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아? 윤지아라고?’
나는 순간 눈을 의심하며 문자를 다시 봤다.
[010-xxx…] 안녕하세요. 저는 마법사 계열 3학년 윤지아라고 합니다. 공고문 보고 연락드렸는데요, 혹시 3학년도 가입 신청을 받으시나요? 한 학기밖에 활동하지 못하지만, 꼭 <안티 빌런> 써클에 들어가고 싶어서요.
‘와, 진짜 윤지아네.’
가입 신청으로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으니 윤지아인 게 확실했다.
<염무> 써클의 회장이자, 탁월한 실력의 소유자.
불속성 마법을 완벽에 가깝게 구사하는 탓에, 강주연으로 하여금 벽을 느끼게 하는 홀더.
그런 그녀가 <안티 빌런>에 가입 문의를 하고 있었다.
‘염무를 그만둔다는 건가?’
한 써클의 회장을 맡은 그녀가 우리 써클로 오겠다는 건, <염무>를 그만두겠다는 뜻.
그 정도로 우리 써클이 매력적인 써클인가?
전혀.
슬로건만 거창할 뿐, 아직 아무것도 없는 신규 써클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윤지아도 빌런에 원한이 있구나…!!’
우리 써클에 가입 문의를 하는 홀더들 대부분은 이런 이유였다.
<빌런>에게 범죄 피해를 받았거나, 혹은 가까운 사람이 놈들에게 당한 것.
그 정도 원한이 아니고야, 얼마나 위험할지 모르는 이 써클에 가입할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내가 필수 부원 모집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도, 이렇듯 자연히 <안티 빌런>에 관심을 가질 이들이 충분하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호재다.’
윤지아는 내가 생각했던 모집 인원엔 없었지만, 데려올 수만 있다면 최고의 부원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 이유는 당연히, 강주연 때문이다.
윤지아만 우리 써클에 와 준다면, 굳이 강주연이 <염무>에 들어갈 이유가 없어진다.
어차피 그녀에게 필요한 자극 대상은 윤지아 하나뿐이니까.
그리고 강주연의 성장만 막지 않는다면, 나 역시 강주연의 <안티 빌런> 가입을 막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무슨 문자인데 그래…?”
한동안 핸드폰만 보고 있던 내 모습에 강주연이 물었다.
나는 그녀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주연아.”
“…어, 어?”
갑자기 불러서 그런 걸까.
강주연이 눈에 띄게 당황한 얼굴로 답했다.
나는 들뜬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같이 하자, 써클.”
* * *
아우우우-!!
슥- 스으, 스슥-!!
“야! 왜 안 한다는 건데?”
날아드는 늑대들에게 이번에 새로 배운 [계단 베기]를 사용하며, 옆에서 같이 싸우는 박진우에게 물었다.
아우, 아우우-!!
챙! 캉- 카강-!!
박진우 역시 검으로 늑대들을 상대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나랑! 관련이! 없는걸! 왜 들어가!”
써클 제안에 당연히 승낙할 줄 알았던 박진우는, 의외로 가입을 거절했다.
빌런을 상대하는 것엔 별로 관심이 없다면서.
그제야 나는 뭔가 잘못 판단했음을 깨달았다.
‘계기가 생기기 전엔 관심이 없는 건가?’
박진우가 본격적으로 <빌런>과 맞부딪히게 되는 계기는 극 후반부의 ‘아카데미 말살 작전’부터다.
아카데미에 다니며 조용히 잘 성장 중이던 박진우에게, 난데없이 학생들을 학살하는 <빌런>이 침투한 것.
박진우로서도 자신의 교육 터전을 파괴하는 단체와 싸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박진우가 아카데미 측 핵심 전력으로 부상하면서, <빌런>은 박진우의 동생인 박윤서를 노린다.
당시 박진우는 2학년, 동생인 박윤서는 1학년 신입생.
다행히 박윤서를 구출하는 데엔 성공하지만, 가족을 노리려던 <빌런>의 악질적인 행동에 박진우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그때부터 전면전이 시작되지.’
박진우를 위시한 아카데미 핵심 전력, 그리고 각 대형 클랜과 홀더 협회…
한국 내 모든 홀더 관련 단체와 전면전으로 맞서게 되는 <빌런>.
그 그림을 생각하며 박진우를 영입할 생각이었지만…
의외로 그는 ‘계기’가 생기기 전까지.
딱히 <빌런>에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난 간만에 ‘얼룩진 암석 더미’ 던전에 녀석을 데려와, 가입하라고 열심히 꼬시는 중이었다.
[떨어지는 매화에 선명한 칼날의 그림자가 새겨집니다. 당신의 단검이 매화인지, 매화가 당신의 단검인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매화검법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매화검법’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 와중에 룬 레벨은 꾸준히 올랐다.
요즘 들어 유은설에게 단검술(소검술)을 배우며 자주 활용 중인 암살자 계열의 룬들.
활용 빈도만큼 성장 또한 순조로웠다.
벌써 [매화검법]도 4레벨이다.
‘매화검법도 궁극스킬이 있으려나?’
유은설의 [설중매화]엔 궁극스킬이 있다는 걸 안다.
[설원유섬낙화].
눈으로 뒤덮인 땅에 내려앉은 꽃과 같다는 궁극스킬.
유은설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스킬이다.
하지만 그 열화판인 [매화검법]엔 궁극스킬이 있는지 모르겠다.
나름 레어급 무공룬이기에, 굳이 궁극스킬이 아니더라도 레벨을 쭉쭉 올리다 보면 쓸 만한 스킬을 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우우….
그그그- 팍!
잡생각을 하며 사냥을 마무리지을 때쯤.
박진우도 힘겹게 늑대의 목에 검을 찔러넣으며 전투를 마쳤다.
얼룩진 암석 더미 초입.
무리 지어 다니는 B급 괴수, 그레이 울프들.
박진우는 그중 한 마리를 맡아 사냥했고, 나는 남은 늑대들 모두를 홀로 도맡았다.
[야만왕의 후예], 그리고 [위압].
일전에 활용했던 능력치 펌핑 콤보 덕에, 다행히 B급 괴수 여럿을 상대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너 진짜 사람 맞냐? 어떻게 그걸 혼자 전부….”
전투가 끝나자, 박진우가 날 무슨 괴물 보듯 바라봤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괴물이 맞긴 하다.
어느 C급 홀더가 혼자 다섯의 B급 괴수를 상대할까.
하지만 그게 내 본래 힘은 아니었기에, 난 솔직하게 말했다.
“이거 내 원래 힘까진 아니야. 다수랑 싸울 때 능력치가 좀 많이 올라서 그래.”
그 말에 박진우의 눈이 커졌다.
“뭐? 그런 효과가 있어? 무슨 룬인데.”
“그건 말 못 해주지, 임마.”
말해줘도 믿을 수 있을라나 모르겠지만….
나는 터벅터벅 걸어가, 그레이 울프의 시체를 뒤적였다.
최근 배우고 있는 <부산물 채취>의 이론을 적용해보기 위함이었다.
북- 부욱-
“아으, 질겨. 왜 이렇게 안 되냐.”
역시 실습이 겸해지지 않은 이론은 완벽하지 않다.
나름 잘 도축한다고 해봤지만, 룬도 없고 기술도 미숙해 가죽이 제대로 벗겨지지 않았다.
나는 대충 도축하다가, 이내 쉽게 캘 수 있는 마력석 쪽으로 손을 옮겼다.
그리곤 박진우에게 다시 말을 꺼냈다.
“야, 진짜 안 할 거야?”
“안 한다니까- 훈련하는 써클도 아니고, 대련하는 써클도 아닌데 뭐하러 해.”
“빌런이랑 싸울 수도 있다니까?”
“싸울 수도 있는 거지, 싸우는 게 아니잖아. 진짜 싸우면 그게 클랜이지, 써클이냐?”
박진우답지 않게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빌런>에 관해 연구하고 대비책을 세우는 써클이긴 하지만, 박진우가 원하는 훈련이나 대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말처럼 진짜 <빌런>과 전면전을 하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전면전을 하게 되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다.
‘위험하다’는 우리 써클의 최대 단점이 현실이 되는 거니까.
말문이 막힌 나는 한숨을 쉬며 물었다.
“너 그럼 어디 써클 들어갈 건데.”
원작대로라면 박진우가 들어가는 써클은 <워리어>.
싸움을 좋아하는 각종 전사 계열들이 모두 모인, 땀내 나는 써클이었다.
“나? 워리어 같은 곳 생각 중인데.”
그리고 정확히 예상했던 그대로.
이런 부분엔 왜 나비효과가 안 생기고 그대로인지 모르겠다.
나는 침착하게 딜을 걸었다.
“오케이. 일주일에 최소 두 번 대련해줄게. 써클 같이 하자.”
“오우, 두 번? 많긴 한데…”
박진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날 봤다.
“너랑 대련 너무 많이 해서 이제 좀….”
이 자식이?
한숨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겨우 참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 써클엔 박진우가 필요하다.
박진우는 학생 홀더 중 가장 믿을 만한 전사 계열이다.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며 실력을 키우고 있고, 딜탱을 겸하는 브루저 쪽에선 거의 1학년 원탑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당장 B급 괴수도 혼자 때려잡으니까.’
그런 박진우가 써클에 있다면 무력적으로 확실한 카드가 된다.
아무리 아카데미의 보호를 받는 써클이라곤 해도, 사이코들의 모임인 <빌런>의 특성상 어떤 무력 다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니까.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그를 영입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그에게 새로운 제안을 던졌다.
“일주일에 한 번. 얼룩진 암석 더미 사냥 같이 와 줄게. 대신 내가 메인 아니고, 너 메인으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앞선에서 사냥하고, 난 암살자 쪽으로 확실하게 보호해준다. 콜?”
선심 쓰듯 제안했지만, 사실 이건 내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유은설에게 배우고 있는 단검술(소검술)과 [매화검법].
그녀의 교육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이 룬들과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었고, 그러기 위해선 솔플보단 파티에서 딜러 역할만 맡는 게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진우에게도 매력적인 제안인 건 분명했다.
“콜.”
이렇게 바로 대답이 나오는 걸 보면 말이다.
변화의 시작으로 만든 <안티 빌런>.
그 멤버에 점점 윤곽이 잡혀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