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116화 (116/353)

난데없는 <불의 심판>과 <로열>의 개입.

살짝 당황스럽긴 했지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각 클랜의 금지옥엽들이 모두 <안티 빌런>에 들어왔다.

1학년 학생 홀더 중 거물급을 꼽으라면 잊지 않고 꼽히는 두 사람.

강주연과 문가은.

한 명은 클랜 마스터의 하나뿐인 외동딸이고, 다른 한 명은 마스터까진 아니어도 사실상 클랜 실세의 딸이다.

그런 그녀들이 ‘빌런에 대항한다’는 기치를 내건 써클에 들어왔는데, 각 클랜 측에서 이를 걱정하지 않을 리 없었다.

덕분에 이렇듯 우리 클랜을 지원하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해관계도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 것 같습니다.”

“이해관계요?”

김명현 교수의 말에 되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들어 빌런 클랜의 행보가 꽤 적극적이지 않습니까? 단순 개개인의 범죄뿐 아니라, 클랜 단위로 움직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최근 불의 심판 클랜 습격 미수 사건도 그렇고요.”

“아….”

단번에 이해가 갔다.

뱀이 뒤덮은 숲.

<불의 심판>이 공들여 준비했던 이 발견 던전의 공략에, <빌런>은 습격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스파이 민채환과 <빌런> 내 강남 지부 클랜원이 동원된 대형 습격.

사냥 5팀과 내가 직접 겪었던 사건이기도 했다.

이 사건은 <불의 심판>의 현명하고 적절한 대처 덕에 미수로 그쳤었지만, 세간에는 상당한 화제가 됐었다.

<빌런>이 아무리 막나가는 범죄 클랜이라곤 해도, 이렇듯 대놓고 대형 클랜의 이권을 침탈하고자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클랜들의 경계도 심해졌지.’

그래서 그 이후, <불의 심판>을 비롯해 국내 중견 및 대형 클랜들의 <빌런>에 대한 경계가 강화됐다.

아마 <불의 심판>과 <로열>이 이번 기회에 <안티 빌런> 써클을 지원하는 것도, 그러한 경계 태세의 일환일 확률이 높았다.

심지어 문가은의 경우엔 더 심하다.

나와 같은 자리에서 김도윤의 습격을 직접 받아내다 보니, <로열>에서 빡치지 않는 게 이상한 수준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번 사건도 <빌런>에서 먼저 <로열>을 건든 것이다.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우리 써클엔 정말 다행인 일이네요.”

국내 3대 클랜 중 두 클랜이 아카데미 써클을 지원한다?

홀더 계와 아카데미의 역사를 되돌아봐도 이런 케이스는 거의 없었다.

호재 중 호재.

써클 운영에 있어 가장 바람직한 상황이 제공된 것이다.

김명현 교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도재현 홀더도 외적인 요소는 신경 쓰지 말고, 써클 운영에만 집중해주세요. 제 직감으론… 우리 써클이 꽤 큰일들을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네, 교수님.”

그렇게 김명현 교수와의 짧은 대화를 마친 후.

우리는 다시 써클룸으로 돌아갔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오니, 어느새 모집된 부원 모두가 모여 있었다.

아깐 보이지 않았던 반가운 얼굴들, 강주연이나 문가은도 한편에 보였다.

나는 그녀들과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고, 회의실 중앙으로 가 마이크를 잡았다.

“신규 창설 써클, 안티 빌런의 부원으로 모여주신 여러분… 모두 반갑습니다. 저는 안티 빌런의 창설과 회장을 맡게 된 1학년, 도재현이라고 합니다.”

짝짝짝짝-

첫 마디를 떼자, 우렁찬 박수 소리가 들렸다.

한 번도 이런 자리에 서보거나 큰 직함을 맡아본 적이 없었기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변화를 주기로 마음먹은 이상, 이제는 내 행동에 책임감을 지녀야 했다.

그 무거움과 약간의 떨림을 간직한 채, 나는 말을 이었다.

“우선 부원들을 소개하고 써클의 청사진을 그려가기에 앞서, 우리 써클을 담당해 주신 교수님부터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전사 계열 전임 교수님이신, 김명현 교수님입니다.”

짝짝짝짝-

또 한 번 박수 소리가 회의실을 가득 채우고, 김명현 교수가 웃으며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네, 반갑습니다. 김명현 교수입니다.”

김명현 교수는 회의실 내에 모인 부원들을 한 명 한 명 차분히 살펴봤다.

“제가 아무래도 맡은 강의들도 있고, 개인적으로 용무도 많다 보니 시간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 써클이 첫 모임을 한다고 하기에, 빠지면 안 될 것 같아 왔어요. 담당 교수인 제 얼굴을 모르는 부원들도 있을 테니까요.”

김명현 교수가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저 대화 스킬은 정말 사기인 것 같다.

교수님 특유의 선한 인상과 학생들에게도 말을 높이는 화법.

저걸 듣고 있으면 멍하니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래서 착한 얼굴을 지닌 사람은 뭘 말해도 설득력이 있었다.

“저는 이미 부원 학생들의 정보를 간략히 건네받아, 대부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써클과 관련해 궁금한 점이 있거나 건의할 내용이 있다면, 얼마든 도재현 홀더를 통해 의견을 주세요. 담당 교수로서 내용이 합리적이라면 모두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는 이어서, 짧게 말을 마무리 지었다.

“저도 그렇고, 아카데미 측에서도 그렇고… 우리 써클에 대해 내외적으로 관심이 많습니다. 학생들이 만들어낸 써클이지만, 오히려 학생들이기에 더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부원 여러분도 자부심을 지니고, 열심히 써클 활동을 해주세요. 그럼, 저는 이만 도재현 홀더에게 남은 진행을 일임하고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짝짝짝짝-

짧고 굵은 소개와 설명.

여느 노교수들과는 달리, 김명현 교수는 확실히 깔끔하게 말을 마치고 회의실을 떠났다.

써클 첫 모임을 끝까지 보고 가면 좋겠지만, 개강 초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전임 교수가 오늘 여기까지 와 준 것도 기적이다.

아마 시간을 겨우 빼셨을 거다.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 뒤, 마이크를 다시 건네받았다.

“네, 그럼 지금부터 안티 빌런 써클의 첫 모임 겸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부원 소개를 하려고 해요.”

나는 가장 먼저 바로 옆쪽에 앉아있던 여학생에게 시선을 줬다.

우리 써클의 부원 중 유일한 3학년, 윤지아였다.

윤지아는 내 시선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마법사 계열 3학년, 윤지아입니다.”

아…!!

와, 와….

진짜 윤지아 선배님이다….

그녀의 짤막한 소개에, 회의실 안은 감탄으로 물들었다.

윤지아는 아카데미 내에서도 꽤 유명한 학생이다.

대형 써클 <염무>를 2학년 때부터 이끌어 온 회장, 현 학생 홀더 중 가장 완숙하다고 평가받는 마법사 계열, 눈에 띌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 등…

2학기에 접어든 1학년들도 알아볼 정도로, 그녀가 3년간 아카데미에서 쌓아온 명성은 상당했다.

그런 윤지아가 <염무>를 탈퇴한 후, 신규 써클인 <안티 빌런>에 들어왔다.

당연히 같은 부원들조차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윤지아 선배님은 며칠 전까지 염무의 회장을 맡고 계시던 고학년 홀더십니다. 감사하게도 염무를 그만두신 이후, 우리 써클에 합류하게 되셨습니다. 그동안 대형 써클을 이끌어오시며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는, 신규 써클인 우리 안티 빌런이 앞으로 나아감에 있어 큰 역할을 해줄 거라 생각합니다.”

짝, 짝짝짝짝-

소개와 함께 윤지아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회의실 안에 우렁찬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김명현 교수 때보다 더 큰 박수다.

그녀에 이어 부원들의 소개가 계속됐다.

<안티 빌런> 창설에 모집된 부원의 숫자는 총 22명.

그중 3학년은 윤지아 혼자였고, 나머지 21명은 2학년과 1학년으로 구성돼 있었다.

2학년 부원 중엔 처음 듣는 이름이 많았다.

다들 각자만의 사정, 혹은 개인적인 원한으로 겁 없이 <안티 빌런>에 지원한 이들이 많았고, 개중엔 써클 합류가 확정됐던 윤지아의 이름만을 보고 들어온 이도 있었다.

그렇게 모인 2학년 부원이 총 8명.

나머지 13명의 부원은 모두 1학년이었다.

‘그리고 1학년엔… 거물급이 엄청 모였지.’

나는 1학년을 소개하기 시작하며, 속으로 감탄했다.

학년 내에서 화제가 된 학생들, 뛰어난 성적으로 순위권을 차지한 학생들, 대외적으로도 관심을 받는 학생들…

정말 다양하고 수준 높은 학생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흠흠. 박진우입니다.”

“김채은이라고 합니다아-”

우선 나와의 약속으로 써클에 들어오게 된 박진우, 그리고 아카데미 내에서 직접적으로 <빌런>에 피해를 받았던 김채은.

둘 다 한 학기 만에 상급반으로 승급한 인재들.

나까지 포함해 우리 셋은 성장세가 가장 빠르기로 소문난 1학년들이었다.

“마법사 계열 1학년, 강주연.”

“안녕하세요, 문가은입니다.”

그리고 <불의 심판>과 <로열>이 개입하게 만든 장본인들.

강주연과 문가은.

아카데미 입학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인기 많고 화제성 높은 학생들이었다.

2학년 부원 중 윤지아를 보고 써클에 들어온 이가 있다면, 1학년 부원 중엔 이 두 사람을 보고 들어온 이가 있을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윤재입니다.”

평소보다 유독 표정관리를 못 하는 것 같은 홀더, 지윤재도 있었다.

1학년 암살자 계열에서 차석을 맡은 학생 홀더.

이 정도면 웬만한 직접 전투계열 머리들은 다 모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리고…’

핵심 부원인 다섯 사람의 소개를 마친 나는, 가만히 회의실 한편을 바라봤다.

각진 얼굴에 머리카락을 눈 밑까지 내린 음습한 기운의 학생.

아마 다른 부원들이 느끼기에 가장 의외라고 느낄 법한 부원이다.

“이현호라고 합니다.”

그는 국내 최고 대장장이의 아들이자, 아카데미 내 최고의 대장장이.

특수 계열 1학년의 이현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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