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가은은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시켰다.
갑작스러운 습격이었다.
첫인상부터 껄끄럽기 그지없던 김도윤이라는 동기는, 실습으로 나온 던전에서 난데없이 자신들을 공격했다.
첫 습격 대상은 문가은, 그녀 자신.
김도윤은 [광폭화 포션]으로 능력치를 증폭시킨 후, 돌격류 룬과 [무자비한 돌격]을 활용해 거침없이 달려들었었다.
아마 상황을 재빨리 눈치챈 도재현이 아니었다면.
직접 몸을 던진 그의 육탄방어가 아니었다면.
김도윤의 폭발하는 칼은 그녀의 몸에 닿았을 게 분명했다.
‘날 지키려고….’
도재현이 주특기인 회피를 이용하지 않고, 어떻게든 맞돌격을 사용해 김도윤과 부딪힌 이유.
이는 문가은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도재현을 바라봤다.
돌격에 부딪히고 폭발을 견뎌내느라 상처투성이가 된 그의 몸.
그러나 마치 벽처럼 단단하게 앞을 지키고 있었다.
자신이 뚫리게 되면, 뒤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문가은은 활시위를 당기면서도, 그런 도재현의 모습을 멍하니 봤다.
‘어떡해….’
이상한 기분이었다.
지금은 그럴 때도, 그럴 상황도 아니라는 걸 알지만…
자꾸만 도재현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염없이 그 뒷모습을 보고 있게 됐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가장 빨리 공격을 눈치채고 움직여 막아낸 기습.
이후 폭발 역시 침착하게 방어해 잡아낸 반격의 기회.
그리고, 뒤로 쭉 밀려난 그를 잡으며 했던…
‘…배, 백허그.’
아깐 정신이 하나도 없어 생각할 틈도 없었는데, 반격의 기회가 오고 여유가 생기자 그제야 떠올랐다.
자신이 백허그로 도재현을 안았다는 게.
그는 폭발의 충격으로 밀려오며 그녀에게 안겼었다.
그 거친 감촉과 부드러운 온기가 여전히 손에 남아있었다.
평소라면 깜짝 놀라고 펄쩍 뛸 일이었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지 그렇게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게다가…
‘어, 어차피 커플이니까.’
도재현과 자신은 사귄 지 100일 된 커플이다.
…대외적으론.
그리고 이제는 문가은도 안다.
100일이 지난 커플에게 있어, 이 정도 스킨쉽은 애교 수준으로 가볍다는 걸.
때문에 백허그 정도는 조금 더 초연해질 필요가 있었다.
언젠가 또 커플 행세를 할 필요가 있을 때.
그때…
다시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흠, 흠흠.’
절친인 강주연이나 김채은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자신은 뼈도 못 추리겠지만…
어차피 안 들키면 될 일이다.
…문가은은 그렇게 생각하며 시위를 당겼다.
잡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재현이를 도와 지원 사격을 해야 할 때였다.
* * *
지금부터는 타임어택이다.
[광폭화]의 지속시간은 10분.
[광폭화 포션]의 지속시간은 1시간 남짓.
페널티에 비례해 시간이 길어진 이유도 있고, 내 스킬 자체가 [야만왕의 후예] 레벨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기도 했다.
따라서 난 10분 안에 김도윤을 처치할 필요가 있었다.
한껏 가벼워진 몸으로 [날렵한 몸놀림]을 활용한다.
내 원래 속력 수치는 46, 증폭되어 69.
평소와는 비교도 안 되는 능력치에, 룬 활용은 더욱 효과적이었다.
스슥- 스스-
카가가, 캉!!
쇄도하듯 찔러간 내 검을, 김도윤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맞받아쳤다.
[유수검법]과 [파상검법]을 조합해 찔러 들어간 검격.
평범한 홀더라면 반응조차 힘들었겠지만, 녀석은 어떻게든 막아냈다.
‘보법류 룬도 있나 보네.’
음습한 새끼.
생긴 건 최약체처럼 생겼는데, 있을 건 또 다 있다.
거기에 김도윤의 검에 내 검이 막혔다는 것.
이건 단순히 공격 실패로만 끝나는 게 아니었다.
콰, 콰아앙-!!
엄청난 폭발음이 다시 방안을 울린다.
김도윤의 [폭발하는 검의 기세]가 또 한 번 불을 뿜은 것이다.
재빨리 폭발을 피해내려 했지만, 어깨 쪽에 쓸린 듯한 상처가 나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
그나마 불내성이 높아서 이 정도다.
[그을린 도마뱀 가죽갑옷]을 입고 있었다면 더 완벽히 막아낼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무구교체술’엔 방어구 교체 능력이 없었다.
그리고 방금의 폭발로 확실해졌다.
‘이 새끼, 방음 아이템까지 썼구나.’
방안이 울릴 정도로 거대한 폭발이 두 번이나 일어났다.
그런데도 우리가 있는 방으로 교수나 학생 중 누구도 오질 않고 있다.
이건 아마 김도윤이 우리를 습격하기 전에 [광폭화 포션]을 들이키며, 방안에 강력한 방음 설계를 하는 마력 아이템도 사용한 게 확실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즉에 사람들이 찾아왔어야 했다.
‘괜찮아. 내가 잡으면 돼.’
별로 달라질 건 없었다.
이 쓰레기는 처음부터 내가 잡을 생각이었으니까.
나는 어깨 쪽에 [응급처치]를 활용했다.
레어룬 [전투치유]의 파생스킬로, 전투 도중에도 부상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폭발로 인한 상처는 언제 생겼냐는 듯, 빠르게 아물어가기 시작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으으… 도, 재현….”
[폭발하는 검의 기세]로 내게 타격을 입혔던 김도윤이 눈을 부라리며 주변을 살폈다.
병신.
절대 못 찾을 거다.
내가 [은신]을 활용했으니까.
[은신]은 특정 지형지물에 숨으며 기척을 지우는 룬이지만, 상대의 시야에서 사라지거나 구도만 갖춰진다면 바로 앞에서도 흔적을 지울 수 있다.
김도윤의 폭발 능력으로 인해 근방에 자욱해진 연기.
나는 그 틈과 가려진 시야를 이용해 [은신]을 썼다.
‘제대로 먹혔다.’
그렇다.
사실 처음부터 여기까지 계획하고 놈에게 달려든 것이다.
그대로 검격이 먹혔어도 좋았겠지만, 막힌 후 녀석이 폭발을 일으키고…
그 연기 속에서 [은신]을 활용하는 것.
여기까지가, 그 짧은 시간에 내가 세운 전략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이성을 잃은 김도윤이 고를 선택지는 딱 하나.
저 앞에 보이는 문가은에게 달려드는 것뿐이었다.
“으, 으으…!!”
“문가은, 지금!”
“으으?”
타이밍이 왔다.
순간 [은신]을 풀며, 문가은에게 신호를 줬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파상검법]을 활용해 놈의 등을 노린다.
‘하이드 어택.’
[은신] 해제 후의 공격은 단순한 공격이 아니다.
[하이드 어택].
상대의 내구를 일정 수치 깎으며 내 공격의 위력은 증가시키는, 방깎과 증폭이 동시에 담긴 스킬.
공격하기 전까지 [은신]을 들키지 않았기에 활용할 수 있는 강력한 파생스킬이었다.
“으, 으으… 으아아아!!”
갑작스러운 일격을 허용하자, 김도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장기가 몰린 치명적인 부위에 검격을 맞아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뒤쪽의 내게 공격을 하려 들었다.
푸쉬이-
팍!!
“끄, 끄으읍…!!”
“어림도 없지, 이 새끼야.”
마력이 담긴 강력한 화살 하나가 날아와, 그의 어깨를 관통했다.
내 신호에 맞춰 이미 시위를 당기고 있던…
문가은의 지원 사격이었다.
그녀는 주력룬 [윈드 아쳐], 그중에서도 일대일에 최적화된 파생스킬 [익스트림 샷]을 날리며 날 도왔다.
물론, 지금 그녀의 능력치론 김도윤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없다.
마력을 담았다곤 해도, 지금 김도윤의 내구 수치가 너무 높아져 있기에.
하지만 적어도 방금과 같은 중요한 순간에, 적절한 공격으로 김도윤의 움직임을 조금이나마 제어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이 정도 억제력은…
내게 있어 충분한 지원이었다.
“터져라.”
김도윤의 등에 찔러 넣은 [참회자의 검].
그 안에 마력을 쏟아 궁극스킬을 활용한다.
보조룬인 [마력증폭]까지 활용해 최대한 마력을 쏟아부은 후.
극한의 극한까지 응축해 활용하는 [파상천검].
지금의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콤보였다.
파, 파아앗-!!
“끄, 끄으아악…!!”
거대한 마력의 참격이 놈의 몸 안에서 터졌다.
괴로운 얼굴로 몸부림을 치던 김도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축 늘어지며 쓰러졌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시체 같은 몰골이었다.
“하아, 하아….”
끝났다, 씨발.
진짜 뒤지게 힘드네….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자, 뒤편에 있던 문가은이 재빨리 다가왔다.
“도재현! 괜찮아?!”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내 얼굴을 살피는 그녀.
다친 곳은 없는지 곳곳을 더듬어보고, 아까 크게 상처 입었던 어깨 쪽도 어루만졌다.
…문가은답지 않은 과한 케어네.
그래도 괜찮은 몸 상태라는 게 그녀에게도 각인됐는지, 문가은은 한참을 살피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 진짜… 잘못되는 줄 알았잖아.”
“나랑 그렇게 사냥을 많이 가보고도 몰라? 나 쉽게 안 다쳐.”
“뭐래. 볼 때마다 포션 들이키고 있었는데.”
“…그랬나?”
“어쨌든 진짜 괜찮은 거지? 어깨는 안 아파?”
“응. 마력만 고갈 상태야. 괜찮아.”
찡그려진 문가은의 인상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려 펴줬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바닥에 쓰러진 김도윤을 바라봤다.
“후….”
너무도 갑작스러운 습격이었지만, 결국 막아내고 이겨냈다.
이젠 이를 빌미로 또 한 번 <빌런>을 추적하고 몰아세울 차례였다.
…막 만든 <안티 빌런>이 바빠질 것 같다.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떠오른 듯한, 홀더와의 결투 승리 보상.
이건 뭐,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