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98화 (98/353)

EP.98 얼룩진 암석 더미 (10)

보스 괴수인 바르그의 등급은 최소 A급.

시간을 들이면 여유롭게 잡을 수 있는 상대지만, 유은설은 뜸 들이지 않았다.

바르그의 수호 괴수처럼 자리하던 여섯 늑대.

그들이 뒤쪽의 파티원들을 노렸기 때문이다.

보스를 곧장 처치하고, 지원을 갈 필요가 있었다.

“한 떨기 꽃을 피워라.”

망설임 없이 펼쳐지는 궁극스킬.

[설중매화]의 [설원유섬낙화].

[설원유섬낙화]는 보법류 룬과 함께 구사하는 스킬이다.

매우 빠른 속도로 두 자루의 소검을 움직여, 상대를 끊임없이 긁고 베어낸다.

그 베어내는 경로는 상대의 무릎부터 뒤로 넘어간 종아리 쪽까지.

앞면과 뒷면을 잔혹하게 모두 베어내 막대한 상흔을 남긴다.

그 안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피.

떨어지는 꽃은 유은설의 매화가 아닌, 상대의 피였다.

A급 괴수인 바르그는, 일대일에 최적화된 그 필살기를 10초도 버틸 수 없었다.

그, 그르으….

쿠궁!

거대한 몸뚱이가 바위산에 떨어지며 굉음을 냈다.

보스 괴수를 순식간에 처치한 유은설은 곧장 몸을 움직였다.

마법사 계열인 김채은이 상태 이상에 걸린 탓에, 도재현이 홀로 탱킹을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같은 파티원으로서, 그리고 선배 홀더로서.

그들을 도와야 할…

“…어?”

보스룸 입구 쪽까지 단숨에 달려온 유은설은 당황하고 말았다.

분명 여섯 마리나 됐던 늑대 계열 B급 괴수들이…

모조리 사체가 되어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놈들의 몸 곳곳에 새겨진 상흔.

그건 분명 검으로 만들어진 흔적이었다.

마법이 닿지 않은, 물리 공격으로 처치된 늑대들.

전사 계열이 도재현 혼자서, 여섯 마리의 늑대를 모두 잡았다는 뜻이었다.

“도재현 홀더? 이게 어떻게 된….”

“아, 하하….”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웃는 도재현.

그 모습을 보며, 유은설은 자신이 뭔가 착각했음을 알 수 있었다.

‘평범한 C급 홀더가 아니었구나.’

처음 던전을 들어왔을 땐, 솔직히 실망했었다.

기껏 ‘용의 기운’을 지닌 홀더를 찾았고, 실력도 괜찮아 보였다.

나름 위기 속에서 그를 구해내기까지 했지만…

그는 자신을 C급 홀더라고 설명했다.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평범한 학생 홀더.

그리고 이는, 유은설이 찾고자 하는 파티원의 기준에서 미달이었다.

최소 B급.

그것도 최소일 뿐, A급은 넘어야 했다.

아무리 유은설이 같이 공략을 한다고 해도…

역대 최고 난이도로 여겨지는 던전 <용의 숨결이 닿는 강>을 공략하려 하는데, 고작해야 C급인 홀더를 데려갈 수는 없었다.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걸까?’

그런데 함께 던전을 공략해갈수록.

예상외로 뛰어난 그의 실력이 돋보이기 시작했다.

도재현은 딜, 탱, 보조로 나뉜 3인 파티에서 탱커인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별다른 부상 없이 단단하게 앞선에서 괴수들의 공격을 막아냈고, 때론 유은설의 공격이 닿지 않을 때 스스로 괴수를 처리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보스룸 내 전투.

B급 괴수 여섯을 거의 ‘물리 공격만으로’ 홀로 처치하며 그는 완전히 증명해냈다.

소개는 C급 홀더라고 했지만…

절대 평범한 C급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레스트 룸은… 보스가 앉아있던 지점에 생겨난 것 같아요.”

유은설은 굳이 묻지 않았다.

도재현이 평범한 C급에 비해 왜 그리 강한 건지, 혹은 늑대 괴수의 사체에 남겨진 감전의 흔적은 무엇인지…

그 과정은 단지 호기심의 영역일 뿐이었다.

중요한 건 결과.

도재현이 자신이 찾던 ‘특별한 홀더’라는 결과였다.

“레스트 룸에 대한 보상은 포기할게요. 두 사람이 나눠 가졌으면 해요.”

“…예?”

갑작스러운 선언에 두 사람이 당황했다.

도재현은 다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건 말도 안 되죠. 유은설 홀더님께서 거의 혼자 사냥하셨는데, 어떻게 저희가…”

“방금 보니까 도재현 홀더도 혼자 가능하겠던데요?”

“아, 그건….”

도재현이 난감한 표정을 짓자, 유은설이 살짝 미소지었다.

“농담이에요. 아마 시간만 충분했다면 둘이서도 던전을 공략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걸 직접 느끼고서 보상을 포기하는 거니까, 부담 갖지 않았으면 해요. 그보다 도재현 홀더와 잠깐 둘이서 할 이야기가 있는데….”

유은설은 고개를 돌려 김채은을 봤다.

“혹시 자리 좀 비켜줄 수 있을까요? 레스트 룸 쪽 확인하고 계셔도 되구요.”

“두, 둘이서요?”

김채은의 얼굴에 당황이 깃들었다.

레스트 룸 보상을 포기하겠다는 말보다, 도재현과 둘이서 할 이야기가 있다는 점에 훨씬 놀란 듯한 눈빛이었다.

“네. 금방 끝낼게요.”

“으으….”

김채은은 고개를 숙이며 침음을 흘렸다.

그리곤 도재현과 유은설을 번갈아 보다가, 몇 번 고뇌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더니…

이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선배니임….”

한껏 풀 죽은 목소리로.

외롭게 레스트 룸에 들어가는 김채은.

이유를 모르는 유은설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 * *

“던전 공략이요?”

김채은이 레스트 룸으로 떠난 후.

바위산 언덕에서 나누는 대화.

갑작스러운 유은설의 말에, 나는 당황해 되물었다.

유은설이라는 S급 홀더가 나와 둘이서 나눌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 싶었는데…

그녀에게서 받은 제안은 놀랍게도.

특정 던전 공략을 위한 ‘2인 파티 구성’이었다.

유은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조금은 특별한 던전이라 입장하려면 조건이 필요해서, 그간 파티원을 찾고 있었어요. 우연치 않게도 도재현 홀더는 그 조건에 맞는 홀더구요. 그래서 괜찮다면, 함께 던전을 공략했으면 하는데…”

파격적인 제안이다.

유은설과 단둘이서 공략하는 던전이라니.

아마 현역으로 활동하는 홀더 중 누구도 겪어보지 못했을 경험이었다.

게다가 이런 정보는 원작에서도 보지 못했던 내용이라, 괜히 더 당황스러웠다.

유은설은 후반부 <빌런> 클랜과의 대립에서 종종 나왔던 S급 홀더였지, 이러한 던전 공략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었다.

완전히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어떤 던전인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을까요? 저도 마냥 제안을 수락하기엔 아무래도 불안한 점들이 있어서…”

유은설이 악한 성향의 인물이 아니라는 건 안다.

오히려 악한 성향의 대표 격인 <빌런>과 후반부에 대립하며 싸우게 되는 인물.

차가운 겉모습과 달리 그러한 내면을 지녔다는 걸 알기에, 얼룩진 암석 더미 던전 공략도 고민없이 함께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건은 경우가 다르다.

S급 홀더와 단둘이서 가는 던전 공략이라니.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

덜컥 제안을 수락했다가 개죽음을 당하면, 어디에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다행히 유은설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마 도재현 홀더도 들어봤을 거예요. 용의 숨결이 닿는 강이라는 던전이에요.”

“용의 숨결…?”

던전 이름을 듣자마자.

그녀의 말처럼 익숙한 느낌이 확 다가왔다.

<용의 숨결이 닿는 강>.

그건 분명…

유은설이 솔플로 공략을 마친, 그리고 이를 통해 S급 홀더로 올라섰다는 소문의 던전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나는 갸웃하며 물었다.

“공략이 끝난 던전 아닌가요?”

이미 유은설이 혼자서 공략을 마친 던전.

던전의 최초 발견도, 최초 공략도…

오로지 유은설 혼자인 던전.

그 내용이 너무 유명한 탓에, 세간에도 잘 알려진 던전이 <용의 숨결이 닿는 강>이었다.

이를 같이 공략하자는 건 말이 맞지 않았다.

유은설은 잠시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물었다.

“도재현 홀더는 혹시 이중 던전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요?”

이중 던전.

던전 내부에 존재하는 특수한 매개체.

그를 통해 또 다른 던전으로 이어지는 던전 속 던전.

입장만 특이할 뿐.

구조 자체는 일반 던전과 똑같은 형태인 녀석.

내가 그를 모를 리는 없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국내보다 해외에 많은… 아!”

나는 차분히 대답하다가 순간 멈칫했다.

이중 던전.

그리고 이미 공략이 끝난 <용의 숨결이 닿는 강>.

그 고리들을 연결하자, 희미한 답이 하나 나오고 있었다.

“혹시 공략하시려는 던전이…”

“네. 용의 숨결이 닿는 강 내부에 있는 이중 던전을 공략하려고 해요. 보스룸 내부에 있고, 그 위치는 저만 알죠. 해당 이중 던전은 특별한 조건을 지닌 홀더가 두 명이 있어야 입장이 가능한데… 도재현 홀더는 그 조건에 부합해요.”

유은설의 눈동자가 내게 향했다.

머리카락부터 도복까지 온통 백색인 그녀.

하얀 눈꽃 같은 분위기는, 그 눈빛에도 닿은 듯 보였다.

“그래서 이렇게 던전도 함께 공략하면서, 말할 기회를 찾고 있었어요.”

답은 지금 하지 않아도 된다…

괜찮다면 나중에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겠다…

그런 추가적인 말들이 들려왔지만.

솔직히 귀에 잘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게 S급 홀더다.

최근 들어 강해졌다곤 해도, 이제 막 B급에 들어서는 내가 S급 홀더와 파티를 이뤄 던전 공략을 간다는 게… 꽤 걱정이 됐다.

내가 그만큼의 활약을 못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만큼 너무 위험할 것도 같아서.

그래서 이런 부분을 솔직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말씀은 너무 감사하지만…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음… 제가 평범한 C급 홀더들에 비해 뛰어난 편이긴 하지만, 어쨌든 많이 쳐줘야 B급에 다다른 홀더이고… 그런 제가 유은설 홀더님과 던전 공략을 나서기엔 많이 부족하고, 또 위험할 것도 같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지만, 아직 그런 고위 던전을 공략하기엔 여러 측면에서 모자라다고 생각합니다.”

유은설과 함께 가는 던전 공략!

마냥 버스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이야기지만, <용의 숨결이 닿는 강>의 수준을 생각하면 절대 그런 말이 안 나온다.

던전의 초입부터 A급 괴수들이 득실거리며 나타나고, 보스룸엔 S급 괴수… 그것도 일반 S급을 뛰어넘는 무력을 지녔다는 소문이 들려올 정도다.

그런 던전에 자리한 이중 던전.

그 난이도가 절대 쉬울 리 없었다.

나도 너무 수락하고 싶은 제안이지만, 지금의 내 수준으론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내 정중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유은설의 표정은 크게 변함이 없었다.

그녀는 오히려 지극히 평온한 태도로 내게 답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미 도재현 홀더는 충분히 실력 있는 홀더고, 또 부족한 부분은 제가 가르치면 되니까요.”

“예? 그게 무슨…”

충분히 실력 있다는 말은 둘째치고…

가르치면 된다고?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

하지만 그 말을 모두 이해하기도 전에.

유은설이 살짝 미소 지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정식으로 소개할게요. 다음 학기부터 아카데미에서 전문 강사를 맡게 된 유은설이라고 해요. 괜찮다면… 도재현 홀더도 제 강의를 들었으면 좋겠네요.”

뎅-

커다란 종으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다.

뭔 소리야, 이건 또.

유은설이 아카데미 강사?

아니, 도대체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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