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115화 (115/353)

금요일 저녁 7시.

평소 같으면 주말을 앞두고 신나게 놀아야 할 시각이었지만, 나는 학생회관 3층에 자리한 써클룸에 와 있었다.

다른 대형 써클에 비해선 작지만, 어지간한 중소 써클에 비해 밀리지 않는 규모의 커다란 방.

거기에 방의 외적 디자인과 내부 인테리어는 화려하기 그지없다.

…내가 이번에 창설한 <안티 빌런>의 써클룸이다.

그간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후, 드디어 부원들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된 첫 모임 날.

오늘은 그 모임을 위해 써클룸에 와 있었다.

“오우, 엄청 으리으리한데?”

같이 온 박진우가 놀란 눈으로 써클룸을 구경했다.

그에 나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당연하지. 지원을 얼마나 받았는데.”

<안티 빌런>의 써클룸이 화려하게 디자인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신규 써클 창설 인가 과정에서, 아카데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어중간한 지원이 아니다.

말 그대로 전폭적인 지원.

어지간한 대형 써클…

최소 <염무> 급은 돼야 받을 수 있는 지원을 받았다.

여기엔 내 스승님인 탁원호 교수가 아카데미 운영진으로 있다는 점과 <안티 빌런>의 담당 교수가 아카데미 내에서 신망이 높은 김명현 교수라는 점, 그리고…

“우리의 써클장 도재현 씨가 아주 큰 일을 해서 그렇지.”

박진우가 과장된 몸짓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번 김도윤의 ‘실습 습격 사건’.

이는 아카데미뿐만이 아니라, 홀더 계 전체에서 큰 화제가 됐다.

학기 말 평가에서 학생 홀더가 다른 학생을 고의로 죽이려 했던 게 불과 몇 달 전인데, 새 학기가 개강하자마자 또다시 동기를 죽이려는 홀더가 나타난 것이다.

‘…수상한 점도 많았고.’

유통 불가 품목인 [광폭화 포션]을 사용했다는 점.

또, 습격 대상인 내가 마침 <안티 빌런>이라는 써클을 만들려 했다는 점.

그런 요소들이 겹치면서, 김도윤이 <빌런> 소속 클랜원이라는 건 거의 기정사실화됐었다.

<빌런>에서 스파이를 파견해 여러 작전을 펼치고, 학생 홀더들을 살인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아카데미 입장에선 결코 좌시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덕분에 내가 만들려던 신규 써클 <안티 빌런>은 본의 아니게 그 수혜를 입었다.

아카데미 내에서 <빌런>을 뿌리 뽑겠다는 운영진의 의지가 써클 창설과 맞물려, 이렇듯 과하다 싶을 정도의 지원을 받아내게 한 것이다.

“그만 좀 띄워줘라.”

하여간 박진우 이 녀석은 건수만 잡히면 날 놀리려 든다.

애초에 놀림 받을 거리도 아니었지만, 깐족대는 녀석의 말투를 듣다 보면 살살 열이 받는 기분이었다.

박진우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왜, 맞잖아. 광폭화한 B급 홀더를 홀로 때려잡은 학생 홀더! 다들 관심 가질 만하지. 요즘 클랜들에서 하이재킹으로 영입 제의도 온다며?”

부, 부우웅-

“…….”

…내 핸드폰도 양반은 못 되는 걸까.

박진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전화가 왔음을 알리는 진동이 울렸다.

잠깐 번호를 확인해보니 모르는 번호다.

아마 박진우가 말한 대로, 클랜의 전화일 게 분명했다.

학생 홀더인 내가 광폭화한 김도윤을 쓰러뜨렸다는 게 온갖 신문에 기사로 난 이후, 내 핸드폰엔 하루가 멀다 하고 이렇게 연락이 왔다.

도대체 내 번호는 어떻게 안 건지 모르겠다.

“으하하! 거봐. 맞네. 만인이 인정하는데 왜 인정을 안 하냐?”

“만인이 인정하는 거 아니야, 임마.”

바보처럼 웃어대는 박진우에게 핀잔을 줬다.

“뭐가 아닌데?”

“일단 전제부터 틀렸어. 광폭화한 B급 홀더를 홀로 때려잡은? 아니, 이해가 안 돼. 그 자리에 분명 문가은이랑 나랑 있던 거 뻔히 다 나왔는데, 왜들 그렇게 기사를 내는 거야.”

김도윤은 나 혼자 잡은 게 아니다.

나와 문가은이 합심해 쓰러뜨렸다.

아마 문가은이 없었어도 어떻게든 홀로 잡을 순 있었겠지만, 그녀의 지원 사격이 적재적소에 들어온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도윤을 나름 쉽게 쓰러뜨렸던 건, 그녀와 내가 환상의 호흡으로 합격 전투를 펼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기사엔 내 활약만이 집중적으로 조명됐다.

-세계가 놀랐다! 일본이 경악하고, 미국이 부러워한다! 서울 홀더 아카데미의 학생 홀더, 광폭화한 B급 홀더를 홀로 쓰러뜨리다?

‘…….’

실제로 나왔던 기사 제목이다.

주접도 이런 주접이 없다.

민망해서 얼굴을 들기 힘든 수준의 기사였다.

강주연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이 정돈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하여간 유망주 홀더 하나 나타났다 하면 난리가 나는 언론이었다.

“그리고 정식 영입 제의도 아니야. 연락하는 클랜들 막상 영입 제의는 안 하고, 말 빙빙 돌리면서 헛소리만 하더라.”

정작 전화를 받으면 클랜들은 다른 소리만 했다.

다재능 룬을 보유하게 된 비결이 있느냐…

혹시 친구 중에 추천할 만한 홀더가 있느냐…

영양가도 없고,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들이었다.

그를 곰곰이 듣던 박진우가 물었다.

“네가 임자 있는 홀더라 그런 거 아니야?”

“임자? 푸흐- 웬 뜬금없이 임자 드립?”

“너 강주연 거잖아.”

“뭐?”

아, 이 우결충 새끼.

또 시작이네.

내가 뭔가 잔소리를 하려 하자, 그를 말할 틈도 없이 박진우가 재빨리 답했다.

“오우, 농담농담. 너 불의 심판 인턴 했었잖아. 그것도 유례없는 2개월짜리 단기 인턴으로. 그것 때문에 다른 클랜들이 망설이는 거 아니냐 이거지. 이미 불의 심판이라는 임자가 있으니까.”

“…어?”

의외로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박진우답지 않은 날카로운 지적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가능성이 있었다.

수많은 중소 클랜 중에서, 국내 3대 클랜인 <불의 심판>과 영입 경쟁을 이길 자신이 있는 클랜은 없을 테니까.

그래서 자꾸 추천할 만한 동기 홀더나, 내가 이토록 강해질 수 있었던 비결을 묻는 모양이었다.

뭐, 난 애초에 아직은 클랜 입단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다들 헛다리 짚는 것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지겨워 죽겠다. 빨리 관심 식고, 써클 일이나 집중하고 싶어.”

“써클도 관심 폭발이던데?”

“그거 다 허상이야. 정작 신청자는 없지?”

“어.”

“그럴 줄 알았다.”

피식 웃고는 써클룸의 문을 열었다.

지원을 많이 받은 써클룸 내부는 화려했다.

한쪽엔 커다란 책장과 수납 가구 등이 놓여 있었고, 다른 한쪽엔 소파와 TV, 컴퓨터 등의 편의시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써클룸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또 다른 방.

일종의 스터디룸처럼 구성된 방으로, 기다란 테이블과 의자를 비롯해 프리젠테이션 준비 물품이 모두 갖춰져 써클 회의를 하기 딱 좋은 공간이었다.

우리는 여기를 회의실로 지칭하고 있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회의실 안엔 이미 많은 사람이 와 있었는데, 그 중엔 <안티 빌런> 담당 교수인 김명현 교수도 있었다.

김명현 교수는 반갑다는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도재현 홀더, 왔나요. 그리고 옆에는… 박진우 홀더 맞죠?”

박진우가 살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절 기억하시는군요.”

“하하.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인데 당연히 기억하죠. 실전은 정말 뛰어난데, 이론은 살짝 아쉬웠던걸로 기억합니다.”

“아.”

“괜찮습니다. 이론보다 중요한 게 실전이니까요.”

…김명현 교수님도 은근 잘 먹이시는구나.

박진우의 이론은 아마 살짝 아쉬운 수준이 아니라,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을 것이다.

애초에 몸으로 부딪히는 스타일인 데다가, 박진우의 공부 머리는 썩 좋은 편이 아니니까.

교수님의 일격에 망부석이 된 박진우를 뒤로 한 채.

나는 김명현 교수에게 말을 꺼냈다.

“교수님, 한 10분 정도면 부원들이 모두 모일 것 같습니다.”

“네. 이미 많이들 모였네요.”

“저, 그 전에 잠시….”

<안티 빌런> 부원들의 첫 모임이 있기까지 대략 10분.

그 전에 나는 김명현 교수와 해야 할 이야기가 있었다.

‘재현아, 안, 녀엉-!’

회의실 한쪽 구석에서, 내게 입 모양만으로 인사를 건네는 여학생.

많은 사람 중에서도 금세 시야에 들어오는 내 친구, 김채은.

그녀의 써클 영입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그 인사를 받아준 후, 잠시 써클룸 밖으로 나와 김명현 교수와 나란히 섰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근처에 학생들이 사라지자, 곧바로 사과부터 했다.

그러자 김명현 교수의 얼굴이 의문에 찼다.

“도재현 홀더가 제게 사과할 일이 뭐가 있죠?”

“그… 채은이 영입 관련해서…”

내가 우물거리며 말을 더듬자, 김명현 교수가 알겠다는 듯 손가락을 폈다.

“아~ 혹시 채은이가 써클 부원에 들어온 걸 사과하는 건가요?”

“그… 네, 그렇습니다.”

“하하. 그걸 왜 도재현 홀더가 사과하나요. 분명 채은이가 들어가고 싶다고 졸랐을 텐데.”

역시 아빠는 아빠다.

너무도 정확하다.

김명현 교수의 걱정을 생각해 어떻게든 김채은만은 써클로 들이지 않으려 했지만, 원체 완강하기로 유명한 그녀의 고집을 말릴 수는 없었다.

내가 직접 만드는 써클에, 심지어 자신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써클인데 가입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아예 담당 교수인 자신의 아빠와 담판을 지었다.

다음날 바로 가입을 확정짓고 내게 통보를 하더라.

아마 김명현 교수도 충분히 설득되어 가입을 허락한 거겠지만, 그래도 ‘김도윤 습격 사건’이 일어난 요즈음 <안티 빌런>에 대한 위험도가 조금 더 높아진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도재현 홀더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써클은 꽤 안전합니다.”

“안전…”

김명현 교수가 잠시 뒤를 돌아 써클룸 쪽을 봤다.

“일단 강주연 홀더와 문가은 홀더가 부원으로 가입했으니까요.”

“예? 그게 무슨…”

강주연과 문가은?

그녀들이 부원으로 가입한 건 맞지만, 갑자기 그 이야기가 왜 나오는 걸까.

내 물음에 김명현 교수가 눈을 살짝 떴다.

“아. 도재현 홀더는 못 봤나 보군요?”

그리곤 핸드폰을 잠시 만지더니 내게 건넸다.

- <불의 심판> 클랜, 아카데미 써클 <안티 빌런>에 금전, 장비, 기술 모든 측면에서 폭넓은 지원 약속해…

- 국내 3대 클랜 <로열>, 아카데미와 협약 후 ‘내부 호위 TF팀’ 구성! A급 홀더 성나연 파견…

“방금 막 나온 기사입니다.”

김명현 교수의 말이 멍하니 귓가를 때렸다.

나도 바보처럼 그 기사들을 읽었다.

아니, 이게 대체 뭔데….

왜 이렇게 일이 커지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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