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파티사냥을 위해 찾아온 필드였는데, 둘이서 나란히 속리산을 오를 때면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
사실 그건 처음 도재현에게 연락이 왔을 때부터 그랬다.
태연한 척 시간이 된다고 말하긴 했지만, 문가은은 당시 재빠르게 일정을 모두 체크했었다.
호위가 붙긴 해도, 어쨌든 둘이서 가는 파티사냥.
이걸 꼭 가고 싶었기에.
‘왜 이러지….’
이유는 솔직히 모르겠다.
김도윤에게 갑작스러운 습격을 당했던 날.
그에게 보호받고, 의도치않게 백허그를 했던 날.
그때 이후로, 도재현을 볼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다.
자꾸만 가슴이 쿵쿵대고, 그가 하자는 건 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안티 빌런> 써클에 흔쾌히 가입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성나연 홀더….’
그런 와중.
호위로 붙은 성나연의 말은 기폭제가 되었다.
두 분의 데이트를 방해하지 않을 테니 편하게 행동하란 말.
예상치 못한 발언에 둘 다 당황했었고 그에 대해 사과도 하며 적절히 합의했지만, 문가은은 그때부터 심장이 진정되질 않았다.
성나연의 말처럼.
정말 오늘의 사냥이 데이트처럼 느껴졌기에.
함께 속리산 필드를 오르는 것도…
유독 초입부에 괴수들이 없는 것도…
모두 데이트를 위한 조건처럼 느껴졌기에.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손을 잡자는 도재현의 제안을 거절했던 것.
문가은 역시 냉큼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지만,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거절해버렸다.
‘주연, 채은… 미안.’
문가은은 속으로 친구들에게 사과했다.
이 감정을 정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어쩐지 강주연과 김채은에게만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연인 행세를 핑계로 스킨쉽을 할 때면 더더욱 그랬다.
그리고 다시 한번 느꼈다.
들켜선 안 된다.
가짜 연인 행세를 한 것도, 둘이서 오붓하게 사냥을 온 것도.
두 사람에게 들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말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콰, 콰아아앙!!
끄으으윽-?!
그렇게 등반을 지속하던 속리산 필드.
그 중간부에 들어서고서야 마주친 B급 괴수.
하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녀석이…
도재현의 단검 세례를 맞고, 이어 난데없는 폭발까지 받아내며 크게 휘청거렸다.
“이게….”
활 시위를 당기던 문가은도 그 광경을 보며 당황했다.
단검으로 움직임만 제약시키겠다던 처음 계획.
그와는 상당히 달라진 결과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재현이 아무리 멀티 홀더라곤 하지만, 지금껏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특이 형태의 ‘마력룬’을 사용했다.
심지어 그 성질이 일전에 마주한 김도윤의 능력과 비슷한 ‘폭발’.
자연히 ‘뭐지?’ 싶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당혹스러운 상황에서도.
문가은은 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막을 수 없었다.
‘멋있다….’
처음 보는 도재현의 능력.
그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과 별개로…
그의 화려한 전투는 멋있었다.
* * *
김도윤을 처치하고 획득했던 룬, [폭발하는 검의 기세].
당연한 얘기지만, 이건 마력룬에 해당한다.
검 종류의 무기를 사용했을 때 자연적으로 마력을 투입해 폭발을 일으킬 수 있고, 그 마력의 성질은 불 속성으로 대체된다.
그건 [쿼터 나이프]에 연동된 추가효과, ‘비도 폭탄’ 역시 마찬가지.
대체로 내구 수치가 높은 괴수들에게 마력 공격이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듯, 강렬한 폭발의 성질을 지닌 채 날아간 내 비도 폭탄도 하피에게 효과적일 수밖에 없었다.
‘강화 수단도 많아서….’
[폭발하는 검의 기세]는 불속성 계열 마력룬을 보유하면 룬의 위력이 증가하고, 마력 증폭과 관련된 룬을 활용해도 폭발이 강해진다.
내가 보유한 룬들 중…
[이글거리는 불꽃]과 [마력 증폭].
이 두 룬이 자연스레 보조룬 역할을 하면서, 비도 폭탄으로 날아간 [쿼터 나이프]가 예상외의 엄청난 위력을 보인 모양이었다.
피슈우- 팍!
끄, 끄으으윽-.
잠시 다른 생각을 하던 도중.
공중에서 휘청대던 하피가 또 한 번의 일격을 당하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멍하니 이 광경을 같이 보던 문가은이, 이내 정신을 차리고 준비하던 공격을 마무리한 것이다.
완전히 전투 불능이 된 하피.
B급 괴수치곤 너무도 허무한 전투였다.
나는 어색하게 손뼉을 치며 말했다.
“나, 나이스 샷.”
“…….”
뜬금없는 말에 정적이 흘렀다.
역시 이건 아닌가?
전투를 마치고 자세를 고쳐잡던 문가은은…
이내 날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그 폭발, 새로 깨달은 능력이야?”
“어, 어?”
“주연이한테 들었어. 도재현 너, 불속성 마력룬 보유하고 있다고. 저번에 김도윤이랑 직접 싸워보더니, 폭발하는 힘도 각성했나 보네.”
…그게 그렇게 되나?
폭발 능력을 문가은에게 들켰을 땐 아차 싶은 기분이었지만, 의외로 문가은은 스스로 쉽게 납득해버렸다.
일전에 김채은과 마찬가지로, 원래 그에 재능이 있던 내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건 뭐, 룬 사냥꾼을 설명 안 해도 되겠네.’
어쩌면 그들의 입장에선 자연스러운 얘기다.
애초에 아카데미 지하 던전을 함께 사냥갈 때만 해도, 물리 공격만으로 앞선에서 탱커를 맡았던 게 나다.
그랬던 내가 어느새 마력 공격을 익히기 시작하고, 퓨어 탱커에서 딜탱 브루저로 진화해가며 멀티 홀더의 끝판왕 같은 면모를 보여줬다.
거기서 더 새로운 능력을 얻는다고 해서 이상할 게 없었다.
물론, [폭발하는 검의 기세]까지 김도윤과의 전투에서 깨달음을 얻고 능력을 개화했다… 라는 식으로 이해할 줄은 생각도 못 했지만 말이다.
“아마 너도 처음 써보는 것 같은데, 조심해서 사용해. 힘 조절 안 되면, 활용하는 네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나보다 홀더 경력이 1년이나 앞선 문가은.
그녀의 조언은 합리적이었다.
당장 방금만 해도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계획했던 전투에 차질이 생겼었으니까.
앞으로 새로 얻은 능력을 활용할 땐 미리 체크를 좀 하고 실전에서 써먹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고마워. 역시 홀더 선배님답게 내가 배우는 게 많네.”
“뭐, 뭐래. 같은 학년끼리. 그리고 괴수 정보는 나보다 네가 더 많이 알잖아.”
문가은은 그렇게 말한 후.
문득 하피가 떨어진 앞쪽으로 향했다.
“어디 가?”
“하피 부산물 채취하러. 따라오지 마. 나 혼자 해볼 거야.”
그녀는 얼굴을 가리며 총총총 걸음을 옮겼다.
뭘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걸까.
혹시 나한테 주제넘은 충고를 했다고 생각하나?
그러기엔 충분히 도움 되는 말이었는데….
털털한 성격의 문가은도, 어떨 때 보면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것 같았다.
‘그럼 나도….’
무리 지어 다니지 않는 속리산 필드의 괴수 특성상, 한 번 하피를 잡았으니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나도 그 틈에 잠시 내 볼일을 위해 정보창을 불러왔다.
사냥이 정상적으로 끝나면 찾아오는 나만의 정보창.
[룬 사냥꾼] 보상이었다.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결투에서의 높은 기여도로 인해 승리가 인정됩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1.고속비행 2.깊은 바닷물 3.민첩성(선택불가) 4.지구력 5.육탄방어(선택불가)]
하피는 기본적으로 신체강화형 괴수다.
높은 근력과 속력을 기반으로 강력한 물리 공격을 취하는 공중형 괴수이기에 룬 세팅 또한 그와 관련이 있었다.
사용자의 움직임을 전반적으로 보조해주는 [민첩성]과 높은 체력을 보장하는 [지구력], 그리고 대표적인 방어룬 중 하나인 [육탄방어]까지.
모두 신체강화에 치중된 룬 세팅이었고, 나 역시 보유하고 있거나 상위룬을 지닌 상태라 굳이 필요치 않았다.
남은 선택지는 [고속비행]과 [깊은 바닷물].
‘이건 뭐, 고속비행이지.’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사냥하다 보면 결국 둘 다 얻긴 하겠지만, [소용돌이를 삼킨 파도]가 이미 있기에 기존과 다른 형태의 룬을 먼저 선택하고 싶었다.
[고속비행을 선택하셨습니다. 7레벨의 레어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해, 4레벨로 등록됩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속력을 1 획득합니다.]
‘지독히도 짜게 주네.’
홀더 능력치 대부분이 40을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룬 획득으로 얻는 능력치도 상당히 적어지기 시작했다.
4레벨의 레어룬을 획득했는데도 속력이 1밖에 오르지 않는다니….
시작부터 상위 능력치를 받고 각성하는 홀더들이 괜히 우대받는 게 아니었다.
이런 걸 볼수록 [구도자의 땀방울]의 특수효과.
훈련 시간 비례 능력치 상승이, 참 감사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럼 룬 정보를…’
그렇게 새로 얻은 룬의 정보를 확인하려던 찰나.
“어?”
나는 잠시 눈을 약간 찡그렸다.
황금색 정보창 하나가, 또 시야를 장악하며 들어왔다.
이제는 나도 이 정보창의 정체를 안다.
벌써 세 번째다.
세 번이나 같은 현상을 겪으면, 그땐 색깔만 봐도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상위룬이 또 생겼다고?’
상위룬.
[룬 사냥꾼]의 특수효과로, 보유룬을 조합해 새로운 룬을 획득하는 시스템.
첫 번째는 [무술의 달인]을 얻었었고, 두 번째론 [야만왕의 후예]를 얻었었다.
그런데 이를 얻은 지 두 달 만에…
또 다른 상위룬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 조합 가능한 룬이 존재합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을 이용해 상위룬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상위룬: 천하제일 경주마 / 하위룬: 질주, 수중질주, 분노의 질주, 고속비행]
“…….”
하지만 이를 확인한 나는 가만히 정보창을 바라봤다.
뭐냐.
이 허접 같은 룬 이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