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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111화 (111/353)

[차수연 교수님] 지윤재 학생, 개인 면담이 있으니 7시까지 교수실로 오세요.

핸드폰 속 문자를 통해 다시 한번 시각을 확인한 지윤재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차수연은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걸며 아카데미에 들어왔다.

<빌런> 내에서 지부장급 인사인 그녀는 협회에서 지정한 공개 수배범이지만, 활동할 때의 이름은 매번 바뀌기에 수배됐을 당시의 이름 또한 달랐다.

가볍게 인상착의만 바꾸면 될 일이었다.

‘차수연 교수, 차수연 교수….’

눈으로 교수실의 이름들을 확인하며 걸었다.

차수연이 아카데미 내에 본격적으로 투입되면서, 접선 장소는 그녀가 담당한 교수실로 바뀌었다.

본래의 거처로 이동하기엔 시선이 쏠릴 가능성이 있고, 다른 외부 장소를 쓰자니 신뢰가 가질 않았기 때문이다.

위험한 곳에 잠입했으면, 오히려 그 내부를 이용해야 한다.

아카데미 내에서 접선 장소로 가장 안전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차수연의 교수실이었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교수실을 찾고 방문을 두드리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지윤재는 머리를 긁적이며 문을 열었다.

개강 후 아카데미에서 한두 번 차수연을 본 적이 있지만, 이토록 밝고 쾌활한 그녀의 목소리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음음- 왔니?”

의자에 앉은 차수연이 한껏 즐거워 보이는 얼굴로 물었다.

지윤재는 문을 닫은 후, 빠르게 방안을 살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도청장치나 카메라 등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차수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윤재는 아직 멀었구나? 그런 게 있을 리 없잖니.”

“…이미 확인하셨습니까?”

“애초에 운영진이 미쳤다고 교수실에 도청장치 같은 걸 달겠니. 걸렸다가 사생활 침해로 이미지 실추되면 자기들만 손해인데.”

아무리 <빌런>에 대한 경계가 강화됐다곤 해도, 아카데미 측에서 그 정도까지 과한 조치를 취할 수는 없었다.

지윤재는 그제야 한쪽 무릎을 꿇었다.

“지부장님을 뵙습니다.”

“그래도 안에선 교수님이라고 하렴. 혹시 모르니까.”

“…….”

대체 어쩌라는 건지.

이랬다저랬다 하는 차수연의 모습에 순간 멍해졌지만, 까라면 까야 했다.

지윤재는 조용히 말을 바꿨다.

“…예, 교수님.”

“음음- 그래, 재밌는 일이 생겼던데?”

차수연이 아카데미에 들어온 후 첫 접선.

아직 개강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별다른 일이 없어야 정상이었지만…

모든 일이 <빌런>의 계획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저번 학기 안도권을 정면에서 틀어막으며 <빌런>의 계획 하나를 어그러뜨렸던 학생 홀더, 도재현.

그가 또 한 번 문제를 일으켰다.

<안티 빌런>이라는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써클을 창설하며, 아카데미 내에 <빌런> 대항 조직을 만들어낸 것이다.

저번부터 낌새가 심상치 않아 그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었는데, 기어코 일을 내고 있었다.

“창설 인가가 날 것 같습니다.”

지윤재는 고개를 숙인 채 결론부터 말했다.

<안티 빌런> 써클의 신규 창설 인가.

이는 이미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대충은 상황을 알고 있던 차수연도, 그 말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15명이 다 모였니?”

“…스무 명이 넘게 모였습니다.”

“뭐?”

정확히는 22명이 신규 부원으로 모였다.

신규 써클 창설을 위한 필수 부원은 벌써 충족이 끝난 상태였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부원이 들어올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처음 <안티 빌런>에 관한 공고문이 올라왔을 때만 해도, 이런 써클에 누가 들어가겠냐고들 했었지만…

어느새 <안티 빌런>은 올해 창설된 신규 써클 중 가장 뛰어난 잠재력과 경쟁력을 보유한 채 정비를 마치고 있었다.

특히 대형 써클 <염무>의 회장인 윤지아가 모든 걸 제쳐두고 <안티 빌런>에 합류했다는 건, 학생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화제가 된 파격적인 소식이었다.

비록 한 학기뿐인 활동일지라도, 그녀의 존재는 <안티 빌런>이 자리를 잡고 성장해 나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차수연은 헛웃음을 흘렸다.

“정말… 하룻강아지 같은 아이들이 많구나?”

고오오-

순간 교수실 내 분위기가 달라졌다.

중력의 지배자, 차수연.

그녀가 차갑게 웃으며 능력을 사용한 탓이었다.

‘커, 컥….’

안타깝게도 그 조용한 분노를 감당하는 건 지윤재의 몫이었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지윤재는 알고 있었다.

이럴 땐 그냥 닥치고 그녀의 기분이 풀리길 기다려야 한다는 걸.

“윤재야.”

“컥… 예, 예… 교수님.”

그 와중에 지윤재는 그녀의 지시를 잊지 않았다.

여기서 또 지부장님이라고 했다간 더 고통스러웠을 거다.

차수연이 살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녀석, 너무 거슬리는데… 어떡하는 게 좋을까?”

그 녀석.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인, 도재현을 말했다.

차수연이 질문함과 동시에 분위기가 다시 돌아왔다.

“커헉, 헉….”

지윤재는 숨 막히던 압박에서 벗어나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곤 곧장 자세를 바로잡으며 말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두 가지?”

호기심이 동한 듯한 차수연의 물음에 지윤재는 바로 답했다.

“예. 첫 번째는 써클 부원으로 가입한 제가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입니다. 거짓 정보도 가끔 흘리고, 써클의 방향성도 흐트러뜨리면서… 혼란을 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모여봤자 얼마나 큰일을 하겠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대로 써클이 활동하는 걸 보고만 있는 것도 껄끄러운 일이다.

어쨌든 대항 조직을 만들었다는 건, 관련 활동을 하긴 한다는 거니까.

그래서 지윤재는 차수연의 지시가 없었음에도 곧바로 <안티 빌런>에 가입했다.

오래도록 스파이로 활동해 온 그의 감이 이끈 행동이었다.

덕분에 정석적인 첩보 활동이 가능해졌다.

이대로 흘러가기만 해도, <안티 빌런>은 제대로 된 활동이 어려울 게 분명했다.

하지만 차수연의 마음에 그리 차는 방안은 아니었다.

“두 번째는?”

“두 번째는….”

살짝 말을 흘리며 주변을 살핀 지윤재가 말을 이었다.

“버림패를 쓰는 것입니다.”

“버림패?”

“예. 사실 안티 빌런을 바로 건드리는 건 걸리는 점이 많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인기가 꽤 높은 윤지아 같은 학생도 가입해있고, 강주연처럼 뒷배가 높은 학생 홀더들도 있죠. 그래서 써클 자체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보단, 원흉인 도재현… 그자를 제거하는 게 더 빠를 겁니다.”

거기까지 듣자 차수연이 미소를 지었다.

“도윤이를 쓰자는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스파이로 활동 중인 또 다른 클랜원, 김도윤.

그간 그에게 별다른 지시가 내려지지 않았지만, 최근엔 도재현의 경계를 강화하기 위해 같은 강의에 붙였었다.

<부산물 채취>.

강의 내 실습 조에도 같이 붙이며 밀착시킨 상황.

이럴 때를 위한 장치였다.

“저번 안도권 사건 때도 강주연만 아니었다면, 그자는 죽었을 겁니다. 김도윤 클랜원은 안도권 클랜원과 비슷한 수준. 부산물 채취 강의 외부 실습 때 일을 맡기고, 제가 그 실습에 따라붙겠습니다. 그리고 김도윤 클랜원이 일을 치르면… 은밀히 그를 제거하고 입을 막겠습니다.”

“음음-”

전사 계열 상급반에서 평범하게 힘을 숨기고 있지만, 김도윤은 B급 홀더만큼의 능력을 지닌 클랜원.

그의 힘이라면 충분히 도재현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작전.

그 제안에 차수연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윤재는 일을 잘해.”

지부장급의 허가가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 * *

매주 월요일은 <부산물 채취> 수업이 있는 날이다.

게다가 오늘은 첫 실습이 있는 날.

괴수의 부산물은 사냥을 마친 바로 그 순간에 채취하는 게 가장 신선하기에, 우리는 아카데미에서 제공한 근처 던전에서 실습을 준비 중이었다.

출현하는 괴수가 대부분 E급인 던전.

1교시 분반 강의 대상이 상급반이기에, 이 정도 던전은 위험 요소가 전혀 없었다.

“시시해.”

바로 옆에서 문가은이 툴툴거렸다.

우리는 <부산물 채취> 강의에서 같은 조.

당연히 이번 실습도 함께 움직인다.

그녀는 오랜만에 온 던전이, 제대로 된 던전 사냥이 아니라 불만인 모양이었다.

나는 얕게 웃으며 문가은에게 말했다.

“어차피 사냥하러 오는 던전이 아니잖아.”

“그래도! E급은 너무 약하잖아. 도축하는 기분도 안 날 것 같아.”

그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얘 수업 제대로 안 들었구나.

“괴수 등급 높아질수록 도축하기 더 힘들어져. 그래서 낮은 등급부터 실습하는 거고.”

“아, 그런 거야?”

“…문가은, 강의계획서는 읽고 수업 듣는 거지?”

“이씨, 놀리지 마.”

짝-

오랜만에 맞는 등짝 스매쉬다.

이제는 내구 수치가 너무 높아져서 문가은의 근력으로는 아픈 느낌이 전혀 안 났다.

뭐, 애초에 근력을 담아서 때리지도 않겠지만.

“…….”

뒤쪽에선 같은 조원인 김도윤이 조용히 따라오고 있었다.

자식, 풀이 많이 죽었네.

처음엔 이런저런 말들을 걸며 살갑게 굴던 김도윤이지만, 문가은과 내가 별다른 반응 없이 우리끼리만 지내버리니 급격히 말수가 줄어든 그였다.

정확히는 오늘 들어 유난히 조용한 기분이었다.

“조마다 방에서 실습하는 거지?”

문가은이 걷다가 문득 실습에 관해 물었다.

이번 실습이 진행되는 던전은 여러 개의 방이 존재하는 특이 던전인데, 각 조는 해당 방에 들어가 괴수들의 도축을 실습한다.

그리고 적당히 시간이 지나면 교수가 하나씩 방에 들어와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었다.

“응. 아마 괴수도 다 잡혀 있을걸.”

“어? 진짜?”

“조수들이 미리 와서 다 잡아 놔.”

“어차피 사냥하기 힘들었구나.”

“그렇다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우리에게 할당된 방에 도착해 있었다.

방안엔 E급 괴수인 그렘린의 시체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우리가 도축을 미리 해놓는 용도의 시체고, 다른 하나는 교수가 들어왔을 때 도축을 시작하는 용도의 시체다.

나는 도축 용도로 준비된 칼을 꺼내 들었다.

“시작할까? 내가 머리 쪽 맡을…”

“으, 으으아아!!”

그때였다.

도축을 막 시작하려던 찰나.

문가은과 대화하느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던 뒤편, 김도윤이 있던 자리에서…

갑작스러운 괴성이 울려 퍼졌다.

마치 방안을 찢어버릴 것만 같은 강렬한 고함이었다.

“무슨…”

서둘러 고개를 돌려봤다.

그곳엔 이미 온몸이 시뻘겋게 물든 김도윤이 있었다.

난 그런 상태를 잘 알고 있다.

광폭화 포션.

그 지독한 아이템의 사용이 분명해 보이는 외관.

이미 안도권을 통해 겪은 바 있었다.

‘갑자기 정체를 드러낸다고?’

당황스러웠다.

김도윤이 뜬금없이 정체를 드러낸 것도 그렇지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광폭화 포션을 쓴 것도 그랬다.

이건 말 그대로 뒤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앞만 보고 저지른 일이라는 뜻.

갑자기 왜?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 생각할 틈이 없었다.

무기를 든 김도윤이, 곧바로 행동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이미 이성을 잃은 그의 공격이 향한 곳은…

“아….”

“그으아아아-!!”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 놓인, 문가은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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