뒤덮은 숲은 작중 스치듯이 언급돼 아예 정보가 없던 던전이다.

사실상 전부 처음 겪는 것과 비슷한, 미지의 던전들.

세 던전 모두 보스까지 공략한 게 기적이었다.

반면 ‘얼룩진 암석 더미’는 박진우의 공략 과정과 결과까지 세세하게 나왔던 미발견 던전.

한 에피소드를 차지했던 던전이기에 나 역시 공략법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파티원이 김채은과 나.

둘뿐이더라도 충분히 공략이 가능했다.

‘오늘은… 어려울 수도 있겠다.’

딜이 조금 모자랄 것도 같다.

아까 너무 감정적으로 [파상천검]을 써버린 탓에, 보스 괴수인 ‘바르그’를 잡을 화력이 없을지도 몰랐다.

어쩔 수 없이 오늘은 던전의 맛만 보고, 보스룸 공략은 내일까지로 미루는 게 좋아 보였다.

“채은아, 잠깐만.”

중간부 끝자락에 다다라 이동하던 도중.

나는 시야에 들어오는 두 나무를 확인하자 곧바로 손을 들었다.

“응? 왜?”

눈앞에 보이는 두 그루의 나무.

그들은 서로 짝이라도 된 듯 딱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쉼터처럼 마련된 작은 공간.

얼핏 보면 평범한 산에 자리한 나무 두 그루일 뿐이지만, 이들은 ‘얼룩진 암석 더미’로 들어갈 수 있는 던전 입장 매개체다.

딱 붙은 두 나무 사이의 공간에 발을 디디면.

그대로 던전 입장이 가능했다.

나는 나무들 사이에서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나무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마력의 배열 기류가 조금 특이해. 그냥 지나쳐도 되는데, 내 생각엔 아마…”

“아마?”

“미발견 던전인 것 같아.”

나무 사이 작은 공간.

나는 그곳에 마력을 아주 조금 투입했다.

던전의 입장 조건은 매개체에 마력을 투입하는 것.

적정량보다 살짝 떨어지는 양의 마력을 투입하자, 매개 장소의 기류가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어? 재현아, 마력 기류가 더 세졌어!”

“그치?”

나는 살짝 웃으며 김채은을 돌아봤다.

“들어갈까?”

그리고 이렇듯 무언가를 함께 하는 제안에서…

그녀는 한 번도 뺀 적이 없었다.

김채은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던전에 입장했습니다.]

[던전의 야만적인 기운이 홀더의 속력을 약간 저하시킵니다.]

* * *

미발견 던전, 얼룩진 암석 더미.

이곳은 암석으로 구성된 산 형태의 던전이다.

바위라는 지형지물이 조금 까다롭긴 해도, 탁 트여 있고 복잡한 구조물이 없어 오히려 전진하기엔 쉬운 던전이기도 했다.

구성은 초입부, 중간부, 보스룸의 정석적인 배열.

출현 괴수는 설악산 필드와 마찬가지로 늑대 계열 괴수.

‘초입에 나왔던 괴수는…’

기억 상 아마 B급의 그레이 울프.

특별한 마력 공격은 없지만, 신체 능력 강화에 룬 보조가 몰려 있는 육체파 괴수다.

능력치 역시 속력에 강점이 있어서, 움직임이 날카롭고 매서운 편이었다.

특히 놈은 톡신 이구아나처럼 [견고한 이빨] 룬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숙련도에 있어선 톡신 이구아나보다 훨씬 뛰어난 편이기에, 놈들의 ‘방깎 후 공격’을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아우우우-!!

아우, 아우우-!!

이번 던전은 입장하자마자 괴수들이 우리를 반겼다.

나는 무구 교체술로 빠르게 손에 검을 쥐며 말했다.

“채은!”

“응…!!”

김채은과 내 호흡은 이제 여느 숙련된 파티에도 밀리지 않는다.

신호를 들은 김채은은 재빨리 마력을 끌어 올렸다.

전투 초반 우리의 핵심 콤보.

얼음 계열로 괴수들을 제어하고, 내가 공격하는 구도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나 역시 [분노의 질주]를 활용하기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역시 선공에 가장 효율이 좋은 건 돌격이다.

그르, 으아아-!!

아우, 아우우-!!

“뭐…?”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암석을 타고 모습을 드러내는 늑대들의 숫자가…

많았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다섯, 일곱, 열, 열다섯, 스물…

스물? 서른?

육안으로 세기 힘들 정도로 숫자가 불어나고 있었다.

그게 끝이 아니다.

그 무수히 많은 그레이 울프 사이로.

웬 거대한 늑대 한 마리가, 무겁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커다란 몸뚱이와 짙은 회색의 갈기.

그리고 모든 걸 찢어발길 듯한 위압감과 풍채.

처음 보는 늑대였고, 최소 A급으로 보이는 괴수였다.

“재, 재현아… 저게….”

김채은이 떨리는 목소리로 날 불렀다.

그 당혹스러운 감정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작하고… 달라.’

다르다.

원작에 없던 내용이었다.

얼룩진 암석 더미는 수준이 꽤 높은 던전이기는 해도, 등장 괴수의 숫자가 적절하고 기믹도 없어 공략이 까다로운 던전이 아니다.

당연히 초입부에서도 네다섯 마리 정도의 그레이 울프만 나온다.

그런데 그 공식이 비틀어졌다.

몇십 마리에 가까워진 괴수들과 중앙의 특수한 괴수.

놈들이 우리를 사냥하기 위해 마중을 나온 건…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결과였다.

‘어떻게 하지?’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

그 당황스러운 광경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아우우우-!!

그그- 그그그-

하지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미 무리를 지은 늑대 떼들은…

김채은과 날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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