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105화 (105/353)

EP.105 변화와 대비 (1)

새 학기에 듣는 과목들은 대부분 만족스러웠다.

의외로 이론 수업이 철저했던 <부산물 채취>부터 시작해, 새롭게 강사로 부임한 정선영이나 임현의 수업, 여전히 명불허전인 탁원호 교수의 명강의, 생각보다 들을 만했던 외국어 강의까지.

어느 하나 버릴 강의가 없었고, 모두 기대했던 것 이상의 퀄리티였다.

이 정도면 수강 정정이 전혀 필요치 않은 수준이다.

당장 저번 학기까지만 해도 김명현 교수와 탁원호 교수의 수업을 제외하면, 들을 만한 강의가 거의 없었는데…

정말 놀라울 정도로 개선된 아카데미의 강의 질이었다.

“ … … 따라서 역수로 쥐는 단검술이 항상 효율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소검 같은 경우엔 오히려 정수 찌르기가 더 효과적이죠. 암살자 계열의 전투가 항상 기습이나 후면 공격으로만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렇듯 다양한 변수와 상황을 가정하고 전투에 임해야 합니다. … … ”

그중 가장 흥미로웠던 건 역시, 유은설의 강의다.

실전 전투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그녀는, 의외로 강의력 또한 뛰어났다.

난해하지 않은 설명과 적절한 단어 선택으로 학생들의 쉬운 이해를 도왔고, 중간중간엔 가벼운 예시마저 선보이며 실습에 대한 기대감도 불어넣었다.

무엇보다 강의가 재밌다.

1교시 수업인 <부산물 채취>를 들을 때처럼, 유은설의 강의는 전혀 지루하지 않고 재밌었다.

‘그리고 자연스러워.’

아카데미 최초 S급 홀더의 강의.

그 어마어마한 타이틀에 부담이 될 법도 했지만…

유은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침착하게 강의를 이어가며. 흔들리지 않는 정점의 품격을 보여줬다.

세간의 관심에도 전혀 긴장하지 않는…

놀랍도록 차분한 모습.

마치 원로 교수의 능숙한 강의를 보는 것만 같았다.

“ … … 명심하세요. 암살자는 공격에 치중된 계열인 만큼, 그 공격이 실패했을 때 어떻게 풀어나갈지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수강생 여러분께서는 다음 수업 시간이 될 때까지, 그에 대해 직접 스스로 고민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강의 수준에 맞게, 학생들의 집중력도 엄청났다.

수강신청부터 겨우겨우 힘겹게 뚫은 유은설의 강의에, 고작 출석체크만 하려고 오는 학생은 없었다.

결국 강의가 진행되는 50분 동안, 수강생들은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으며 강의를 들었다.

그 정도가 얼마나 깊었던 건지, 끝마침을 알리는 유은설의 말에도 누구 하나 일어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유은설은 가만히 강의실 안을 둘러본 후.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책을 덮었다.

“다음 수업은 바로 실습이 진행되니, 무기를 챙겨오시길 바랍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와….

-수고하셨습니다!!

-짝짝짝짝짝

강의가 끝나자, 커다란 강의실이 박수와 인사로 가득 찼다.

와…

이 이중적인 새끼들.

얘네가 정말 내가 알던 아카데미 학생들이 맞나 싶다.

다른 교수가 강의를 마칠 땐 누구보다 빠르게 강의실을 나가면서, 유은설의 강의에선 이례적으로 감사 인사를 보내고 있다.

그래도 그 심정은 이해가 갔다.

S급 홀더의 강의라는 신기한 경험을 했고, 또 그 명성에 흠이 가지 않는 좋은 강의였다.

박수를 아낄 이유가 없었다.

짝짝짝-

그래서 나 역시 나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박수를 쳤다.

“…어?”

“이, 이쪽으로 오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또각또각-

학생들의 열띤 환호를 받으며 인사를 하고 나가던 유은설이, 문득 걸음을 돌려 한쪽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오른쪽 대각선 창가 쪽.

내가 앉아있는 자리였다.

그녀의 펄럭이는 하얀 도복이 내 앞에서 멈췄다.

유은설은 나와 눈을 한 번 마주치더니 짧게 말했다.

“도재현 홀더는 일과가 끝나면 교수실로 한 번 들르세요. 개인상담이 있을 예정이니.”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등을 돌린 후.

다시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잠깐 면담을 하자는 교수의 말.

여느 때라면 무엇보다 평범한 말이겠지만…

이 분위기에, 이 상황에서는 완전히 느낌이 다르다.

그 ‘유은설’이 학생 한 명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도 신기한데, 따로 불러 면담까지 하려는 상황.

이건 뭐, 폭탄선언이나 다름없다.

…그 여파를 감당해야 하는 건 당연히 내 몫이었다.

“뭐야. 쟤가 누구길래 개인상담이야?”

“와… 일대일지도, 뭐 그런 거냐? 특별대우 뭔데.”

“설마 전속 제자로 받으려는 건 아니겠지?”

“쟤, 걔잖아. 요즘 들어 제일 핫한 1학년, 도재현.”

“그게 누군데, 씹덕아.”

“단둘이 남은 선생과 학생? 이거 완전…”

사방에서 날 향해 웅성대는 학생들.

끝을 모르고 파생되는 루머들.

그를 들으며, 나는 조용히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니, 교수님…

이런 건 좀 문자로 말해줘도 되잖아요….

* * *

일과가 끝나고 찾아간 유은설의 교수실.

그녀와의 개인상담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교수실에서 차를 한잔 마신 후.

유은설이 곧바로 날 개인 연무장으로 데려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난 오늘 수업이 다 끝났음에도, 전신무장을 하고 연무장 한편에 서 있는 상태였다.

유은설은 벽면에 몸을 살짝 기대며 나를 바라봤다.

“도재현 홀더는 그때 던전에서 했던 약속, 기억하나요?”

그 말에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교수와 강사에게 제공되는 개인 연무장인 터라, 이곳엔 유은설과 나밖에 없었다.

“이중던전 공략 말씀이십니까?”

“네, 당시 도재현 홀더는 같이 공략을 갈 실력이 될 때까지 기다려달라 했었죠.”

“예. 기억합니다.”

<용의 숨결이 닿는 강>.

그 내부에 자리한 이중던전.

정확한 던전의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내 수준으론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쯤은 예측 가능했다.

아무리 S급 홀더의 도움을 받으며 던전을 공략한다고 해도…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모르는 고위 던전에서, 적어도 내 몸 하나 지킬 정도의 실력은 키워야 했다.

거기에 아무것도 안 하며 던전 공략을 버스받는 것도, ‘전투 기여도’가 필요한 내게 있어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다.

유은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탁원호 교수님께서 제안하신 아카데미 강사직을 수락했던 건, 그게 가장 큰 이유였어요. 그 기다림을 앞당기기 위해. 조금이라도 도재현 홀더의 성장을 돕기 위해.”

“…….”

이는 탁원호 교수에게 미리 들어 아는 내용이었다.

유은설이 나 때문에 아카데미에 왔다?

아직도 잘 믿기지는 않지만, 강사로 부임한 결과가 그를 방증했다.

모르긴 몰라도 <용의 숨결이 닿는 강>의 이중던전.

그 공략이 유은설에겐 꽤 중요한 사항인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 입장을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걸 지닌 홀더도, 쉽게 발견되지 않는 것 같고.

그런 여러 가지 운이 겹쳐, 나는 S급 홀더인 유은설의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유은설은 새로운 제안을 건넸다.

“하지만 단순히 다대일 강의를 진행하는 것만으론 한계가 있어요. 우리가 계획한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조금 더 구체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전에도 말했지만, 기한은 한 학기를 넘지 않았으면 하니까요.”

유은설이 품에서 소검 한 자루를 꺼냈다.

그리곤 이를 내게 향하며, 내 눈을 바라봤다.

“그래서 도재현 홀더에게 추가적인 지도를 하려고 해요.”

“추가적인 지도…?”

“네. 도재현 홀더가 이미 성장 폭과 속도가 남다른 유망주라는 걸 알지만… 우린 그걸 조금 더 가속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니 서로 시간을 조율해서, 매일 꾸준하게 일대일 지도를 했으면 해요.”

파격적인 제안이다.

유은설의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 기대감이 엄청났었는데, 이걸 넘어서 매일 일대일로 지도를 받을 수 있다…?

다신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

그리고 사실상 버려뒀던 암살자 계열을 키울 찬스였다.

“그럼… 저를 전속 제자로 받는다는 말씀이십니까?”

내가 긴장하며 묻자, 유은설은 고개를 저었다.

“전속까진 어려워요. 어쨌든 도재현 홀더와 제가 계획하는 시기는 한 학기가 지난 후, 다음 겨울 방학 때까지니까요. 던전을 공략할 때까지의 일시적인 계약 관계라고 생각하는 게 편할 거예요.”

아….

가볍게 탄성을 흘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유은설의 제안은 합리적이다.

S급 홀더가 어디 뒷산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사람도 아니고, 파트너로 만난 홀더를 덜컥 전속 제자로 받아들인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단기 계약도 내게 전혀 나쁠 게 없다.

무려 유은설의 개인 지도다.

굳이 전속이 아니라고 해도, 한 학기 동안 그녀의 전담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건 암살자 계열로서 엄청난 축복이었다.

‘아.’

그래도 한 가지 포기할 수 없는 게 있다.

문득 생각난 것에 난 가볍게 손을 들어 물었다.

“저… 그럼 혹시 전담 수업을 할 땐 스승님이라도 불러도 괜찮을까요?”

네 달짜리 반쪽 제자기는 해도…

유은설의 첫 제자.

이 타이틀 쉽게 못 버리거든.

뜬금없는 내 질문에 눈을 살짝 동그랗게 떴던 유은설은, 이내 선선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하세요.”

“감사합니다, 스승님!”

그렇게.

유은설과 나의 일시적인 사제 관계가 성립되었다.

* * *

그리고 이어진 스승님의 일대일 지도는…

[마치 수족을 다루듯 자유로워진 단검! 이제는 당신의 손에 들린 작은 검이 무기가 맞는지조차 분간이 어려워집니다. 단검술의 급격한 숙련도 증가로 인해 무술이 한층 성장합니다.]

[‘무술의 달인’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속력을 1 획득합니다.]

[‘무술의 달인’ 룬의 파생스킬, ‘계단 베기’를 획득합니다.]

정말 효과가 굉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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