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1.폭발하는 검의 기세 2.검(선택불가) 3.민첩성(선택불가) 4.지구력 5.육탄방어(선택불가) 6.삼재검법 7.마력제어(선택불가) 8.질주(선택불가) 9.무자비한 돌격(임시)(선택불가)]
김도윤에게서 얻을 룬은 사실상 정해져 있었다.
[폭발하는 검의 기세].
녀석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핵심 룬이자, 보유룬 중 몇 안 되는 에픽룬.
이게 나온 순간, 다른 선택지를 더 볼 필요가 없다.
게다가 굳이 선택불가인 룬이 아니더라도, [지구력]이나 [삼재검법] 같은 룬은 내게 필요치 않았다.
그보다 더 상위 등급의 룬인 [단단한 지구력], [유수검법], [파상검법] 등의 성능이 훨씬 좋으니까.
획득 룬에 제한이 있다는 걸 잘 생각해 보면, 이제는 예전처럼 아무 룬이나 무턱대고 획득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폭발하는 검의 기세를 획득하셨습니다. 7레벨의 에픽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해 4레벨로 등록됩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근력을 1, 마력을 3 획득합니다.]
<룬 정보>
◎이름: 폭발하는 검의 기세
◎등급: 에픽(Epic)
◎레벨: 4
◎새겨진 부위: 왼쪽 팔뚝
◎특수효과
: 검을 사용해 상대에게 타격을 주거나 특정 사물에 부딪혔을 때, 자유자재로 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 (폭발의 강도와 양은 룬 레벨에 비례한다.) 폭발의 원류 에너지는 마력으로 대체되고, 마력의 성질은 불 속성을 띤다. 마력을 제어하는 룬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비활성화되며, 사용자의 마력이 고갈됐을 때에도 역시 룬을 활용할 수 없다.
: 불속성 계열 마력룬을 보유하고 있을 시, 룬의 위력이 소폭 증가한다.
: 마력의 증폭 및 응축과 관련된 룬을 활용해 시간을 들이면, 더욱 강력한 폭발이 가능해진다.
◎파생스킬: -
◎세부정보
: 터지기 일보 직전의 응축된 마력이 검에 집결되어 있다. 검을 쓸 수만 있다면 어떤 곳에서든 폭발을 일으킬 수 있고, 무엇이든 폭파할 수 있을 것이다.
빽빽한 룬의 정보가 눈앞을 어지럽혔다.
이건 뭐, 거의 벽돌 수준이다.
워낙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직접 전투계열 에픽룬이라 그런지, 설명이 상당히 많고 조건 또한 꽤 복잡했다.
‘나는 일단… 다 해당하네.’
폭발의 원류 에너지가 마력으로 대체된다.
따라서 마력 관련 룬을 보유해야 이 룬을 쓸 수 있다.
다행히 나는 그 조건에 다 만족한다.
[마력제어] 룬을 가지고 있고, [마력증폭]과 [이글거리는 불꽃]도 보유하고 있어 룬을 강화할 수 있는 보조룬을 모두 지니고 있다.
그동안 획득해 온 룬이 하도 많다 보니, 새로 얻은 이 생소한 룬도 완벽하게 활용할 수 있는 준비가 끝나 있었다.
‘근데 검의 기준이 어디까지지?’
문득 정보를 읽다가 그런 의문이 들었다.
이건 내게 있어 꽤 중요한 안건이다.
내 주력 무기는 누가 뭐래도 검이지만, 최근 들어 유은설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단검과 소검도 그에 못지않게 활용 중이다.
폭발음이 시끄럽긴 해도, 어쨌든 능력의 활용 폭이 넓어지는 건 장점일 게 분명했다.
‘룬 정보로는 모르겠네.’
검이라고 적혀있기는 한데, 그 범위가 정확히 서술되어 있지 않다.
아무래도 직접 써서 알아내야 할 것 같았다.
혼자 있을 때 실험해봐야겠다.
그런데 그때 뜬금없이 웬 정보창들이 또 떠올랐다.
[새로 획득한 룬이 연계되며, 기존에 있던 스킬들이 영향을 받습니다.]
[파생스킬 ‘쿼터 나이프’의 정보가 갱신됩니다.]
[파생스킬 ‘계단 베기’의 정보가 갱신됩니다.]
‘뭐야, 갑자기.’
스킬의 연계.
언젠가 파생될 거라곤 생각했지만, 이렇듯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날지는 몰랐다.
나는 재빨리 [쿼터 나이프]의 스킬 정보를 확인해봤다.
<스킬 정보>
◎이름: 쿼터 나이프
◎파생 룬: 무술의 달인(단검)
◎대기시간: 30분
◎사용조건: 단검 네 자루 사용.
◎사용효과
: 단검 네 자루를 상대에게 투척한다. 평범한 투척 기술이지만, 네 자루 중 무작위 한 자루엔 응축된 마력이 담겨 강렬한 타격을 줄 수 있다. 네 자루 중 어떤 단검에 마력이 담기게 될지는 사용자도 알 수 없다.
*비도 폭탄 (폭발하는 검의 기세)
: 특정 룬과 연계되어 새로운 효과가 추가됐다. 스킬 사용 시, 사용자가 원한다면 스킬에 폭발의 성질을 부여할 수 있다. 이 성질은 투척된 네 자루 중 마력이 담긴 한 자루에만 부여된다.
‘와. 이게 되는구나.’
[쿼터 나이프]엔 [폭발하는 검의 기세]의 연계로 새로운 효과가 추가되어 있었다.
[쿼터 나이프]는 러시안룰렛처럼 네 자루의 단검 중 하나에만 마력이 집중되어 쏘아지는 투척 스킬인데, 이중 마력이 응축된 한 자루에 폭발의 성질을 부여한다는 추가 효과였다.
내가 보유한 몇 안 되는 원거리 공격에, 더 강력한 힘이 부여되며 강화를 이뤘다.
원하지 않을 때면 해당 효과를 안 쓸 수도 있으니, 편의성 또한 뛰어났다.
‘즉발성 룬이라 되는 거구나.’
나는 갑자기 룬과 연계되어 스킬이 강화된 이유를 금세 알아챘다.
지금껏 마력과 관련된 룬은 몇 번이나 얻었었다.
[이글거리는 불꽃], [소용돌이를 삼킨 파도], [갈라진 대지의 정원] 등등…
속성과 관련된 룬만 해도 벌써 꽤 많다.
그런데도 당시엔 다른 스킬들이 연계되지 않았던 건, 해당 마력룬들이 마력을 감응하고 속성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을 소요하기 때문이었다.
반면 [폭발하는 검의 기세]는 마력이 감응만 된다면 즉발성으로 폭발을 일으킨다.
다른 마력룬들에 비해 중간 과정이 생략된, 훨씬 빠른 속도였다.
덕분에 스킬들에 영향을 미치며 이렇듯 정보가 갱신된 것 같았다.
[계단 베기]의 스킬 정보 역시 비슷한 효과가 적혀있었다.
‘다른 스킬들은 물리 쪽이라 안 되는 것 같고.’
검을 쓰는 스킬은, 이들 말고도 두 개 더 있다.
[연격]과 [하이드 어택].
다만, 이 두 스킬은 앞선 스킬들과 달리 오롯이 ‘물리 공격 성향’을 지닌 스킬들이라 효과가 추가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쿵, 쿠우우-
웅성웅성-
“아니, 이게 어떻게 된….”
“32조 조원들, 모두 괜찮습니까?!”
“조수, 당장 신성 계열 교수에게 연락을!”
그렇게 새로 얻은 능력들을 정리할 때쯤.
우리가 있던 방의 문이 열리고, 주변이 한껏 소란스러워졌다.
김광부 교수와 <부산물 채취>의 학생들.
그들이 한데 몰려든 것이다.
격렬한 전투의 결과, 그리고 방음 아이템이나 [광폭화 포션] 등 누가 봐도 수상한 흔적들.
충분한 설명이 필요했다.
“32조 조장 도재현이라고 합니다, 교수님.”
나는 지친 몸을 이끌어 나선 후.
차분하게 김광부 교수에게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 * *
-전사 계열 1학년 김도윤, <빌런>의 스파이였다!
-안도권에 이어 또다시 나타난 스파이…
-활개 치는 빌런, 아카데미는 계속 당하고만 있나?
-습격당한 1학년 도재현, <안티 빌런> 써클 창설.
-6년 만에 나온 1학년의 써클 창설, 인가 확정.
“…….”
차수연은 조용히 신문을 덮었다.
김도윤의 도재현 습격이 실패로 돌아간 후, 아카데미 내부와 온갖 언론에선 이 사건을 집중 조명하며 연일 기사를 냈다.
기사 내용의 대부분은 <빌런>에 관한 것.
아카데미에 <빌런> 측 스파이들이 넘쳐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색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습격당한 도재현을 보호해야 한다… 등등.
한동안 잠잠했던 아카데미 내부 <빌런>의 침투에 관한 내용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그에 관한 대중의 부정적인 여론이 쉴 새 없이 빗발쳤다.
<빌런>이 아카데미에 있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반드시 범죄 조직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그러한 의견들을 모두 담은 게 지금의 신문 내용이었다.
그를 조용히 바라보며…
차수연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윤재야.”
“예, 교수님.”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지윤재의 입에서,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이 튀어나왔다.
화가 난 게 분명한데도, 압박을 주지 않는 차수연.
이럴 때의 그녀가 가장 위험했다.
이럴 때일수록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대답해야 했다.
그녀에게서 가장 많은 칭찬과 처벌을 동시에 받아본 적 있는 지윤재는, 이제 그녀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실패의 파급효과가… 좀 크네.”
이번 작전은 실패다.
그냥 실패도 아닌, 완전한 실패.
목표 대상인 도재현도 제거하지 못했고, 이번 일이 <빌런>의 소행이라는 걸 감추지도 못했다.
어느 하나 성공하지 못하고, 그 역풍만 어마어마하게 분 작전이었다.
“죄송합니다. 저라도 작전을 수행해야 했는데…”
지윤재 역시 이번 작전에 같이 참여했었다.
작전이 모두 끝나면, 마무리로 김도윤을 처치하는 역할로.
하지만 광폭화한 김도윤이 패배할 거란 계획은 그의 머릿속에 없었고, 때문에 관련된 어떤 상황에도 나서질 못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모든 게 끝나고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을 때, 조용히 현장을 벗어나는 일뿐이었다.
“그랬으면 너도 나도 위험했겠지. 잘 판단했단다.”
차수연의 입에서 드물게 칭찬이 나왔다.
그리고 그녀의 말대로, 이는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김도윤은 잡히더라도 아카데미의 경계만 강화될 뿐 커다란 문제가 생기진 않지만, 지윤재가 잡히는 건 이야기가 달라진다.
“넌 선임 클랜원이잖니.”
그건 지윤재가 일반 클랜원들과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빌런> 내 아카데미 지부는 일종의 점조직처럼 운영된다.
일반 클랜원들은 하달되는 지령으로 움직이지만, 지령의 전달 방식은 전부 중개자를 이용해 비밀리에 이뤄지는 것.
그 탓에 지령을 전달하는 중개자도 그게 <빌런>의 임무라는 걸 모르고, 하달받는 일반 클랜원도 상부에 누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그들이 작전 도중 발각되더라도, <빌런> 소속이라는 것만 밝혀질 뿐.
그 외 어떤 사실도 심문으로 알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지부장인 차수연과 직접 소통하며 임무를 수행하는 지윤재의 경우, 정체가 발각됐을 때 자칫 <빌런> 클랜 전체의 위험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었다.
클랜 내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선임 클랜원답게, 행동과 임무 수행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된 이상, 당분간은 조금 사려야겠네.”
차수연의 목소리에서 피곤함이 묻어 나왔다.
그녀답지 않은, 곤란하다는 표정이었다.
그에 지윤재는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원래 계획했던 플랜A로 가겠습니다.”
원래 계획했던 플랜A.
도재현의 <안티 빌런> 써클에 부원으로 잠입한 후, 거짓정보 등을 흘리거나 방향을 비틀어 써클 활동에 혼란을 주는 것.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 덩치가 커질 <안티 빌런>을 생각하면, 이전보다 훨씬 중요해진 플랜이었다.
차수연은 그런 지윤재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추가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도재현 암살 작전. 다시 계획 세워 봐. 플랜A는 유지하면서.”
“다시… 말입니까?”
“음음- 이번 사건으로 확실히 느꼈단다. 도재현 그 아이, 우리 활동에 너무 큰 걸림돌이야.”
광폭화한 김도윤을, 비록 궁수 계열의 도움이 있었다곤 해도 별다른 부상 없이 쉽게 제압했다.
도재현은 일전에 지표로 삼았던 ‘안도권 사건’ 때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해졌다.
그야말로 경악에 가까운 성장 속도.
차수연과 지윤재가 완벽히 놓친…
이번 사건이 패착에 이른 이유였다.
“그대로 두면 언젠가 우리 목에 칼을 꽂을 거란다.”
차수연은 그런 도재현을 경계했다.
당장에도 너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역대급 유망주인데, 그런 학생 홀더가 <안티 빌런>이라는 써클까지 만든다?
조직의 방침에 걸림돌이 되고, 거기서 활동하는 자신들에게 너무도 위험한 인물이었다.
차수연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그 전에 반드시…”
그래서 더욱 중요해진 사항.
“반드시 죽여야 할 것 같아.”
도재현.
그가 이제는 경계대상에서, 척결대상이 됐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