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6 얼룩진 암석 더미 (8)
그 특이한 정보창을 보자마자.
나는 파티원들에게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당연히 던전 내에 화장실은 없지만, 대충 빠르게 볼일을 보고 오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잠시 거리가 멀어졌을 때.
다시 편하게 정보창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갑자기 상위룬이라고…?”
눈을 비비적거리며 허공을 본다.
새로 획득한 룬들에 대한 정보를 점검하려고 봤을 뿐인데, 한동안 잊고 살았던 ‘상위룬 조합’에 관한 황금색 정보창이 나타났다.
내가 지금 보유한 상위룬은 [무술의 달인] 하나.
상위룬에 관한 기능이 처음 생기며 획득했던 룬.
만약 이번 조합에 성공한다면, 두 번째로 상위룬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아까 읽다 만 정보창을 다시금 확인했다.
[현재 조합 가능한 룬이 존재합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을 이용해 상위룬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상위룬: 야만왕의 후예 / 하위룬: 도마뱀의 비늘, 질긴 늑대 가죽, 괴력, 견고한 이빨, 날카로운 손톱, 뾰족한 송곳니, 먹잇감 탐색, 사족 격투]
“미친. 뭐가 이렇게 많아.”
하위룬으로 선택된 룬이 상당히 많았다.
아니, 사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다.
당장 저번 [무술의 달인] 때도 8개의 룬이 선택됐었으니까.
다만, 이번 조합의 하위룬이 유독 많아 보이는 이유.
그리고 전보다 더 눈에 띄는 건…
“거의 다 레어룬이잖아.”
하위룬으로 선택된 룬들이, [사족 격투]를 제외하면 전부 레어룬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무술의 달인] 때 하위룬들이 모두 노멀룬이었던 걸 생각하면, 이번엔 꽤 소모가 큰 조합이다.
게다가 전부터 효자룬으로 톡톡히 활약하던 [도마뱀의 비늘]이나 [견고한 이빨]부터, 최근에 획득한 [먹잇감 탐색]이나 [뾰족한 송곳니] 등…
대부분 룬이 신체 강화 계열의 보조룬들이었다.
이로부터 조합될 상위룬도, 당연히 신체 강화 계열이라는 걸 예측할 수 있었다.
“후우… 일단 조합하기 전에, 새로 얻은 룬부터.”
당장 조합할 하위룬의 능력도 모르는 상황.
새로 얻은 룬 정보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각각의 룬 정보를 불러왔다.
던전에 들어오고 난 후 획득한 룬은 총 4개.
[민첩성], [질긴 늑대 가죽], [뾰족한 송곳니], [먹잇감 탐색].
앞선 두 개는 그레이 울프, 그 다음은 블랙 울프, 마지막은 A급 중간 보스 괴수인 아세나에게서 획득한 룬이다.
“다 평범한 것 같은데….”
룬 정보를 훑어보니 앞의 3개는 특별할 게 없었다.
[민첩성]은 [날렵한 몸놀림]의 하위호환 격인 보법류 노멀룬이고, [질긴 늑대 가죽]과 [뾰족한 송곳니]는 그동안 꾸준히 얻어왔던 신체 강화 계열의 레어룬들이었다.
하지만 [먹잇감 탐색].
이건 확실히 남다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궁수 계열의 공통룬인 ‘탐색류 룬’… 거기에 레어 등급인 탓에 노멀룬인 [탐색]보다 훨씬 괜찮은 성능을 지니고 있다.
<룬 정보>
◎이름: 먹잇감 탐색
◎등급: 레어(Rare)
◎레벨: 6
◎새겨진 부위: 코
◎특수효과
: 일정 거리 내 주변의 모든 기척을 탐지할 수 있다. 룬 레벨과 정신 수치에 비례해 성능이 늘어나며, 그 격차에 따라 상대가 은신 상태라 하더라도 탐지할 수 있다.
: 탐지하고자 하는 대상이 동물이라면, 룬의 성능이 배로 증가한다.
◎파생스킬: -
◎세부정보
: 먹잇감을 찾아 나서는 맹수의 탐색. 레이더에 걸린 먹잇감은 쉽게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무난하네.”
정석적인 탐색류 룬이었다.
그간 던전 공략이나 필드 사냥을 솔플로 진행할 때 탐색류 룬이 없어 자주 헤매곤 했는데, 이젠 그런 불편함을 겪을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먹잇감’이라는 이름이 붙어 그런지, 동물에 대한 탐색 성능은 배로 증가한다.
이건 상황에 따라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추가 효과였다.
“그럼 이제….”
황금색 정보창을 다시 불러왔다.
새로 얻은 룬의 정보도 모두 확인했다.
이젠 정말 ‘두 번째 상위룬’을 조합할 차례였다.
왠지 모르게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한 후.
천천히 조합을 진행했다.
[상위룬 ‘야만왕의 후예’를 조합하셨습니다. 도마뱀의 비늘, 질긴 늑대 가죽, …, 사족 격투 등 총 8개의 룬이 하위룬으로 선택됩니다. 하위룬을 종합한 상위룬의 판정 레벨은 3입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근력, 내구를 각각 4씩 획득합니다.]
룬 정보는 곧바로 나타났다.
<룬 정보>
◎이름: 야만왕의 후예
◎등급: 전설(Legendary) / 상위(Superior)
◎보유 하위룬
[도마뱀의 비늘] [질긴 늑대 가죽] [괴력]
[견고한 이빨] [날카로운 손톱] [뾰족한 송곳니]
[먹잇감 탐색] [사족 격투]
◎레벨: 3
◎새겨진 부위: 목울대
◎특수효과
: 상위룬의 특별한 힘으로 하위룬들에 숙련도 보정을 줄 수 있다. 각각의 하위룬은 단일 룬으로서 숙련도를 올릴 수 있고, 상위룬의 보정을 통해서도 숙련도를 올릴 수 있다.
: 특정 무기(도끼, 철퇴, 망치, 너클-맨손)에 대해 숙련도 보정을 받고, 해당 무기 사용 시 위력이 증가한다.
: 무리를 정복하고자 하는 맹수의 법칙이 상시 적용된다. 최소 셋 이상 다수의 적과 홀로 전투할 때, 특정 능력치(근력, 속력, 내구)들이 15%(Lv.3)만큼 상승한다. 전투가 마무리되거나, 조건이 미충족될 경우 능력치는 곧장 돌아온다.
*하위특수효과
: (상세)
◎파생스킬
[광폭화]
*하위스킬
[단단해지기]
◎세부정보
: 짐승이 지닌 모든 능력을 사용하며 ‘수인’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야만왕, 마그누스 바바리안을 승계하는 힘. 짐승들이 보유한 신체적 혹은 마력적인 능력들을 수족처럼 사용할 수 있으며, 새로 얻게 되는 힘들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
“…….”
압도적인 양의 설명.
나는 그를 보며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단순히 정보량이 많아서가 아니다.
룬의 등급, 효과, 스킬…
관련 모든 내용이 충격적이기에.
지금껏 봐온 내용 중 손에 꼽을 정도로 화려하기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처럼.
놀라운 정보들이 눈앞을 어지럽혀 일어난 침묵이었다.
“능력치가 무슨….”
일단 능력치 보정부터 말이 안 된다.
근력과 내구.
직접 전투를 감행하는 내게 있어,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주력 능력치.
이게 각각 4씩 올랐다.
내구는 단숨에 40까지 올랐고, 최근 정체 상태였던 근력은 45가 되며 속력 수치를 앞서버렸다.
[무술의 달인]을 얻을 당시의 상승치가 근력 2/속력 3이었던 걸 생각하면, 매우 높은 수준의 상승치다.
특히 요즘 들어 능력치들이 다 높아져, 새로 올리는 게 더욱 어려워졌는데…
이건 정말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능력치 상승이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전설이라고?”
상위룬 [야만왕의 후예].
이 룬의 등급은 무려 ‘전설(Legendary)’이었다.
나로서는 처음으로 획득하는 전설룬.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룬이다.
계획이 있었다면, [잊혀진 아룡의 석판].
이 아이템의 봉인을 풀고 얻게 될 전설룬.
그를 얻을 생각으로 마력석을 채워가고 있었는데…
이러한 전설룬을 상위룬 조합으로 얻게 될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했다.
물론, 전설룬이라고 모두 같진 않다.
전설룬은 해당 룬이 일종의 전승을 타거나, 고대의 역사와 닿아 있을 때 산정되는 등급이다.
당연히 전설 간에도 차이는 있고, ‘용의 전설’과 ‘야만왕의 전설’이 같은 격이라고 보긴 힘들었다.
“무조건 에픽보다 좋은 것도 아니고.”
전설이라고 마냥 에픽보다 좋은 것도 아니다.
에픽(Epic) 등급 이후로는 룬의 기원이 다를 뿐, 성능은 크게 차이 나지 않을 때도 꽤 있었다.
당장 [룬 사냥꾼]이나 [구도자의 땀방울] 같은 에픽룬은, 어지간한 전설룬을 뛰어넘는 성능을 지니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설룬을 얻었다는 것.
이건 분명 기분 좋은 사실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며 천천히 정보를 읽어갔다.
우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특수효과’.
“맹수의 법칙. 이건 완전 내 전용 효과네.”
무리를 정복하고자 하는 맹수의 법칙.
최소 셋 이상 다수의 적과 홀로 전투할 때 능력치를 보조받는 특수효과.
이는 성향상 솔플 사냥이 잦은 내게 있어, 완전히 최적화된 효과였다.
‘최소 셋 이상’, ‘홀로 전투’ 등…
조건 문구들이 전부 나와 부합한다.
파티 내 주요 역할군 수행이 모두 가능한 내 룬들은, 거의 1인 파티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세팅이니까.
“철퇴, 도끼, 망치… 이건 무술의 달인하고 시너지가 좋을 것 같고.”
‘야만왕’이라는 호칭이 붙기 때문일까.
네 종류의 무기에 대해 숙련도와 위력 보정을 해주는 효과도 있었다.
다른 무기들은 잘 안 쓰지만, ‘너클-맨손’은 내가 검과 단검 다음으로 자주 활용하기에 나름 쓸만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파생스킬.
“광폭화, 이거 실제로 있는 거였구나.”
나는 감탄하듯이 말했다.
안도권을 비롯해 <빌런> 내 클랜원들이 극한의 상황에 사용하는 [광폭화 포션].
그 포션의 원류가 되는 힘이, 실제로 스킬로 존재했다.
[광폭화]는 일정 시간 동안 분노 상태로 몸을 달아오르게 만든 후, 사용자가 가하는 모든 공격의 위력을 50% 증폭시키는 스킬이다.
본래라면 사용 당시에 이성을 잃게 되고, 사용이 끝나면 룬의 힘을 소실하는 어마어마한 페널티가 있지만…
그건 [광폭화 포션]에 해당되는 페널티일 뿐, [광폭화] 스킬과는 연관이 없었다.
사용 이후 속력이 살짝 저하되고, 방향 감각이 떨어진다는 정도의 페널티만 있었다.
이 정도는 발현되는 위력에 비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잭팟이잖아.”
다 읽고 난 후에도.
나는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단지 김채은의 향상된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또 미발견 상태였던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왔던 사냥.
거기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고, 그대로 도망치려다 운 좋게 S급 홀더의 도움을 받았다.
그를 통해 결투 승리 보상으로 획득한 룬들.
그저 버스 받고 얻은 보상일 뿐인데…
그 보상들이 겹치고 겹쳐.
어마어마한 잭팟을 터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