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0 개강 준비 (2)
“부자다!”
이번엔 내가 한 말이 아니다.
우리 집으로 와서 정산 중인 김채은의 말이었다.
얼룩진 암석 더미의 공략이 끝난 후.
가장 충격적인 일이라면 역시 유은설의 아카데미 강사 취임이었지만, 우리에겐 아직 중요한 일이 남아있었다.
바로 던전 공략 보상.
각종 아이템과 마력석, 괴수 부산물 등을 정산해야 했다.
언제나 그렇듯, 돈 세는 일은 피곤하지가 않았다.
“헤헤. 예쁘다.”
김채은은 거실 안 테이블에 아이템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값비싼 장비들이 놓이자, 테이블이 마치 상점 진열대처럼 보였다.
저 테이블 쓸데없이 기다랗네.
우리 집에 언제 저런 게 생겼지.
나는 싱글벙글 웃고 있는 김채은에게 물었다.
“채은아. 정말 유은설 홀더님은 아무 보상도 안 받으신대?”
얼룩진 암석 더미 공략의 핵심이었던 유은설.
그녀는 우리에게 던전 소유권에 관한 건 물론, 공략 보상도 모두 받지 않겠다고 했다.
사냥했던 모든 괴수의 마력석과 부산물도 우리에게 넘겼다.
굳이?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응! 이미 목적한 바를 이루셨다고 하시던데. 공략 보상은 그냥 선물이래.”
“아….”
그 말을 들으니, 모두 이해가 됐다.
유은설이 우리를 따라 들어왔던 건 결국 나 때문.
<용의 숨결이 닿는 강>의 이중 던전, 그곳에 입장하기 위한 ‘특수 조건’을 내가 만족했기 때문이었다.
유은설은 2인 파티를 구성해 들어갈 수 있는 그 던전을 함께 공략하자 제안했었고, 당시 나는 실력만 충분해진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답을 줬었다.
그와 함께 미련 없이 모든 보상을 포기한 모양이다.
애초에 그 정도 보상은 S급 홀더인 그녀에게 아무 영향력이 없기도 하니까.
덕분에 우린 던전 공략에 별다른 힘도 쓰지 않은 채.
그 많은 보상을 독식할 수 있었다.
“…양심에 좀 찔리긴 하네.”
“헤헤. 그래도 돈 많이 버는 건 좋잖아!”
“그건 맞지.”
김채은의 합리화에 곧바로 수긍해버렸다.
역시 남는 건 돈이다.
나는 그녀를 따라 싱글벙글 웃으며 보상들을 확인했다.
“마력석이랑 부산물은 전부 정산한 거야?”
“응. 재현이 너랑 내 계좌에 나눠서 정산했어. 7:3 비율로.”
“어? 왜 그렇게 했어. 절반으로 나눠야지.”
“헤헤… 난 던전에서 한 거 없잖아.”
“야야, 그렇게 따지면 나도…”
보스룸에서 늑대 여섯 잡은 거 말곤 거의 한 거 없는데….
똑같이 버스 받았는데 돈을 더 받으니 미안했다.
하지만 김채은이 이미 이렇게 결정한 이상, 되돌릴 순 없다.
이런 쪽에서 그녀의 고집은 김명현 교수도 못 꺾으니까.
나는 진열대에 놓인 다른 보상들을 확인했다.
“많기도 하네.”
‘얼룩진 암석 더미’의 공략 보상은 상당하다.
공략에 유은설이 참가했기에 너무 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어쨌든 출현하는 괴수가 전원 B급 이상인 고위 던전이다.
최소 아카데미 지하 던전.
최대로는 뱀이 뒤덮은 숲과 비견될 정도의 던전.
덕분에 마력석이나 괴수들의 부산물을 포함해, 레스트 룸에서의 보상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내가 찾는 건 따로 있었다.
‘일지, 일지… 아! 여깄다.’
김채은이 진열한 보상들을 뒤적이다, 나는 원하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상당히 낡은 것 같은 일지 묶음.
진한 피와 털 같은 것들이 묻어 있고, 군데군데가 찢어져 훼손된 흔적이 깊어 보이는 물건이었다.
<아이템 정보>
◎이름: 울부짖는 광인의 일지
◎종류: 특수
◎등급: 에픽(Epic)
◎제작자: -
◎특수효과
: 전투 상태가 아닐 경우, 달이 뜨는 밤에 일지를 보유하고 있으면 마력이 빠르게 회복된다.
◎세부정보
: 달빛이 내리는 밤만 되면, 미쳐 울부짖는 한 인간의 일지. 일지 대부분이 찢어지고 훼손돼,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없다.
‘오케이. 찾았다.’
예상대로 내가 찾던 물건이 맞았다.
[울부짖는 광인의 일지].
꽤 괜찮은 효과를 지닌 에픽급 특수 아이템이지만, 이 아이템의 진가는 따로 있다.
‘파문된 늑대들의 도시’.
극 후반부에 박진우가 발을 딛게 되는 최상급 던전.
웨어울프 혹은 라이칸스로프라고 불리는 늑대인간들이 내부를 장악한 특수 던전이다.
이 던전은 일반 던전과 다르게, 단순히 매개 대상에 마력을 주입하는 것만으로는 입장이 불가하다.
유은설이 제안했던 ‘이중 던전 입장 조건’처럼, 특수한 아이템을 매개 대상으로 활용해야만 입장할 수 있었다.
[울부짖는 광인의 일지]는 그 입장을 위한 특수 매개 아이템이었다.
요즘 들어 원작과 달라지는 전개가 너무 많아 걱정했는데, 다행히 이번 보상은 원래의 흐름대로였다.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던전의 열쇠를 획득하긴 했어도, 당장 공략은 어렵다.
파문된 늑대들의 도시는 A급 괴수들이 득실거리는 최고 수준의 던전인 데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S급 괴수들도 넘쳐나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미 고위 던전인 ‘얼룩진 암석 더미’를 공략하고 얻은 보상.
그 아이템을 통해 들어가는 특수 던전인데 공략이 쉬울 리 없었다.
‘그래도 갖게 됐다는 게 중요해.’
‘파문된 늑대들의 도시’는 매우 중요한 던전이다.
단순히 고위 괴수들이 많고, 입장 조건 아이템이 있는 특수 던전이라서가 아니다.
해당 던전은 이름처럼 말 그대로 ‘도시’.
늑대인간들이 서로 무리를 지어 하나의 문명을 만든, 도시 형태의 던전이다.
조악하고 수준이 떨어지긴 해도, 기본적인 요소들을 모두 갖춘 분명한 도시였다.
그리고 이는…
늑대인간들을 단순히 괴수로 취급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원작 후반부에 등장하는 ‘의사소통을 하는 이종족’.
그들 중 하나가, 바로 늑대인간이었던 거다.
“그게 뭐야, 재현아?”
내가 한참 동안 일지를 붙잡고 있자.
아이템들을 진열하던 김채은이 물었다.
“특수 아이템인 것 같은데… 채은, 혹시 이거 내가 가져도 될까?”
다른 장비들엔 딱히 관심이 가지 않았다.
일단 보상 중에 내 주무기인 검이나 단검류의 무기가 없었고, 방어구나 장신구 역시 내가 쓸 만한 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김채은에게 어울릴 법한 마력 관련 장비가 많았다.
이번 보상에서 내게 필요한 건 [울부짖는 광인의 일지].
이거 하나였다.
그리고 김채은은 내 물음에 밝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
“어? 왜?”
“이렇게 쉽게 줘도 되는 거야?”
“응. 그 아이템, 딱 봐도 나한텐 안 어울릴 것 같아. 그리고 재현이가 찾고 공략한 던전이니까, 보상 분배도 재현이 맘이지!”
“아니… 나도 버스 받은 거라니까….”
정신 차려, 제발.
* * *
2학기 개강이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학생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개강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한 걸 꼽으라면.
역시나 수강신청이다.
아카데미는 교육하는 대상이 룬 홀더일 뿐, 시스템 자체는 대학교와 비슷하다.
당연히 듣고 싶은 강의가 있으면, 넷상으로 수강신청을 하고 여석을 뚫어야만 했다.
“으아아- 졸려….”
이른 아침 8시.
난 여느 학생들처럼 PC방에 나와, 수강신청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옆엔 부스스한 머리의 남자.
박진우가 피곤함에 절은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너도 수강신청은 하러 오는구나.”
“오오우우… 졸려 죽겠다. 원래 지금 자는 시각인데….”
“아침 훈련은?”
“원래, 9시야… 흐아암-”
이번 수강신청은 평소보다 일주일 정도 늦춰졌다.
그 이유는 당연히 유은설.
초특급 강사가 뒤늦게 영입된 탓에, 강의 개설에 시간이 살짝 소요됐기 때문이다.
덕분에 개강을 2주 남겨둔 지금에서야 수강신청이 시작된다.
“하, 떨린다.”
“뭐가 떨리는데.”
“여석 못 뚫을까봐. 유은설 홀더님 강의, 경쟁률 너무 빡셀 것 같아.”
이번 학기에 내가 신청할 강의는 6개.
공통과목인 <마력제어의 응용>과 <부산물 채취>.
전사 계열 전공과목인 <한손검과 방패 활용>, <양손검의 이해>, <맛있게 맞는 법>.
마지막으로 암살자 계열 전공과목이자…
이번 학기에 유일하게 개설된 유은설의 강의, <소검의 활용과 검법>.
여섯 과목 모두 내게 필요한 강의들로 골라 선정했지만, 유은설의 강의는 특히 중요했다.
정체되다 못해 퇴보 직전인 내 단검술을 키울 기회였고, 무려 S급 홀더에게 배울 수 있는 강의였으니까.
다른 건 성공 못 해도, 이번 건 꼭 성공해야만 했다.
그런데 내 말을 듣던 박진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유은설 강의를 네가 왜 들어? 너 전사 계열이잖아.”
“뭔 개소리야. 나 암살자 계열로 입학했는데.”
“그딴 건 내가 아는 암살자가 아니야…!!”
갑자기 혼자 절망에 빠지는 박진우를 무시한 채.
나는 화면 앞 수강신청 페이지에 집중했다.
이미 강의들은 모두 예약해놓은 상태.
시간이 되면, 활성화되는 신청 버튼 6번만 누르면 끝이었다.
“후우….”
수강신청은 할 때마다 왜 이렇게 긴장되는지 모르겠다.
나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며, 화면을 바라봤다.
시각이 어느새 9시를 향해 달려갔다.
8시 57분, 58분, 59분…
분 단위가 끝이 나고, 초 단위로 접어들 무렵.
[09:00]
정각의 알람이 울리고, 지옥의 수강신청이 시작됐다.
그리고…
[소검의 활용과 검법(유은설) : (0/0/0)]
“아니, 씨발. 말이 돼?”
나는 보란 듯이 실패했다.
정확히 9시에 맞춰 새로고침을 누른 덕에 지옥의 대기 인원을 벗어날 수 있었는데…
정작 수강신청을 누르니 여석은 1초도 안 돼 동이 났다.
씨발.
다들 슈퍼컴퓨터를 쓰나.
뭐가 이렇게들 빨라?
다행히 당황하지 않고 남은 강의들의 수강신청은 모두 마쳤지만, 정작 제일 중요한 강의를 놓치니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하아….”
“포기해. 포기하면 편해.”
위로랍시고 그런 말을 건넨 박진우는, 졸린 눈을 부릅뜨며 이제야 하나하나 신청할 강의를 찾고 있었다.
“너 뭐하냐?”
“뭐가. 강의 찾잖아.”
“예약 안 해놨어?”
“그게 언젠데.”
와.
예약도 안 하고 수강신청을 하러 왔다니.
이 지독한 새끼.
얜 내가 어제 말 안 해줬으면, 아마 오늘이 수강신청인 것도 몰랐을 거다.
“아… 다른 강의 찾아야 하나.”
다른 사람이 수강을 취소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도 있다.
누군가가 자리를 비우면, 여석은 하나 생기는 거니까.
하지만 유은설의 강의에 그런 천운이 생길 리 없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S급 홀더의 강의를, 어떤 미친놈이 수강취소할까.
가능성이 제로였다.
“쩝.”
그렇게 포기하고 다른 강의를 찾으려 할 때쯤.
부우웅-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010- … ] 유은설이에요. 혹시 내 강의 신청하려고 했는데 실패했으면 전화해요. 시간 맞춰서 여석 열어둘게요.
그제야 깜빡했던 사실이 생각났다.
맞다.
이 사람, 나 때문에 아카데미 온 거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