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룬 이름이….’
[천하제일 경주마]라니.
누가 들어도 홀더가 보유할 법한 룬은 아니잖아….
새로 상위룬이 나온 것보다 룬 이름이 더 충격이다.
살짝 멍해지긴 했지만,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정리했다.
‘세 번째 상위룬.’
벌써 세 번째 상위룬이 나타났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미루어봤을 때.
그간 만들어진 상위룬은 일종의 공식이 있었다.
하나는 일정 카테고리 안에서 다양한 룬들을 조합했다는 것.
[무술의 달인]은 각종 무기와 관련된 물리룬들을 조합한 상위룬이었고, [야만왕의 후예]는 짐승과 관련된 신체강화형 보조룬들을 조합한 상위룬이었다.
카테고리는 같아도, 하위룬의 내용은 모두 달랐었다.
‘이번 건 다 같네.’
그런데 이번 룬은 카테고리도 같은 데다가, 하위룬의 성질도 다 같았다.
모두 달리는 것과 관련된 돌격류 룬.
덕분에 상위룬으로 조합 가능한 룬 역시…
이름부터 돌격에 최적화된 룬 같아 보였다.
‘하위룬 개수도 네 개밖에 안 되고.’
상위룬의 두 번째 공식은, 하위룬의 개수가 상당히 많다는 것이었다.
[무술의 달인]이 조합될 땐 8개.
[야만왕의 후예]도 8개였다.
때문에 나는 당연히 8개가 공식 개수이거나, 최소 7개 이상부터 조합이 가능해지는 줄만 알았었다.
하지만 이번 [천하제일 경주마]는 고작 4개로도 상위룬이 조합됐다.
내 나름대로 정리했던 상위룬의 공식.
그게 모두 깨지는 순간이었다.
아무래도 ‘상위룬’이라는 건, 특별한 조합 공식이 정해져 있지 않고 상황과 조건만 맞는다면 자유롭게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일단 고속비행부터….’
나는 간단히 새로 얻은 [고속비행] 룬의 정보를 확인했다.
4레벨의 레어룬.
파생스킬은 없음.
특수효과론 바람 속성의 마력룬을 보유했을 때 더 큰 위력을 보이며, 일직선 주행보다 하강 시에 더 뛰어난 성능으로 돌격할 수 있다는 것.
다양한 특수효과를 고려하면, 돌격류 룬에서도 상당히 괜찮은 룬이었다.
‘근데 일단 하늘을 못 날잖아.’
[고속비행]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하늘에서 질주할 수 있는 돌격류 룬은 확실히 매력적이지만, 공중을 부양할 수 있는 룬이나 능력이 없다면 룬 활용 자체가 불가하다는 것.
일단 날 수 있어야 공중 돌격을 할 텐데, 전제 조건부터 만족이 안 됐다.
이건 다른 공중형 괴수들을 사냥하면서, 관련 룬을 획득해야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럼….’
정보를 모두 확인한 후.
나는 다시 정보창을 불러왔다.
상위룬 조합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지금껏 조합하고 나서 실패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이미 결정된 사항이나 마찬가지였다.
[상위룬 ‘천하제일 경주마’를 조합하셨습니다. 질주, 수중질주, 분노의 질주, 고속비행… 총 4개의 룬이 하위룬으로 선택됩니다. 하위룬을 종합한 상위룬의 판정 레벨은 5입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속력을 4 획득합니다.]
“와….”
순간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탄성이 나왔다.
속력을 4나 올려준다고?
수치 자체는 [무술의 달인] 때와 비슷했지만, 지금의 내 능력치가 그때보다 훨씬 더 올랐다는 걸 고려하면 놀라운 상승치다.
아마 속력 쪽으로 과하게 치우친 룬이기에, 능력치 상승도 한 방향으로 쏠린 모양이었다.
‘드디어 50 넘었다.’
덕분에 내 속력은 51이 되며, 보유 능력치 중 최초로 50을 넘기게 됐다.
나는 이어 곧바로 <룬 정보>를 확인했다.
<룬 정보>
◎이름: 천하제일 경주마
◎등급: 에픽(Epic) / 상위(Superior)
◎보유 하위룬
[질주] [수중질주] [분노의 질주] [고속비행]
◎레벨: 5
◎새겨진 부위: 다리
◎특수효과
: 상위룬의 특별한 힘으로 하위룬들에 숙련도 보정을 줄 수 있다. 각각의 하위룬은 단일 룬으로서 숙련도를 올릴 수 있고, 상위룬의 보정을 통해서도 숙련도를 올릴 수 있다.
: 사용자의 발이 닿는 모든 영역에서 거침없이 달려 돌격할 수 있다. 이는 속력 수치에 비례해 효과가 증폭된다. (단, 하늘/바다 등의 특정 영역은 해당 영역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능력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 ‘래피드 라이딩’ 효과가 상시 적용된다. 모든 상황에서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사용자는, 자신이 타는 어떤 탈것이든 그를 천하제일 경주마로 만든다. 탈것을 탄 채로 돌격할 경우, 본래 돌격 속도의 70% 성능을 낼 수 있다.
*하위특수효과
: (상세)
◎파생스킬
[액셀 피어싱]
[사족 질주]
◎세부정보
: 초인적인 주력과 압도적인 가속도! 거침없이 모든 영역을 헤집고 다니는 당신은, 천하제일 경주마로 부름에 있어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더 빨리, 더 강하게! 함께 달리는 모든 생명체보다 한 발 더 앞서나가자.
<스킬 정보>
◎이름: 액셀 피어싱
◎파생 룬: 천하제일 경주마
◎대기시간: 3시간
◎사용조건: 창과 관련된 룬 보유.
◎사용효과
: 일직선으로 든 창에 마력을 집중해, 돌격이 마무리될 시 그 가속도와 함께 찔러 넣는다. 강렬한 마력 및 물리 타격을 복합적으로 입힐 수 있으며, 공격당한 상대에겐 지속적인 ‘출혈’ 효과가 적용된다.
*이 스킬을 사용할 경우, [무자비한 돌격]의 특정 효과(돌격이 끝날 때 2배의 근력으로 가격)는 일시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와….”
한 번 더.
탄성이 한 번 더다.
[야만왕의 후예] 때처럼 전설급 룬이 나오진 않았지만, 충분히 화려하고 엄청난 효과들을 지닌 에픽급 룬이 탄생했다.
우선 기본적인 효과부터.
육, 해, 공의 모든 질주 관련 룬을 취합한 상위룬답게 효과도 포괄적으로 변했다.
어떤 곳에서든 룬의 보조를 받으며 돌격할 수 있다는 건, 능력의 범위가 얼마든지 다양하게 뻗쳐갈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다만, 아까도 언급했듯 ‘하늘’이나 ‘바다’ 같은 특정 영역에선 관련 룬이 있어야만 돌격이 가능하다.
다행히 내겐 [수중호흡] 룬이 있어 바다에서의 돌격은 가능하고, 공중 관련 룬만 획득하면 될 것 같았다.
‘래피드 라이딩. 이것도 꽤 쓸만한 것 같고.’
아마 말 같은 걸 탔을 때 적용되는 효과 같은데…
‘탈 것’이라고 표현된 걸 보면, 자전거나 자동차 같은 것도 적용되는 건가?
현대 문물과 룬 활용의 결합은 조금 더 연구해볼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스킬.’
[천하제일 경주마] 룬엔 파생스킬이 무려 두 개나 있었다.
두 개라니.
처음부터 스킬이 두 개 있는 룬이 지금껏 있었나?
언뜻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 게, 아마 이번이 처음인 게 분명했다.
게다가 스킬 자체도 굉장히 좋다.
[액셀 피어싱]은 위력으로 보나 활용성으로 보나 너무 매력적이었다.
타격 대상의 치유를 제한하는 ‘출혈’ 효과가 붙은 것도 그렇고, 내가 보유한 파생스킬 중 몇 안 되는 직접공격 스킬이라는 점도 좋았다.
아마 내 주력스킬 중 하나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사족질주는….’
나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사족 질주]의 정보는 보고 싶지도 않았다.
보나마나 뻔하다.
네 발로 뛰면 더 빨리 뛸 수 있다…
뭐, 이딴 거겠지.
혼자 있을 땐 충분히 효율이 나오겠지만, 파티사냥을 할 땐 죽어도 쓰고 싶지 않은 스킬이었다.
‘이번에도 성공적이네.’
역시 상위룬은 늘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조합의 결과는 항상 평타 이상은 가는 것 같았다.
“도재혀언!”
그렇게 새로 얻은 룬의 정보들을 정리하고 있자, 저 멀리 하피의 부산물을 채취하러 갔던 문가은이 날 불렀다.
아차.
새로운 정보들에 심취해 주변의 소리를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살짝 화난 듯한 그녀의 목청에, 나는 재빨리 뛰어갔다.
“불렀어?”
“이씨… 왜 이렇게 대답이 없어. 한 네 번은 부른 것 같은데.”
“미안미안. 잠깐 장비랑 홀더 정보 좀 점검하느라.”
문가은은 양손을 허리에 짚고 뾰루퉁한 얼굴로 날 보더니, 이내 표정을 풀며 하피를 가리켰다.
“이것 좀 잠깐 봐 봐.”
“왜? 무슨 일 있어?”
“응. 조금 이상한 게 있어서.”
정확히는 하피의 목덜미 쪽에 박힌 마력석.
무수히 많은 깃털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부위였다.
나는 그녀의 말에 따라, 장갑을 끼고 하피의 사체를 살폈다.
목덜미 깊숙한 곳에 박힌 붉은 마력석.
그 색깔은 상당히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
그걸 본 후에야, 문가은이 날 부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거…”
“너무 상태가 좋지?”
“어. 뭐야, 이거?”
하피의 마력석.
평범한 B급 수준이어야 할 마력석의 상태가 너무 좋았다.
보유한 마력의 순도가 상당히 높고, 응집도 역시 과하게 높다.
A급 마력석인가?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런 착각이 들 정도의 퀄리티였다.
“하피의 마력석치곤 너무 상태가 좋더라구.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력 추적을 써 봤어.”
그 말에 난 깜짝 놀라 되물었다.
“마력 추적을 썼다고?”
“어? 아, 응. 탐색류 룬이랑 마력제어를 일정 수준까지 올리면 연동되는 파생스킬인데….”
안다.
당연히 안다.
궁수 계열의 공통룬인 탐색류 룬과 전체 공통룬인 [마력제어]를 상당히 고레벨까지 올렸을 때 파생되는 스킬, [마력 추적].
특정 마력 현상이나 스킬 따위에 담긴 마력의 원류를 파악할 수 있는 고급 스킬이었다.
‘벌써 그걸….’
그런 고급 스킬을 문가은이 벌써 익힌 것도 대단한데, 지금과 같은 평범한 상황에서 그를 쓸 생각을 했다는 것도 놀라웠다.
보통이라면 ‘어? 마력석 상태가 좋네?’ 하고 넘어가도 될 정도의 현상이었으니까.
과연 <로열> 클랜의 핵심 자제.
마력을 다루는 수준부터 사냥을 대하는 사고방식까지, 일반 홀더들과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그래서 추적을 해봤더니…”
문가은이 이번엔 뒤를 돌아 저 멀리 한쪽에 있는 나무를 가리켰다.
우리가 속리산 필드를 등반하며 지나쳐 온…
평범한 나무들 중 하나였다.
“혹시 보여?”
“어떤 게?”
“저기 저 나무, 위에 둥지가 하나 있어.”
둥지?
그 말에 나는 눈을 찌푸리며 나무를 노려봤다.
당연히 보이는 건 없었다.
궁수 계열이라 시력 쪽에 보조를 받는 문가은과 달리, 난 그와 관련해 아무런 룬도 없으니까.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살짝 웃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둥지에… 이 하피의 마력석이 머금은 마력과 유사한 형태의 마력이 집중돼 있어.”
“아…!!”
그 말까지 듣고 나서야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내 생각엔 아마, 특정 현상으로 마력이 결집된 특이 지형지물이거나… 미발견 던전. 응. 미발견 던전일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
문가은이 추측한 저 멀리 나무 위의 둥지.
거긴 아마 내가 이 속리산 필드에 온 이유.
일단 와서 어떻게든 찾으려고 들었던 미발견 던전.
‘구름을 가린 둥지’인 게 분명했다.