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을 가린 둥지’는 작중 간소하게 언급됐던 미발견 던전이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공중형 괴수들이 출현한다고는 했지만, 정확히 어떤 괴수들이 나오는지는 알려지지 않은 던전.
심지어 발견 위치도 드러나지 않아, 사실 던전을 찾는 것부터 문제였다.
“…그래도 찾아봐야지.”
어렵다 해서 마냥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잊혀진 아룡의 석판]은 봉인만 푼다면 확실하게 내가 강해지는 아이템이다.
그 단서 중 하나로 강력해 보이는 녀석을, 시도도 안 해보고 물러나는 건 너무 손해였다.
“일단 파티원부터 구하자.”
나는 도서관을 나와, 중앙로 한편의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핸드폰 내 연락처를 뒤적거렸다.
파티원이라고 해봐야 사실 정해져 있다.
박진우, 김채은, 강주연, 문가은.
이미 나와 파티를 해본 경험도 있고, 내 능력에 대해 가장 잘 알고 깊게 관여해 있는 이들.
신성 계열이 없는 것만 빼면, 파티 밸런스도 알맞기에 네 명 만한 파티원들이 없었다.
그런데 역시 세상일이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진 않는 모양이다.
“안 된다고? 왜?”
-주말에 가족 여행 있어. 월요일에 연휴 껴 있잖아. 몇 달 만에 가는 여행이라 못 뺀다.
“아….”
박진우는 가족 여행이 있다는 이유로 사냥을 거절했다.
이건 뭔 짓을 해도 마음 못 돌린다.
얼핏 훈련과 싸움에 미친 놈처럼 보이지만, 박진우에게 있어 가장 큰 가치는 가족이다.
가족을 누구보다 아끼고,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제일 중요한 녀석이다.
‘아카데미 말살 작전’ 때 박진우가 각성했던 것도, <빌런>에서 동생 박윤서를 건드렸기 때문이었으니…
거기서 말 다 한 셈이지.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알았다고 전화를 끊었다.
“쩝. 괜찮아. 내가 딜탱 다 하면 되지.”
전사 계열이 하나쯤 더 있었으면 했지만, 나 혼자 해도 큰 상관은 없었다.
그런데 꼬이기 시작한 건 박진우뿐만이 아니었다.
“클랜 프로젝트?”
-…응. 일단은 나도 선임 클랜원이라서.
“아….”
이미 <불의 심판>에서 중요 역할을 맡은 강주연은 하필 클랜 프로젝트가 겹쳤다.
‘뱀이 뒤덮은 숲’ 이후에 오랜만에 들어가는 대형 프로젝트라서, 쉽게 일정을 빼기 힘든 모양이었다.
“채은이, 너도 안 된다고?”
-힝… 스승님이 다음 주에 부산 출장 있으시대. 그래서 전속 강의 시간 부족하실 것 같다고, 주말에 특강 잡혔어….
“아….”
-나도 같이 사냥 가고 싶은데… 스승님한테 말해서 수업 빼버릴까?
“아니야, 아니야. 그럴 필요까진 없어.”
믿었던 김채은도 거절….
그녀는 아쉬움을 표하며 사냥을 따라오려 했지만, 나는 애써 이를 말렸다.
정선영은 김채은이 성장할 수 있게 만드는 거의 유일한 지름길이다.
내 개인적인 일로 그녀의 성장을 가로막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다음에 갈까?”
세 명의 친구에게 거절당하니 던전 공략을 미뤄볼까도 생각해봤다.
지금 사냥 가려는 곳의 괴수들이 대부분 공중형 괴수인 만큼, 후방 지원을 맡을 확실한 딜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솔플로도 어떻게든 될 것 같긴 해도, 사냥 속도에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안 돼. 다음 주부턴 너무 바빠.”
하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다음 주부턴 본격적으로 <안티 빌런> 써클의 운영이 시작된다.
<빌런>에 대한 정보도 모아야 하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그들의 작전에도 대비해야 했다.
써클 부원으로 들어온 지윤재의 견제 또한 겸해야 했고.
게다가 언제 공략될지 모르는 미발견 던전이기에, 그나마 시간이 남는 이번 주에 공략을 시도하고 싶었다.
나는 마지막 남은 연락처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곤 누구보다 간절하게 말했다.
“가은아, 넌 되지? 된다고 말해줘. 제발.”
-뭐래, 갑자기.
앞뒤 자르고 본론부터 말하자 당황한 문가은이었지만, 천천히 이어진 내 설명에 호기심을 보였다.
-속리산 필드 사냥?
“응. 속리산 필드가 공중형 괴수들 많기로 유명하잖아. 나 공중형은 한 번도 상대해 본 적 없어서 경험 쌓고 싶기도 하고, 성과도 챙길 겸 사냥 가고 싶어서.”
-음….
문가은만 오케이라면 나름 수월해진다.
비록 아직은 C급 홀더지만, 지금쯤이면 능력치로나 룬 레벨로나 B급에 거의 근접해 있을 문가은이다.
B급에 근접한 궁수 계열의 사격 지원.
그리고 내 탱킹과 근접 공격.
둘이 합쳐지면 까다로운 공중형 괴수들의 공격도 여유롭게 막아낼 수 있었다.
-특별히 일정 없어서 되기는 해.
“나이스! 그럼 이번 주에 가는 거다?”
그 질문에 문가은은 조심스럽게 답했다.
-근데 우리만 가는 게 아닐 수도 있어.
“어? 그게 무슨 말이야?”
-이거 조금 복잡한 얘긴데… 혹시 저번 김도윤 습격 이후로, 우리 클랜에서 아카데미랑 협약한 건 알아?
당연히 알고 있다.
저번에 김명현 교수가 보여줬던 기사.
<로열>은 물론, <불의 심판>까지 합세하며 <안티 빌런> 써클에 힘을 실어주겠다고 선언했었으니까.
나는 그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내부 호위 TF팀 구성한다는 거?”
-응, 맞아. 정식 명칭은 내부 호위지만… 도재현 너나 나처럼, 클랜에서 지정한 핵심 인물들은 외부도 일정 거리 이상에서 호위를 맡거든. 특히 이번처럼 어디로 사냥을 갈 때면 더더욱.
“아하….”
-아빠랑 얘기해 봐야 확실히 알겠지만, 아마 사냥에도 호위가 붙긴 할 거야.
이것까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나야 그렇다 해도, 문가은은 <로열>에서 중요 인물이다.
클랜 핵심 간부인 문정혁의 딸이고, 클랜 마스터인 황건욱의 조카.
특히 마스터인 황건욱이 자식이 없기에, <로열>에선 거의 공주 취급을 받는 게 문가은이었다.
일전에 김도윤의 습격을 한 번 경험한 후로, 클랜에서 호위와 경호를 더 강화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일단 알겠어.”
-크게 방해되는 선은 아닐 테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
“걱정할 게 뭐 있나. 클랜에서 호위해주는 건데.”
-그런가? 아무튼… 그럼 토요일에 가는 걸로!
“오케이. 모레쯤에 만나서 다시 자세히 얘기하자.”
-응!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주말이 찾아왔다.
용산에 자리한 한 워프 게이트.
연휴의 첫째 날이라 그런지, 서울의 워프 게이트는 전국 곳곳 다른 워프 게이트에 이동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 인파 속에서, 나는 문가은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애쉬 블루 톤의 머릿결과 적당한 신체 비율.
척 봐도 고급 아이템으로 느껴지는 방어구와 활.
무엇보다 많은 사람 사이에서 눈에 띄는 외모.
이쯤 되면 그녀를 못 찾는 게 더 힘든 수준이었다.
문가은 역시 금세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언제 왔어?”
“얼마 안 됐어, 한 10분? 근데 사람 진짜 많다.”
“그러게. 연휴라서 다들 놀러 가는 건지, 아니면 사냥 가는 건지.”
“장비 차려입은 거 보면 사냥 가는 홀더들이 더 많은 것 같아. 우리처럼 학생들일 수도 있고.”
당연한 말이지만, 워프 게이트는 비싸다.
한 번 이동하는 데에 다량의 고급 마력석이 사용되기에 이용료가 상상을 초월한다.
어지간히 돈 많은 일반인도 엄두 내기 힘들었고, 홀더들도 자본에 여유가 많은 고위 등급 홀더가 아닌 이상 웬만해선 다른 이동 수단을 선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사람이 붐빈다니….
큰맘 먹고 돈 써서 이동하는 사람들이나, 각 잡고 외부로 파티사냥을 가는 홀더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나는 질린 얼굴로 그 인파를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전에 통화했던 게 떠올라 물었다.
“그건 어떻게 됐어? 호위 팀 같이 붙는 거?”
“아, 그거. 아빠하고 잘 말해봤는데… 팀 전체가 따라붙는 건 역시 효율도 떨어지고 우리한테도 부담일 것 같아서, 팀장님만 오기로 했어.”
“팀장님?”
“응. 너도 아마 알 텐데. 아, 저기 오신다.”
문가은이 한쪽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고개를 돌리자, 한 여성 홀더가 우리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보랏빛 머리카락을 기다랗게 내린 스타일과 가볍게 차려입은 장비.
큰 키와 더불어 기다란 팔다리.
마치 모델과도 같은 외양의 여자였다.
그리고 그녀가 천천히 다가올수록, 내 눈도 점점 커졌다.
문가은의 말처럼, 나도 아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아, 그…”
“처음 뵙겠습니다. 로열 클랜 소속 선임 클랜원, 그리고 이번 ‘안티 빌런 호위’ 태스크 포스 팀의 팀장을 맡게 된 성나연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로열>을 대표하는 홀더 중 한 명.
바람과 검을 동시에 다루는 A급 멀티 홀더, 성나연이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의 악수를 받았다.
“도재현입니다. 명성 높은 성나연 선배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성나연은 그 인사에 웃으며 답했다.
“그동안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아마 따라붙는 게 조금 부담되시겠지만, 최대한 편하게 생각해주세요. 제가 맡은 역할은 잠재적 리스크에 대비한 호위. 그러니 절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하려던 일을 하시면 됩니다. 혹시 제가 사냥에 참여하게 되는 일이 있더라도, 모든 부산물 및 공략 성과로부터 저는 제외될 거니까요.”
애초에 사냥에 참여도 잘 안 하겠지만…
혹시 참여하게 되더라도 모든 권리를 포기.
꽤 파격적인 이야기다.
아마 문가은이 클랜에 보고하면서, 이에 대한 부분을 확실히 매듭지은 모양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로열>에 미발견 던전 성과를 뺏길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이건 문가은이 상당히 잘 처리한 부분이었다.
“아! 그리고 본부장님께 그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네? 어떤…”
갑자기 성나연이 꺼낸 말에 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본부장.
아마 <로열>의 운영총괄본부의 본부장을 일컫는 말일 텐데, 실질 권력은 클랜의 부마스터보다 높은 자리였다.
그리고 이 본부장이란 자리는…
문가은의 아버지, 문정혁의 지위였다.
문정혁에게 뭔가 이야기를 들었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온몸을 덮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이내 현실이 되었다.
“대외적으론 비밀인데, 두 분이 사귀는 사이라고….”
“…아.”
“아.”
나는 바보처럼 탄성을 냈다.
그리고 그건 문가은도 마찬가지.
그녀 역시 여기까진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 저는 어디까지나 호위 역할입니다.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할 겁니다. 그… 스, 스킨쉽 같은 걸 얼마든 하셔도 상관없다는 뜻입니다. 자유롭게 행동해 주세요. 절대 두 분의 데이트에 방해되지 않게 움직이겠습니다.”
무언가 단단히 결심한 표정으로…
결연하게 말을 건네는 성나연.
뭘 보든 간에 각오가 돼 있다는 얼굴이다.
“…….”
그 모습을 보자, 난 그 이상의 생각을 멈춰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